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이웃, 중국과 일본
리처드 C. 부시 지음 | 에코리브르
위험한 이웃, 중국과 일본
리처드 C. 부시 지음
에코리브르 / 2013년 3월 / 655쪽 / 35,000원
중일 관계의 간략한 회고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중일 관계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당시 소련의 팽창을 경계한 두 나라는 양국을 가로막고 있던 냉전의 장벽을 허물고 1972년 9월 국교 수립에 합의했다. 양국은 통상, 민간 항공, 해상 운송, 어업에 관한 기본적인 경제협력을 체결했다. 일본은 1979년 중국에 대한 차관을 제공하기 시작했고, 이후 줄곧 중국의 경제발전을 지원했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 일본의 교과서 왜곡 및 야스쿠니 신사 참배 같은 문제들이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이러한 문제들이 양국 관계를 적대적으로 몰고 가지는 않았다.
1990년대 들어 양국 관계는 정체기를 맞이하기 시작했다. 물론 경제적 유대 관계는 지속되었다. 양국의 교역규모는 15년 동안 10배 이상 증가했다. 일본의 대중국 투자도 20배 이상 늘어났다. 하지만 안보 측면에서 몇 가지 사태가 양쪽을 자극했고, 상대에 대한 의구심을 떨쳐내기 어렵게 만들었다. 우선 1995년 중국의 핵실험이 일본의 정계와 여론을 들끓게 만들었다. 같은 해 타이완 총통 리덩후이가 미국을 방문하자 중국은 군사훈련을 실시하면서 타이완에 압력을 행사했다. 이러한 중국의 조치는 일본을 비롯한 주변 국가에 대한 일종의 경고로 받아들여졌다. 1990년대 말 중국군이 센카쿠 열도에 대한 순찰을 강화했고 일본은 비상경계에 돌입했다. 일본은 중국에 대한 원조를 외교적 지렛대로 삼았고, 반면 중국은 역사문제를 일본에 대한 지렛대로 삼았지만 양국은 서로 상대방의 행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좌절감을 느꼈다. 21세기 들어서는 새로운 상황이 펼쳐졌다. 무엇보다 양쪽의 군사력이 훨씬 강화되었다. 일본은 중국의 군사적 팽창을 우려하고 있고, 중국은 일본이 막강한 군사능력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헌법을 개정해 군사력을 집단 방위를 위해 투입할 수 있는 길을 터놓으려 한다는 데 우려하고 있다.
정체 상태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1995~2006년 동안 중일 관계에서 나타난 부정적 경향과 거기서 파생된 문제를 지적하기란 쉬운 일이지만, 그런 일이 왜 일어났는지를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양국의 긴장 관계를 이해하려면 긴장 상태의 특정시점에서 나타나는 상호작용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사에 대한 두 나라의 관점도 알아야 한다. 과거 일본의 침략은 오늘날 일본이 지닌 군사력과 그것이 어떻게 쓰일 것인가에 대한 중국의 생각에 영향을 미친다. 마찬가지로 전후 일본의 행태가 전쟁 당시와 다를 게 없다는 중국인의 고정관념은 인민해방군의 증가와 타이완 문제 등에 대한 베이징의 행태를 일본이 어떻게 해석할지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두 가지 경향이 나타났다. 한편에서는 중국 인민해방군이 군비를 확보해 능력을 키워나가면서 지휘통제, 훈련, 병참 같은 여러 가지 제도적 기능을 확충하고 전력화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도쿄는 이를 우려해 미국과의 안보 동맹을 강화하고 있으며, 중국은 일본의 이러한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하지만 미일동맹 강화는 중국과 그다지 상관관계가 없으며 오히려 북한의 위협과 지역 동맹 체제를 미국의 세계 안보전략에 편입하려 했던 부시 행정부의 의도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타이완 해협 문제는 예외이며, 여기서는 미일동맹의 강화와 중국의 군사력 획득이 서로 관련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동맹 강화의 실제적 동기가 무엇이냐가 아니라 잠재적 적대자가 그 동기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이다. 미국과 일본의 관계가 더욱 긴밀해진 이유가 실은 북한의 행위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만일 베이징 쪽에서 양국의 긴밀한 관계가 타이완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러한 인식과 그에 따른 대응이 정작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해군, 공군, 해안 경비대 및 사이버 전사들
