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격을 생각한다
이어령 외 지음 | 올림
대한민국 국격을 생각한다
이어령 외 지음
올림 / 2010년 11월 / 239쪽 / 13,000원
1 존경받는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국격은 멀리 있지 않다 :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사람에게 인격이 있듯이 나라에는 국격, 즉 국가의 품격이 있다. 그간 우리는 경제 성장을 위해 숨 가쁘게 달려왔다. 이제는 잠시 성장 제일주의에서 벗어나 우리가 걸어온 과정을 되돌아보고 현재의 모습을 반추하며, 앞으로 나아갈 길을 새롭게 모색하는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할 때다. 이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스스로 확인하고 보다 성숙한 개인으로, 진정한 일류국가로 거듭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도 이제 국격을 생각할 때가 되었다는 말이다.
우리는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짧은 기간 안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어냈다. 세계 13위의 경제 규모를 자랑하고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돌파했다. 억압의 군사정권을 지나 국민의 뜻으로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잃은 것도 적지 않다. 우리는 가난해도 '격'이 있었다. 그런데 경제적 부를 얻은 대신 우리 고유의 격을 잃고 말았다. 돈만 알고 격에 신경 쓰지 않다 보니 어느새 '천격 자본주의'가 팽배해진 탓이다. 또 우리는 민주화를 거치면서 권위주의를 타파하는 대신 '권위'를 상실했다. 어른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지도자의 약속을 믿으려 하지 않는 사회가 되었다. 가난했지만 소중히 지켜온 정신과 가치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우리 국격의 현주소는 어디쯤인가: 떨어진 우리의 격을 회복하고 국격을 높이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 사람들은 국격이라고 하면 흔히 거창한 무언가를 떠올리려고 한다. 자꾸만 추상적으로 접근하려 드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국격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가짐과 작은 실천으로부터 국격은 오롯이 피어난다.
우선은 우리 안의 '천격'을 걷어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아직도 우리나라 지도층 인사 중에는 명함을 건넬 때 돈다발을 세듯 침을 묻히는 사람이 있다. 윗호주머니에서 이쑤시개를 꺼내 보란 듯이 이를 쑤시고 다니는 해외여행객들이 아직도 허다하다. 같은 한국인들끼리라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지 몰라도 외국인들에게는 천격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행동이다. 100개 정도의 가이드라인을 설정하여 '이것만은 없애자'는 실천운동을 지속적으로 펴나가면 어떨까? 작지만 의미 있는 일상생활의 변화를 통해 천격이 물러가고 국격이 세워질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적 조화와 융합에 힘쓰는 일이다. 디지털 시대라고 해서 디지털로만 가면 안 된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합쳐진 '디지로그'로 가야 한다. 그것이 한국적인 것이다. 지붕을 보라. 중국은 거의 수키와 위주로 되어 있고 일본은 암키와만 있다. 그에 비해 우리는 암키와와 수키와가 고루 조화를 이룬다. 한국다운 멋과 정서란 이런 것이다. G20 정상회의처럼 해외 국빈들이 대거 우리나라를 찾을 때도 한국적 특색을 감안하여 회의장을 조화롭고 품위 있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왕족들이 사용한 것과 같은 아주 고상한 의자를 준비하되 첨단기능을 갖추게 함으로써 오토매틱 버튼을 누르면 앉는 사람의 키와 몸무게에 맞게 의자가 자동으로 조절되게 하는 식이다. 그러면 그들이 '아, 한국은 고상하구나. 격이 있구나' 하면서 동시에 '첨단기술도 뛰어나구나' 생각할 것이다. 바로 이런 데서 한국 문화의 눈높이와 품격이 결정되고 국격을 견인하는 '감동'이 일어난다. 국격은 이처럼 작은 데서 싹트지만 깊고 강한 울림을 남긴다.
국격은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있는 문화이자 보이지 않는 국가의 혼이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격이 있다. 밥풀이 그릇 위에 있으면 보기 좋지만 코 끝에 있다고 생각해보라. 국격은 다른 사람이 나를 존중해주고, 외국인이 우리 한국에서 살고 싶어하고, 어디를 가든 한국인과 동행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길 때 절로 생겨난다. 또 그렇게 생각하는 외국인이 많아지면 그것으로 높아진다. 국격은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어우러지는 것이다.
