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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눈물

김대홍 지음 | 올림
일본의 눈물

김대홍 지음

올림 / 2012년 3월 / 319쪽 / 14,000원



대지진 5일간의 기록



"NHK 긴급 지진 속보입니다"

2011년 3월 11일. 선반 위에 놓여 있는 뉴스 모니터용 TV에서는 NHK 아나운서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긴급 지진 속보를 전해드리겠습니다. 규모 8.8의 강진(나중에 일본 기상청은 9.0으로 정정했다)이 일본 동북부 바닷가에서 발생했습니다. 앞으로도 강력한 규모의 여진이 계속 이어지겠습니다. 특히 동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일본 열도 동해안 대부분 지역에서 쓰나미 경보가 발령됐습니다. 최대 높이는 20미터에 이르겠습니다. 피해가 없도록 각별히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사무실에 있던 촬영기자 이상구 특파원은 직감적으로 움직였다. ENG 카메라를 메고 엉망진창이 된 사무실을 촬영했다. 우왕좌왕하는 사무실 사람들의 모습도 그대로 카메라에 담았다. 나는 마이크를 들고 촬영기자에게 사무실의 상황을 1분 이상 계속 묘사할 테니까 중간에 끊지 말라고 부탁했다. '큐' 하는 소리와 함께 ENG 카메라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나는 카메라를 보며 다급하게 말했다. "네, 지진으로 쑥대밭이 된 KBS 도쿄지국 사무실입니다. 보시는 것처럼 바닥에는 방송용 테이프들이 널브러져 있고 선반 위에 있던 방송용 기기들도 다 넘어졌습니다. 얼마나 강하게 사무실이 움직였는지를 잘 보여주는 증거들입니다. 아직도 지진은 끝난 것이 아닙니다. 여진이 2~3분 간격으로 느껴집니다." 편집할 시간도 없이 이 화면을 본사 국제부에 보냈다. 그림을 송출하고 나서 촬영 팀은 곧바로 시내 스케치를 하겠다며 나갔다.

곧이어 지진 피해 영상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NHK 헬기가 도쿄 상공에서 촬영한 화면이었다. 후지TV 뒤쪽 빌딩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마치 공중폭격을 맞은 듯했다. 잠시 뒤 해안가에 있는 석유 저장소에서도 시뻘건 불길과 함께 검은 연기가 하늘을 뒤덮었다.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아, 이러다 일본 열도 전체가 침몰하는 건 아닐까?' 갑자기 두려워졌다. 지진이 무섭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강력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KBS 도쿄지국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나는 새로 들어온 화면과 일본의 신문, 통신사에서 새로 전송된 기사들을 검색하면서 정리한 내용을 방송 진행자들에게 넘겨줬다. 그렇게 정신없이 일하던 어느 순간, NHK 방송화면을 본 나는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NHK 헬기에서 찍은 쓰나미 동영상이었다. 거대한 물기둥이 두세 개 잇따라 일본 동북부 해안으로 접근하는 모습이었다. 처음에 나는 그 동영상이 컴퓨터 그래픽인 줄만 알았다. 너무나도 선명하고 고요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잠시 후 또 하나의 쓰나미 동영상이 보도됐다. 해안가를 덮친 쓰나미가 논밭을 뒤엎으면서 마을을 집어삼키는 장면이었다. 할리우드에서 만든 그 어떤 재난영화에서도 이런 장면은 없었을 것이다. 대자연의 공포가 이 정도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함께 영상을 보던 스태프들도 너무나 충격이 컸는지 할 말을 잃었다.

목숨 건 재난 취재

지진 발생 나흘째인 3월 14일. NHK 뉴스가 또 한 번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NHK 헬기에 장착된 하이비전 카메라가 후쿠시마원전 밖 30킬로미터 상공에서 외벽이 붕괴된 후쿠시마 제1원전 3호기 사진을 전송한 것이다. 잠시 후 후쿠시마원전을 관리하고 있는 도쿄전력이 공식 기자회견을 했다. "오전 11시 1분, 3호기에서 큰 폭발음과 흰 연기가 발생했습니다. (이미 폭발한 1호기와 같은) 수소폭발로 추정됩니다"라고 요시다 가오루 대변인이 밝혔다. 이 사고로 직원 11명이 부상을 입었고, 반경 20킬로미터 안에 있던 600여 명이 건물 안으로 긴급 대피했다. 피해 복구를 위해 폭발지점에서 100킬로미터 떨어져 있었던 미국 헬기와 항공모함도 낮은 농도의 방사능에 노출됐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는 사태의 심각성을 모른 채 이를 가리기에 급급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에다노 유키오 관방장관은 핵물질이 들어 있는 격납용기는 안전한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전문가들도 밖에 노출된 방사성 물질을 기준치 이하로 보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과연 그럴까? 3호기 수소폭발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폭발 하루 전부터 냉각장치는 멈춰 있었다. 일본 정부는 바닷물까지 뿌리며 원자로를 냉각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3호기 폭발은 1호기 폭발보다 2배 이상 강력했다. 당시 원전 주변 방사선량은 한때 시간당 400밀리시버트까지 뛰어올랐다. 일반인이 1년에 노출되는 방사선량의 400배로, 인체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양이었다.

