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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

정명철 지음 | 쿰란출판사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

정명철 지음

쿰란출판사 / 2024년 12월 / 432쪽 / 20,000원





긍정의 말을 하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하더라”(막 9:23-24)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두 개의 눈, 두 개의 귀, 두 개의 콧구멍을 만드시고 한 개의 입을 만드신 이유가 있습니다. 두 눈으로 잘 보고, 두 귀로 잘 듣고, 두 개의 콧구멍으로 숨 쉬며 여유를 갖고 말할 때는 한 입으로 같은 말을 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두 개의 손과 발로 열심히 일하고 봉사하라는 뜻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약 3:10-11)라고 하셨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혀에 대하여 말씀하며 우리의 입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야고보 사도는 또한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약 3:4-5)라고 하셨습니다. 광풍 속에서도 큰 배의 방향을 움직이는 것이 작은 키입니다. 거대한 항공모함의 방향키도 크지 않습니다. 혀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나라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도 말, 말, 말에서 비롯되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듯이 우리의 혀가 작지만 수많은 문제들을 만들어 냅니다. 가정을 행복하게 만들기도 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것도 다른 것이 아니라 혀에 있습니다. 아무리 부유한 가정이라도 말 때문에 불행한 가정이 있고, 아무리 힘든 가정이라도 말 때문에 서로 행복하게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가정이 있습니다.

지구상의 동물들은 소리로 간단한 표현을 합니다. 위험 신호일 때와 기분이 좋을 때 내는 소리가 다릅니다. 그런데 인간만이 다양한 언어로 자기의 의사를 표현하고 사람을 이끌어 갑니다. 하나님께서 오직 우리 인간에게만 말을 주신 것은 축복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말이라고 하는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말을 선하게 잘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말을 바꾸면 인생이 바뀌고 세상이 바뀝니다. 그런데 이 말을 복되게 사용하는 사람이 있고, 말로 화를 부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믿고 입술이 변해야 합니다. 예수 믿고 찬송하는 입술로, 기도하는 입술로, 감사하는 입술로, 복음을 전하는 입술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입술로, 만나는 사람에게 행복과 기쁨을 주는 입술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행복한 가정이 되려면 남편의 언어와 아내의 언어, 아이들의 언어를 서로 이해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아내가 아프다고 하면 대개 남편들은 “병원 갔어? 약은 사 먹었어?”, “그러게, 평소에 운동하라고 했잖아” 합니다. 더 심한 경우에는 “살 좀 빼라, 살 좀. 안 아플 수가 있겠냐”라고 합니다. 아내들이 남편에게 아프다고 할 때 듣고 싶은 말은 “얼마나 아팠어. 힘들었겠구나. 내가 있었어야 했는데…” 이런 말입니다. 그런데 남편들은 진단부터 하고 처방을 합니다. 그래서 대화가 빗나갑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그렇습니다. 말로 자기의 주장을 늘 관철시키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별것 아닌데도 늘 강하게 주장하니 다른 사람들이 피하게 됩니다. 교회에서 온갖 봉사는 다 하면서 말로 다 까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긍정의 말, 축복의 말, 행복한 말을 하는 습관이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새해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긍정의 말을 훈련하는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인생이 긍정으로 환하게 변할 것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예수님께서 세 제자를 데리고 변화산에 올라가시자 남아 있던 제자들이 귀신 들린 아이 하나를 데리고 씨름하는 내용입니다. 제자들은 이 귀신 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려오셨을 때 이 아이의 아버지는 아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귀신이 이 아이를 물에 던지고 불에 던져 죽이려고 합니다. 길에서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고 이를 갈고 파리해져 갑니다. 그래서 “선생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라고 간청했습니다.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이라는 말이 예수님의 마음에 탁 걸렸습니다. ‘하실 수 있거든’이라는 말은 할 수도 있고 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지금 다른 것이 아니라 믿음을 요구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능히 하실 수 있습니다. 더한 일도 하실 수 있습니다” 하는 믿음을 바라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 앞에 보면 귀신 들린 딸을 둔 수로보니게 여인이 예수님께 나아와 딸의 병을 고쳐 달라고 간청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여인은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부스러기만 주셔도 내 딸은 나을 것입니다’라는 믿음을 보였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그 말을 칭찬하셨습니다.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아이의 아버지가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래서 소리를 지릅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그는 “내가 믿나이다”라고 자신의 입술로 먼저 고백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나의 믿음이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합니다. 이 말은 ‘예수님은 나의 믿음 없는 것도 도와주시는 분이심을 내가 믿습니다’라는 강한 긍정의 말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 말을 들으시고 이 아이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믿음이 들어갔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는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을 듣고 믿으면 믿음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향한 무조건적인 긍정입니다. 하나님은 믿음 위에 역사하십니다. 우리 교회가 꿈꾸는 것들이 우리의 의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의 의지가 아닙니다. 가능성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순종합니다’라는 강한 믿음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내 마음의 싸움에서 승리하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해야 합니다. 내 마음이 온전히 하나님께로 향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먼저 내 마음에 예수님의 승리의 깃발을 꽂아야 합니다. 나 자신과 관계가 잘못되어 있으면 다른 사람과도 관계가 좋을 수 없습니다. 나 자신의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됩니다.

