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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 직장인의 경제적 자유를 위한 천천히 부자되기

이덕락 지음 | 쿰란출판사


크리스천 직장인의 경제적 자유를 위한 천천히 부자되기

이덕락 지음

쿰란출판사 / 2025년 5월 / 240쪽 / 13,000원





1부 직장에서 승리하기



옷자락을 잡으라


남쪽 지방에서 매화가 핀다는 소식이 들려오던 1984년 2월 중순이었습니다. 벅찬 기대 속에 저는 제가 원하던 회사인 포항제철(지금의 포스코)의 직장인으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지만 입사 초기에는 많이 혼란스러웠습니다.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의 입구에서 많이 불안했습니다. 이 회사에서 내가 성공할 수 있을까? 조기 퇴직하지 않고 롱런할 수 있을까? 크리스천으로서 욕먹지 않으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이런저런 걱정들이 몰려왔습니다. 대다수 사람들이 직장 생활 초기에 이와 비슷한 걱정을 하리라 생각됩니다. 이런 불안과 걱정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아래 성경 말씀에서 그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날에는 말이 다른 이방 백성 열 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 곧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리라 하시니라(슥 8:23).

하나님을 섬기지 않던 열국 백성이 돌이켜서 하나님을 따르고자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는지를 모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오랫동안 하나님을 섬겨 온 유다 사람들의 옷자락을 잡고 그들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고자 합니다.

위의 성경 말씀처럼, 직장 생활을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는 신입사원 시절에는 성경의 열국 백성처럼 ‘옷자락을 잡을 수 있는 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저는 직장 생활 초기에 무의식적으로 지도 교수님을 닮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저의 KAIST 지도 교수님은 한동대 총장님으로 알려지신 김영길 박사님이셨습니다. 김영길 교수님같이 훌륭하신 분을 지도 교수님으로 모신 것이 제게는 행운이었습니다. 김영길 총장님은 KAIST 교수로 재직하실 때 세계가 놀랄 만한 여러 신합금들을 성공적으로 개발하셨습니다. 그중 반도체 리드 프레임 소재는 국내 기술 수출 1호를 기록하기도 하였습니다. 훌륭한 연구 성과들로 인해 국내 유력 일간지 사설에 ‘국보급 연구자’로 소개되었고, 저녁 9시 뉴스에서도 총장님의 연구 업적이 보도되었으며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에 누구보다도 크게 기여하신 분입니다.

또한 김 총장님은 누구나 인정하는 믿음의 사람이셨습니다. KAIST 교수로 계실 때는 한국창조과학회 회장을 맡아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한동대 총장으로 부임하신 이후부터 총장님의 믿음의 여정은 가시밭길로 변했고, 온갖 믿음의 시련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소망하시던 ‘제대로 된 기독교 대학’을 이 땅에 설립하고 또 반석 위에 올려놓으셨습니다.

일반적인 성공과 구분하기 위해서 과정이 정당하고 깨끗한 성공을 ‘승리’로 지칭하고 싶습니다. 김영길 총장님은 KAIST와 한동대라는 일터에서 승리하신 분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분은 큰 업적을 내셨지만 그 과정이 항상 정당하고 깨끗했습니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에게 늘 존경을 받았습니다. 직장인 크리스천들의 본이 되셨습니다.

우리 속담에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시작하기가 어렵지 일단 시작하면 반 이상 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죠.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하여, 시작을 하되 ‘잘’ 시작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입니다. 직장 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우리 크리스천들은 성실한 업무 자세, 훌륭한 성품 그리고 신실한 믿음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분을 자신의 롤 모델로 삼아 그분의 옷자락을 잡고 뒤를 따라가면 직장생활을 ‘잘’ 시작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명왕성의 어린 왕자처럼 일하라


온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겨울 햇살이라도 볼록렌즈를 이용하여 빛을 모으면 쇠도 녹일 수 있는 뜨거운 불이 됩니다. 신발이 쩍쩍 달라붙는 얼음판 위도 스케이트를 신으면 미끄러지면서 쌩쌩 달릴 수 있습니다. 스케이트 칼날에 온몸의 무게가 집중되어서 얼음을 녹이기 때문입니다. 분산된 힘은 약하지만 집중된 힘은 강합니다.

