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이 꿈꾼 나라
이정우 외 지음 | 동녘
노무현이 꿈꾼 나라
이정우 외 38명 지음
동녘 / 2010년 4월 / 688쪽 / 25,000원
1부. 한국의 진보와 시민 사회시민 주권의 시대는 올까?
조기숙 -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아이오와 대학에서 정치학 석사, 인디애나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인천대학교를 거쳐 1997년부터 이화여자대학교 국제대학원에 재직 중이며 《International Studies Review》 편집장을 맡고 있다. 신뢰와 정치 참여, 리더십 등을 주로 연구하고 있으며, 지은 책으로 『지역주의 선거와 합리적 유권자』 등이 있다.
국민주권이 아니라 시민주권인 이유: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왜 국민주권이라 하지 않고 시민주권이라 부르는지 국민과 시민의 의미를 따져 보자. 국민은 근대 통일국가 이후 탄생한 개념으로 일정한 국법에 의해 권리와 의무를 부여받는 국가의 구성원을 칭한다. 시민은 원래 아테네의 도시국가에서 주권(참정권)을 행사한 특정한 집단을 일컫는 용어였다. 그 후 시민혁명(프랑스 혁명, 영국의 명예혁명, 미국의 독립전쟁)을 통해 구체제를 무너뜨리고 참정권을 획득한 유산자 계급을 시민계급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국민이 한 국가에 태어나거나 혹은 혈연에 의해 자동적으로 자격을 갖게 되는 수동적 개념이라면, 시민은 투쟁을 통해 지배자에게서 주권을 획득한 능동적 자발성이 포함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시민에는 이미 '깨어 있다'는 개념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시민주권의 개념: 시민주권은 천부인권(civil liberties)과 참정권(civil rights)을 모두 포괄하고 있다. 천부인권은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타고나는 권리를 말한다. 국가나 지배자가 개입하거나 제약하지 않으면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 즉 종교의 자유, 언론의 자유, 공정한 재판을 받을 자유, 소유권의 자유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는 국가가 억압하지 않으면 누릴 수 있는 자유(freedom from the state)라고 해서 소극적 자유라고도 불린다. 반면, 참정권은 국가가 시민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보장해야 행사할 수 있다(freedom by the state)고 해서 적극적 자유라고 불린다. 참정권은 공직에 출마할 권리, 투표권 등을 포함하므로 정치적 권리(political rights)라고도 한다. 이 때문에 시민이 자율적인 한 인간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정치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게 된다. 시민을 정치와 분리된 개념으로 사용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의 시민주권 역사: 우리나라는 일제로부터 해방됨과 동시에 참정권을 부여받았다. 따라서 국민은 존재하되,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시민 계층은 형성되지 않았던 것이다. 외세에 의해 이식된 민주주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초대 대통령의 독재를 허용한 것도, 군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사람을 투표로 대통령에 당선시키고, 국민투표를 통해 유신헌법을 합법화시켜준 것도 우리 국민이었다. 시민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발생한 일이다. 하지만 소수의 시민 계층이 구체제를 끊임없이 위협해 왔다. 독재 정부의 부정 투표를 규탄한 4 19 항쟁, 군부 독재에 항거한 부마사태, 군부 정권의 집권 연장에 항거한 5 18 광주민주화항쟁, 1987년 6월 항쟁이 그 예이다.
민주주의의 발전은 시민들의 참여 수준과 비례한다. 시민들의 참여 수준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 세 가지 중에서 첫째는 투표율이다. 반드시 높은 투표율이 높은 정치의식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 민주화가 이루어진 국가에서는 투표율이 시민들의 정치의식 수준과 비례하며 민주 발전의 정도와도 비례한다. 둘째는 조직 참여율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고 했듯이 조직되지 않은 시민은 힘을 발휘할 수 없다. 많은 민주주의 이론가들은 시민들의 조직 참여율이 그 국가의 민주주의 수준을 대변한다고 역설해 왔다. 셋째는 비전통적 정치 참여율이다. 오늘날 선진국에서는 투표, 위계적인 정당이나 시민단체에 참여하는 전통적 정치참여는 감소하고 수평적이고 자발적인 청원, 시위, 농성 등 비전통적 정치 참여는 증가하는 추세이다. 선진국일수록 시민주권의식이 높고 잘 조직되어 있어서 제도권 정치에만 만족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선진 민주국가의 시민은 정책적 욕구도 다양하고 참여 욕구도 높아 자신의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비전통적인 행동에 적극 참여하는 경향이 있다.
