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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의 승진을 위해 출근하라

최용민 지음 | 쿰란출판사


동료의 승진을 위해 출근하라

최용민 지음

쿰란출판사 / 2025년 11월 / 392쪽 / 19,000원





Ⅰ. 일터에 임한 하나님 나라



일이 진정한 예배


‘그렇게 살라고 창조한 거 아니다’

2024년 9월에 인천 송도에서 열렸던 로잔대회의 슬로건이다. 이 슬로건이 들어간 포스터를 보자 처음에는 웃음이 나왔지만, 보면 볼수록 심각한 내용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말씀대로 살았는지 되짚어보는 계기가 되었고, 나중에는 왜 사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도달하였다. 더욱이 35년간의 직장 생활 중 전반부는 하나님이 나를 창조한 목적과는 큰 거리가 있었음을 깨닫고 회개하게 되었다.

모든 성도에게 직장생활은 단순히 여러 가지 삶 중의 하나가 아니다. 북미 기독교인들을 조사한 결과, 평생 8만 8천 시간을 일터에서 비신자처럼 보냈고 4천 시간을 교회와 교회 관련 활동에 투입했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활동하는 시간의 95%가 직업만을 고려한 것이고 나머지 5%가 교회 관련 활동이었다.

질적인 측면은 더욱 참담하다. 주일에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간혹 주중에 기도하는 시간에 하나님을 만나지만, 모든 일상에서는 하나님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교역자들도 다시 한번 점검해야 한다. 이분법적인 일상과 교회 생활 사이의 분리를 성도들에게 안내한 것은 아닌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 출석하는 교인 중 대부분이 일이나 공부 등과 관련하여 삶의 현장에서 높은 벽과 매일 치열하게 싸우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목회자는 여기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일하다’와 ‘예배하다’는 동일한 단어:
교회와 목회자는 이제 새로운 시각을 가져야 한다. 성도들과 함께 일과 일터 등 치열한 삶의 현장에 같이 뛰어들어 같이 고민하고 손잡아 줘야 한다. 교역자들이 성도를 방치하고 있다는 생각을 성도들이 갖지 않도록 삶의 현장에서 함께 뛰어야 한다. 성도들도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은혜받은 후에 주중에는 예수님과 이별하는 생활을 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6일간은 삶의 현장에서 무신론자로 살다가 주일 하루, 그것도 한두 시간, 길어야 서너 시간만 유신론자로 산다는 비아냥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우리의 하나님은 교회에만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다. 전 우주를 관장하시는 분이다. 그러니 일상의 삶, 특히 일과 공부로 좌절하고 낙담하는 현장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해야 한다. 그것이 진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다. 목회자나 성도 모두가 하나님을 교회 예배 시간에 만나는 하나님으로 한정하면 안 된다. 일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소명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하라고 명령하셨다.

직업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 ‘Vocation’은 하나님의 ‘부르심(부르다)’을 의미하는 라틴어 ‘보카치오’(vocacio)에서 왔다. 오늘 일하는가? 그러면 그곳이 예배하는 장소이다. 학생이라면 공부하는 곳이 바로 예배를 드리는 교회이다. 어느 날부터 이 진리를 깨달아 사무실에서 벅찬 가슴으로 즐겁게 일하고 일터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특혜를 누렸다. 그것이 일터에서 즐겁게 일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일은 하나님 창조사역의 동역


일은 왜 힘들까? 여러 원인이 있지만,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요즈음 MZ세대는 조금이라도 돈을 더 주는 곳이 있다면 쉽게 이직한다. 젊은 세대에게 이직은 능력의 상징이요, 월급도 올라가 삶의 만족도 제고로 직결되는 디딤돌이다. 이런 연유로 MZ세대는 신입직원 때부터 헤드헌터를 이용하기 시작한다. 이쯤 되면 지금 직장은 보다 나은 직장으로 이직하기 위한 잠깐의 정거장이 된다. 일하는 목적도 완전히 달라진다. 일을 통해서 성과를 내는 것이 아니라 급여 등 근무 여건이 좋은 곳으로 가기 위해 스스로를 분칠하는 곳이다. 그러니 관계가 서먹한 동료가 있으면 힘들다. 좀 더 밀도 있게 일하라는 요청을 받으면 거부감이 확 밀려온다. 야근이나 휴일 근무는 나의 만족도를 좀 먹는 최대의 적쯤으로 여긴다.