존경받는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 한승주 전 외무부장관
국격이라는 말에는 몇 가지 피할 수 없는 아이러니가 따른다. 그중 가장 큰 아이러니는 국격을 높이자고 역설하는 것 자체가 국격이 높지 못한 것에 대한 자격지심의 표현이요, 외부 사람들에게도 국격이 떨어지는 데서 오는 보충심리의 결과로 비쳐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실체 없는 허언으로 평가될 소지가 있다는 말이다. 이를테면 어느 개인이 "나는 이제부터 나의 인격을 제고하겠소" "내가 이러이러한 조치를 취할 터이니 나의 인격을 알아주시오"라고 한들 그것이 그 사람의 인격을 더 높게 평가해줄 근거가 될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
국격에 따르는 또 하나의 아이러니는 국격 높이기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비록 스스로 국격의 결핍을 드러내는 행위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그 나라의 품격 고양을 포함한 전반적인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 또한 사실이라는 점이다. 즉 국격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사회질서가 더 잘 정립될 수 있고, 경제력의 증강을 도모할 수 있고, 전반적인 문화수준도 고양될 수 있고, 외교적 활동과 능력도 배가될 수 있다.
국격에 관한 논의와 국격 제고를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이와 같은 아이러니가 생기는 이유는 뭘까? 우선 국격을 어떻게 정의하건 간에 국격에는 내실이라는 측면이 있는 반면에 외형적인 측면, 즉 외부에 비치는 이미지라는 측면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가의 구성원들이 느끼는 국격과 외국인이 바라보는 국격에도 차이가 나게 마련이다. ...<중략>... 그렇다면 명실상부한 국격 제고는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세계주의적 사고와 박애주의적 행동: 우리가 국격을 제고하기 위해 강구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모범을 세우고 그것을 따르는 것이다. 평가기준에 얽매이지 말고 세계의 여러 나라들 가운데 국격이 높다고 생각되는 나라들을 선정하여, 그들은 가지고 있는데 우리에게는 없거나 부족한 점들을 확인하고 보충하는 작업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다. 세계를 둘러보았을 때 벤치마킹하고 싶을 정도로 국격 면에서 모범을 보이는 나라가 있는가? 그들은 어떤 나라들인가? 강대국인가, 중소국인가? 경제대국인가, 군사대국인가? 상업국가인가, 문화국가인가? 중립국인가, 동맹세력인가? 자신만의 실속만 차리는 나라인가, 세계의 평화와 복지 발전에 이바지하는 나라인가?
국격 높은 나라를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스웨덴, 노르웨이, 그리고 캐나다를 선택할 것이다. 그 이유는 이들 나라가 부유한 나라여서도 아니요, 군사대국이어서도 아니다. 자기네들이 국격을 높이겠다고 나서거나 자국의 국격을 뽐내서는 더더욱 아니다.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대외원조에서 선진국이 합의한 GNP의 0.7%를 훨씬 넘는 1.2% 정도를 매년 지원한다. 지원 규모도 대단하지만, 다른 나라들과 달리 '조건 없이, 생색내지 않고' 다자기구를 통해 지원한다는 면에서 더욱 주목을 받는다. 원조하면서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자국의 물품과 서비스 구매 등을 조건으로 내세우는 등 생색을 내는 여타의 나라들과 크게 대조되는 모습이다. 또한 캐나다는 유엔 등을 통한 세계의 평화유지 활동, 민주주의와 인권 진작 운동, 국제기구의 활성화, 세계 환경보호 등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나라 가운데 하나다. ....<중략>.... 스웨덴, 노르웨이, 캐나다. 그들은 세계주의적 사고와 박애주의적 행동을 실천적으로 보여주었다. 그것이 이들 나라에 대한 다른 나라들의 존경심을 불러일으키고 자연스럽게 그들의 국격을 높여주었다.