우리는 내 안에 있는 선과 악과의 싸움, 하나님의 영과 사탄의 영과의 싸움에서 먼저 승리해야 내 안에 평화가 찾아오고 이어서 다른 사람과도 평화의 관계가 임하게 되고 행복한 인생이 열리게 되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나와의 싸움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사도 바울 같은 위대한 사람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도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하면서 내 안에 선과 악이 싸운다고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다윗도 자신과 싸웠습니다. 요셉도 싸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승리한 것입니다. 승리했기에 형들을 용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은 내가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기도하면 전능하신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먼저 여러분 안에 있는 자신과의 믿음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도 주님이 나와 함께 계셔”, “나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름다운 사람이야”, “나는 행복한 하루를 살 거야”라고 스스로 외쳐보십시오. 그리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믿습니다. 이렇게 도와주실 줄로 믿습니다.” 기도하고 하루를 출발하십시오. 그러면 하루가 달라질 것입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 43:18-21).

이 말씀은 바벨론에서 노예 생활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입니다. 노예는 꿈이 없습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새 일을 행하겠다. 이제 나타낼 것이다”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의 칙령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향 땅에 돌아오게 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놀라우신 하나님입니다. 못하실 것이 없는 하나님이십니다. 중병에 걸렸습니까? 이제 병이 낫는 것밖에 없다고 선포하고 나아가셔야 합니다. 내 인생을 망가뜨리는 나쁜 습관이 있습니까? 이제 입으로 그 습관이 끝났다고 선포하고 일어나셔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나는 부족하니 도와주십시오” 하고 도움을 요청하면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십니다.

여러분, 이제 2025년 한 해 동안 긍정의 믿음으로 긍정의 생각을 하고 긍정의 말을 하여 우리의 인생이 긍정으로 변화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복된 만남


“룻이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 하니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룻 2:10-11)

우리는 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살아갑니다. 태어나면서 부모님을 만나고, 친구를 만나고, 선생님을 만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수많은 만남이 있습니다. 같은 학교이기 때문에, 같은 직장이기 때문에 매일같이 만나야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전철에서, 식당에서 그저 스쳐 지나가는 만남도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좋은 만남을 기대합니다. 정채봉 씨의 <처음의 만남으로 돌아가라>라는 글을 보면 마치 시 같은 만남에 대한 내용이 있습니다.

가장 잘못된 만남은 생선과 같은 만남이다.

만날수록 비린내가 묻어오니까.

가장 조심해야 할 만남은 꽃송이 같은 만남이다.

피어있을 때 환호하다가 시들면 버리니까.

가장 비천한 만남은 건전지와 같은 만남이다.

힘이 있을 때는 간수하고 힘이 다 닳았을 때는 던져버리니까.

가장 시간이 아까운 만남은 지우개 같은 만남이다.

금방의 만남이 순식간에 지워져 버리니까.

가장 아름다운 만남은 손수건 같은 만남이다.

힘이 들 때는 땀을 닦아주고 슬플 때는 눈물을 닦아주니까.



