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왜 대통령다운 대통령을 가질 수 없는가
박성래 지음 | 베가북스
대한민국은 왜 대통령다운 대통령을 가질 수 없는가?
박성래 지음
베가북스 / 2009년 7월 / 336쪽 / 13,000원
오바마와 이명박, 그리고 마키아벨리
'사랑과 두려움', 마키아벨리의 두 가지 리더십세상에는 다양하고 많은 리더들이 있지만, 이들이 느끼는 가장 원초적인 고민은 '조직 구성원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어떻게 다룰 것인가?' 인데, 마키아벨리는 이에 대해 아래처럼 정리한다. 사랑을 느끼게 하는 것과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 중, 어떤 편이 더 나은가? -『군주론』 113쪽
이는 반드시 군주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마키아벨리가 자신이 알고 얻게 된 모든 것을 담았다고 헌정사에서 밝힌 또 다른 저서 『로마사 논고』에서도 이런 말이 나온다. 사람들은 주로 두 가지에 의해 움직이는데, 그것은 바로 사랑과 두려움이다. -『로마사 논고』 502쪽
사랑과 두려움을 잘 활용하면 대개는 사람들을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마키아벨리는 포에니 전쟁이 낳은 두 명장 한니발과 스키피오의 예를 다음과 같이 들고 있다. 스키피오는 에스파냐에서 친절과 동정을 베풂으로써 그 지방 전역을 재빨리 자기편으로 만들었고 인민의 숭배와 사랑을 받게 되었다고 말하겠다. 다른 한편, 한니발은 이탈리아에 들어갔을 때, 정확히 그 반대의 방법으로 - 즉 잔혹함과 폭력, 약탈 및 모든 종류의 배신을 통해 - 스키피오가 에스파냐에서 얻었던 것과 동일한 효과를 거두었다. -『로마사 논고』 501쪽
마키아벨리는 한니발의 잔인함과 엄격함을 비르투(virtu, 영어의 virtue와 비슷한데, 남자다운 기백과 용기를 포함)라고 부르며,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많은 작가들이 한니발의 군사적 천재성과 성공은 칭찬하면서도 잔인함은 비난하는 데 대해, 그는 잔인함이야말로 한니발이 성공한 원인인데 결과는 칭찬하면서 원인은 비난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고 꾸짖고 있다. 한편 한니발의 맞수 스키피오 역시 비르투를 갖춘 인물이었다. 한니발이 알프스를 넘어왔을 때, 로마는 칸나이에서 맞붙었으나 참패했다. 당시 한니발이 곧 들이닥친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로마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는데, 마키아벨리는 칸나이 전투에서 살아남아 돌아온 20대 청년 스키피오가 보여준 비르투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로마의 많은 시민들은 한 데 모여 조국을 구할 희망이 없으므로 이탈리아를 버리고 시칠리아로 피난하기로 결의했다. 이 말을 들은 스키피오는 그들에게 가서, 손으로 칼을 뽑아 들고 그들에게 조국을 버리지 않겠다는 맹세를 강요했다. -『로마사 논고』 117쪽
이후 스키피오는 한니발의 이탈리아 침공의 배후기지였던 에스파냐에서 카르타고 군대를 몰아냈다. 그런데 스키피오가 에스파냐에서 한니발과 맞먹는 명성을 얻은 것은 군사적 승리 자체라기보다는 스키피오가 보여준 호의 때문이었다. 고대의 전투에서 함락된 성의 주민들은 대개의 경우 학살을 피하기 쉽지 않았다. 그러나 스키피오가 이끈 로마군은 적장이 항복하자 즉시 학살 중지령을 내렸고, 점령군이 아니라 해방군을 자처했다. 물론 붙잡힌 카르타고 사람들을 풀어주고 재산도 돌려주었다. 또 카르타고 인들이 인질로 잡고 있던 에스파냐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덕분에 에스파냐의 여러 부족들이 스키피오 편으로 돌아섰다. 즉 한니발이 '비인간적인 잔인함'으로 이뤄냈던 것과 같은 성과를 스키피오는 '인간적인 호의'를 통해 달성했는데, 이에 대해 마키아벨리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장군이 유능한 인물이면서 능력(virtu)을 통해 사람들 가운데서 명성을 누리고 있는 한, 이 두 경로 중 어떤 편을 따르더라도 별 상관이 없다. -『로마사 논고』 502쪽
오바마의 두려움 : 오바마는 마키아벨리의 두 가지 리더십 유형을 잘 알고 있다. 《타임지》 '올해의 인물' 인터뷰에서 이런 질문이 나왔다. "혹시 화가 나신 적이 있습니까? 당신이 화가 난 것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이에 대해 오바마는 다음과 같이 대답을 시작한다. "당신이 저와 깁스 대변인을 며칠 동안 따라다닌다면 말씀해 드리죠. 몇 번은 화를 드러낸 적이 있다고 말입니다. 제 참모들은 제가 언제 화가 나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저는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 아니에요. 