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교과서 한국을 말하다
이길상 지음 | 푸른숲
세계의 교과서 한국을 말하다
이길상 지음
푸른숲 / 2009년 2월 / 440쪽 / 16,000원
1부 가까운 만큼 첨예한
1장 식민사관에 점령당한 미국과 캐나다 교과서미국 교과서는 독도를 어떻게 표기하고 있을까?
2003년부터 나는 외국 교과서의 한국 관련 내용 중 잘못된 것을 찾아 시정하는 일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 일을 하다 보니 동해 표기 문제와 독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독도는 외국 교과서에 거의 나오지 않았는데, 이는 천만 다행이었다. 왜냐하면 독도는 아주 작은 섬이기 때문에 교과서에 수록되는 지도에는 표기될 수가 없고, 그런 처지에서 외국 교과서에 나오려면 '분쟁 지역'으로서 명성(?)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독도는 2006년에 우울한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 미국의 교과서 출판사와 한국학 기관을 방문하기 위해 미국 동부를 여행하고 있었는데, 여유 시간을 이용해 그곳에서 동해 표기 실태를 알아보려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도 출판사에서 간행한 지도책을 하나씩 뒤져보았다. 그런데 문득 독도가 안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서점 한쪽에 쭈그리고 앉아 디지털카메라로 동해와 독도가 나오는 부분을 하나하나 찾아서 찍었다. 그리고 귀국하자마자 사진을 확인해가며 동해와 독도 표기 실태를 정리했는데, 독도가 위험해 보였다.
여론을 환기해야겠다는 생각에 보도자료를 만들고, '독도가 위험하다'라는 제목을 붙였다. 보도자료에는 "동해 표기 문제는 개선되고 있는 것 같지만, 독도는 이미 분쟁 지역이 되었다", "독도보다는 리앙쿠르 락스(Liancourt Rocks)라는 표기가 많다"와 같은 충격적인 문장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아울러 일본이 문제를 일으키기 전에 독도 문제에 대한 여론을 환기하고, 우리 정부와 국민이 좀더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해달라는 의견을 덧붙여 주요 신문사의 담당 기자들에게 자료를 보내주었다.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이전에 독도 문제를 보도했던 기자들이기에 믿고 보냈는데, 아무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허무한 일이었다. 그렇게 2년 전만 해도 독도는 우리의 관심 밖이었다.
다시 2007년에 나는 미국의 사회과 교과서 집필자와 편집자들을 인터뷰하기 위해 중서부와 동부의 도시들을 방문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서점에 들러 동해와 독도 표기를 조사하는 '취미활동'을 했는데, 상황이 더 나빠진 듯했다. 독도는 완전히 분쟁 지역으로 돌아섰고, 표기도 '리앙쿠르 락스'로 굳어져가는 것이 확연했다. 또다시 서점에 쭈그리고 앉아 몇 장의 사진을 찍었고, 귀국하자마자 작년처럼 보도자료를 작성해 기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과연 이번에는 어떨까?
역시 아무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대통령 선거가 코앞인데 독도에 관심을 쓸 여력이 없겠지. 선거가 끝나면 곧바로 다케시마의 날(2월 22일)이 다가올 테고, 일본에서 기념식을 하면 우리 언론에서도 뭔가 움직임이 있겠지'라는 나름대로의 핑계거리를 만들어 나 자신을 위로했다. 하지만 다케시마의 날은 대통령 취임식과 떠들썩한 공직자 물갈이, 정부 조직 개편 바람 속에 묻혀버렸다. 그리고 그사이 일본에서는 시민 단체를 중심으로 독도는 다케시마이고, 역사적으로나 법적으로나 일본 땅이며, 국제사법재판소로 가기를 거부하는 한국은 비겁하다는 자료를 만들어 교육 활동을 벌였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후 첫 한일 정상 회담을 앞두고 실용 외교를 외쳤다. 즉 역사, 과거, 이념 같은 '쓸모없는 것'은 젖혀두고, 경제나 민생 등 '쓸모있는 것'에 집중하는 외교를 하겠다는 선언을 하였다. 이렇게 우리가 묻어버렸던 독도가 되살아난 것은 2008년 7월 일본이 중학교 사회과 교사용 해설서에 독도의 영유권이 일본에 있다고 명기하겠다는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내가 보도자료를 보내 관심을 가져달라고 애원(?)을 했을 때만 해도 무관심하던 언론이 앞을 다투어 독도를 노래 부르고, 정부의 외교 실책을 힐난했다. 내가 보낸 보도자료를 받아보았던 신문사들이 더 시끄러웠다. 