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권력지도 : 미국을 움직이는 워싱턴의 33인

이상일 지음 | 예문
권력지도 : 미국을 움직이는 워싱턴의 33인

이상일 지음

예문 / 2010년 8월 / 320쪽 / 14,500원




Part 1 미국을 움직인 '희망의 담대함'



2008년 11월 4일, 미국은 건국 232년 만에 흑인을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공화당 상원의원인 존 매케인 후보를 꺾고 대선에서 승리한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는 그날 밤 지역구인 일리노이 주 시카고 그랜트 공원에서 "미국 리더십의 신 새벽이 밝았다"며 환호했다. 열광하는 지지자들이 '오바마'와 '변화'를 연호하는 가운데 승리 연설을 한 그는 "승리는 나라를 변화시키기 위한 기회일 뿐"이라며 "여러분의 새로운 봉사정신과 희생정신이 발휘되지 않으면 변화는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퇴보와 잘못된 출발이 있을 수 있으며, 내가 대통령으로서 내리는 결정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들도 많겠지만 나는 항상 여러분 앞에 정직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누가 봐도 절대적 열세에 놓여 있던 오바마가 힐러리와 매케인을 차례로 꺾을 수 있었던 건 그의 저서 제목처럼 '희망의 담대함'을 가꾸며 도전하면서도 국민의 변화 열망에 부응하려고 적극 노력했기 때문이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이 시작되기 6~7개월 전인 2007년 여름, 오바마의 지지율은 힐러리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일부 참모는 "민주당 경선에서 힐러리를 이기는 건 불가능하므로 다음을 기약하자"고 했다. 하지만 오바마는 단호했다. 도전을 멈추는 건 희망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시카고에서 빈민을 위한 공동체 활동을 하면서 풀뿌리 조직을 엮고, 그들을 활용한 경험이 있는 그는 행사장에 나오는 일반 지지자들을 열성 선거운동원으로 만드는 일에 주력했다.



미국 정당의 경선에서는 초반에 선전하는 사람이 바람을 일으켜 분위기를 바꾸는 선거의 다이내믹스가 있다. 오바마는 아이오와와 뉴햄프셔에서 힐러리를 잡으면 열세를 일거에 반전시킬 수 있다고 보고 두 주에 '올인'하는 과감한 전략을 세웠다. 무모해 보였지만 충분히 계산된 것이었다. 특히 아이오와는 여성의 선출직으로 뽑은 적이 없는 보수적인 곳인 만큼 힐러리가 지지율에서 당장은 앞서고 있다 할지라도 충분히 해볼만하다고 오바마는 판단했다. 그의 생각은 적중했다. 아이오와에서 오바마는 힐러리를 제압했다. 그곳에서의 승리는 '흑인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국으로 확산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후 그는 급상승세를 탔고, 경선판도를 바꾸었다. 힐러리는 2월 5일 수퍼 화요일 경선 때까지는 그런대로 선전했지만 그 다음 경선에서 11연패를 당하면서 역전이 불가능한 상태에 빠졌다. 2008년 6월 7일 힐러리는 마침내 선거운동 중단과 오바마 지지를 선언했고 오바마를 위해 뛰었다.



오바마는 그라운드 게임(ground game: 당원이나 봉사자의 가두활동이나 가정방문을 통한 선거운동)에서 힐러리나 매케인을 압도했다. 오바마는 유세장에 찾은 사람, 인터넷에 들어원 사람들을 선거운동원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들에게 '여러분의 힘으로 미국을 바꿀 수 있다며 선거현장으로 뛰어들라고 외쳤다. 또한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금융위기가 터지자 매케인은 허둥지둥하는 인상을 주었던 반면 오바마는 침착하게 대응했다. 그리고 마침내 국민들은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Part 2 버락 오바마와 미셸 오바마



미셸 오바마 - 오바마 대통령의 최고 고문이자 정치적 조언자

미국 최초의 흑인 퍼스트레이디 미셸 오바마는 남편 버락 오바마가 의지하는 아내일 뿐 아니라 정치적 조언자다. 오바마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항상 의견을 묻는 상대가 미셸이다. 오바마는 그런 미셸을 "나의 바위"라고 부른다. "미셸은 나의 최고 고문이다. 내가 그녀의 견해를 묻지 않고 결정을 내리는 일은 없다"라는 말도 종종 한다.