집중하지 못하고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이면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하고 남에게 폐만 끼칠 가능성이 큽니다. 여러 분야에 능한 천재들이 아닌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적합한 삶의 방식과 전략이 있습니다. 바로 ‘선택과 집중’입니다. 비록 평범한 사람이라도 볼록렌즈와 같이 한 분야에 힘을 집중시키면 의미 있는 성과를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살아서는 ‘훌륭한 업적’을 남기고 죽어서는 ‘별나라 어린 왕자’가 된 과학자 한 사람을 소개합니다. 2015년 7월 14일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발사한 우주선 뉴 호라이즌스 호가 명왕성의 최근접 지점을 통과하였습니다. 이 우주선에는 명왕성을 발견한 클라이드 톰보의 유골이 실려 있었습니다. 약간의 상상력을 발휘해 본다면, 우주선이 명왕성에 가장 가까이 접근했을 때 톰보의 영혼이 우주선 밖으로 나와 명왕성으로 뛰어내렸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처럼 명왕성에 앉아서 태양도 바라보고 지구도 바라보며 행복하게 지내고 있을 것 같습니다.

톰보는 친구들에 비해 특출나지 않았지만 어렸을 때부터 별을 관찰하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는 삼촌의 망원경으로 밤하늘의 별을 관찰하면서 별의 세계에 푹 빠져들었습니다. 스스로 망원경을 만들어 목성과 화성을 관찰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로웰 천문대에 들어가 전문적으로 별을 관찰하던 중 1930년에 그토록 염원했던 명왕성을 발견합니다. 톰보는 직접 찍은 명왕성 사진을 보면서 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일생 동안 별만 관찰한 톰보는 명왕성뿐 아니라 혜성, 성단, 초은하단, 소행성 등을 최초로 발견하는 업적을 남겼습니다. 평범했던 클라이드 톰보가 천문학계에서 이러한 성취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평생 한 가지 일에만 집중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유한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데 그중 직장 생활에 3분의 1 이상의 시간을 사용합니다. 이렇게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직장생활에서 의미 있는 성취를 이루기 위해서는 중요한 일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 꼭 필요합니다. 성경에서도 ‘선택과 집중’의 좋은 본보기를 찾을 수 있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13-14).

사도 바울은 일생 동안 오직 ‘한 일’(one thing)에만 집중했습니다. 즉 과거는 모두 잊고 앞에 있는 하나님의 부름의 상을 받는 일에만 집중했습니다. 그 결과 사도 바울은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교회 봉사를 하건 직장 일을 하건 무엇을 하더라도 사도 바울처럼 중요한 일을 선택하여 거기에 집중하는 것이 지혜롭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자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돌아보면 우리 주위에도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모두들 장래가 촉망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대부분 능력이 뛰어나므로 자연스럽게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갖고 손을 댑니다. 애석하게도 그런 사람은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끝까지 살아남지 못하고 중간에 도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로 비록 평범하지만 끈기 있게 한 분야에 집중하는 사람은 끝까지 살아남아 자신이 강한 자임을 증명해 보입니다. 선택과 집중은 약한 자를 강하게 만들어 주고 평범한 사람을 비범하게 만들어 줍니다.



2부 천천히 부자 되기



돈과 부자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크리스천들은 돈과 부자에 대해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크리스천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돈 얘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재산이 많은 크리스천도 돈과 부자에 대해 얘기할 때 긍정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땅의 것에 관심이 많은, 믿음이 적은 사람으로 평가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크리스천들은 돈과 부자를 가까이하기에는 ‘불편한’ 그 무엇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이런 태도를 취할까요? 아마도 돈과 부자에 대한 성경의 강력한 경고 말씀 때문인 것 같습니다. 대다수 크리스천들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딤전 6:10)”라는 말씀과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는 말씀을 기억하고 있습니다(눅 18:25). 성경은 돈으로 인해 일만 가지 죄악에 빠질 수 있고, 또 돈이 많은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두려움이 느껴지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돈과 부자에 대해 좋게 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크리스천들이 돈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고, 심지어 터부시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저는 크리스천들이 돈과 부자에 대해 이와 같이 부정적 입장을 취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지, 다시 말해 성경의 가르침과 정말로 일치하는지 재고해 보았으면 합니다. 성경 말씀을 ‘숲과 나무’라는 두 가지 관점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돈과 부자에 대한 성경의 ‘전체적인 가르침’을 살펴보고, 그 다음 돈과 부자에 직접 관련된 성경 구절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숲의 관점’으로 성경 전체를 보면, 돈과 부자에 대해 부정적 내용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돈과 부자에 대해 강력하게 경고하는 내용도 있지만, 돈과 부자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는 내용도 많이 있습니다. 돈과 부자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는 내용으로는 믿음 좋은 부자들에 대한 구약성경의 기록들을 꼽을 수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그의 후손 이삭, 야곱은 모두 부자였습니다. 또한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로 기록되어 있는 욥도 엄청난 부자였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면서 가나안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이 비옥한 땅에서 ‘풍요롭게’ 살기를 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처럼 성경을 ‘전체적으로’ 조망해 보면 돈과 부자에 대한 부정적인 내용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내용도 많습니다.