노무현의 진보적 시민주권론: 노대통령의 시민주권론의 핵심은 진보적이라는 것인데 그는 진보를 "약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단순히 생존만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권리도 보장하는 것이 진보라고 했다. 즉, 진보는 더불어 살아가는 연대의 사상이며 경쟁의 장에서 기회균등과 세력 균형을 보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진보의 사상은 "자유와 평등이라고 하는 민주주의 고유의 원리 속에 이미 내재되어 있는 가치"라는 것이다. 그는 시장과 조화되지 않는 진보 정책은 성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근본주의적인 좌파의 주장이 국민들에게서 대안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20세기 서구의 이념적 균열은 시장에 대한 국가의 역할에 관한 입장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따라서 국가의 시장 개입을 통해 복지와 평등주의 정책을 추구하는 좌파를 '진보'로, 국가의 최소한의 개입과 시장의 자율을 추구하는 우파를 '보수'로 분류했다. 그러나 정보화, 세계화로 대표되는 21세기에는 국가의 역할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게 되었다. 국경을 넘은 국가의 규제는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시민의식이 고양됨에 따라 과거처럼 정부가 시민 사회를 일방적으로 지배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른바, 사회 제 세력과의 협치를 추구하는 거버넌스의 시대에는 분권과 자율을 통한 정책이 진정한 의미의 '진보'로 인정받는다. 21세기에는 더 이상 '좌파 = 진보'의 공식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시장과 국가를 뛰어넘어 공동체의 자발적 참여를 통한 시민들의 자치를 대안으로 제시한 엘리너 오스트롬Elinor Ostrom의 이론이 2009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것은 이러한 시대적 흐름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시민주권론은 오스트롬의 공동체 자치이론과 이론적, 실천적 차이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유사하다. 즉, 노대통령은 단지 생존을 보장하는 차원을 뛰어넘어 '약자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국가가 강압적으로 약자의 복지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주권을 통해 분배와 복지의 문제도 해결해야 함을 의미한다.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만이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이자, 시민들이 요구하는 분배와 복지도 이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2부. 보수의 시대, 진보의 시대
보수란 무엇인가, 진보란 무엇인가?
박동천 - 국민대 정치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고, 미국 일리노이 대학(어바나 샴페인)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1년부터 전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흄, 콜링우드, 비트겐슈타인, 윈치 등에게서 영향을 받은 인식론을 바탕으로 역사와 언어와 정치와 가치를 연구하고 있다. 『깨어 있는 시민을 위한 정치학 특강』 등의 저서가 있다.
정치적 언어의 용례: 진보進步와 보수保守는 한자문화권의 전통에서 종종 사용되던 단어지만,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용례들은 주로 유럽의 개념을 번역한 의미에서 파생했다. 영어로 말하면 프로그레시브progressive를 진보로 컨서버티브conservative를 보수로 각각 옮긴 것인데, 프로그레시브는 '앞으로 나아간다'는 뜻을 가진 프로그레스progress에서 나온 말이고, 컨서버티브는 '보존해서 지킨다'는 뜻을 가진 컨서브conserve, 프랑스어 conserver, 라틴어 conservare에서 나온 말이다. 진보progress, 발전development, 전진advancement, 향상improvement, 개선betterment 등은 정치와 상관없이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되던 어휘들인데, 17~18세기 계몽주의의 이념이 유럽 근대를 풍미하면서 역사의 진보, 즉 사회의 질적인 개선을 표상하는 뜻이 첨가되었다. 보수라는 말은 그와 같은 계몽주의 진보사관에 대한 반작용으로 생겨났다.