일시적 '운동'에서 꾸준한 '활동'으로: 무엇이 국격을 결정짓는가? 스웨덴, 노르웨이, 캐나다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국제적 이상주의가 중요한 요인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국격은 어느 것 하나만으로 높아지고 낮아지는 성질의 것이 아닌 총체적 개념이다. ....<중략>.... 국격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지만, 누구나 인정하는 속성이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한 나라를 상징하는 특성이 다른 나라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때 우리는 그 나라의 국격이 높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우리가 국격을 높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지금 당장 존경받는 나라처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것이 하루 이틀에 이루어지는 일도 아니고 수치로 정확히 측정될 수 있는 성과도 아니기 때문이다. 인격을 수양하듯 긴 시간을 두고 조금씩 쌓아가야 하는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올바른 교육과 정신적, 물질적 성장을 통하여 성숙한 사회, 성숙한 법질서와 기강이 바로 서 있는 사회, 관용 있고 자유로운 정치체제, 인도주의적 대외관계를 가꾸어 나가는 노력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국격 높이기를 관료적 이니셔티브에 의존하는 경향이 남아 있다. 서울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국격을 높이기 위한 세부 추진과제 80개를 선정하여 시행에 들어간 것 등이 그렇다. 국정의 전 분야를 망라한 80개 과제는 '성숙한 세계 일류국가'를 목표로 각 부처가 보고한 방안을 국격 태스크포스가 종합한 것이다. 이러한 접근이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여기에 또 하나의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성숙한 세계 일류국가들은 이러한 방법으로 국격 높이기를 추구하지 않는다. 정부가 계획을 짜고 편달하면서 80개 부문에 점수를 매겨가며 국격을 높이라는 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 그것이 우리나라가 세계의 존경을 받는 데 과연 도움이 되었는지 의문이다.
국격 제고는 일시적 '운동'보다는 꾸준한 '활동'의 산물이다. '국격을 높이자!'라고 부르짖는다고 해서 당장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국격을 높일 수 있는 사고의 혁신과 사회 발전에 전념하는 활동을 꾸준히 전개하는 가운데 국격은 자연히 높아지는 것이다.
국격은 인격의 합이다 :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개개인의 인격을 보면 그 나라의 국격을 알 수 있다. 국격을 높이려고 상당한 예산을 투입하여 캠페인을 벌이고 잘 알려진 세계적 미디어에 광고를 내보내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국격이 국민 개개인이 가진 인격의 합'이라는 가설을 인정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격을 가다듬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룰 수 없는 지난한 과제다. 캠페인이나 국제회의 유치 같은 행사에 큰 비중을 두어 단기간에 국격을 높여 보이겠다고 서둘러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든 일의 우선순위에서 개개인의 인격 높이기를 첫 번째로 두고 개인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국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서 지속적으로 실천해야 한다.한 사람의 인격은 개인이 그것의 중요성을 인지하는 정도와 노력 여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매일매일의 일상 속에서 스스로를 성찰하고 개선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인격은 시간이 갈수록 차이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인격을 알아본다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인격이 드러나는 모습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어떤 사람이 교양인인가: 인격이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내면적 가치라면, 이것이 외부로 드러나는 모습은 교양을 통해서일 것이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두고 '교양 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교양과 양식으로 그 사람의 인격을 가늠하는 것이다. 교양 있는 사람은 곧 인격 있는 사람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렇다면 이 시대가 요구하는 교양은 무엇일까? 필자는 무엇보다 자기가 하는 일에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가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자신이 하는 일에 충실한 태도를 견지하는 사람은 일단 교양 있는 사람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성심성의를 다해 자신의 업을 수행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일에서도 그렇게 할 가능성이 한층 높다.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는 사람이 교양인이다.
사용하는 말과 글도 교양인을 이루는 주된 구성요소다. 대화에서 비속어를 자주 사용하거나 인터넷에서 댓글을 달거나 트위터에 글을 쓸 때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줄 정도의 언어 습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교양인이라고 할 수 없다. 교양인은 같은 말이라도 듣기 좋게 품위를 지켜가며 할 줄 안다. 자연 인간관계가 좋을 수밖에 없다. 공공장소는 교양과 비교양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곳이다. 휴지를 정해진 장소에 버리는 일, 다 함께 사용하는 물건을 조심해서 다루고 깔끔하게 뒤처리하는 일, 자동차를 운전할 때 정해진 교통규칙을 지키는 일, 전철을 이용할 때 순서를 지켜 타고 오르는 일, 낮은 소리로 짧게 통화하는 일 등은 교양인이라면 누구나 갖추어야 할 기본 예절이다. ....<중략>....
한 사람 한 사람이 조금만 신경을 쓴다면 우리 주변에서 볼썽사나운 모습들은 사라질 것이다. 거리도 깨끗해지고 공연장도 쾌적한 공간으로 바뀔 것이다. 문제는 자기만 편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에 젖은 무신경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달라지지 않는 한 사회가 아무리 경제적 부를 일군다 해도 좋은 사회일 수 없다. 그런 면에서 공공장소는 개인의 인격뿐 아니라 한 나라의 국격을 나타내는 징표에 다름없다.
