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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의 길을 열어주는 부모

홍기자 지음 | 도서출판CUP


내 아이의 길을 열어주는 부모

홍기자 지음

도서출판CUP / 2026년 5월 / 376쪽 / 23,000원





1부 길을 열어주는 부모



자녀와 시대를 이해하여 신앙의 길을 열다


소통을 해야 신앙을 전할 수 있다:
히스기야는 이사야로부터 자신의 잘못으로 다음 세대에 심판이 일어날 것을 듣고도, 그것이 자기 생애에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에 안심하며 스스로 ‘선하다’고 말합니다. ‘내가 사는 날 동안만 태평하면 괜찮다’는 어른 세대의 이런 태도가 지속되면, 다음 세대는 어른들과의 소통을 거부하게 될 것입니다.

어른이란 먼저 삶을 경험하고 지혜를 쌓은 사람이며, 신앙에 있어서는 젊은 세대에게 영적인 멘토 역할을 하는 지혜자입니다. 그중에서도 부모는 신앙을 삶으로 살아내고 반영해 주는 가장 중요한 어른입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어른의 말을 ‘꼰대’로 칭하며 거부하는 것은 세대 간 단절을 심화시키고 신앙의 단절로까지 이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단절을 메우기 위해 낮아지셨듯, 부모도 자녀에게 먼저 낮아져 다가가야 합니다. 다음 세대에게 신앙을 이어주려면 무엇보다 이해와 공감이 필요합니다. 남성은 군대 이야기로, 여성은 자녀 이야기로 쉽게 친해지듯, 같은 경험에서 비롯된 동질감이 마음을 열게 합니다. 소통이 되어야 예수님의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고, 그 공유가 다시 소통을 깊어지게 합니다. 어른들과 소통할 기회가 부족하면 자녀는 삶의 문제 앞에서 결국 세상의 방식에 의존하게 될 것입니다. 인생의 중요한 선택 앞에서 자연스럽게 찾아갈 수 있는 어른이 된다는 것은, 직분이 아니라 이미 마음이 열려 있다는 증거입니다. 마음이 열려야 들을 수 있고, 들을 때 신앙 교육이 시작됩니다.

유대인 교육법인 ‘하브루타’는 짝과 함께 묻고 답하며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에서 어른은 정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질문하고 탐색하도록 돕는 길잡이가 됩니다. 성경 역시 유월절 예식의 의미를 자녀가 묻고 부모가 답하는 방식(출 12:26~27, 출 13:14)으로 신앙을 전수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자녀가 질문하도록 돕기 위해 구약에서는 돌무더기, 십계명 돌판, 절기 같은 상징물을 활용했습니다. 유월절에 쓴 나물과 무교병을 먹으며 출애굽의 밤을 몸으로 기억하는 과정 속에는 묻고 답하며 이어지는 신앙 교육이 담겨 있습니다.

신명기 32장 7절에서 모세는 가나안을 눈앞에 두고 백성에게 “네 아버지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라고 마지막 당부를 남깁니다. 다음 세대에게는 물어보라 권면하고, 어른 세대에게는 성실히 답해 주라 요청하는 이 ‘묻고 답하는 과정’이 곧 신앙의 소통이자 세대 간 전수의 핵심입니다. 여호수아 4장에서 요단강을 건넌 후 세운 열두 돌 역시 다음 세대가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라고 물을 때 신앙을 전할 결정적 기회가 되는 살아 있는 상징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유아세례 기록, 돌 예배 사진, 성탄절과 부활절 같은 경험이 같은 역할을 하며, 이런 경험이 축적될 때 자녀는 자연스럽게 질문하고 부모는 신앙을 구체적으로 전수할 수 있습니다.

영성 있는 지혜로운 부모가 되라:
출애굽기 18장에서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지쳐 있는 모세에게 지혜로운 조언을 건네고, 모세는 이를 거부하지 않고 경청합니다. 이는 두 사람 사이에 이미 깊은 신뢰가 형성되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드로는 조언을 전한 뒤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고 자리로 돌아갑니다. 부모가 자신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주입하고 통제하려 하면 자녀는 마음을 닫게 됩니다. 하지만 이드로와 모세처럼 서로를 존중하고 신뢰하는 관계 속에서 진정한 대화가 시작됩니다. 부모는 자녀가 힘겨워할 때 통제하기보다 상황을 분별하고 지혜롭게 조언할 수 있는 어른이 되어야 하며, 그 조언을 존중하며 듣는 다음 세대가 있을 때 비로소 건강한 소통이 이루어지고 신앙이 자연스럽게 전수됩니다.



