손석희 현상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손석희 현상
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 / 2017년 2월 / 302쪽 / 15,000원
1956~1999년 “공정방송의 간판스타? 나는 기가 막혔다!”
허무주의에 빠져 있던 손석희의 20대: 손석희는 1956년 7월 27일생인데, 30세가 될 때까지 30번이나 이사를 다녔고, 집이 없어서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진 적도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한동안 세상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한때 허무주의적인 성향을 갖기도 했다. 1982년 국민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한 손석희는 유력 일간지의 총무부 사원으로 입사했다가 그만두고, 1984년 MBC에 아나운서로 입사하면서 방송 아나운서가 되었다. 그는 이 시절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나이답지 않게 허무주의에 빠져 있던 나의 20대를 청산하려 뛰어들었던 방송은 또 다른 덕목을 요구하고 있었다. 순응, 굴종, 문제의식으로부터의 도피 등등. 80년대 중반의 상황에서 방송을 택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의식 따윈 없었다는 반증이 아니냐는 자조 섞인 원죄의식을 변명 삼아 나는 주어진 일에만 몰두했다.”
‘프락치’로 오해받은 손석희의 노조 가입: MBC 노조의 창립 선언문은 “방송을 물이나 공기와 같은 환경요소 가운데 하나라고 볼 때, 국민들은 맑은 물과 공기를 마실 권리가 있듯이, 건전한 방송을 요구할 권리”가 있음을 지적하고, 따라서 “그동안 왜곡, 굴절되어온 방송 체제는 전면적으로 고쳐져야 하며, 방송의 고유기능은 시청자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전적으로 방송인에게 맡겨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손석희는 어떤 선택을 했던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문화방송에 노동조합이 생겼을 때 나는 그것이 나의 삶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갈 것이란 생각은 미처 해보지도 못한 채 덜커덕 가입 원서를 냈다. 나는 방황만 하던 20대를 청산하겠다고 결심하던 때의 기분으로, 나를 지배하던 허무주의를 끝장내겠다고 작심하던 때의 그 기분으로 원서를 냈을 뿐이다. 방송사에서의 3년은…… 종류는 좀 다르지만 중세와 같았던 나의 20대를 되살려주었으므로…….”
MBC 입사 후 얼굴이 알려지면서 손석희는 ‘아도니스형의 미소년’이라는 타이틀까지 얻었지만, 이게 늘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노조 가입과 관련해 이런 사연이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의 여성스럽고 곱상한 외모만을 보고 아무런 세상 고생도 모르는 ‘철부지 도련님’ 정도로 생각하는 통에 손해도 많이 봤다. 심지어 노조에 가입하겠다고 나서는 그에게 혹시 프락치 아니냐며 공공연히 의심하는 선배도 있었다. 훗날 그로부터 정중한 사과를 받았음은 물론이다.”
손석희의 ‘부끄럽고 낯 뜨거운’ 기억: 1988년 8월 10일 MBC 노조는 “숙명적 관제 방송의 구각 속에 안주했던 부끄러운 과거를 온몸을 던져 청산하고야 말겠다는 참회의 다짐이며 방송민주화 쟁취를 국민 앞에 약속하는 실천적 선언”으로, 한국 방송 사상 최초의 쟁의 발생 신고를 냈다. 쟁의 발생 신고 이후 최초의 집회인 행사에 일반 조합원들로서는 처음으로 공개석상에서 머리띠를 동여매고 구호와 노래를 외쳤다. 한편 8월 21일 <여기는 MBC> 담당 이창섭 아나운서가 ‘공정방송’이란 리본을 달고 진행하려다 비노조원으로 대체되는 등 리본을 단 노조원들의 방송 출연이 저지되곤 했다.
손석희는 훗날 이때의 ‘부끄럽고 낯 뜨거운’ 기억을 다음과 같이 털어놓았다. “88년 쟁의 기간 중 준법투쟁으로 ‘공정방송 쟁취’라는 리본 달기를 한 적이 있어요. 그땐 리본을 달겠다고 하면 아예 진행자를 교체해 버리는 분위기였는데, 토요일 <뉴스데스크> 시간에 나가면서 와이셔츠에 리본을 달고 그 위에 겉옷을 입고 나갔습니다. 리본이 보일락 말락 하게요. 방송을 끝내고 얼마나 부끄러운 생각이 들던지, 이러다간 내 인생 앞에 큰 빚을 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다음 날 당장 리본을 달고 나갔죠.”