상대성과 정체성: 진보/보수의 구분은 정치 사법, 경제, 사회 문화 등 영역에 따라서 크게 달라진다. 참정권이나 법 앞의 평등, 양심의 자유, 집회 결사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 시민권의 확대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정치 사법적 진보에 해당하고, 기업과 노동 사이에 이윤의 평등한 분배, 누진세를 통한 사회 안전망, 보다 공평한 취업과 승진의 기회 등은 경제 분야의 진보 의제에 해당한다. 정치 사법적으로 진보적인 태도는 경제적으로도 진보적인 태도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지만, 여전히 구체적이고 실존적인 선택 상황에서는 당사자에게 가장 촉박한 고려 사항이 결정을 인도한다. 따라서 정치 사법적 진보와 경제적 진보가 완전히 중첩되는 주제는 아니다.
정치 현실의 전체 구조와 모습을 함께 고려해야: 진보와 보수는 공히 자체로 논쟁적인 개념이다. 진보가 무엇인지, 또는 보수가 무엇인지를 말한다는 것은 아무리 중립성이나 객관성을 겉으로 표방하더라도 결국 자신의 가치 지향성을 섞어서 말하지 않을 도리가 없게 된다. 진보와 보수의 차이에 관해서 정책 지향이라고 하는 평면적인 차원에서만 바라보지 말고, 정치 현실의 전체적인 구조와 모습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바람 또는 규범적 주장을 이 글은 담고 있다. 일종의 균형 감각 또는 현실 감각을 보수파의 특성이라고만 치부해서 배척하지 말고, 오히려 진보 이념의 핵심 요소로 수용할 적극적인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토론에서 자신의 주관적인 신조를 관철하려고만 들지 않고 전체적인 정치 지형을 고려하는 전략적 사고가 진보 진영에게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물론 여기서 '적절한'과 '인간다움의 최소한'이 무엇인지는 실제 상황에서 논쟁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그야말로 진짜 쟁점genuine question이다. 즉, 교과서적인 일반 이론으로는 결코 풀 수 없고 오로지 정치가 맡아서 해결해야 할 과제인 것이다. 보수 세력은 자꾸만 이 정치의 장 자체를 축소함으로써 이 진짜 쟁점을 의제로 올리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므로 한국 사회에서는 정치의 장을 시민들에게 확보해 주고, 나아가 참여의 외연을 넓혀야하는 과제가 자연스럽게 진보의 과제로 편입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공론장의 형성과 확대, 나아가 공론이 건전하게 전개되도록 장애물들을 제거하는 과제는 전형적인 리버럴의 의제에 해당한다.
3부. 보수와 진보의 맹점
양극화의 원인은 무엇인가?
이정우 - 1950년 대구 출생. 서울대 경제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년부터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참여정부에서 대통령 정책실장, 정책기획위원장을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 『불평등의 경제학』, 『헨리 조지, 100년 만에 다시 보다』(공저) 등이 있다.
왜 양극화가 중요한가?: 최근 양극화 논의가 국내외에서 봇물을 이루다시피 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IMF의 외압에 내부 세력이 적극 호응하여 시장만능주의가 급격히 도입됨으로써 아주 단기간에 양극화가 심각해졌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양극화를 막기 위해 복지를 확충하고 상당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양극화의 거대한 물결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사회 안정의 근간을 이루는 중산층의 두께가 현저히 얇아지고, 상대적 빈곤이 증가했으며, 과거에 못 보던 노숙자 군상이 대도시에 출현했다. 다른 나라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중에서도 양극화 현상이 가장 두드러진 나라를 든다면 미국을 빼놓을 수 없다. 현재 미국은 세계에서 양극화가 가장 심한 나라이면서 동시에 아이러니컬하게도 양극화 현상에 대한 연구가 가장 앞서 있는 나라다. 그러므로 양극화 현상을 논의하려면 미국을 분석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 경제의 양극화 경향: 지난 4반세기 동안 미국은 소득 및 부의 양극화 추세가 급속하게 진행되었다. 