저는 제가 아이였을 때 저한테 항상 효과가 있었던 게 제 아이들에게도 효과가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건 사람들을 정말로 죄책감이 들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입니다. '얘야 나는 너한테 정말 실망했어. 나는 네가 훨씬 더 잘 할 줄 알았는데……' 사람들에게 고함지르는 건 보통은 그다지 효과가 없습니다. 물론 예외도 있습니다. 죄책감이 전혀 안 먹히는 경우가 있죠. 그럴 땐 두려움을 사용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오바마가 사람들에게 호의를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의 사랑을 받음으로써, 사람을 움직이는 리더십을 활용하고, '두려움'은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MB의 두려움 : 이명박 대통령은 오바마에게는 최후의 수단인 '두려움'을 취임한지 불과 두어 달 만에 사용하기 시작한다. 이른바 촛불집회에 대한 대응을 필두로 근래에 전례가 없던 강경하고 엄한 기준이 적용되고 있다. 용산참사가 그랬고, 미네르바 구속이 그랬고,
에 대한 수사가 그랬다. 한나라당의 반값 등록금 공약을 지키라는 대학생들의 시위에 대해 전담 체포조를 배치하고 시위대의 두 배에 이르는 경찰력을 투입했다. 공무원들에 대한 구조조정 압박 등을 통해 공직사회의 기강을 바로잡겠다든지, 50개 품목의 물가를 정부가 관리한다든지, 근년에 보기 드물었던, 약간은 흘러간 듯한 옛 뉴스들이 이명박 정부 들어 유독 많이 나오는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공무원들에게, 기업들에게, 자영업자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줌으로써 그들을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리더십을 구사하기 때문이다.
양자택일? : 상황에 따라 '사랑'도 쓰고 '두려움'도 쓸 수 있다면 좋으련만, 마키아벨리는 어중간한 태도를 극구 피하라고 아래와 같이 조언한다. 물론 마키아벨리의 주장을 어느 정도는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렵다. 아마 마키아벨리는 논지를 분명히 하기 위해 일도양단식의 과장을 하고 있는 듯하다. 왜냐하면 주변의 리더들을 둘러보거나 역사를 돌이켜 봐도 '사랑'과 '두려움' 중에 전적으로 하나만 쓰는 리더는 거의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들이란 다정하게 대해주거나 아니면 아주 짓밟아 뭉개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사소한 피해에 대해서는 보복하려고 들지만, 엄청난 피해에 대해서는 감히 복수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군주론』 22쪽
'사랑'을 쓰는 리더의 함정
'사랑'이나 '두려움'을 잘 쓰는 것만으로 좋은 리더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이렇게 하기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두 가지 리더십에는 제각기 빠지기 쉬운 함정들이 있기 때문인데, 마키아벨리는 이런 함정들을 피해가야 좋은 리더가 될 수 있다고 아래와 같이 충고한다. 이 두 경로 중 어느 편을 취하든 극단적으로 밀고 가면 군주를 능히 전복할 수 있는 커다란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사랑 받기를 지나치게 열망하는 자는 경멸을 받고,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지나치게 노력하는 자 역시 그 한계를 조금만 넘어도 증오를 받기 때문이다." -『로마사 논고』 502쪽
노무현과 경멸 : 이와 같은 이유로 파멸적인 결과에 이른 리더 한 사람이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대선 과정을 통해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던 노 전 대통령은 많은 국민들로부터 호의를 얻었다. 또 국민들의 사랑을 받음으로써 리더십을 발휘하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사랑'은 '경멸'로 되돌아왔다.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이라는 이름이 뉘 집 강아지 이름 같다는 얘기들을 주변에서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다. 마키아벨리 식으로 말하자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랑'을 사용하면서 '경멸'을 피하지 못했던 것이다. 세간에서 보수신문이라고 불리던 특정 신문들이 5년 동안 한 일은 바로 '대통령 강아지 만들기'였다. 마키아벨리의 시각에서 보자면 약점을 제대로 찌른, 매우 성공적인 공격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신중하지 못한 언행들이 끊임없이 그 빌미를 주었다. 