1970년대 이래 일본 자위대의 해군과 공군의 전력은 일본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해역에서 해상교통로를 순찰하는 능력까지 갖추었다. 최근 일본은 미사일 방어 체제를 갖추었고 해상보안청의 능력도 크게 향상했다. 중국 인민해방군도 1990년대 이래 해군과 공군, 미사일 능력을 확충해 타이완의 분리주의 움직임을 억제하고 있다. 두 나라 군대는 중요한 전략 지역에서 상대의 접근과 통제를 막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양국이 중시하는 문제 지역들은 상당 부분 겹쳐 있다. 중국은 일본(류큐 열도 포함), 타이완, 필리핀 군도로 이어지는 라인의 서쪽 해역에서 미국 및 일본의 군대가 작전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을 장기 목표로 삼고 있다. 일본 해상자위대는 4개의 구축함단, 4개의 잠수함단, 1개의 소해정단, 그리고 9개의 항공대를 보유하고 있으며, 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해군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해상자위대의 임무인 해양 보급선 보호는 자연 자원이 없는 섬나라 일본의 특성상 중요한 과업이다. 대외교역 없이는 국가의 생존과 번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중요한 임무는 본토의 섬을 바다에서 방어하는 일이다. 이 중 가장 중요한 댜오위/센카쿠 열도는 현재 일본이 점유하고 있지만 중국도 이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한편 중국 해군은 핵과 재래식 작전 수단을 통합적으로 구비한 현대식 해군을 꿈꾸며 전력을 증강하고 있다. 동아시아 연안에서 중국의 전략은 접근 억제 및 영역 확보이다. 그런데 이런 전략 때문에 일본은 곤란한 처지에 놓여 있다. 중국이 전략적 이유로 밀고 나올 경우, 일본이 지금까지 확보해온 작전 지역을 건드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 해군의 현대화의 결과를 과장할 필요는 없다. 함정 대 함정, 잠수함 대 잠수함 대결에서 인민해방군 해군은 아직 해상자위대의 맞수가 되지 못한다. 그래도 중국 해군은 앞으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양면으로 체계적인 질적 성장을 거듭할 것이다. 한편 중국 공군은 동중국해는 물론 일본까지 작전 범위를 넓히는 방향으로 전력을 증강하고 있다. 인민해방군이 잠수함대, 수상함대, 현대식 항공기, 방공체계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탄약과 병기 체계를 획득함에 따라 중국은 자국의 변방 도서에서 그 어떤 외국의 해군이나 공군이 발붙이고 전투를 펼칠 수 없게끔 하려는 목표를 달성할 태세를 갖춰 가고 있다.
인접 지점과 마찰 지점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있는 4개의 마찰 지점이 있다. 첫째, 영토 문제의 성격을 띠고 분쟁의 불씨가 되고 있는 댜오위/센카쿠 열도이다. 양국 정부가 이 섬을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1968년 국제연합의 조사에 의해 석유 매장량이 상당하다는 사실이 드러난 이후이다. 국제해양법 협약에 근거해 과연 이 섬들에 대한 주권이 어느 나라에 있느냐에 따라 일본의 배타적 경제 수역의 크기가 달라지기 때문에 문제는 한층 심각하다. 1978년 양국이 평화조약을 체결했을 때 덩샤오핑은 두 나라가 이 섬의 영유권 문제를 뒤로 미루고 에너지 자원의 공동개발을 먼저 추진하자고 선언했다. 이후 몇십 년 동안 댜오위/센카쿠 열도는 안보상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다. 하지만 2008년 중국 함정 두 척이 댜오위/센카쿠 해역에 들어와서 일본 순시선과 충돌 위기까지 간 이후에 양국은 동 지역에 대한 긴장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 지역에서 중국의 군사 활동이 늘어난다면 일본과의 긴장 상태가 격화되다가 군사 충돌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둘째, 동중국해의 석유 및 가스 자원에 대한 개발권이다. 일본은 자국의 배타적 경제 수역을 서쪽으로 밀고 나감으로써 댜오위/센카쿠 열도가 일본의 주권이 미치는 영토라고 주장한다. 반면 중국은 자국의 배타적 경제 수역이 오키나와 해구까지 연장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어느 한쪽의 주장이 성립하면 다른 쪽 주장의 근거는 무너진다. 여기에는 전략적 배경이 있다. 중국은 분쟁이 일어날 때를 대비하여 자국 해군이 되도록 더 넓은 작전 지역에서 활동할 수 있기를 바라고, 일본은 해상교통로의 안전을 보장하는 데 가장 큰 관심을 쏟고 있다. 이들의 분쟁은 1990년대에는 학문적 성격을 띠었으나 2003년 중국에서 동쪽 지역의 개발을 추진하자 일본에서 에너지 안보에 위협을 느끼게 되었다. 결국 이 문제는 외교 문제로 비화되었고, 2005년 군사적 차원으로 확대되기에 이르렀다.