2부 구약 성경을 통해 본 믿음의 가정



가정의 원형을 지키지 못한 아담의 가정 이야기


믿음의 가정의 원형을 지키지 못한 아담과 하와: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며 하와를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였던 아담. 에덴동산에서 벌거벗은 채 살아간 두 사람은 겉치레 없는 완전한 관계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곧 다른 장면을 보여줍니다. 하나님 앞에서 아담은 하와를 ‘그 여자’라 부르며 책임을 돌립니다. 사탄이 선악과를 지목하는 순간 그것은 전혀 다른 대상으로 보이기 시작했고, 인간 안의 ‘스스로 높아지고자 하는 욕망’이 자극되었습니다. 하와가 먼저 따먹고 아담에게 주었을 때, 아담도 주저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이 선택은 죄를 세상에 들여왔고 가정 안에도 균열을 일으켰습니다.

불순종의 결과 앞에서 아담은 책임을 지기보다 회피를 선택합니다. 하와에게 책임을 돌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라며 하나님께까지 책임을 전가합니다. 하와 역시 뱀을 탓합니다. 벌거벗어도 부끄러움이 없던 두 사람은 이제 수치심과 두려움을 경험하며 서로에게 마음을 숨기게 됩니다. 에덴을 떠난 이후 삶은 고된 현실로 바뀌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포기하지 않고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그러나 죄의 성향은 계속 영향을 미쳤고, 그 결과는 다음 세대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대를 이어 내려온 책임 전가의 비극:
가인은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고 동생 아벨을 죽입니다.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는데, 이는 무엇을 드렸느냐보다 어떤 마음으로 드렸느냐를 보시는 반응이었습니다. 같은 부모 아래 자랐지만 아벨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가인은 자기중심적인 길을 택했습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죄를 다스리라 권면하셨지만, 가인은 오히려 동생 탓으로 돌렸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책임 전가가 가인에게서 반복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신 것은 가인에게 돌아올 기회를 주시는 부르심이었지만, 가인은 끝내 응답하지 못하고 결국 하나님 앞을 떠나 동쪽으로 갑니다. 그 후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또 다른 아들 셋을 허락하시며, 인간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뜻을 이어가십니다.

성공과 풍요의 가인의 가문:
동쪽으로 간 가인은 성을 쌓고 아들의 이름 에녹을 따 성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름에는 여호와를 향한 고백이 없었습니다. 가인의 후손 라멕은 자신이 저지른 살인을 오히려 자랑처럼 고백하며, 폭력이 후손에게 이어져 더욱 왜곡된 가치관으로 확장됨을 보여줍니다. 가인의 가문은 가축을 치고, 문화생활을 하고, 구리와 쇠로 기구를 만드는 등 화려한 문명을 이루었습니다. 세상적 기준으로는 성공한 가문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을 잊은 채 자신을 높이는 삶은 본질적으로 실패한 삶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셋의 가문:
창세기는 4장에서 5장으로 넘어가며 시선을 가인에서 셋으로 전환합니다. 셋의 시대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고 기록되며, 가인의 족보와 달리 셋의 족보는 ‘여호와의 이름’, ‘하나님의 형상’ 같은 하나님 중심 표현으로 이어집니다. 셋의 후손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셨다”고 기록되며, 이는 문명의 발전을 보여주는 가인의 족보와 대비됩니다. 이 족보는 다시 노아에게 이르러, 홍수 심판의 배경이 된 가인 계열의 패역한 삶과 대비되는 의인 노아로 마무리됩니다. 하나님을 기억하고 동행하는 삶이 세대를 넘어 이어질 때 비로소 참된 신앙의 계보가 세워진다는 것을 성경은 보여줍니다.