그러나 보도자료를 받아보았던 기자들에게서는 아무 연락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이번에는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던 모 통신사 기자에게 자료를 보내주었다. 이미 독도 문제가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 시점이었기 때문에, 그 기자는 자료를 보자마자 바로 큼지막한 기사를 썼다. 곧이어 수많은 언론사에서 취재 요청이 쏟아졌다. 이렇게 해서 나는 갑자기 독도 전문가가 되었다. 이제는 동해뿐 아니라 독도의 국제적 표기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오리엔탈리즘과 한류
미국 교과서 속에서 한국은 여러 가지 상충되는 이미지를 가진 나라다. 그 가운데 부정적인 이미지를 형성하는 요인으로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오리엔탈리즘인데, 이를 통해 동양의 전통 사회를 생각할 때 먼저 떠오르는 편견인 '샤머니즘적 특성'이나 '비합리적 의사 결정 구조'가 아직도 남아 있다는 점을 보여줌으로써 서구 사회의 우월성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려는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오리엔탈리즘 이상으로 한국의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만드는 것은 일제 식민 사관이다. 참고로 러일전쟁의 결과를 설명하는 교과서 가운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일본의 승리는 모든 아시아에서 축하를 받았다. 아시아 국가가 유럽 국가를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 『세계사: 인류의 유산』, 홀트, 라인하르트 & 윈스턴, 2008.
대체 어느 나라가 무슨 축하를 했다는 것인지, 아무런 근거도 없이 당시 일본이 황실 언론 혹은 피식민지 국가들의 친일 언론을 동원해 퍼뜨린 역사 해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한편 교과서에 수록된 사진의 선택에서도 특정 국가에 대한 이미지나 스테레오타입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현행 교과서들에 수록된 사진을 검토해보면 한국은 국가 이미지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진이 너무 많아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특히 이웃 국가인 일본의 사진과 비교했을 때 더욱 그렇다.
물론 미국 교과서에서 한국이 부정적으로만 그려진 것은 아니다. 한국의 문화나 사회 현실을 비교적 사실에 가깝게 서술한 내용, 최근의 한류를 반영하는 내용도 발견된다. 예로 휴턴 머플린에서 2005년에 간행한 『지구와 그곳의 사람들』에서는 한국의 중세 문화를 설명하면서 "한국은 무기, 배의 디자인과 생산, 인쇄술, 기후 예측, 달력 제작과 관련된 과학에서 중국을 앞섰다"고 서술하고 있다.
캐나다 교과서가 그린 한국의 두 가지 얼굴
캐나다 세계사 교과서에는 고대사와 중세사의 경우 한국사는 거의 무시되고 있는 반면, 중국과 일본의 역사는 매우 상세하게 서술되고 있다. 또 현대사에서는 일본의 식민 지배, 분단, 한국전쟁, 급속한 산업화 등 몇 가지 주제와 관련해 한국이 등장하고 있는데, 서술 내용 중에는 납득하기 어려운 얘기도 꽤 많다. 예로 맥그로-힐 라이슨에서 2002년에 간행한 고등학생용 『유산: 서구와 세계』에서는 분단의 배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일본에 합병된 한국은 2차 대전 동안 일본과 기타 추축국들의 편에 서서 연합국에 대항했다. 그래서 독일처럼 한국도 미국과 소련의 구역으로 분할되었는데, 그 분단선은 38도선이었다. 아, 이런 이론도 있구나! 기가 막힐 뿐이다. 일본의 한국 병합 과정에 대한 설명에서도 캐나다 교과서는 식민주의 사관을 드러내고 있다. 예로 배런스 에듀케이션 시리즈의『쉽게 읽는 세계사: 서기 1500년부터 현재까지』는 청일전쟁의 배경을 설명하면서 당시까지 한국이 "중국에 느슨하게 부속되어 있던 나라"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한편 한국의 급속한 경제 성장은 캐나다의 지리 교과서에서 점점 흥미를 끄는 주제가 되고 있는데, 캐나다의 사회과 교과서는 대개 한국을 '선진국' 혹은 '고소득 국가'로 분류하고 있다. 캐나다 교과서 속 한국의 모습은 다분히 이중적이다. 즉 급속히 고소득 단계에 이른 나라이기는 하지만, 역사가 없고 정치적으로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으며, 전쟁의 위험성이 높고, "노후 연금과 여러 다른 사회적 혜택이 없는" 나라, "해외 원조를 하지 않는" 나라로 묘사되고 있다.