일터에선 나는 하나님의 동역자:
하나님은 아주 오래전에 태초에 천지를 만들었다고 성경은 시작한다. 창세기 2장 1-2절은 그런 창조사역이 바로 일이라고 말씀하신다. 또한 예수님도 동일하게 고백하고 계신다. “하나님이 일하시니 예수님 본인도 일하신다”라고 말한다. 이 구절에서 예수님은 기쁘게 일하고 있음이 반영되어 있다. 왜냐하면 너희도 나를 따르라는 권면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일은 한다는 것은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과 동역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같은 꿈을 꾸며 오늘도 걷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세상에서 세상 일을 하고 있지만, 이미 나의 삶과 직장에는 하늘나라가 임한 것이다. 그러니 교회는 물론 회사에서 일할 때, 또한 학교에서 공부할 때 모든 순간, 모든 장소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로 변신한다. 오늘 일하는가? 그러면 하나님의 동역자다. 그런 마음으로 일을 대하면 일을 하는 과정이 달라지고 그 결과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일이 힘들지 않다. 나에게 너무 영광이다.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드높이는 데 일을 통해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은 직장 동료를 축복하는 수단


우리의 이웃은 과연 누구일까? 흔히 이웃이라고 하면 살고 있는 집의 앞집이나 옆집을 의미할 것이다. 층간소음 문제가 큰 이슈로 등장하니 이제는 아래층도 잘 배려해야 한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웃에게 때론 억지로 웃음을 짓고 최대한 살갑게 다가가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회사에서는 전혀 다른 풍경이 그려진다. 모두가 신경이 날카롭다. 심지어 30년 이상 같은 회사에서 동고동락한 입사 동기 간에도 원수지간처럼 살아가기도 한다. 하루 8~9시간을 같은 공간에서 지내는 선후배와 말도 안 하고 보내기도 한다. 왜 그러냐고 물으면 “나에게 잘해준 것이 없어서”라고 단정적으로 말한다. 그런데 성경은 “남이 해준 대로 나도 하면 죄인들과 똑같은 수준”이라고 말한다.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동료에게 더 크게 화를 내는 사람은 죄인만도 못한 셈이다.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눅 6:33)

남이 하는 대로 반응하는 것은 기계적인 대응이거나 동물적인 반응이다. 승용차에 일정량의 기름을 넣고 달리면 그에 맞는 거리만큼 간다. 최소한 기계는 화를 증폭하지는 않는다. “동료 직원이 잘해 준 것이 없어서”라고 말하면 기계 수준으로 스스로를 전락시키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회사에 다닌다면 일은 남을 도울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항상 적지 않은 사람과 일로 관계를 맺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리더십이 있다”라는 칭찬도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진정한 이웃은 회사에서 만나는 동료다. 수백 명이 있는 회사라면 힘들지 않고 많은 사람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다. 신우회 활동을 열심히 하라는 것이 아니다. 진짜 내 옆의 동료가 내가 돌봐야 할 이웃이라는 점을 알라는 것이 포인트다. 동료를 진정으로 하나님이 주신 이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우리는 도저히 못 참을 사람이라면서 쉽게 회사 동료들을 함부로 재단하기도 한다.

이럴 때 우리는 신약 성경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을 떠올려야 한다. 그는 자기 비용과 시간을 투입하여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왔다. 그 구절을 좀 더 묵상하면 큰 은혜로 다가온다. 우선, 그 이웃을 돕기 위해 목숨을 내걸었다는 점을 파악해야 한다. 강도를 만나 거의 죽어가는 자를 돕기 위해 강도가 출몰하는 지역에 오래 머물러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 사마리아인과 유대인은 철천지원수지간이었는데 도움을 받은 사람이 유대인이라고 신학자들은 추정한다. 서로 개와 돼지로 보던 관계인데 어려움에 빠진 이웃이라는 렌즈를 투영해 돈과 시간은 물론 목숨까지 아끼지 않고 도와준 것이다. 이렇게 회사 동료에게 접근한다면 “역시 믿는 자는 다르다”는 찬사가 나올 수밖에 없다.