이 자리에서 누구 탓이 더 큰지를 논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 결과만큼은 리더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말해두고 싶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뒤늦게나마 자신의 최대 약점을 알았던 것 같다. 퇴임 직전 한 방송사와 가진 기자 회견에서 "언어와 태도에서 품위를, 뭐 어떻게, 만들어 나가는 준비가 부실했다, 이 점은 인정을 하지요"라는 말을 남겼다. 이제 노 전 대통령은 가고, 그를 둘러쌌던 경멸과 따돌림이 안개처럼 걷히고 나자, 사람들은 이상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사람들은 그제서야 노무현이 주었던 것이 사랑이었다는 것을 기억해내고는 그간에 있었던 허물쯤은 눈감아줘도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YS와 이회창 : 이와는 다른 일이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이회창 총재 사이에서 일어났다. 2002년 대선 당시 김혁규 경남지사의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YS는 김 지사의 정치적 스승 자격으로, 이회창 후보는 대선을 앞두고 사이가 틀어졌던 김 지사를 달래는 차원에서, 바쁜 시간을 쪼개 참석했다. 두 사람은 얼음장같이 어색한 만남을 가졌는데, 나는 이회창처럼 같이 강단 있는 사람이 그토록 쩔쩔매는 장면을 본 적이 없다. 곧이어 YS의 축사가 시작되었다. "여러분! 세상에서 배신이 제일 나빠요. 배신자에게는 미래가 없습니다." 출판기념회 자리에서 홍두깨 같이 배신자 타령이라니. 모두들 의아해 했다. 그런데 이회창 후보의 표정을 슬쩍 살펴보니 아까보다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두 사람 사이에 우리가 모르는, 적어도 YS 입장에서는 배신이라고 부를 수 있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돌이켜보면, 당시 이회창 후보는 몇 달만 지나면 자동으로 대통령이 된다는 게 정설처럼 굳어져 있었다. 반면 YS는 재임 중에 일어났던 속칭 '세풍', '안풍' 의혹을 비롯해 약점이 많은 전직 대통령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몇 달 뒤면 소위 칼자루를 쥐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유력 후보를 앞에 앉혀놓고 배신자 운운할 처지가 아니었다. 나는 그날 내가 보고 들은 것을 토대로 YS의 기세가 이회창 총재의 기세를 눌렀다는 결론을 내리고 싶다. YS는 대통령 시절에도 이회창 총재에게 '두려움'을 심어주는 데 성공했고, 당시 그 자리에서도 '두려움'을 심어주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자신이 불리한 위치에 있는데도 자신을 만만하게 보는 일, 즉 경멸은 결코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링컨은 경멸을 어떻게 피했는가? : 이번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모델로 삼았던 링컨의 경우를 살펴보자. 두 사람은 공통점이 상당히 많다. 마키아벨리의 리더십 유형으로 보자면 두 사람 다 '두려움' 보다는 '사랑'을 사용하려 했던 리더이다. 그런데 링컨은 경멸을 피했다. 그랬으니까 성공했을 것이다. 링컨 역시 처음에는 많은 경멸을 받았다. 링컨은 일리노이 출신의 촌뜨기 변호사였고, 경선에서 맞붙었던 경쟁자들은 링컨보다 훨씬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링컨은 윌리엄 슈어드에게 국무장관 자리를, 새먼 체이스에게 재무장관 자리를, 에드워드 베이츠에게 법무장관 자리를 주어 '라이벌로 구성된 내각'을 꾸렸다. 상대 당 출신인 에드윈 스탠턴은 전쟁장관으로 기용했다. 링컨의 장관들은 오만방자했다. 링컨이 자신들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다.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슈어드 국무장관은 대통령 링컨에게 한 수 가르쳐준다는 태도로 일했다. 링컨 행정부는 사실상 슈어드가 이끌고 있다는 소문이 오랫동안 파다했고, 슈어드는 자신도 상당 기간 동안 그렇게 믿고 있었다. 아마추어처럼 보이는 행동도 링컨을 만만하게 보이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대통령을 경멸한 많은 장관들 중에서 체이스 재무장관이 특히 심했다. 링컨이 재선을 준비하고 있을 때 체이스가 갑자기 고향 오하이오를 방문했다. 링컨은 체이스가 공화당 경선에서 또다시 자신에게 도전하기 위해, 선거운동 차 고향에 갔다는 것은 알았지만, 화를 내지 않고 순순히 보내주었다. 링컨은 대통령 자리를 향한 체이스의 욕망을 이해했다. 링컨은 자신을 경멸하던 사람들에게 독한 말들을 하거나 상처를 주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다른 부분이다. 결국 체이스는 경선에 나설 결심을 포기하고 말았다.