2장 다양성을 눈여겨봐야 할 중국 교과서중국에는 다양한 관점의 교과서가 공존한다
중국의 국사 교과서는 2001년의 제8차 교육과정 개혁 이후 이른바 심정제(審定制, 우리나라의 검정제)를 채택하고 있다. 즉 국가가 제정한 교과서 편성 방침에 따라 출판사별로 교과서를 집필한 다음 국가의 심의를 통과하면 자유롭게 출판하여 보급할 수 있는데, 이는 세계의 다수 국가가 채택하고 있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도 국사 교과서가 국정으로 간행되고 있는데, 이런 체제를 택하고 있는 나라는 베트남과 남북한 이외에는 거의 없다. 교과서 편찬 제도상의 이런 차이를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중국과 일본 정부에 거리낌 없이 교과서 내용을 수정하라고 요구하고, 중국과 일본 정부는 우리 정부의 요구에 망설임 없이 "교과서 내용은 정부의 권한 밖이다"라고 응답하곤 한다.
한편 중국의 중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한국의 근대 이전 역사를 살펴보면, 삼국시대, 통일신라, 고려, 조선에 이르는 역사를 1, 2쪽 내외로 간략하게 소개하는 형식이 가장 자주 보인다. 두 번째로 많이 등장하는 주제는 고대부터 중세까지의 한중 문화 교류사인데, 특히 통일신라시대의 한중 문화 교류가 가장 많이 다루어지고 있다. 세 번째로 많은 주제는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등 중국이 참여한 전쟁이다.
중국의 최대 교과서 출판사는 베이징에 있는 인민교육출판사이다. 이 출판사에서 2001년에 간행한 중학교용 『세계 역사』(상)은 '신라의 통일과 조선 왕조의 건립'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한국의 고대사와 중세사를 비교적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고구려 역사를 분명하게 우리 민족의 역사로 서술하고 있다. 동북공정이 시작되기 전에 간행된 이 교과서는 2004년에 일부 내용을 수정하여 다시 간행되었으나, 한국 역사와 관련된 내용은 단 한 글자의 수정도 없이 그대로 수록되었다. 즉 한국에서 언론과 관련 학자들뿐 아니라 정치인, 시민 단체, 교육 단체 등 전 국민이 동복공정을 비판하고 중국의 역사 왜곡을 규탄하던 시기에 원래 내용 그대로 간행한 것이다.
2005년에 이 출판사의 편집자들을 초청하여 개최한 토론회에서도 동북공정의 연구 결과가 중국의 교과서에 반영되느냐는 우리의 질문에 중국 참석자들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교과서에는 학계의 다수 의견 중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칠 만한 내용을 엄선하여 수록합니다. 따라서 소수 학자들의 의견이 교과서에 수록되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학자들은 얼마든지 자기주장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출판사가 2005년 중학교 3학년용 『세계 역사』 실험본 교과서를 준비하면서, 인쇄 전에 우리에게 보내온 원고에는 한국의 고대사와 중세사가 완전히 누락된 상태였고, 동아시아의 고대사와 중세사는 일본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었다. 그래서 출판사 사장과 편집장에게 편지로 동아시아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사를 누락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한중 관계가 더욱 확대되고 발전하는 상황에서 한국 역사를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인민교육출판사에서 "검토한 결과 이 교수의 주장이 의미가 있다고 판단해 일본 중세사 서술을 축소하는 대신 한국사를 1쪽 정도 수록하기로 했습니다"라는 응답이 왔다.
이 교과서는 몇 개월 후인 2006년 봄에 간행되었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수록되어 있었다. 고대 조선 : 조선 반도에는 일찍부터 인류가 거주하고 있었다. 기원 전후 한반도 북부를 통치한 것은 고구려 노예제 국가였다. 이후에 서남부와 동남부에 잇달아 백제와 신라 노예제 국가가 출현했다. 676년에 신라가 조선 반도의 대부분을 통치하게 되었다. 10세기경 왕건이 고려 왕조를 건국했다. 14세기 말 고려 장군 이성계가 조선 왕조를 건립했다. 도읍을 한성으로 했고, 국호는 조선으로 했다. 이처럼 고구려를 분명히 우리 민족사의 한 부분으로 서술하고 있는 이 교과서는 동북공정이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시점에서 간행되었고, 현재도 수정 없이 사용되고 있다.