3월 15일 새벽. 밤새 노심(爐心) 전체가 두 차례나 수면 위로 노출되는 비상상황이 발생한 끝에 후쿠시마 제1원전 2호기가 폭발했다. 이어 점검 때문에 가동 중단 상태였던 4호기에서도, 사용 후 핵연료를 보관한 수조의 수소폭발로 불이 났다. 지은 지 40년이 되어가는 후쿠시마 제1원전의 원자로 6기 가운데 4기가 폭발한 것이다.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잇따라 폭발이 일어날 때 나는 후쿠시마 상공에 있었다. 서울에서 파견 나온 촬영기자와 함께 헬기를 타고 '방사능 공포, 줄줄이 이어지는 피난 행렬'을 취재하고 있었다. 당시 9시 뉴스 원고를 보면 후쿠시마 주민들이 얼마나 다급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앵커 멘트: KBS가 헬기를 타고 후쿠시마원전에 가장 가까운 곳까지 접근했습니다. 마을은 텅 비었고 방사능을 피해가는 행렬은 끝이 없습니다. 계속해서 도쿄 김대홍 특파원입니다.리포트: 해안선을 따라 북쪽으로 향했습니다. 이바라키현과 후쿠시마를 연결하는 54번 국도 하행선은 극심한 정체를 빚고 있습니다. 피난 차량 행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습니다. 방사능 공포를 피해 일제히 피난길에 나선 것입니다. 좀 더 북쪽으로 올라가보았습니다. 방사성 물질이 잇따라 검출되면서 인구 34만 명의 이와키시도 점점 죽음의 도시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거대한 도시는 텅 비어 있습니다.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보기도 어렵습니다. 헬기 기장(녹취): 정면이 후쿠시마 제1원전입니다. 경계가 반경 30킬로미터이기 때문에 여기가 가장 가까운 곳입니다.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습니다. 방향 돌리겠습니다.리포트: 도쿄에서 북쪽으로 120킬로미터 떨어진 도카이 원전. 이곳도 위험합니다. 끝없는 피난 행렬. 그리고 텅 빈 마을. 방사능 공포는 이제 현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후쿠시마 상공에서 KBS 뉴스 김대홍입니다.

미나미산리쿠초의 비극



쓰나미가 방조제를 넘었다!

신이 버린 땅, 미나미산리쿠초(南三陸町). 지진 발생 사흘 뒤, KBS 취재팀은 일본 동북부 미야기현에 있는 이 작은 어촌마을을 찾았다. 거대한 쓰나미가 마을 중심부까지 덮치면서 주택과 병원은 물론 관공서까지도 폐허로 만들었다. 현재까지 파악된 사망자와 실종자 수만도 1,100여 명. 지진 발생 1년이 다 됐지만 아직도 상당수의 주민들은 학교 등에 마련된 피난소에서 생활하고 있다. 일본 동북부 해안가 가운데서도 가장 조용하다던 어촌마을이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KBS 취재팀은 취재 과정에서 만난 피난민들의 증언을 통해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봤다.

오후 2시 46분: 사토 진(佐藤仁, 59) 동장은 동사무소 2층 회의실에서 폐회 인사를 하고 있었다. "이틀 전에도 지진이 있었습니다. 피해가 없도록 각별히 신경 써주시길……." 바로 그 순간 회의실이 크게 흔들렸다. 일본 동북지방 근해에서 리히터 규모 9.0의 대지진이 일어나면서 미나미산리쿠초에서도 진도 6.0의 지진이 관측됐다. 가만히 서 있지도 못할 정도로 건물이 요동쳤다. 사토 도쿠겐(60) 총무과장은 곧바로 집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아내에게 "쓰나미가 오니까 빨리 피해!"라고 외쳤다. 하지만 아내는 피난을 가다 도중에 쓰나미에 휩쓸릴 수도 있다며 그냥 집에 있겠다고 말했다. 할 수 없다고 판단한 총무과장은 동사무소 별관인 '방재대책청사'로 향했다.