‘공정방송’의 상징이 된 손석희: 1992년 8월 MBC는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과정에서 피해 농가와 관련된 방송을 준비했지만 방송사 고위층의 방송 불가 판정을 받았다. 이에 MBC 노조는 9월 2일 세 번째 파업에 나섰는데, 노조가 50일 동안 파업을 벌이며 요구했던 건 ‘공정방송’이었다. 이 파업으로 모두 7명이 구속되었는데, 당시 저녁 7시 뉴스 앵커였던 손석희도 노조 파업 행사팀장을 맡고 있어 주동자 중 한 명으로 구속되어 20일간 수감 생활을 했다. 당시 손이 밧줄에 묶여 있는 와중에도 얼굴엔 환한 미소를 머금고 있던 손석희의 사진 한 장은 이후 방송민주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이미지가 되었고, 이 사건 후 손석희는 ‘공정방송’의 상징이 되었다.
“공정방송의 간판스타? 나는 기가 막혔다!”: 1993년 11월 손석희는 『풀종다리의 노래』라는 책을 출간했는데, 그는 「후천성 잡지공포증 환자」라는 글에서 《월간 말》이 1992년 12월호 손석희 인터뷰 기사 제목을 「공정방송의 간판스타 손석희 아나운서」로 뽑은 것에 어이없어했다. “나는 기가 막혔다. 내가 공정방송을 위해 한 일이 뭐 별난 것이라고. 게다가 간판스타라니. 스타는 웬 놈의 스타인가. 나보다 더 고생한 동료들은 아직도 추운 감옥에 있는데…… 아마 기사를 쓴 Y기자도 자신의 기사에 이런 광고가 붙어 나간 걸 보고 놀랐을 것이었다. 《말》지의 그 광고를 보고 또 한 번 얼굴이 달아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말》지, 너마저도…….’”
손석희표 ‘쿨’의 특성: 손석희는 클래식 음악을 잘 알거니와 매우 좋아했다. 그런데도 단지 가식적 분위기가 싫어 클래식 음악회에 절대로 가질 않는다? 방송에서 권력자들을 만나서도 조금도 주눅 들지 않는 사람이 호화로운 장소에 가면 안절부절못한다? 단지 가식적 분위기가 싫다는 말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나는 오랜 세월 훈련해온 단독자의 터프함이 자신의 ‘쿨’한 상태를 방해하는 그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으려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손석희는 1997년 봄 가족을 모두 데리고 훌쩍 미국 유학을 떠났다. 40세를 넘긴 나이에 회사를 휴직하고 자비로 유학을 간 건 ‘무모’할 정도의 결단이었다. 그는 1992년 구속 당시 영등포 구치소에서 하루 15분씩 주던 운동 시간에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보면서 “나도 언젠가는 훌훌 떠나야지”라고 생각했던 걸 실행에 옮긴 ‘무작정 떠나기’였다고 말했다. 손석희는 1999년 미네소타 대학에서 저널리즘 석사 학위를 따고 돌아온 뒤,
으로 앵커에 복귀했다.
2000~2005년 “우리 사회의 커뮤니케이션은 ‘배설 커뮤니케이션’”
<손석희의 시선집중>과 <100분 토론>: 손석희는 2000년 10월 23일 아침부터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진행하면서 자신의 저널리스트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하게 된다. 손석희는 얼마 후 “<시선집중>에서 선보인 날카롭게 핵심을 파고드는 논쟁적인 ‘송곳 인터뷰’는 ‘죽어가는’ 라디오를 정치적 매체로 회생시킨 일등공신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편 손석희는 2002년 1월 18일부터 MBC <100분 토론>을 진행했다. 그는 이 프로그램의 진행을 2009년 11월 19일까지 맡게 되는데, 2008년 6월 MBC <100분 토론>의 PD인 이영배는 손석희의 진행 능력에 대해 이런 평가를 내린다. “손석희 교수의 순발력은 탁월하다. 누구를 연결해도, 논란을 일으킬 발언에도 뛰어나게 대처한다. 뭐가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지 토론의 맥을 확실히 꿰고 있다.”
2006~2008년 “‘신뢰받는 언론인’이라는 말을 듣고 싶다”
성신여자대학교 문화정보학부 교수로 변신한 손석희: 손석희는 자신에 대해 “난 포기가 빠른 사람”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건 모두 ‘선택’인 거죠. 실수란 선택을 잘못한 것이고요. 그럼 실수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잘못한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해야죠. 전 그래서 제가 간 길에 대해 실수란 표현을 잘 쓰지 않아요. 일종의 자기 합리화인데, 제 자신을 평가하는 덴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고 보거든요.” 포기가 빠르다는 건 결단력이 있다는 걸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40세 넘은 나이에 미국 유학을 간 것도 그렇고, 나이 50세가 된 2006년 2월 16일 MBC 아나운서 국장직을 끝으로 방송 프리랜서이자 성신여자대학교 문화정보학부 교수로 변신한 것도 그렇다.