Ⅱ. 거룩한 일터와 선교



회사는 나를 성장시키는 플랫폼


1990년에 처음 입사해서 2025년에도 일하고 있으니 적지 않은 기간이다. 그런데 일은 끝이 없다는 생각에 머물면서 시작과 종료 시점을 논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공부를 하든, 가정에 머물든 일터 행진은 계속된다. 왜냐하면 장소와 관계없이 남과 관계를 맺는 모든 것이 일이기에 살아 있는 동안 일은 계속된다. 예수님도 특별히 일이 무엇이라고 한정하고 일터와 다른 곳을 구분하지 않으셨다. 하루하루 모든 것이 일이요, 그가 선 곳이 일터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요 5:17)

예수님이 “하나님이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라고 말하는 대목이 많은 것을 시사한다. 여기서 전문 사역자인 예수님의 일은 선교나 설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가 흔하게 접하는 일상을 의미한다. 우리의 일. 좀 넓게 보면 우리의 모든 삶이 하늘과 연결되어 소명임을 일깨워 준다. 그러면 예수님의 일과 삶에 대한 목적은 무엇일까? 생명을 살리는 것이라는 생각 외에 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분이 태어난 목적이자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이유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일에 대한 명확한 방향을 제시해 준다. 매일매일 우리도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해야 한다.

우선 일은 나에게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일은 나의 생명을 살리고 기쁘게 한다. 물론 이런 기조가 입사 초기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신입 직원 시절에는 만족과 기쁨보다 불만으로 가득했다. 스스로 생각할 때 최고로 열심히 일하는데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한 것 같았다. 급여를 적지 않게 받았지만, 내가 일한 것을 생각하면 불만이었다.

월급에 덤으로 실력도 키워:
그런데 중고참이 되고 나니 일터가 다르게 보였다. 회사가 나를 키워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말로 회사가 나의 성장의 플랫폼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월급을 주고 나에게 일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그랬다. 직장에서 새롭게 일하는 방법을 배우고 선배로부터 공짜로 노하우도 전수받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일이 힘들지 않았다. 아니, 일해서 월급도 받고 배우기까지 하는데 이런 관점으로 시각을 교정하니 완전히 회사가 다르게 보였다. 더욱 결정적인 순간은 해외 연수자로 선발되어 중국 대학에서 1년간 공부할 기회를 잡았다. 더구나 월급을 받으면서 학비와 생활비도 덤으로 받았다. 일이 축복을 넘어 나에게 영광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이런 영광은 출발에 불과하였다. 전문가로 신문에 기고도 하고 방송에도 출연했는데 가만히 되돌아보면 회사의 경력이 거의 모든 것을 결정하였다. 이력서를 건네면 면접 없이 거의 무조건 OK였다. 대학교에서 강의하는 데도 회사가 만들어준 경력을 바탕으로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통과되었다. 일과 회사는 원래 나의 수준보다 나를 더 키워주었다. 그런데 수업료를 지불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월급을 받았다. 마지막에 정산(퇴직)할 때 신비롭다는 설명 외에 다른 것을 덧붙일 것이 없었다.

일터는 거룩한 사역지


신입 초기에 회사를 왜 다니느냐고 묻는다면 그야말로 퇴근하기 위해 다녔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시간이 긴장이었고, 사람을 만나거나 전화로 많은 업무를 처리하는 것은 스트레스 그 자체였다. 이런 사고방식은 일터에서 퇴근 전후 1시간만 짧은 행복감을 느끼도록 나를 내몰았다. 그러나 조금 지나자, 주말을 위해 회사에 다니는 사람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당시 토요일에도 오전에 근무했는데 걱정이 없는 시간이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오전까지로 설정되었다. 여자 친구를 만나 데이트하고 각종 이벤트를 하면서 주말이 좋았지만, 그야말로 24시간에 한정되는 잠시 머무는 행복이었다.