미셸은 오바마에게 정치적 자양분을 준 시카고의 흑인 빈민지역 '사우스 사이드' 출신이다. 오바마는 하와이에서 태어났지만 사우스 사이드에서 활동하면서 정치적 뿌리를 내렸다. 이곳에서 빈민 공동체 운동을 했고, 정치를 시작한 것이다. 미셸은 시카고 시청 수도국 소속이던 흑인 노동자의 딸로 태어났다. 조상은 노예였다. 이와 관련해 미셸은 "수치와 자부심을 동시에 느낀다"고 말했다. 미셸은 어렸을 때 가난이 무엇인지 알았고, 인종차별의 서러움도 겪었다. 그러나 미셸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명문 프린스턴 대학과 하버드 대학 법학대학원을 졸업했다. 미셀은 1988년 하버드를 졸업하고 시카고의 법률 회사 '시들리 앤 오스틴'에 취직했다. 이듬해 인턴으로 들어온 하버드 대학원생 오바마를 처음 만난 곳이다.



미셸은 1993년 비영리기관인 '퍼블릭 얼라이즈(Public Allies; 공공의 벗들)'의 시카고 지부 사무국장이 됐다. 젊은이들을 훈련시켜 공공기관에 취업시키는 일을 하는 곳으로 가기 위해 돈을 많이 주는 법률회사를 떠난 것이다. 훗날 미셸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가 배운 걸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지역에 되돌려줘야 한다는 계시 같은 것을 받았다. 그래서 이웃을 돌아보게 됐고, 돈이 아닌 열정 때문에 내 할 일을 찾게 됐다."



2006년 미셸은 시카고 대학병원 부원장이 되었다. 당시 그의 연봉은 27만 달러였다. 그러나 남편이 대권에 도전하자 그 자리를 버리고 선거운동에 적극 나섰다. 미셸은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남편보다 직선적이고 도전적인 연설로 청중의 시선을 끌었다. 흑인 유권자들 앞에서 "시카고에서 자란 흑인 소녀가 퍼스트레이디가 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거침없이 말했다. 그런 그녀를 보고 흑인들은 열광했다. 경선 초반 백인의 피가 흐르는 오바마에 대해 "우리와는 다른 사람"이라며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던 흑인들의 생각을 바꾸게 하는 데 미셸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게 언론의 분석이었다.



Part 3 오바마의 시카고 사단과 측근 그룹



램 이매뉴얼 - 권력은 쓸수록 커진다고 믿는 막강 비서실장

《뉴욕타임스》는 램 이매뉴얼 실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한 세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백악관 비서실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는 워싱턴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거의 모든 것들에 관여하고 있다. 그는 해야 할 일의 목록을 적은 카드를 항상 소지하고 다니면서 일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집요하게 체크하며 또한 장관들과 백악관 비서진에게 각종 업무 보고서를 주 1회 자신에게 제출케 한 다음 그걸 읽고 나서 코멘트를 붙여 돌려보낸다고 소개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매뉴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이매뉴얼은 '사람이 권력을 사용하면 할수록 더 많은 권력을 갖게 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 그의 친구들은 말한다. 이매뉴얼은 워싱턴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지렛대를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지 알고 있다. 그는 정치자금을 모으고, 이익집단을 동원하며, 여러 연구 그룹으로부터 최신 정책 아이디어를 얻는 등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여러 전임자들이 그들의 권력과 권위의 사용을 아낀 것과는 다르다. 이매뉴얼은 비서라기보다는 수장쪽에 확실히 가깝다. 오바마의 대중적 인기가 하락하고 있는 가운데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오바마에 앞서 위태로운 상황에 몰릴 사람이 이매뉴얼이다."