해안가에서 200미터쯤 떨어진 결혼식장에는 노인 450여 명이 모여 장기자랑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동사무소 직원들은 노인들에게 다가가 외쳤다. "쓰나미가 오고 있어요. 높은 곳으로 피하세요." 노인 장기자랑이 예정된 결혼식장에서 피난이 시작됐다. 동사무소 직원들이 노인들의 손을 잡고 4층 옥상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1층에 있던 직원이 건 전화였다. 하지만 전화는 받자마자 끊겼다. 벌써 쓰나미가 덮친 것이었다.

오후 3시 20분: 위기관리과에 급보가 접수됐다. "쓰나미가 방조제를 넘었어요." 방재청사 2층 방송실이 바빠졌다. 위기관리과 소속 엔도 미키(25, 여) 씨가 다급한 목소리로 주민들에게 안내방송을 시작했다. "쓰나미가 방조제를 넘었습니다. 빨리 달아나세요. 지금 당장 높은 곳으로 대피해야 합니다." 대피방송은 30분 동안 반복됐다. 창문 너머로 쓰나미가 보였다. 일본이 자랑하는 '신칸센'과 같은 속력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방재청사에도 바닷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쓰나미가 왔다. 옥상으로 도망가!" 총무과장은 직원들에게 이렇게 외치며 옥상 위로 올라갔다.

"앗!" 하는 순간 쓰나미는 벌써 옥상까지 차올랐다. 당시 옥상에 있던 직원은 30명. 거센 물살은 옥상을 덮더니 곧이어 허리께까지 밀고 들어왔다. 안 되겠다고 생각한 총무과장은 더 높은 곳을 찾으려 두리번거렸다. 높이 5미터의 무선통신용 철탑이 눈에 들어왔다. 몸을 틀어 그쪽으로 향했다. 철탑에는 9명의 직원들이 서로 손을 잡고 의지하고 있었다. 물살은 점점 거세져 허리를 제대로 세우기조차 힘들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수위는 점점 더 올라가 목 밑까지 물이 차올랐다. 이내 입까지 물이 들어왔다. '아! 이제 죽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사의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쓰나미가 물러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수위도 서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리고 철탑에서 내려왔을 때 생사가 확인된 직원은 총무과장을 포함해 10명뿐. 함께 옥상에 대피했던 나머지 20명의 직원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열흘 뒤 정년퇴직할 예정이었던 총무과장은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저승으로 떠나보낸 것이 너무나도 미안하다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마을에 있던 5개 철도역은 모두 물에 잠겼다. 주민센터와 센다이법무국 등 관공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5층짜리 병원 건물도 4층까지 피해를 입었다. 전체 17,000여 명의 마을주민 가운데 사망자 514명, 행방불명자 664명, 부상 3,877명으로 보고됐다.

방사능의 공포



정말 안심하고 먹을 수 있나요?

2011년 12월, NHK와의 협의회의 참석차 도쿄를 찾았다. 3년 동안의 특파원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지 6개월,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지 막 열 달이 지난 때였다. 오전 9시 김포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2시간이 조금 넘어 일본 하네다(羽田)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새로 단장한 하네다공항은 한산했다. 엔고(円高)에다 방사능 공포까지 겹치면서 일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아사히(朝日)신문》은 2011년 1월부터 10월까지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이 509만 명으로, 1년 전에 비해 30.5% 줄었다고 보도했다. 후쿠시마 제1원전사고가 난 4월에는 60%까지 줄어들었다가 이후에 다소 늘어났다.

신강문 특파원이 공항에 마중 나와 있었다. 하네다에서 출발한 미니밴은 수도 고속도로를 따라 NHK가 있는 시부야로 달렸다. 세련된 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가운데 오다이바 레인보우 브리지에서 내려다본 도쿄만은 언제 보아도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다웠다. 하지만 후배의 입에서 나온 도쿄생활은 결코 아름답지 않았고 희망이 점점 절망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수돗물에서 방사성 물질이 검출됐다는 소문이 돌면서 밥을 지을 때는 물론이고 과일을 씻을 때도 생수를 사용해요. 이러다 보니 집집마다 생수가 빽빽이 쌓여 있어요. 한국 업체로부터 생수를 주문, 배달받으면 매달 생수 값만 2만 엔(약 30만 원)이 넘어요. 쌀도 마찬가지예요. 올해 생산된 신미(新米)는 먹지 않아요. 일본 정부는 농사 금지구역을 제외한 후쿠시마의 쌀은 모두 안전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 말을 믿는 일본인은 거의 없어요. 실제로 지난달 후쿠시마현 오나미 지역과 다테시 농가에서 생산한 쌀에서 기준치(1킬로그램당 500베크렐)를 넘는 방사성 세슘이 검출됐어요. 이러다 보니 올해 나온 신미보다 작년에 나온 쌀이 더 비싸요. 구하기도 힘들고요."