양극화의 정도가 워낙 심해서 미국은 단시간에 선진국에서도 가장 높은 소득 및 부의 불평등을 보이고 있다. '두 개의 미국the Two Americas'이란 표현이 나오는 것도 결코 무리가 아니다. 2차 세계대전 후 오랫동안 안정된 모습을 보이던 미국의 소득 분배가 악화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대체로 1980년대 이후의 일이다. 그리하여 금융 위기가 발발한 2008년에 오면 빈부 격차는 최악의 상황에 도달한다. 동시에 미국 경제에서 오랫동안 진행된 소득의 양극화와 중산층의 몰락, 가계 부채의 누적 등의 현상이 경제의 불황을 일으켰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양극화의 원인: 그러면 왜 1980년대 이후 미국의 소득 분배에서 이렇게 양극화가 심해졌을까? 지금까지 미국 경제학계에서 백가쟁명 식으로 제시된 양극화의 원인으로는 첫째, 기술 진보의 성격, 정보격차(digital divide) 등 기술적 요인을 강조하는 가설, 둘째로 공장의 해외 이전으로 인한 일자리 소멸, 해외 이민의 증가 등 세계화 요인을 강조하는 가설, 셋째로 노조 약화 및 낮은 최저임금 등 제도적 요인을 강조하는 가설의 셋으로 압축된다. 지금까지 논의의 결과는 기술 혁신, 특히 정보화 , 지식기반 사회의 도래가 양극화에 주요한 영향을 미쳤다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세계화와 제도적 요인이라는 다른 두 요인도 상당히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먼저 기술 가설을 보자. 숙련 편향적 기술 진보(Skill-Biased Technical Change)가 노동 소득의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주장은 1990년대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 1970년 이후 미국에서 대학 졸업자의 숫자가 늘어나고, 그들이 받는 상대적 임금도 상승했다.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고용주들이 과거보다 숙련된 노동자를 선호하고 더 많이 수요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 시기 정보화라는 산업구조상의 혁명적 변화가 나타난 것이 이런 수요 증가의 배경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기술 가설에 대한 강력한 반론은 시기에 관한 문제 제기다. 새로운 기술이 주로 컴퓨터 산업에서 나온다고 가정한다면 컴퓨터 기술이 가장 급속히 진보한 시기는 1990년대 말이었는데, 노동 소득의 불평등이 가장 급속히 커진 것은 1980년대 초라는 사실과 시기의 불일치가 나타난다.
세계화가 소득의 양극화를 가져온다는 두 번째 가설도 상당히 강력한 근거를 갖고 있다. 세계화가 미국 국내의 소득 분배에 영향을 미치는 경로는 여러 가지다. 첫째, 수입 증가는 미국 내에서 제조업 일자리를 감소시키고, 중산층을 위협한다. 둘째, 이 시기에 미국에서는 완제품 수입뿐만 아니라 중간재 수입도 크게 증가했는데, 중간재의 해외 조달outsourcing 역시 미국 국내의 노동 집약적 분야의 일자리 감소를 가져왔다. 셋째, 수입으로 인한 물가 하락 경향은 국내 노동자들의 한계 생산성의 가치를 하락시킨다. 넷째, 세계화는 국내 투자로부터 해외 투자로 투자를 이전시켰다. 다섯째, 이 시기에 과거 19세기 말에 비하면 약소하지만 그 전 시기에 비하면 상당한 이민의 증가가 일어났다. 이 역시 소득 분배를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양극화를 설명하는 세 번째 가설은 제도 가설이다. 한 가지 흥미 있는 사실은 최근에 오면서 제도적, 정치적 요소를 강조하는 연구의 설득력이 전보다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종전의 연구에서 제도적, 정치적 요인은 다른 두 가지 요인에 비해 덜 중요하고, 기껏해야 부차적 요인 정도로 간주되고 있었는 데 비해, 최근에 와서는 이를 뒤집어 정치와 제도가 소득 분배 변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는 연구들이 나타나고 있어 우리의 주목을 끈다. 제도 가설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노조와 최저임금이다.
한국에 주는 시사점: 한국은 어떤가? 위에서 든 양극화의 세 가지 원인, 즉 기술, 정보 격차, 세계화, 제도적 요인이 모두 한국에도 적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흔히 한국의 양극화 현상이 1998년 외환 위기 때부터 나타났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학력 간, 직업 간 소득격차는 그보다 몇 년 전인 1995년 전후부터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는 정보화 시대의 도래와 더불어 고학력, 전문직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