진보진영, "이매뉴얼이 대통령 망친다": 오바마의 지지율이 자꾸 떨어지면서 이매뉴얼은 실제로 진보진영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다. 쿠바의 관타나모 미군 기지에 있는 테러용의자 수용소가 오바마 직권 1년 7개월이 지났는데도 폐쇄되지 않고 있고, 월가의 투자은행가들은 여전히 엄청난 보너스를 받고 있는 데 대해 진보측은 불만을 터뜨리면서 이매뉴얼에게 종종 포문을 열고 있는 것이다. 외교분야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싱크탱크인 외교협회의 레슬리 겔브 명예회장은 "이매뉴얼이 대통령을 망치고 있으므로 경질돼야 한다"고 했고, 진보성향의 많은 인사들도 같은 주장을 펴고 있다. 이매뉴얼에 대한 진보진영의 공격이 가열되자 2010년 3월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은 "대통령은 비서실장을 절대적으로 신뢰한다"는 내용의 공개 브리핑을 했다. 백악관 내부의 특정인에 대한 설왕설래와 관련해 백악관 대변인이 직접 나서서 브리핑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건 이매뉴얼이 언론과 대중의 주목 대상으로 부상했음을 뜻하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 "대통령은 이매뉴얼 충고 들어야": 이매뉴얼이 진보 측의 타깃이 되자 《워싱턴포스트》는 그를 옹호하고 나섰다. 이 신문은 2010년 3월 2일자에서 "이매뉴얼은 백악관의 이성적인 목소리"라고 극찬하며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이매뉴얼은 9.11테러용의자 칼리드 세이크 모하메드를 민간법정에 세우는 건 잘못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법무부 장관 에릭 홀더는 모하메드를 일반법정에 세워도 문제가 없다고 했고, 액슬로드 백악관 선임고문도 홀더를 지지했다. 대통령은 결국 법무부가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그러나 2010년 8월말 현재 모하메드에 대한 민간법정의 재판은 열리지 않은 상태다. 오히려 백악관은 그를 군사법정에 세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모하메드 문제를 민간법정이 다룰 경우 알카에다가 미국을 상대로 다시 테러를 할 가능성이 있는 등 안보와 치안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걱정하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이매뉴얼의 판단이 옳았으며, 이매뉴얼이야말로 실용주의자이므로 오바마가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게 《워싱턴포스트》의 주장이었다. 이 신문 칼럼니스트인 데이너 밀뱅크는 2010년 2월 21일 오바마가 지미 카터(무능하다는 지적을 받았던 전 대통령)로 전락하는 걸 막는 게 이매뉴얼의 정치적 통찰력이라는 내용의 칼럼을 썼다.



오전 5시에 기상하는 에너지 넘치는 '람보': 이매뉴얼은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다. 민주당 찰스 슈머 상원의원은 "이매뉴얼에게 하루는 72시간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새벽 5시에 기상해 수영하는 걸로 하루를 시작한다. 수영이 끝나면 연방하원의 체육관에서 운동을 한다. 하원의원 출신인 그는 체육관에서 의회의 각종 정보를 듣는 일도 병행한다. 오전 7시 30분이면 조 바이든 부통령 사무실보다 8평방피트가 큰 그의 방에 백악관의 핵심인사 10명이 모인다. 이어 8시 15분, 이매뉴얼은 웨스트 윙의 루스벨트 룸에 모인 모든 선임보좌진을 상대로 회의를 진행한다. 그러고 나서 오벌 오피스(대통령 집무실)에서 오바마 대통령을 10여 분간 독대한다. 이후에도 대통령과 여러 차례 독대한다.



이매뉴얼은 하루 50여 명과 통화하며, 수백 통의 e메일을 보낸다고 측근들은 말한다. 통화는 필요한 정보만 얻고 핵심만 전달하는 방식으로 1~2분 정도 짧게 이뤄지며, e메일 메시지도 아주 간결하다고 한다. 그의 별명은 '람보'다. 욕도 잘하고, 공갈도 잘 치면서 해야 할 일은 저돌적으로 밀어붙이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를 '상스러운 데다 활동 과잉인 전투견'이라고 부르는 이들도 많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그를 "말버릇이 나쁘고 고집도 세지만 매우 똑똑한 인물"이라고 평한 적이 있다. 그가 욕설과 독설을 잘 뱉는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낸시 펠로시 연방 하원의장이 "이매뉴얼이 욕을 할 때마다 병에 25센트짜리 동전을 하나씩 넣으면 경기부양계획에 필요한 자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농담을 했을 정도다.



데이비드 액슬로드 - 모든 여정에서 함께 한 '오바마의 두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대선에서 이긴 2008년 11월 4일 밤, 정치적 고향인 시카고의 그랜트 공원에서 승리 연설을 했다. 그는 환호하는 군중 앞에서 "이건 여러분의 승리"라고 외치며 "감사하다"는 인사를 연발했다. 그는 연설에서 대선 승리에 특별히 기여한 인물 몇 명을 열거하면서 특히 데이비드 액슬로드의 경우 "여정의 모든 단계에서 나와 함께한 파트너"라고 불렀다. 액슬로드는 '오바마의 기적'을 만든 인물 중 핵심으로 꼽힌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핵심 참모이자 선거 전략가였던 칼 로브가 '부시의 두뇌'로 불렸던 것처럼 액슬로드는 '오바마의 두뇌'라는 별명으로 통한다. 2004년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서는 '풋내기' 오바마를 당선시켜 흑인 유일의 상원의원이 되게 했다. 오바마를 워싱턴 정가의 중앙무대로 진출시킨 1등 공신인 셈이다. 2008년 대선 때는 불가능해 보였던 오바마의 백악관 도전을 뛰어난 선거전략으로 뒷받침해 역사의 새 장을 열게 했다.