상처에서 축복의 통로로 변화한 아브라함의 가정 이야기


아브라함 가정의 여정:
아브라함의 삶은 한마디로 ‘여행의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으로, 그리고 다시 가나안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약속 하나만 붙든 채 이주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가나안에 정착한 이후에도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가거나 지역을 옮겨 다니는 등, 유목민과 같은 이동의 삶이 이어졌습니다. 그의 ‘떠남’은 단순한 공간 이동이 아니라 삶의 기반을 내려놓고 신앙의 방향을 새롭게 전환하는 결단이었습니다. 아버지 데라가 하란에서 이방신들을 섬겼다는 성경 기록에 비춰보면, 아브라함의 여정은 지역을 떠남과 동시에 이방신을 떠나 하나님만을 섬기겠다는 결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순종한 아브라함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가정의 균열:
이주와 정착 과정에서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는 상처와 균열이 생깁니다. 사라는 남편을 존중하고 순종한 여인이었지만, 남편이 자기 목숨을 구하고자 두 번이나 자신을 다른 남자에게 넘겨준 일을 겪으며 ‘내 남편은 언제든 나를 버릴 수 있구나’라는 생각에 이르렀을 것입니다. 부부는 돕는 관계이지 의존하는 관계가 아니며, 하나님만이 완전한 아버지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여종 하갈을 남편의 첩으로 주는 성급한 선택을 합니다. 하갈이 임신 후 사라를 업신여기면서 갈등이 불거졌고, 결국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치는 일까지 벌어집니다. 이 과정에서 아브라함은 상황을 회피하고 외면했습니다. 근심하고 염려했다는 기록은 있지만, 가장으로서 적극적인 책임을 다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대를 이어 나타나는 갈등의 씨앗:
하갈을 받아들인 선택은 갈등의 씨앗으로 남았습니다. 장자였지만 첩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대접받지 못한 이스마엘의 분노는 이삭을 괴롭히는 행동으로 이어졌고, 결국 하갈과 이스마엘은 광야로 내쳐집니다. 물이 떨어져 통곡하던 하갈에게 하나님은 물의 근원을 열어 주시고 한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는 약속으로 그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이삭과 이스마엘 사이의 갈등은 완전히 해소되지 못한 채 두 민족 간의 오랜 앙금으로 이어졌습니다.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믿음의 가문을 만들어 가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상처 입은 가정 가운데 하나님은 사라에게,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이스마엘에게 찾아오셔서 그들을 세워 주셨습니다.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 앞에 사라는 반대 없이 받아들였고, 아브라함도 아침 일찍 길을 떠났는데, 이는 고난과 연단을 통해 성장한 믿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우리의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에 이루어질 일을 기다리며, 갈등과 상처가 깊어지기 전에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의 방식을 붙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믿음의 가문이 되어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음:
하나님의 언약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으로 세워졌습니다. 이 약속은 특정 민족만이 아니라 이방 민족까지 향한 확장된 축복이었습니다. 롯은 아브라함으로 인해 구원을 경험했고, 이스마엘의 가문도 아브라함의 간구로 큰 민족이 되었으며, 더 나아가 이 가문은 예수님이 오시는 길을 여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가문이 특별한 이유는 완벽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음으로 세워졌기 때문이며, 우리 역시 믿음으로 하나님의 복을 널리 펼쳐가는 가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속임수로 고단한 삶을 살았던 야곱의 가정 이야기


야곱의 삶 조명:
아브라함에서 이삭, 야곱으로 이어지는 믿음의 가문은 완벽한 이야기가 아니라, 수많은 문제와 갈등 속에서 하나님이 그들을 다듬으시는 이야기입니다. 이삭이 야곱에게 선포한 축복은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과 같은 결을 이루며, 부모가 하나님께 받은 복을 자녀에게 흘려보낼 영적 권위를 가진 존재임을 보여줍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아버지와 형을 속여 축복을 가로챈 결과 방랑자가 되어 먼 길을 떠나게 됩니다. 광야를 지나며 사람에게 의존하던 삶에서 벗어나 홀로 있게 된 그 시간, 야곱은 두려움 속에서 잠든 밤 하나님을 만납니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는 약속과 함께였습니다. 부모의 손에서 하나님의 손으로 옮겨진 자녀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부모가 되어 주시는 것처럼, 우리 자녀들도 언젠가 안전한 부모의 품을 떠나 홀로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을 맞게 됩니다.