셋째, 해협 통행의 문제이다. 일본의 해협들은 중국 함정들이 태평양의 공해로 나아가기 위해 쉽사리 이용할 수 있는 해상 협로이므로 두 나라 해군이 가장 충돌하기 쉬운 요충지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타이완 해협의 문제다. 타이완 해협은 앞에서 언급한 마찰 지점보다 훨씬 복잡한 위험성을 안고 있다. 우선 중국과 타이완은 단순한 오판에 의해 분쟁으로 돌입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동남아시아의 모든 나라가 기대고 있는 경제적 상호의존성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다. 또한 타이완이 불필요하게 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고 가정할 경우에는, 미국이 타이완의 방위를 위해 개입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미국은 도쿄 쪽에 원조 및 발진 기지의 제공을 기대할 것이다. 결국 일본의 개입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중국은 타이완의 가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타이완이 본토에서 떨어져 나간다면, 우리의 천연 해상 방어 체제가 무너진다.” 반면 일본은 타이완의 가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타이완이 중국에 통합되면, 남중국해는 중국의 바다가 되어 우리와 중동 및 동남아를 이어주는 바닷길이 중국의 강력한 영향 아래 들어갈 것이다. 타이완은 일본의 생명선이다.”
중국과 일본 군사 제도의 특징
민군 관계는 한 나라의 민간지도자들이 어떤 이유든 그 나라 군대가 취하는 행위를 어느 범위까지 제약할 수 있는지를 결정한다. 중국의 민군 관계는 레닌주의식 유형을 따른다. 인민해방국 총정치국은 군부가 당 지도부의 리더십을 충실히 받들도록 보장하는 역할을 한다. 군사계통의 고위 인사는 중국공산당과 행정부의 두 민간 기구에서 직책을 맡을 수 있다. 인민해방군은 중국의 체제를 보호하면서 전문 직업화하고 있으며 때로는 선택적으로 정책 수립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 가운데 작전상의 자율성을 확보하고 있다. 인민해방군은 매우 충직하게 공산 체제와 그 지도부를 떠받들고 있다. 중국 인민해방군이 당에 충성을 다하도록 길들이는 일은 민군 관계의 딜레마를 해소하고 당의 노선과 정책에 대한 군대의 복종을 확보하는 해법이 될 것이다.
1970년대 이전 일본 자위대는 안보상의 대미 의존과 일반 대중의 반군국주의라는 두 가지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외무성과 방위성을 움직이는 민간 관료 집단의 엄격한 통제 아래 놓여 있었다. 일본 국민을 군대로부터 보호하는 동시에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군대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온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냉전 말기부터 태동했는데, 미국이 일본에 자체 방위를 위해 더 큰 부담을 지도록 요구하면서 일본 방위청 내부의 민간 관료 집단은 정치가와 현역 장교들에게 권력을 내어 놓았고 자위대에 대한 통제력을 잃었다. 하지만 냉전이 막을 내리면서 일본은 새로운 현실에 직면했다. 종래의 법적, 정책적 구조에서 자위대는 국제연합의 평화 유지 작전에 참여하거나, 북한 같은 곳에서 우발적인 군사 사태가 일어날 때 미군에 도움을 제공하거나, 세계적 범위에서 테러리즘의 위협에 대응하는 일을 수행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법적, 제도적으로 자위대에 대한 이러한 제약을 점진적으로 제거하면서 자위대는 점점 더 큰 유연성을 갖게 되었다. 일본 자위대가 변화를 거듭하자 중국 쪽에서 자연히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은 일본의 군사화에 대한 법적, 정책적 제약이 군국주의의 부활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이제 그러한 제약이 사라지면서 일본의 장래 의도에 불길한 징후가 나타나리라고 우려하는 것이다.
중국의 의사 결정
중국과 일본은 상당한 군사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같은 지리적 공간에서 군사 훈련을 하고 있다. 그 공간은 두 나라가 다 같이 국가 안보를 위해 중요하다고 여기는 지역이다. 게다가 두 나라 모두 주목하는 특정 마찰 지점이 있어 앞으로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인민해방군과 일본 자위대의 몇 가지 제도적 특징을 보면 그러한 충돌을 완화하기보다 더 악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우발적 군사 충돌이 국제적 정치 위기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양쪽 제도의 특성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날의 중국 체제는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시대의 집권적 체제와 달리 다양한 정보제공자와 소식통 앞에 개방되어 있고, 다양화된 관료적 이해집단 간의 경쟁이 활발하다. 하지만 중국 체제의 핵심부를 보면 여전히 중앙집권적이고 개인 중심적이어서 경합하는 견해를 효과적으로 조정하는 장치는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고위 지도층은 33~40명의 핵심 간부로 구성되는데 이들은 공산 체제를 떠받치는 세 계통, 즉 당과 국무원 그리고 군대를 장악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중국 정권에서 가장 권위 있는 의사 결정 기구이다. 9명의 위원 가운데 6명은 입법 기구, 국무원,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공산당 선전부, 그리고 기율검사위원회 같은 주요 공식 기구의 수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또 다른 두 사람은 최고 직위를 이어받을 준비를 하고 있고, 아홉 번째 위원은 최고지도자로 일컬어진다. 요약하면 중국의 정치 체제는 국내 일반인으로 구성된 집단지도 체제이다.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당의 존립과 국가 안보에 관련된 중요한 문제를 결정하는데, 이때 전반적 합의를 확보하기 위해 확대회의를 개최한다.