언론의 주목이 쏟아진 가운데, 동아일보는 성신여자대학교가 손석희를 교수로 초빙하기 위해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를 신설했으며, 손석희는 정교수와 학부장 자리를 보장받았다고 보도했다. 일부 언론은 손석희가 정치를 할지도 모른다는 의심의 눈치를 보냈는데, 이에 손석희는 MBC 퇴임 기자회견에서 “일부에서 정치권 진출 등 계획을 밟아나간다는 말이 있지만 200퍼센트 틀리다”고 단언했다.
“‘신뢰받는 언론인’이라는 말을 듣고 싶다”: 2006년 손석희는 시사저널이 실시하는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여론조사에서 2년 연속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1위로 뽑혔다. 이에 대해 그는 10월 24일 성균관대학교에서 열린 강연에서 “영향력 있는 언론인은 권위적인 냄새가 나서 싫습니다”면서 “제가 한 것은 질문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신뢰받는 언론인이라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고 소감을 밝혔다.
2009~2012년 “백화점식 나열 뉴스론 안 된다”
손석희의 <100분 토론> 진행 강제 하차: 2009년 10월 12일 시사주간지 《시사IN》에 따르면, MBC 경영진은 가을 개편이 시작되는 시점인 11월 23일에 손석희를 <100분 토론>에서 교체하기로 결정했다. 손석희가 <100분 토론>을 맡은 지 7년 10개월 만의 퇴장인 셈이었다. 이에 대해 《뷰스앤뉴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손석희 교체설은 그동안 방송가에 파다했던 내용으로, 엄기영 MBC 사장이 뉴라이트 출신 방문진들의 압박에 굴복한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그동안 뉴라이트 등은 손석희 교수가 <100분 토론>을 편파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며 그의 교체를 강력 주장해왔다.
“백화점식 나열 뉴스론 안 된다” / “계속 뉴스를 보느라 ‘나이트 라이프’가 없다”: 2012년 손석희가 방송기자회와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의 방송 뉴스 철학에 대해 비교적 상세한 주장을 펼쳤다. MBC 기자회장이자 《방송기자》 편집위원장인 박성호와 가진 인터뷰인데, 프로들끼리의 대담인지라 내용이 매우 알차다. 손석희표 저널리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이 많아 자세히 감상해보는 게 좋겠다.
<박성호> 방송 뉴스의 내용 면에서 봐도 시청자들이 알고 싶은 걸 다룬다기보다 뉴스 공급자들로부터 쏟아지는 뉴스들을 실어 나른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손석희> 그건 예전하고 똑같아요. 출입처 제도라는 취재 시스템이 바뀌지 않으니까. 각 부장들이 출입처의 기자들을 관장하니 편집 회의에 아이템을 낼 때도 출입처 기준으로 반영이 되고. 아주 원론적인 문제이면서도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고 봐요. 백화점식 나열 뉴스를 깨려면 출입처를 허물어뜨려야 하는데. 그걸 깰 수 있을지……. <박성호> 제가 1년간 영국에서 모니터를 해보니 ‘BBC 뉴스는 맥락을 제공하는 뉴스’였습니다. 교수님도 우리 뉴스에 콘텍스트가 없다고 하셨는데, 뉴스의 내용 면에서는 어떤 걸 지향해야 할까요? <손석희> 난 인터넷 댓글 뉴스를 보면 답이 상당 부분 나와 있다고 봐요. 한번 생각해보세요. 인터넷 뉴스에서 댓글 많은 뉴스는 원칙적으로 편집자들이 임의로 뽑은 주요 뉴스가 아니라 댓글 많은 뉴스가 올라갑니다. 그런데 그 뉴스에는 물론 쓸데없는 정크 인포메이션도 있어요. 연예 관련 소식이 많이 있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엔 굉장히 논쟁적인 뉴스들이 올라갑니다. 나는 그런 것들도 텔레비전 뉴스에서 응용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그 서른 몇 개의 아이템을 낼 게 아니라 아이템 수를 대폭 줄이더라도 우리가 어떤 부분이 논쟁적이고 댓글이 많다는 것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니 그 부분에 좀 더 많은 취재 인력과 편집 시간을 배당해주면 그게 나은 것 아닌가요? 그건 뉴스의 본령에도 맞아요. 우리가 이야기한 콘텍스트든 스토리든 모두 담을 수 있다고요. 또 시장성에도 맞아요. 사람들이 모두 관심을 보이니까. 그게 요즘 대중들의 욕구잖아요. 내가 뉴스를 봐도 20분, 30분 넘어가면 별로 볼 게 없어요. 뉴스 소비하는 사람들은 대개 비슷한 생각들일 겁니다. 그 뒤의 뉴스는 다른 프로그램에서 다뤄도 되는 부분이죠. 굳이 왜 하려고 하냐고요. 왜 1분 30초씩 서른 몇 개를 고집하느냐 말입니다.