하나님을 만난 야곱이었지만 과거의 잘못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삼촌 라반은 레아를 먼저 결혼시키는 방식으로 야곱을 속였고, 야곱은 라헬을 얻기 위해 14년을 더 수고해야 했으며 가축의 대가도 여러 번 번복당했습니다. 마치 부메랑처럼 되돌아온 속임의 결과를 약 20년간 견뎌야 했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셔서 큰 가정과 재산을 얻게 하셨습니다. 야곱은 위기마다 속임과 도피를 반복하는 성향을 내려놓지 못했지만, 실수와 연약함 속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하고 찾는 믿음만은 놓지 않았습니다.

결핍의 늪에 빠진 레아와 라헬 이야기:
야곱은 레아와 라헬 자매, 그리고 두 여종을 통해 열두 자녀를 얻습니다.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하지 못한 레아는 선택받지 못한 결핍을 안고 자녀들에게 마음을 기울였고, 사랑받았지만 자녀가 없던 라헬은 또 다른 결핍을 안고 살았습니다. 이 갈등은 결국 자녀들 간의 반목으로, 나아가 요셉이 애굽에 팔려 가는 비극으로 이어집니다. 배우자가 자신의 결핍을 채워 줄 것이라는 기대는 서로를 옥죄게 만들고, 그 기대가 자녀에게 옮겨가면 자녀는 그 부담을 견디기 어려워합니다. 우리의 깊은 결핍을 온전히 채우실 분은 하나님뿐이며, 그 사랑이 채워질 때 비로소 배우자와 자녀에게 사랑을 흘려보낼 수 있습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 이야기:
야곱에게 하나님은 열두 아들을 허락하셨고 열두 지파가 형성됩니다. 부모의 편애로 상처받았던 야곱이었지만, 그 역시 라헬의 아들 요셉을 편애함으로써 자녀들 간의 갈등을 심화시켰습니다. 성경은 야곱 가문의 치부까지 숨김없이 기록합니다. 르우벤은 아버지의 첩과 간통해 장자권을 박탈당했고, 딸 디나는 강간을 당했으며 아들들은 이에 잔혹하게 보복했고, 형제들은 요셉을 애굽에 팔아버렸습니다. 복잡한 이 가정사는 오히려 우리에게 위로를 줍니다. 자주 넘어지고 실수하는 우리와 닮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야곱은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으며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의 본을 자녀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요셉을 통한 구원의 계획:
아버지의 편애 속에 자란 요셉은 형제들의 시기 대상이 되어 애굽에 팔려 갔고,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며 인생의 가장 낮은 자리까지 내려갑니다. 그러나 자신의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던 그 순간 하나님이 함께하시며 구원의 역사를 준비하셨습니다. 요셉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힘은 아버지 야곱이 섬기던 하나님을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자녀의 고난을 대신 감당해 줄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손을 붙들고 살아갈 믿음은 물려줄 수 있습니다.

에서의 가문 이야기:
장자였던 에서는 장자권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해 동생 야곱에게 넘겨주었고, 아버지의 축복 역시 야곱에게 돌아가며 저주에 가까운 기도를 받게 됩니다. 그럼에도 20년 후 야곱이 돌아왔을 때 에서는 복수 대신 그를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성경은 에서의 가문 역시 창세기 36장에 족보로 기록하며 그의 삶을 하나의 역사로 인정합니다.

야곱의 축복기도:
죽기 전 야곱은 아들들에게 각자의 분량대로 축복기도를 합니다. 잘못을 저지른 르우벤과 시므온, 레위에게는 경고가, 유다에게는 왕의 가문이자 훗날 예수님의 가문이 되는 축복이, 요셉의 두 아들에게는 강성한 가문이 되는 축복이 주어졌습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빌어주는 존재이며, 축복의 말은 자녀의 마음에 각인되어 그에 합당한 삶을 살게 합니다. 반대로 저주와 나쁜 말도 영향력을 발휘하므로, 부모는 일상의 언어까지 신중해야 합니다. 죄는 분명히 경고해야 하지만 그 목적은 정죄가 아니라 회복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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