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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의 극우주의

박권일 외 지음 | 자음과모음
지금, 여기의 극우주의



박권일 외 지음

자음과모음 / 2014년 11월 / 240쪽 / 12,000원





공백을 들여다보는 어떤 방식: 넷우익이라는 ‘보편 증상’ - 박권일



일베를 보는 프리즘

발생학적 관점: 2013년 일간베스트저장소(이하 일베)라는 인터넷 커뮤니티가 한국을 발칵 뒤집었다. 고 김대중 대통령, 고 노무현 대통령뿐 아니라 광주항쟁 희생자들을 모욕하는 합성사진과 게시물이 매체 지면을 통해 소개되었고, 대다수 사람들은 그 발언의 수위와 발상의 저열함에 전율했다. 일베가 한국 사회에 충격을 준 이유는 기본적으로 군사정권의 학살에 희생된 시민들의 관을 ‘홍어 택배’라 부르는 것과 같은 엽기적이고 반인륜적인 사고방식 때문이었다. 더 심각한 것은 소위 ‘486세대’보다 젊은 세대가 전라도 차별 의식을 거리낌 없이 표출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장년층 이상의 기성세대의 경우 ‘반공ㆍ냉전주의에 오랫동안 길들여졌다’는 식으로 배경 설명이 가능하지만, 청년 세대의 ‘극우화’는 새로운 설명이 필요했다.

한편 언론의 일베 묘사나 배경 분석이 대부분 이념성에 매몰된 것과 달리 다른 측면에 주목한 다음과 같은 시선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이 체계적인 정치 대결이라기보다, ‘안티에 대한 안티’를 통한 ‘놀이’의 성격이 강하다고 말한다. 진보 진영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창씨개명 이름 ‘다카키 마사오’라 부르며 비난하는 것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일본식 이름 ‘도요타 다이쥬’를 찾아내 폭로하는 식이다. 이는 보수적 정치집단이 조직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이라는 해석이 많다.” 일베의 유희성에 주목하는 건 현상에 대한 분석으로서 설득력이 있을 뿐 아니라 ‘발생학적 관점’으로 봐도 타당해 보인다.

일베는 일간베스트저장소라는 이름에도 드러나듯이 다른 커뮤니티의 베스트 게시물을 모은, 이를테면 ‘2차 커뮤니티’다. 참고로 한국 인터넷 놀이 문화의 절대적인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커뮤니티는 디시인사이드라는 사이트이다. 디시인사이드는 수많은 분야의 갤러리로 분화 -야갤(야구 갤러리), 막갤(막장사건사고 갤러리), 코갤(코미디 프로그램 갤러리), 정사갤(정치사회 갤러리) 등- 되어 있는데, 각 갤러리는 각자 독립적인 분위기와 문화, 색깔을 가지고 있다. 유저들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서로 잘 섞여들지 않는다. 그런데 2010년, 이들 갤러리에 올라온 게시물 중 가장 선정적인 것만 ‘집대성’한 사이트가 탄생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일베였다. 즉 매체에 의해 일베의 특성이나 독특한 감성으로 이야기되는 것들은 일베 고유의 것이라기보다 대부분 이들 갤러리로부터 이어져온 밈(meme)이다.

‘국정원 게이트’라는 변수: 이러한 ‘발생학적 관점’은 일베에 관해 상당히 많은 부분을 해명해준다. 유명 갤러리의 자극성과 유희성을 한곳에 갖추고 있으니 사람이 모여드는 것도 당연하다. 일베 담론에 대한 기존의 분석은 이러한 일베 문화의 자생성을 전제한다. 요컨대 일베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된 인터넷 문화의 하나라면, 일베의 ‘담론’도 자생적인 의견이라 가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반인륜적인 내용이지만 어쨌든 그것 역시 사회의 여론 중 일부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논의의 틀 자체를 뒤흔드는 변수가 등장한다. 이른바 ‘국정원 게이트’이다.

가설의 붕괴: ‘국정원 게이트’는 2014년 여름인 현재까지도 사태의 전모가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국정원과 국군사이버사령부 같은 국가기관이 전라도 지역민에 대한 혐오 발언, 김대중ㆍ노무현 전 대통령 등 민주화 세력의 상징적 인물에 대한 모욕 등을 확대ㆍ재생산해왔다는 것만으로도 경천동지할 사건임은 분명하다. 이것만큼은 의혹이나 가설이 아니라 명백한 사실의 영역에 속한다.