중국지도부는 정권의 업무를 문제 영역별로 조직하고, 각 영역마다 관련 기구를 배치한 다음, 각각의 영역에 알맞은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전반적인 조정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게 한다. 이를 위해 설치된 기구 중에 ‘영도소조’라는 이름을 가진 기구가 많다. 정치국 위원 중에서 1~2명이 각 영도소조의 조장으로 임명된다. 고위 지도자들은 이들을 자기의 영향력 아래 두기 위해 권력투쟁을 벌이기도 한다. 영도소조는 정책 수립자와 정책 수행자가 서로 만나는 곳이다. 예를 들어 중앙군사위원회는 군사 문제에 관한 기능을 수행하는 영도소조다. 제도상 위계는 당의 정치국에 해당하는 수준이고, 정부에서는 국무원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중앙군사위는 영도소조이면서 군사 기구를 지휘하는 총참모부에 해당하는데 최고지도자는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을 맡는다. 중앙군사위원회 정규 위원은 인민해방군 사령부 예하의 주요 실행 기구를 이끄는 수장들이다. 중국에는 대외 정책 문제를 다루는 영도소조도 있는데, 외무를 담당하는 영도소조들은 당에 소속되어 있다. 이들은 정치국의 승인을 얻어 주요 정책 문제에 대한 결정을 내릴 수 있고, 민간 계열과 군사 계열 간에 업무 관계를 조정하며, 비상사태가 일어날 때 위기관리 업무를 수행한다.
일본의 의사 결정
일본의 핵심 간부는 총리와 내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핵심 간부들 중에서도 내각관방 장관과 내각관방 부장관이 두드러진 영향력을 행사한다. 내각관방 장관의 주된 임무는 고위 관료와 집권당 수뇌부 사이에서 의견을 조정하는 것이다. 내각관방 부장관은 장관을 도와 일을 하며, 특히 집권당 수뇌부와의 중재역할을 맡는다. 내각관방 장관은 또한 내각의 대변자이기 때문에 일본 정부의 얼굴 노릇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의 방위 기구 가운데 가장 중요한 기구는 방위성이다. 방위성 간부로는 민간인이 임명되어 자위대를 감독한다. 방위성 안에 설치된 주요 민간 기구로 내부부국이 있는데, 소속 직원이 2.2만 명에 달한다. 주로 자위대의 주요 기능을 감독하는 동시에 주일 미군에 관련된 업무도 담당한다. 내부부국은 5개의 국을 거느리고 있는데 각각 방위 정책, 작전 정책, 재정 장비, 인원 교육, 지역 협력 등으로 나뉘어 맡은 업무를 수행한다.
일본은 1990년대 말 일련의 제도 개혁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자민당과 관료 체제의 이중 구조가 장악하고 있는 권력보다 핵심 간부의 권한을 상대적으로 강화하는 것이 개혁의 의도이다. 1990년대 페르시아만 전쟁을 계기로 구체적 지원을 요구하는 미국의 압력이 표면화되면서 일본 체제는 변화무쌍한 외부의 도전에 신속히 대응하는 능력을 갖출 필요가 있었다. 이에 따라 2001년 통과된 개정 내각법은 총리관저의 권한을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동시에 관방대신, 외무부, 방위상이 모여 안보 문제를 다룰 수 있도록 3각료 회의도 정례화했다. 개정된 법에 따라 내각관방이 강화되면서 총리는 다양한 문제 영역에서 자문단과 보좌관을 거느리고 자신의 선호에 따라 체제를 이끌어 갈 수 있게 되었다. 내각관방 장관은 새로운 관저 체제의 지도자로서 참모진의 지원을 받아 고위 관료와 당 중진의 견해를 중재한다. 돌발적인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내각위기관리감이라는 직책도 신설했다. 위기가 발생하면 내각위기관리감은 경찰청의 지원을 받아 위기관리센터를 운용한다. 평시에는 상황실을 운영하면서 정보를 수집해 해당 기구에 배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