한편 중국도 대학에서 사용하는 교과서는 국가의 검정을 받거나 하는 심의 절차가 없다. 그래서 대학 교재 중에는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서술한 경우도 있다. 2004년에 베이징대학교에서 교재로 사용하고 있는 『간략한 중국 고대사』라는 책에는 "고구려는 오랫동안 조선 반도 북부와 랴오둥(遼東)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비록 중원 왕조에 복속돼 있었으나 소란을 피웠다"라는 표현이 있어, 우리 고대사 전공자들은 고구려를 중국의 복속 정권으로 규정했으니 역사 왜곡이라 비난하며 중국의 시정을 요구했다. 뿐만 아니라 외교통상부 고위 당국자는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학술적 차원뿐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도 중국 정부에 시정을 요구하는 등 최대한 강력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대학교에서 사용 중인 교재도 정부가 시정할 수 있다는 발상은 지극히 '대한민국적'이고 '10월 유신적'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중국에 이런 요구를 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하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3장 오류와 왜곡투성이, 타이완과 홍콩 교과서중화사상과 식민사관의 정수 타이완 교과서
정부 수립 후 우리는 타이완을 '자유 중국'이라 부르며 친구로 대했고, 중국은 '중공'이라 부르며 아주 멀리했다. 그런데 1971년에 갑자기 중국 본토의 사회주의 정부가 중화인민공화국이란 이름으로 UN에 가입했고, 일본은 이듬해에, 미국은 1979년에 중국과 수교하며 섬나라를 버렸다. 하지만 우리는 중국의 UN 가입 이후로도 무려 20년 이상 자유 중국 타이완을 친구로 지켜주었고, 결국 1992년 여름 중국과 수교하고 타이완과 단교를 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늦게까지 타이완의 찬구로 남아주었지만, 타이완 사람들의 한국에 대한 비난은 극에 달했다. 왜 한국만 유별나게 비난하고 나섰던 것일까? 가장 가까이에 있는 비슷한 처지의 오랜 친구에게 당한 배신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타이완 교과서를 읽다 보니 타이완 사람들의 좀 특별한 중화사상 때문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중국 교과서보다 10배, 아니 백 배 이상 심하다. 읽다 보면 화가 치밀 정도다. 예로 타이완 교과서에서는 고조선을 세운 인물이 중국인 기자라고 서술하고 있다. 이미 오래전에 학계에서 부정한 '기자 조선'이 아무런 비판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타이완의 사회과 교과서가 한국 관련 부분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는 '속국(屬國)', '번국(蕃國)', '번속(蕃俗)', '종주국(宗主國)' 등인데, 이런 표현은 정작 당사국인 중국의 초ㆍ중ㆍ고 교과서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또 타이완 교과서에는 한국은 고대부터 일본처럼 고유한 문화를 지닌 독립 국가가 아니라 중국 문화의 일부였다는 서술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와 관련해 흔히 쓰이는 단어가 '당화(唐化)'니 '한화(漢化)'니 하는 말들이다. 역시나 중국 교과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말들이다. 이렇듯 중화사상이 본토를 능가하는 타이완 사회에서 한국의 대중음악, 드라마, 영화, 게임, 심지어 음식까지 인기를 얻게 된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그렇다 보니 한류는 자연스럽게 교과서에 수록되기 시작했는데, 나름대로 새로운 경향으로 받아들일 만하다. 그런데 한국 드라마의 유행을 간단하게 소개하는 교과서도 있고, 한류를 경망스러운 풍조 혹은 일시적인 유행 문화로 낮추어 보는 교과서도 있다. 한류가 지금 유행하고 있기는 하지만 일시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주류 문화로 자리 잡지 못하고 곧 사라질 것이라 보는 시각인데, 이런 비판 속에서도 여전히 중화주의적 우월 의식이 감지된다.
4장 정치보다는 학술 문제로 대응해야 할 일본 교과서일본 교과서에서 동해가 사라진 이유
동해가 표기된 일본 고지도가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가끔 접하게 된다. 그 뒤에는 꼭 역사적으로 일본도 동해라는 명칭을 인정했다는 증거라는 해설이 따른다. 그런데 확인해보면 동해가 아니라 조선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일본에는 동해를 일본해나 조선해가 아니라, 동해로 표기한 지도나 인쇄물이 있었을까? 현행 일본 교과서에는 물론 동해는 없고, 일본해만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동해가 원래 없었던 게 아니라 최근에 사라졌다는 점이다. 예로 2001년에 검정을 통과하고 2002년에 간행된 일본의 한 유명 출판사의 사회과 교과서에는 우리의 동해가 '동해'라고 분명하게 표기되어 있다. 그런데 2003년부터는 동해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어떤 이유 때문일까? 곰곰이 따져보면 일본 탓만 할 수도 없다. 동해를 사라지게 한 데는 우리의 책임도 작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