연방군 사령관 맥클렐런도 지독히 링컨을 무시했다. 링컨이 맥클렐런 사령관의 집을 친히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는 결혼식에 가고 없었다. 링컨은 기다렸다. 한 시간쯤 지나 그가 돌아왔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이 왔다는 걸 알고도 2층으로 휙 올라가 버렸다. 링컨은 30분을 더 기다렸다. 그러고 나서 대통령이 아직 기다리고 있다는 전갈을 2층으로 보냈다. 그런데 그는 벌써 잠들어 있었다. 링컨의 비서 조 헤이는 분개하며 맥클렐런의 오만방자한 행동을 일기에 기록했다. 그러나 링컨은 달랐다. 전쟁의 승리를 거둘 수 있다면 맥클렐런의 말고삐를 잡는 사람이라도 되겠다. -『권력의 조건』 407쪽
이 정도는 돼야 실용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 모든 이야기들은 링컨이 '사랑'을 사용하면서 경멸을 피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링컨의 사랑은 성공했고, 노무현의 사랑은 - 적어도 살아서는 - 실패했다. 여기서 오바마가 최후의 수단으로 '두려움'을 남겨 놓은 이유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링컨을 리더십 모델로 삼은 오바마는 임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경멸이 자신을 파멸시킬 수 있다는 것을 되새기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오바마 선거캠프는 규율이 매우 강한 조직이었다. 다른 선거캠프에서는 이른바 팔꿈치치기(elbowing, 마치 퍽을 향해 질주하며 팔꿈치로 상대와 몸싸움을 벌이는 아이스하키 선수들처럼 참모들이 동료들을 견제하는 일)가 많았다. 하지만 오바마는 측근들이 주도권 다툼을 하거나 분란을 일으키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또 선거캠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언론에 누설되는 일도 거의 없었다. 오바마는 두려움을 썼을까? 물론 썼다. 앞에서 말한 오바마가 소리를 지른 몇 번의 경우가 그런 경우다.
'두려움'을 쓰는 리더의 함정
한니발은 역사에 길이 남을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 '잔인함'으로 인해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스키피오에게 패배한 뒤 겨우 카르타고로 돌아갔는데, 한니발을 넘겨달라는 로마의 요구가 끈질기게 계속되자 한니발은 조국을 등지고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여러 곳을 전전하다 결국 독약을 마시고 목숨을 끊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잔인함으로 인해 미움을 받고 살해된 로마의 안토니누스와 콤모두스, 막시미누스 황제의 사례를 언급하고 있고, 또 다른 곳에서 카이사르로부터 막시미누스에 이르기까지 26명의 황제 가운데 16명이 살해당했고 10명만이 제명을 채웠다고 잔뜩 겁을 준다. 그러면서 탐욕스럽고 잔인했던 세베루스 황제가 어떻게 사자의 사나움과 여우의 교활함을 활용해 미움을 받는 대신 존경을 받게 되었는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현명한 군주는 자신을 두려운 존재로 만들되, 비록 사랑을 받지는 못하더라도, 미움을 받는 일은 피하도록 한다. 왜냐하면 미움을 받지 않으면서도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군주론』 114쪽
미움을 피하지 못했던 부시 : 우리는 최근에 '두려움'을 사용하다가 미움을 받은 리더 한 명을 알고 있다. 조지 W. 부시다. 9ㆍ11이라는 전대미문의 끔찍한 테러가 일어났을 때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경악했고, 세계적으로 테러범들에 대한 분노와 미국에 대한 동정여론이 크게 일었다. 막 출범한 부시 행정부가 이렇게 커다란 호의와 동정을 보이는 세계를 상대로 '사랑'을 사용하는 리더십을 발휘했더라면 결과는 사뭇 달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모두 알다시피 부시는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갔다. 부시는 '두려움'을 쓰는 리더십으로 세계를 이끌기 시작했다. 테러범을 색출한다며 고문에 해당하는 방법까지 서슴지 않았고, 미국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다른 나라 사람들의 불편과 희생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러자 미국에 대한 동정여론은 눈 녹듯이 금세 사라졌다. 테러범들만 부시를 미워한 것은 아니었다. 부시는 전 세계적으로 미움을 받았다. 미국처럼 압도적인 힘을 가진 나라도, 미움을 피하지 못하면 별다른 수가 없다. 부시 8년 동안 미국의 위상은 몰라보게 추락했다. 부시에 대한 미움은 미국 바깥에서만 일어난 게 아니었다. 처음엔 박수를 치던 미국인들도 점차 등을 돌렸다. 그렇게 되자 부시가 할 수 있었던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