"일본 사람들도 변했어요. 올해 수확한 햅쌀인데 안 팔리니까 생산연도를 조작해요. 햅쌀을 작년 포대에 넣고 작년 쌀이라고 속여 파는 거죠. 장사에서 신의를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는 일본 사람들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결국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며칠 전에는 또 일본의 한 초등학교에서 아이들 급식에 방사능 검사를 통과한 후쿠시마 채소를 사용하겠다고 학부모에게 통보한 것 때문에 거센 항의를 받았대요. 그렇지 않아도 후쿠시마원전사고 이후 먹거리에 대한 공포가 커지고 있는데, 어떻게 학교에서 어린 학생들에게 후쿠시마산 농산물로 급식을 만들어 제공할 수 있느냐는 거죠."

오랜만에 만난 후배는 쉴 새 없이 말을 이어갔다. 처음에는 '너무 호들갑을 떠는 게 아닐까? 일본 사람들도 다 조용히 사는데, 왜 걱정들이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보니 후배의 마음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자꾸 숨기기만 할 뿐 무엇 하나 속 시원히 밝히지 못하는 일본 정부의 무능이 결국 불신을 불러온 것이다.

후쿠시마원전사고의 진실



후쿠시마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후쿠시마원전사고 이후 일본 정부와 과학자들이 가장 많이 쓰는 말이 '소테가이(想定外)'이다. '생각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는 뜻이다. 하지만 과연 그랬을까? KBS 취재팀이 만난 많은 과학자들은 3월 11일 이전에도 이번과 같은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고 수차례 경고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후쿠시마 제1원전사고는 '소테가이'가 아니라 과학적으로도 예측이 가능한 '소테나이(想定內)'였다는 말이다. 익명을 조건으로 취재에 응한 과학자들은 후쿠시마원전사고에 대한 일본 정부의 발표에 의문이 많다고 했다. TV에 출연하는 전문가나 연구자들의 말은 모두 '거짓말'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다. 취재를 하면 할수록 미궁에 빠져드는 후쿠시마 제1원전사고의 진실은 무엇일까?

'3가지 최우선 매뉴얼'은 왜 실패했나?: 각국 정부와 원전 전문가들은 '핵발전 사고'를 막기 위해 다음 3가지 매뉴얼 - '원전 가동을 즉시 멈춘다, 원자로를 냉각시킨다, 방사성 물질을 원자로 안에 가둔다.' - 을 최우선 예방대책으로 삼고 있다. 원전사고 이후 도쿄전력이나 원자력안전보안원, 그리고 전문가들이 기자회견장에서 수차례나 반복해 말한 것도 바로 이 3가지였다. 그러나 후쿠시마원전사고는 이 3가지 모두 실패했다. 원전 가동은 멈췄지만 핵연료는 재임계(再臨界)됐다. 전원이 차단되면서 원자로 냉각 기능도 상실했다. 이후 수소폭발로 원자로 안에 있던 방사성 물질이 밖으로 새어나왔다. 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났던 걸까?

먼저 원전 가동을 멈추지 못한 이유부터 알아보자. 원자력발전소의 연료는 우라늄과 플루토늄이라고 불리는 방사성 물질이다. 이런 물질의 원자가 중성자와 결합하면 스스로 중성자를 방출하면서 핵분열을 일으켜 다른 원자로 변화한다. 이때 나오는 높은 열이 원자력 에너지이다. 또 원자에서부터 튀어나오는 중성자가 다른 원자와 충돌하여 분열을 촉진시키는데, 이런 연쇄반응이 계속되는 상황을 '임계(臨界)'라고 한다. 임계를 멈추게 하기 위해서는 핵연료가 나오는 중성자를 흡수하는 물질(예를 들면 제어봉)을 가까이 놓고 연료 간의 거리를 떨어뜨리는 것 등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원자력발전소에서는 핵분열이 천천히 진행돼 임계가 오랫동안 지속되도록 제어한다. 이와 달리 원자폭탄은 분열이 매우 빠르게 진행돼 임계가 한꺼번에 일어나도록 만든 것이다. 원전의 임계가 부엌에 있는 가스레인지의 '불'이라면 원자폭탄의 임계는 가스탱크의 '폭발'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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