주님과 함께 출근하며 배우는 행복:
그런데 어느 날부터 회사는 실력을 키우는 곳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다행히도 회사가 다양한 복지 혜택을 시행하고 있어 우선 그 제도를 이용하니 너무 좋았다. 전공인 무역실무와 영어 회화가 내 먹잇감이었고, 그다음은 일본어와 중국어를 정복해 나갔다. 공부하는 순간이 기뻤다. 특히 새벽에 학원을 다니면서 아침 공기의 상쾌함과 남이 안 할 때 나만 공부한다는 기쁨이 있었다. 더구나 아내는 공부하는 나를 응원해 주었고 딸과 아들에게도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줘 더없이 좋은 유산을 물려주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때 알게 되었다. 열심히 무엇인가를 배우면서 일하는 것이 좋은 직장을 만드는 최고의 비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피곤했지만, 공부가 내 실력도 높이고 업무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니 일석이조의 행복으로 다가왔다. 최고의 대박은 1년간의 해외연수였다. 업무를 떠나 새로운 체험을 하게 되었고 가족과 떨어져 있으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덤으로 느끼게 해주었다. 이런 과정에서 열심히 배우고 그것을 바탕으로 업무를 더 잘한다고 알려져 회사에서 나의 평판도 좋아졌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일터신학으로 무장하여 주님과 함께 출근하니 회사가 달라 보였다. 여전히 세상 논리가 지배하는 곳이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시니 회사는 거룩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님께 기도한 후에 일을 시작하고 지혜를 달라고 틈틈이 간구하면서 그곳이 예배 처소가 되었다. 그래서 모세에게 임했던 하나님의 목소리가 회사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호렙산에서 모세에게만 들렸던 말이 아니다. 전쟁터와 같은 일터에서 울려 퍼진 말이다. 이 말씀은 일하는 곳이 거룩한 곳이라는 의미이고 겸손과 순종으로 옆 사람을 섬기는 방식으로 예배를 드리라는 명령이었다. 회사의 CEO를 하나님으로 변경하면 일터는 거룩한 곳이자, 모두가 함께 행복한 곳이다. 무엇보다 최고의 선교지 중 하나라는 데 다른 의견이 없을 것이다.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하니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수 5:15)

일터는 천국 삶의 준비코스


“젖 짜는 하녀가 믿음으로 젖을 짤 때, 교황이 미사를 드리는 것보다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 종교 개혁가 마르틴 루터가 한 말이다. 일터가 소중함을 넘어 거룩함이 스며 있는 곳임을 강조한 대목이다. 구약 성경에서 예수님을 예표하는 인물로 요셉이 거론된다. 형들을 통해 억울하게 팔려 가서 노예로 살고 심지어 감옥에 들어갔지만, 성경은 그에게 형통하였다고 말한다. 그 이유로 하나님이 그와 함께했기 때문이라고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그렇다. 일하는 세상에 하나님이 함께 계시면 그곳이 어떤 환경이라도 천국으로 변한다. 다시 말해 어떤 일을 할 때 믿음을 갖고 하나님께 하듯 성실하게 일하면 그곳에 하나님이 계신다.

비즈니스를 통해 천국을 제대로 체험:
천국에 들어가는 은혜는 강력하게 소원하고 기도하며, 책임감을 갖고 하루하루 성화의 과정을 거칠 때 주어지는 것이지,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또한 하나님 나라는 행동하는 자의 몫이라는 점을 비즈니스를 통해 보여준다. 어떤 이득을 얻기 위해서는 대가 지급이 반드시 필요하다. 손을 쓰고 발을 움직여야 하는 노동은 믿음과 순종, 아니 천국에 입성하는 방법과 권리를 자연스럽게 알려준다.

비즈니스나 노동의 가장 귀한 가치는 천국의 삶을 미리 맛보는 것이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에게 지불한 가격 이상으로 만족하게 만드는 것이 비즈니스이자, 천국 모델의 예행 연습이다. 제품을 믿음으로 만들어 공급할 때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욱 값진 것이라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일터에서 얻은 귀한 재정(돈)은 사회를 선하게 만드는 데 사용되는 보물이고, 미리 맛보는 천국 공동체인 가정을 지탱하게 하는 월급이다. 사회에서는 사랑을 전달하는 매개체이자 사랑이 살아 숨 쉬게 만드는 불쏘시개가 바로 땀 흘리고 받은 돈이다. 또한 일터에서 회식도 넓은 의미의 천국 교제다. 일만 하는 관계는 깊어지기 힘들다. 일터 동료와 식탁 교제를 하면 단시간에 폭넓은 교제를 하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어 나중에 동역자로 올라서기도 한다. 더불어 상대의 아픔을 감싸는 귀한 시간이 되기도 한다. 천국이 바로 그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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