정말 우리의 만남을 잘 표현한 글입니다. 좋은 사람인 줄 알고 만났는데 만날수록 비린내가 묻어오는 그런 사람도 있었습니다. 필요할 때는 늘 전화하고 필요가 없으면 연락도 끊어버리는 그런 사람도 보았습니다. 그렇게 가깝게 지냈는데 시간이 흐르고 나니 휴대폰에도 전화번호가 없는 그런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늘 걱정해 주고 염려해주고 기도해주는 그런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나도 이 만남 중의 한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제가 성도들을 축복하며 기도할 때 좋은 만남을 위한 기도를 많이 합니다. 특히 새 가족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에 긍정적인 사람들, 행복한 사람들, 믿음의 사람들이 주변에 있게 해달라고 축복합니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이 긍정적이면 나도 긍정적으로 됩니다. 내 옆에 행복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으로 인해 나도 행복합니다. 내 옆에 믿음의 사람이 있으면 나도 믿음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좋은 만남이 중요합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은, 유대 여인 나오미가 고향을 떠나 모압 땅으로 이주를 합니다. 그곳에서 나오미는 남편을 잃고 두 아들을 잃습니다. 거기다가 흉년을 만나 모든 재산을 잃고, 먹고 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결국 한 지붕에 세 과부가 살게 된 것입니다. 남자도 살기 힘든 시대에 여자 셋이 산다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었습니다. 시어머니 나오미는 두 며느리에게 너희들은 나이가 젊으니 너희 동족에게 가서 재혼하라고 합니다. 그러자 첫째 며느리 오르바는 소리 높여 울면서 거부했으나 결국 시어머니의 곁을 떠나갑니다.

그런데 둘째 며느리 룻은 “저더러 어머니를 떠나라 하지 마세요. 어머니가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가 사는 곳에 나도 살겠습니다. 어머니의 백성이 내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될 것입니다. 우리를 죽음만이 갈라놓을 수 있습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룻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시어머니와 아름다운 관계였음을 볼 수 있고 시어머니의 믿음을 따라 하나님을 잘 믿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며느리 오르바는 누구보다 가까운 관계였으나 이제 다시는 못 만날 사이가 되었습니다. 오르바는 이제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 동족들이 섬기는 우상을 섬기는 고향으로 간 것입니다. 그런데 둘째 며느리 룻은 앞으로 배고프고 힘든 일이 닥쳐와도 어머니와 함께 살겠다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섬기며 살겠다고 단호하게 결정합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룻은 모압 여인으로 처음의 만남에는 실패했습니다. 행복하기 위해 결혼했으나 십 년 만에 남편이 죽고 늙은 시어머니까지 모셔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당시는 일반적으로 15세 무렵에 결혼했으니 지금 25살쯤 된 것입니다. 젊은 나이입니다. 룻이 시어머니를 모시고자 한 것은 시어머니와 관계가 좋아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옛날이나 오늘이나 시어머니와 관계가 좋은 며느리는 복된 며느리입니다. 그만큼 쉽지 않다는 말입니다. 시어머니는 옛날에 구박을 받고 시집살이하며 살아온 세대입니다. 어려운 시대를 살아왔기에 며느리와 사는 방식이 다릅니다. 나는 그렇게 살지 않았기 때문에 며느리가 돈을 쓰고 살림살이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시어머니가 옆에만 있어도 숨이 멈춥니다.

옛날 에덴동산이 천국이었던 이유는 시어머니가 없었기 때문이랍니다. 그런데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와 끝까지 함께 살겠다고 했습니다. 룻이 나오미와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했던 또 한 가지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 때문입니다. 룻은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고 내가 어머니를 떠나면 하나님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대단한 믿음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부모에게 효도해야 합니다. 시부모에게도 잘하셔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공경하는 자에게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 하셨습니다.

첫 번째 계명이니 얼마나 중요한 계명입니까? 부모를 공경하면 하나님을 잘 섬기는 데다 잘되기도 하고 건강하여 장수하기도 하니 만복을 받는 것입니다. 룻이 한사코 어머니를 떠나지 않겠다 하자 나오미는 할 수 없이 룻을 데리고 고향 유대 땅으로 돌아옵니다. 그 길은 머나먼 광야 길이었습니다. 그 먼 광야 길을 두 과부는 고생고생하며 몇 달을 걸어갔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이 복된 만남인데 룻은 여기서 인생을 바꾸는 만남을 가지게 됩니다. 먹고 살 것이 없으니 룻은 남의 추수 밭에 가서 추수하고 떨어진 이삭을 주워 시어머니를 섬겼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보아스라는 유력한 인사를 만나게 됩니다. 보아스는 나오미의 먼 친척입니다.

보아스는 우연히 룻을 만나 자초지종을 듣고 너는 다른 곳에 가지 말고 내 밭에서 이삭을 주우라고 합니다. 그리고 종들에게는 곡식단을 일부러 뽑아버리라고 하여 룻이 곡식을 쉽게 줍게 합니다. 그리고 일하는 소년들에게 이 여인을 건드리지 말라고 합니다. 심지어 떡을 먹을 때 그녀를 불러 옆에서 음식을 먹게도 했습니다. 집에 돌아왔을 때 성경에 보면 보리를 한 에바쯤 주워 왔습니다. 한 에바는 22리터로 큰 생수통 한가득 되는 무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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