이들의 핵심 활동 무대 중 하나가 바로 일베였다는 점은 무엇을 의미할까? 말할 것도 없이, 일베 담론에 대한 분석에서 국가기관-권력의 여론 개입이 반드시 고려해야만 하는 핵심 요소가 되었다는 의미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최근의 우파 여론에서 특정한 유형의 적대들이 과소 대표 내지 은폐되거나, 혹은 특정한 유형의 적대들만 과잉 대표되었을 가능성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알기 위해서 필요불가결한 작업이 바로 기존의 자생적 넷우익 담론과 일베 담론 간의 비교ㆍ대조이다. 그럼에도 이런 관점은 일베에 관한 기존의 분석들에서 완전히 결여되어 있었다.

한일의 ‘자생적’ 넷우익: 2012년 출간된 『우파의 불만』에 실린 글 「뉴라이트에서 네오라이트로? 한국의 반이주노동 담론 분석」에서 나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혐오와 반감을 노골적으로 토로하는 어느 인터넷 커뮤니티 담론(다음 카페 ‘다문화정책반대’)을 살펴본 바 있는데, ‘다문화정책반대’ 커뮤니티는 당시 가장 큰 규모의 반이주노동자 온라인 모임이었고, 이들은 ‘애국시민’이라 자임했다.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콘텐츠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혐오를 거리낌 없이 표출하는 글이 대부분이다. 유형을 분류해보면 중심 담론으로 경제 담론, 민족 담론, 치안 담론을 꼽을 수 있다. 주변 담론은 종교, 반자본주의, 반엘리트주의, 보건 담론으로 나눌 수 있다. 예를 들어 경제 담론은 ‘외국인 노동자 때문에 국내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고 임금 상승이 억제’되는 등 지속적으로 경제적 고통을 겪는다는 식이다.

이들의 담론은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근거 없는 편견을 강화하고 확대ㆍ재생산한다는 점에서, 다시 말해 인종주의적이라는 면에서 일베와 유사하다. 하지만 일베가 소위 ‘민주화 세력’만을 혐오와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 반면, 반이주노동 담론은 ‘민주화 세력’뿐 아니라 새누리당 등 ‘산업화 세력’도 ‘모두 한통속’이라고 강하게 비난한다. 반이주노동 담론은 전통적인, 그리고 기득권을 여전히 쥐고 있는 한국 우파의 사고방식과 상당히 이질적이다. 이들은 일베와 달리 ‘종북몰이’ 같은 냉전주의적 사고방식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반면, 경제적 이해관계에는 매우 민감한 모습을 보인다.

자생적 넷우익의 또 하나 참고 사례로 일본의 재특회(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모임)가 있다. 회장 사쿠라이 마코토(본명 다카다 마코토)는 역사 교과서에 적힌 종군 위안부의 비참한 처지가 모두 엉터리이고, 일본군의 난징 대학살이 허구라고 주장하며 극우 성향의 네티즌에게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재일 코리안(한국계와 총련계를 통칭)이 특권을 누리고 있다면서 “반도로 돌아가라”라고 윽박지른다. 또 오늘날 일본 청년들이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국가가 저소득층에게 제대로 지원금을 주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는 이유가 바로 재일 코리안과 외국인 노동자들이 복지에 무임승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변한다. 활동가 조직을 탄탄히 갖춘, 이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신우익 집단의 등장에 일본 사회는 경악했다. 어디서 이런 ‘괴물’들이 한꺼번에 등장한 걸까.

재특회를 추적한 르포르타주 『거리로 나온 넷우익』의 저자 야스다 고이치는 이렇게 적고 있다. ‘“재특회란 무엇인가?”라고 내게 묻는 사람이 많다. 그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당신의 이웃들입니다.” 사람 좋은 아저씨나 착해 보이는 아줌마, 예의 바른 젊은이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작은 증오가 재특회를 만들고 키운다. 거리에서 소리치는 녀석들은 그 위에 고인 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의 저변에는 복잡하게 뒤엉킨 증오의 지하수맥이 펼쳐져 있다.’ 야스다는 재특회의 증오가 ‘아래에서부터’ 샘솟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물론 ‘100퍼센트 순수한 여론’이나 ‘100퍼센트 조작된 여론’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정도’의 문제인데, 그럼에도 시민사회 내의 이익 단체의 직간접적 여론 개입 전략과 국가가 조직적이고 은밀하게 벌인 대국민 여론 조작은 질적으로 구별되며, 구별되어야 한다. 국정원 사태가 여기까지 밝혀진 이상 ‘우익 담론의 자연 발생 공간으로서의 일베’라는 가정은 기각되어야 한다. ‘자생적 담론’이라는 중요한 전제가 붕괴한 것이다.

최소한 일베의 담론 형성 과정은 재특회나 여타 반이주노동자 커뮤니티의 그것과는 결이 다르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 점은 일베를 추동하는 ‘이념적 동기’ 내지 ‘사상적 확신’이 생각보다 크지 않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해석할 수도 있다. 국정원의 여론 개입이 드러난 건 대부분 반호남 지역주의 담론이었다. 반면 일베에서 유통되는 담론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여성 혐오의 경우 국정원과 관련이 별로 없었다. 여성 혐오 담론을 그나마 일베의 자생적 담론으로 추정할 수 있는 이유다 .