오바마의 브랜드 'Yes, We Can' 구호 만들어: 액슬로드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때 오바마의 강적이었던 힐러리 클린턴 당시 상원위원이 '경험'을 내세우자 '변화'라는 슬로건으로 맞불을 놓아 판세를 뒤집은 노련한 전략가다. '오바마=변화'라는 인식을 대중에 심어준 'Yes, We Can'은 그가 만든 구호다. 일부에서 "힐러리를 못 이길테니 다음을 준비하자"고 했을 때도 오바마는 액슬로드의 판단을 믿었다. 액슬로드는 "이번에 승부를 봐야 하고 이길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경선 초반이 중요하니 아이오와와 뉴햄프셔에 주력하자고 건의했고, 오바마는 그 전략을 수용했다. 두 사람의 생각은 적중했다. 오바마는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승리해 '오바마 바람'을 일거에 태풍으로 만들었다.



오바마의 메시지 만들고 언롱 통해 홍보: 액슬로드는 평일엔 오전 6시에 일어나서 곧바로 백악관에 출근해 오후 11시에 퇴근하는 일벌레다. 그는 오바마의 중요한 결정에 관여하고, 주요 어젠다를 모두 챙기는 역할을 하고 있다. 《폴리티코》 2009년 4월 7일자는 "오바마 행정부에서 액슬로드가 하는 일에는 한계가 없다"며 "과거 대통령의 정치 참모들은 주로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처신했으나 액슬로드는 정반대의 역할을 하고 있다. 액슬로드의 목소리와 정치적 조언에는 대통령 보좌진 어느 누구의 말보다도 큰 무게가 실려 있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액슬로드를 "대통령의 가장 가까운 측근, 가장 오래 보좌한 참모, 그리고 정치적 분신이자 오바마의 모든 측면을 챙기는 사람"이라고 했다.또한 램 이매뉴얼 백악관 비서실장은 "액슬로드가 '3P 통합자'의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3P는 언론, 정책, 정치를 뜻하는 만큼 오바마에게 중요한 일은 모두 다 한다는 얘기다.



Part 4 정치인 관료 전문가 그룹



조 바이든 - 대통령의 모든 어젠다에 관여하는 조언 책임자

조 바이든은 전임자인 덱 체니와는 다른 모습의 부통령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네오콘(미국 중심의 힘의 일방 외교를 강조하는 신보수주의자)의 핵심이었던 체니는 부통령 시절 외교, 안보분야에서 막강한 권한을 행사했다. 그는 외교, 안보 문제에 적극 관여했으며, 주요 정책의 결정 과정을 주도했다. 상원 외교위원장 출신인 바이든 부통령도 외교, 안보 분야에 밝지만 체니처럼 행동하지는 않는다. 오바마가 현명하고 균형잡힌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옆에서 조언하는 역할에 만족한다. 그럼에도 그의 영향력은 작지 않다. 일각에선 그를 '허풍쟁이'나 '떠벌이', '실수제조기'라고 부르며 비하하지만 그에 대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신임은 상당히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바마는 2009년 9월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바이든의 가장 훌륭한 점은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고, 그들이 자기 입장을 옹호하게끔 비판하면서 토론을 유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드은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사람":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2009년 10월 19일호에서 바이든은 대테러정책, 건강보험 개혁 등 주요 현안과 관련해 '불편한 진실'을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으며 그런 그의 태도가 오바마로 하여금 판단의 균형을 잡는 데 도움이 된다고 평가했다.《뉴스위크》에 따르면 바이든은 2009년 9월 13일 오바마와 외교, 안부 분야의 고위 관계자들과 회의를 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올해 아프가니스탄에 쓸 돈이 얼마인가? 흑자는 650억 달러라고 한다. 그럼 파키스탄엔 얼마를 쓰나? 22억 5,000만 달러 아닌가. 파키스탄보다 아프간에 약 30배 정도를 더 쓴다는 것인데 알카에다는 대부분이 파키스탄에 있고, 파키스탄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우리가 아프간에서 30달러를 쓸 때 파키스탄에서는 고작 1달러를 쓴다는 게 전략적으로 사리에 맞는 일인가?" 바이든의 문제 제기는 곧바로 효과를 발휘했고 회의 참석자들이 파키스탄의 문제를 좀 더 전략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