차이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문화 또한 교양의 정도를 나타내는 중요한 기준이다. 사람은 모두 같을 수 없다. 남녀가 다르고 노소가 다르고 인종과 국적이 다르다. 배움의 다소와 배려의 정도가 정비례하는 것도 아니다. 이런 사실을 받아들이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할 줄 아는 데서 교양은 싹튼다. 근래 우리 사회에는 외국인들이 부쩍 늘었다. 다문화 가족이 증가하고 직장 때문에 한국에 체류하는 사람들도 점증하는 추세다. 따라서 그 어느 때보다 어울려 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해졌다. 차이와 차별을 구분할 줄 아는 교양이 절실해졌다. 피부색이 다르다고, 언어가 다르다고 해서 사람들을 깔보거나 배척하는 일이 생긴다면 다문화 사회에서 이보다 더 큰 불행의 씨앗도 없을 것이다. 어느 누구든 동등하고 공정하게 대하는 것만이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유일한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중략>....
미국에서 코리아를 생각한다 : 조광동 전 시카고라디오코리아 사장
미국 속에서 코리안은 똑똑하고 근면하고 열심히 일하는 민족이라는 긍정적인 이미지가 크다. 하지만 약삭빠르고 싸우기 잘하고 준법정신이 약하다는 부정적인 인식도 만만치 않다. 거기에다 공중도덕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많이 주고 있다. 길거리에서 침을 뱉거나, 식당이나 쇼핑센터처럼 여러 사람이 공유하는 장소에서 큰 소리로 떠들어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하고, 한국인들이 많이 다니는 헬스클럽 욕조 벽에 '탕에서 때를 밀지 마십시오!'라는 한글 호소문까지 나붙게 한다. 이것을 보는 순간 얼굴이 뜨거워지는 수치심과 분노를 느끼지만, 그러면서도 슬픈 것은 이것이 현실이라는 사실이다.
어느 인종이나 국가를 불문하고 꼬리표처럼 달고 다니는 격이 있다. 그 속성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이민 가방에 묻어 온 한국인의 품격도 마찬가지다. 미국 땅에서 살아 아메리칸이 되어도 코리안의 품격은 쉬 달라지지 않는다. 더 세월이 흘러 이민 연령이 많아지면 미국 냄새를 풍기게 되기도 하지만, 한국과 미국의 문화가 결합되는 과정에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셤의 법칙을 자주 목도하게 된다. 한국과 미국의 좋은 것을 지키고 배우기보다는 좋은 것을 더 쉽게 잃어버리고 나쁜 것을 더 빨리 배우는, 문화적 그레셤의 법칙을 성행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뛰어난 기술력으로 핸드폰도 잘 만들고 자동차도 잘 만들어 세계에서 코리안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지만, 한국 고유의 좋은 것과 아름다운 것은 잃어버리고 서구 문물의 나쁜 것은 걸신들린 사람처럼 삼키고 있다. 자본주의의 진수를 배우는 데는 등한시하고 자본주의 껍데기만을 닮아간다....<중략>....
국격이 밥먹여주냐고?: 한국은 어떤가? 이명박 대통령이 "국격을 높이자"고 했을 때 한국 사회의 반응은 가지각색이었다. "국격이 밥 먹여주냐?" 하는 냉소적 반응에서부터 "국격 선언이 새로운 한국의 원년을 열었다"는 다소 아부적인 반응까지 다양하게 나왔다. 아무 생각 없이 부화뇌동하는 아부족에게는 아부하고 치부하는 '속물적인 격'이 배어 있고, 사사건건 부정적이고 사시적으로 찬물을 끼얹는 냉소족에게는 김을 빼고 뒷다리를 잡아끄는 '파괴적인 격'이 자리 잡고 있다. 아부족을 경계해야겠지만, 더욱 문제가 되는 집단은 국가 시책에 냉소하는 사람들이다. 냉소주의는 더 밝은 세상과 더 좋은 삶을 만들려는 인간의 노력을 빼앗아가는 암세포 같은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냉소주의 성향이 사회 다수에게 옮겨가면 그 사회가 아무리 능력을 가졌어도 빛을 발휘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