다음으로 ‘나무의 관점’으로 ‘돈’과 ‘부자’에 관한 주요 성경 구절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돈’에 관한 성경 구절입니다. 앞에서도 언급한 디모데전서 말씀입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

이 구절을 얼핏 보면 돈이 일만 악의 뿌리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구절을 자세히 살펴보면 ‘돈’ 자체보다는 ‘돈을 사랑함’이라는 돈에 대한 마음과 태도에 방점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성경 구절에 대해 김동호 목사님은 자신의 책 『깨끗한 부자』에서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습니다. “이것은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는 말씀이지 돈 자체가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는 말씀은 아니다. 이 점을 잘 구별하지 못하면 참으로 엉뚱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중 하나가 바로 돈을 무조건 죄악시하는 금욕주의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어쩌면 많은 크리스천들이 이 구절을 잘못 이해하여 돈에 대해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성경 구절은 분명히 ‘돈’이 문제가 아니라 ‘돈을 사랑함’이 문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부자’에 대한 성경 구절도 좀 더 자세히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앞에서 “부자가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가 지극히 어렵다”는 성경 구절(눅 18:25)을 언급했습니다. 이 구절만 보면 부자는 단지 부자라는 이유로 천국에 들어가기 힘든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런데 아래 성경 구절과 함께 보면 강조점이 ‘부자’ 자체에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마 19:21-22).

어떤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찾아왔다가,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근심이 되어 되돌아갔다는 내용입니다. 이 구절을 앞에서 언급한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구절과 연결시켜 보면, 청년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운 것은 단순히 ‘부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부자’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부자가 가진 돈을 하나님 뜻에 맞게 쓰지 않는 것’을 부정적으로 봅니다.

성경 구절을 ‘나무’의 관점으로 자세히 보면 ‘돈’과 ‘돈을 사랑함’ 그리고 ‘부자’와 ‘부자가 돈을 하나님 뜻대로 쓰지 않는 것’을 서로 구분해서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돈’과 ‘부자’는 그 자체로 선도 아니요 악도 아닙니다. 성경은 이것들에 대해 긍정적이나 부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돈 자체가 아니라 ‘돈을 사랑함’을 부정적으로 봅니다. 또한 부자 자체가 아니라 ‘부자가 가진 돈을 하나님 뜻대로 쓰지 않는 것’을 부정적으로 봅니다. 성경은 이와 같이 두 가지로 구분해서 말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성경을 볼 때 이 둘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아 돈과 부자에 대해 오해하는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크리스천이 돈과 부자에 대해 막연히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동호 목사님도 『깨끗한 부자』에서 돈과 부자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크리스천은 하나님의 방식과 법대로 돈을 열심히 벌어 부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돈은 하나님의 방식과 법(法)대로만 벌어야 한다. 하나님의 방식과 법대로 번 돈이라야 하나님이 주시는 돈이 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번 돈은 하나님께 비롯된 돈이 아니며, 복이 아니라 화가 된다. (중략) 하나님의 방식과 법대로 돈을 벌어도 그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쓰지 않으면 그 돈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돈이 되고 만다. 하나님의 방식과 법대로 버는 일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쓰는 일은 더 중요하다. (중략)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은 소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한다. 부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은사로 주신 물질을 선한 청지기처럼 잘 사용하여 세상에 돈이 잘 돌도록 해야 한다.”

성경은 돈과 부자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지도 않고 긍정적으로 보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크리스천이 돈에 대한 ‘사랑함’을 내려놓은 상태에서 정직하게 돈을 벌고 또 번 돈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용한다면, 돈을 벌어 부자가 되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특별한 사정이 있어서 청빈에 머무르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크리스천이 정직하고 깨끗한 방법으로 돈을 벌어 경제적 자유에 이르는 것에 대해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탐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주식 투자 방식


소득을 올리는 방법으로 크게 근로 소득과 투자 소득이 있습니다. 직장에서 일을 하고 근로 소득을 올리는 것에 대해서는 모든 크리스천들이 당연하게 여기고, 아무런 거리낌이 없습니다. 그런데 주식 투자를 해서 금융 소득을 올리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크리스천들이 부담스럽게 여깁니다. 이런 방법으로 돈을 벌어도 되나 하는 의문을 가집니다. 왜 그럴까요?

직장에서 근로를 통해 소득을 올리는 행위에는 돈에 대한 사랑이나 탐심이 개입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주식 투자를 할 때는 크리스천도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돈에 대한 관심과 집착이 쉽게 생깁니다.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성경에서 경고하는 ‘돈을 사랑함’에 자기도 모르게 빠져듭니다. 자칫 잘못하면 죄악의 길로 들어설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많은 크리스천들이 주식 투자를 통해 소득을 올리는 것에 대해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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