일베의 담론 - 여성 혐오

김치녀의 기원: 한국 사회에는 ‘속물적이고 남성 의존적인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집단적 언어폭력이 하나의 사회현상이 되어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다. 인터넷을 하다 보면 ‘된장녀’, ‘보슬아치’, ‘김치녀’ 같은 노골적인 비속어를 누구나 한 번쯤은 듣거나 보게 된다. 김치녀의 유래를 두고 격렬한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많은 여성이 김치녀를 ‘일베 용어’로 지목했기 때문이다. 일베 유저들이 이런 지적에 대한 반박으로 내놓은 게 바로 ‘김치녀 네이트 판 기원설’이다.

2011년 인터넷 포털 사이트 ‘네이트 판’의 어느 유저가 키 크고 잘생긴 외국인 남성의 사진들 밑에 “길거리에 흔한 유럽 남자”라고 적고 “내 옆에는 왜 김치맨인가”라고 푸념하는 글을 게시했는데, 이를 보고 격분한 어떤 남성이 “길거리에 널린 흔한 해외 여자, 나는 왜 김치녀인가”로 패러디한 데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게 ‘정설’이라 주장한다. 사실일까? 물론 사실이 아니다. 김치녀라는 말은 네이트 판에서 만들어진 게 아니며 아마도 일베에서 처음 등장한 말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건 김치녀라는 말을 가장 빈번하게 쓰는 주체가 일베 유저라는 것, 그리고 한국의 어떤 대형 커뮤니티보다 여성 혐오 현상이 격렬하게 분출되는 공간이 일베라는 사실이다.

‘성난 젊은 예비역들’: 여성 혐오 현상은 2000년대 들어 온라인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지금 김치녀 담론에서 갈등하고 적대하는 주체들은 단순히 ‘남성 대 여성’이 아니다. 일부 젊은 여성과 일부 젊은 예비역 남성이다. 이 ‘전선’이 처음 사람들의 눈앞에 가시화된 사건이 2001년 ‘월장 사태’였다. 여자 후배에게 음담패설을 하고 술을 따르게 하는 등 대학 내 군사 문화를 비판하는 칼럼이 부산대학교 여성주의 웹진인 《월장》에 실렸는데, 이 글이 알려지면서 예비역 남성들의 온라인 테러가 시작되었다. 온라인의 예비역 남성이 집단 정체성을 과시하게 된 계기도 사실상 그때부터였다.

월장 사태 당시에는 대립하던 측이 여성주의자와 남성 진보주의자였지만, 2000년대 중반이 넘어가면서 적대의 대상은 여성부, 된장녀/김치녀로 이동ㆍ확대되었다. 참고로 예비역 남성은 국민개병제도의 산물이자 오랫동안 한국 사회에 존재하던 코호트적 집단(공통점을 지닌 인구학적 집단)이다. 하지만 ‘성난 젊은 예비역’은 200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 대두된 온라인 집단 정체성이자 사회 문화적 주체이다. 전체 예비역 남성 중 일부를 이루는 이들에게 가장 도드라진 특징이 집단 피해 의식이다. ‘국방의 신성한 의무’로 포장되곤 하지만 젊은 시기 2년 가까이를(과거에는 3년이었다!) 군대에서 보내야 한다는 건 그 자체로 고역이고 희생이다. 그런데 상층 계급의 군역 면제율은 지나치게 높고, ‘그나마 위안이던’ 군 가산점 제도마저 논란에 휩싸이다 1999년 위헌재판으로 폐지되었다. 평등에 대한 소박한 감각이 개인의 고통스러운 기억과 결합하면 금방 피해 의식으로 치환된다. 그리고 피해 의식은 필연적으로 희생양을 -그게 타인이든 자신이든- 찾게 되어 있다. 성난 젊은 예비역 남성이 혐오하는 건 차별, 또는 불평등이 아니다. 이들이 혐오하는 건 정확히 말해, 차별당해 마땅한 인간이 차별당하지 않고 우대되어야 할 인간이 우대되지 못하는 것이다. 김치녀는 젊은 예비역 남성이 상상 가능한 가장 혐오스러운 여성상이었다. 그 반대편에는 ‘개념녀’가 자리 잡았다. 실제로 된장녀 담론이 확산되면서 여성 스스로 자신이 된장녀가 아니라 ‘개념이 장착된 훈녀’임을 애써 주장하는, 이른바 ‘개념녀 인증샷’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된장녀/김치녀 담론의 낙인효과가 강하게 발생했다는 증거다. 된장녀/김치녀 혐오를 부추기는 남성들은 이런 여성들의 반응을 근거 삼아 혐오의 정서를 확대ㆍ재생산했다.