<박성호> 요즘 종편의 시사 프로그램들을 봐도 그렇고, 진행자들한테 직접 들은 바도 있는데 굉장히 튀어야 한다는 주문을 많이 받는다고 해요. 어떻게 보십니까? <손석희> 나는 내 의견은 그렇게 내밀진 않아요. 내가 예전에 타사의 아침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들 만나서 이야기 들어보면 새벽 3~4시에 나온대요. ‘아니 왜 그렇게 일찍 나오냐’고 했더니, 나와서 오프닝과 클로징 써야 한다고 해요. 그래서 내가 농담으로 그랬어요. ‘그러면 죽습니다. 사람이 좀 자야지.’ 난 일찍 안 나와요. 방송 45분 전에 나와요. 그 기본적인 이유는 그런 데다 시간이나 정력을 쓸 게 아니고 인터뷰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한마디라도 더 물어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예요. 우리나라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는 어쩔 수 없이 균형을 추구하는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가능하면 콘텐츠로 채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어떤 진행자의 주관이나 스타일에 있어서 차별화시키려는 노력은 내가 좀 해보진 않은 것 같아요.
2013년 “스트레스로 새벽에 식은땀 흘리며 깬다”
“MBC 떠나는 손석희, 마지막 방송 현장 울음바다”: 종편을 둘러싼 논란은 가열하게 전개되다가 2013년 5월 10일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이날 인터넷을 달아오르게 만든 두 인물이 있었으니, 한 명은 성신여자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손석희, 한 명은 청와대 대변인 윤창중이었다.
동아닷컴은 「56년생 동갑내기 손석희-윤창중의 명과 암…그것참!」이라는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손석희 교수는 10일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하차했고, 앞서 전날 성신여대에 사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손석희는 JTBC 보도본부를 총괄하는 사장직을 맡기 위해 자신이 맡고 있던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 그는 그동안 큰 실수 한 번 없이 높은 인기를 누려왔기에 다소 갑작스런 소식이기는 하지만 많은 네티즌들이 그의 결정을 존중하며 응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여기까지는 명(明)이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이다. 하루아침에 전 청와대 대변인이 돼버린 그는 한미정상회담이 열린 지난 7일 백악관 인근 호텔에서 미국 시민권자인 23세 인턴 여대생의 엉덩이를 허락 없이 주무른(grab) 것으로 신고됐다. 그야말로 암(暗)이다.……”
“호랑이굴 들어간 손석희, 결국 잡아먹힐 것” / “손석희의 ‘다짐’, 아직은 못 믿겠다” / “배신을 가리켜 배신이라 말하는 내가 옹졸한가”: 손석희는 이날 오전 JTBC 보도자료를 통해 “JTBC가 공정하고 균형잡힌 정론으로서 역할을 하는 데 일조할 수 있다면 큰 보람이며, 결국 그 길이 저 개인뿐만 아니라 JTBC의 성공이 아닐까 생각한다”며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보수와 진보 양 진영 간 골이 점점 깊어진다는 것이다. 언론이 그 간극을 메우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고 전했다. 손석희의 JTBC행이 응원만 받은 건 아니었다. 진보 진영의 일각은 실망감과 배신감을 드러냈다. MBC PD 출신인 단국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김평호는 손석희의 발언에 대해 “김영삼 씨가 3당 합당하면서 했던 말과 비슷하다. 호랑이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간다는 거였는데, 결국 잡아먹힐 게 불 보듯 뻔하다”며 “실망스럽다”고 밝혔다. 2013년 5월 13일 손석희는 JTBC 신임 보도담당 사장으로서 첫 공식일정을 소화했다. 그는 보도국 기자들과의 첫 회의에서 “균형, 공정, 품위, 팩트를 4대 가치로 한 방송 뉴스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JTBC 보도국장 오병상은 “손 사장의 영입으로 보도국 사기가 크게 올라갔다”면서 “앞으로 JTBC 방송 뉴스를 한층 더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타 종편 고위 관계자는 “거액의 연봉을 주며 종편 시장을 교란시키는 손 사장의 이적이 그리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다”며 “스타급 언론인 한 명 영입이 뉴스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지는 사실 의문”이라며 평가 절하했다. 일반 대중은 대체적으로 “손석희니까 일단 지켜보자, 가서 하는 것을 보고 판단하자”며 유보적인 반응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