여성 혐오가 ‘일베에서 강하게 드러난다’는 것과 ‘일베에서만 드러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진술이다. 전자는 사실이지만 후자는 사실이 아니다. 김치녀 운운하는 여성 혐오 정서는 다른 남초 사이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이런 관찰을 토대로 여성 혐오가 극우적 현상이 아니라고 결론 내리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오히려 사회 전체에 혐오 정서가 영향을 확대하고 있다고 여기는 게 자연스럽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한국은 ‘아줌마’나 ‘올드미스’에 대한 혐오와 경멸이 광범위하게 작동하는 사회였는데, 가부장주의와 남근주의가 주된 이유였다. 김치녀 혐오 현상 역시 남근주의와 관련이 있지만, 간과하기 어려운 차이가 있다. 혐오의 주체 스스로 자신을 피해자화한다는 점이다. 이는 극우 인종주의 담론에서 일반적으로 드러나는 서사적 특징이다. 즉, 우월하고 도덕적인 사람이 열등하고 비도덕적인 사람에게 부당한 피해를 입는다는 인식에 기반을 둔 혐오인 것이다.

일베의 모티베이션

일베는 ‘루저’인가?: 일베의 일탈에 대한 여러 설명이 있었다. 범죄심리학자 표창원은 일베 유저에게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① 강하고 능력 있는 ‘남자’이고 싶지만, 경쟁에서 탈락하여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 좌절하고 이를 약자 공격으로 분풀이함. ② 겉으로는 진보나 민주화 세력에 대한 비판과 반대를 표방하나 속으론 그들이 받는 지지와 선망에 극단적 질투심을 보임. ③ 대부분 성장 과정에서 애정 결핍 내지 학대, 폭력 피해. 학교 폭력의 가해자 혹은 피해자 다수 포함. ④ 자기 집단이 싫어할 요소 갖춘 사람 찾아내 신상 털거나 약점 잡아내 집단 공격 가하는 ‘가학성(사디즘)’과 스스로를 ‘벌레’로 비하하며 사회적 비난 초래하고, 욕설 일상화 등 ‘자기 학대(마조히즘)’ 함께 보임.’

사회비평가 진중권도 ‘일베 비판’을 다음과 같이 트위터에 올린 적이 있다. “사회의 낙오자들이 권력에 대한 좌절된 욕망에서 권력과 자신을 환상적으로 일체화한 것이다. 그 환각에 빠져 권력이 시키지 않았는데도 자발적으로 권력의 주구가 되어 사회적 약자들을 공격한다. 그것을 통해 자신들이 주류 권력에 속한다는 허구적 만족감을 느끼려는 것이지만, 권력이 쓰레기들을 인정해줄 리 없다. 그럼 그들은 자신들의 충성이 부족해 그런 거라 믿고 더욱더 악랄하게 사회적 약자들을 공격하게 된다.”

사실 일베 활동이 원한 감정에 사로잡힌 사회 낙오자들의 일탈 행위라는 유의 해석은 표창원과 진중권만의 독창적인 분석은 아니다. 일베가 사회문제화한 직후부터 많은 사람이 공유해오던 일종의 표준 해석이다. 이렇게 ‘루저론’이 비등하자 일베에서는 자신이 ‘명문대 학생’, ‘일류 기업 사원’, ‘고소득 전문직’임을 인증하는 ‘신분 인증’이 유행처럼 번졌다. ‘우린 루저 아니거든?’이라는 반박이었다. 일베 유저들의 계급 위치는, 정밀한 조사가 가능하다면, 의미 있는 자료일 것이다. 그러나 객관적 데이터가 거의 없는 상화에서 루저나 낙오자라는 식의 라벨링은 일베 유저의 화를 돋우는 것 외에 뾰족한 실익이나 의의가 없다. 올바른 질문의 형식은 ‘일베에 가는 개인들은 누구인가’라기보다 ‘일베는 무엇인가’, ‘일베는 왜 하필 지금 그 모습으로 현상하고 있는가’이다.

질적 경쟁에서 양적 경쟁으로: 일베는 다른 극우 세력이나 넷우익과 구별되는 특이성을 가지고 있다. 바로 정치화 가능성을 스스로 거세한다는 점이다. 이는 곧 인정 투쟁 같은 규범적 개념으로는 일베 현상을 포착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일베는 긍정적인 자기 정체성을 인정받기 위한 투쟁이 아니며, 그렇다고 모욕당하고 무시당하는 자의 저항이라 볼 수도 없다. 사회운동으로서의 합목적성이나 정치세력화의 의지도 결여되어 있고, 어떤 이해관계에 의해 묶여 있지도 않은 이 거대한 집단행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일베를 해명하는 작업의 열쇠는 바로 이 질문에 묻어 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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