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을 디자인하라 1
이영철 지음 | 쿰란출판사
관점을 디자인하라 1
이영철 지음
쿰란출판사 / 2025년 3월 / 344쪽 / 17,000원
생각의 관점을 디자인하라
새로운 피조물(고후 5:14-19)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나는 새 피조물 새로운 사람
이전 것 지나고 거듭났네
정복자보다 나은 자
다스리는 자
나는 새 피조물
골프에서 가장 중요한 샷은 이번 샷이라고 합니다. 인생을 골프에 비유한다면 우리 인생에 가장 중요한 이번 샷은 바로 내게 주어진 오늘일 수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올해일 수 있습니다. 오늘이 나의 남은 인생의 첫날이 될 수 있습니다. 올해가 나의 남은 인생의 가장 젊은 날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에게는 올 한 해가 그 사람에게는 인생의 마지막 남은 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한 해 동안 가장 행복하게 사시길 축원합니다. 가장 재미있게 사시길 축원합니다. 가장 의미 있게 사시길 축원합니다.
올 한 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위대한 선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올 한 해를 어떻게 살아야 잘 살 수 있을까요? 우리는 늘 해가 바뀔 때마다 새롭게 살겠다고 다짐을 하고 계획을 세우지만 연초에 먹은 마음이 작심삼일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새로워지려면 반드시 다음 세 가지 영역에서 새로움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육신적으로 새로워지는 영역이 있습니다. 내가 새로운 차를 샀습니다. 내가 새로운 사람을 만났습니다. 내가 새로운 직장에 취업을 했습니다. 내가 새 옷을 샀습니다. 이런 새로움은 물리적인 영역입니다. 내가 신년 연휴 때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멋진 곳을 여행했습니다. 이처럼 사람은 육신적으로 새롭게 느끼고 경험합니다. 그런데 이런 육신적인 새로움은 어떻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
우리의 육신은 낡아집니다. 그런데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집니다. 우리의 육신은 날로 쇠해지는데,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집니다. 금줄이 풀어지고 은줄이 풀어지고 창문이 어두워지고 원욕이 그치고 머리에 살구꽃이 피어도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질 줄 믿습니다.
그런가 하면 정신적인 영역이 있습니다. 여러분, 세월이 가면 육체가 쇠해지는 것처럼 우리의 정신은 늙어갑니다. 멘탈이 약해집니다. 정신력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기억력이 상실됩니다. 그런가 하면 나이가 들면 어떤 부분은 고집스러워집니다. 생각이 복잡해집니다. 그래서 새해가 되어도 아무런 계획도, 꿈도 비전도 없이 그냥 또 한 해를 보낼 수가 있습니다. ‘옛날에 다 해봤는데 별수 없더라’ 이렇게 생각하는 마음, 이것이 바로 정신적으로 늙어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약해지고 안일해지는 정신을 몰아내고 나도 새로워져야겠다고 결심하고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정신적으로 새로워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새로움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을 통틀어서 후회 없이 잘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새로움이 있습니다. 올 한 해를 가장 잘살 수 있는 새로움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적으로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나는 영입니다. 혼을 가지고 몸 안에 삽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새로워질 수 있습니까?
누구든지 예수께로 나오면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마 11:28). 여러분, 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진정으로 새로워지는 비결일까요? 그것은 하나님만이 모든 새로움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주의 인자하심은 끝이 없어 아침마다 새롭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날마다 그들을 새롭게 하십니다. 아버지와 수직적인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새로워진다고 하는 것은 새해가 왔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환경이 주어졌다고 새로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새로움이 어디에 있는지 오늘 성경은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씀합니다(고후 5:17). 우리의 정체성을 바로 인식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성경은 이미 새로워졌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올해를 시작하는 것은 엄청나게 중요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기에 산이 있습니다. 이 산을 오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노력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어떤 존재입니까? 주님이 우리를 산 정상에 올려 주셨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모든 것을 누리면서 살지 못합니까? 이를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가 바뀌어야 합니다.
첫째, 삶의 목적이 바뀌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나 자신을 위해 살았습니다. 내가 주인이 되어서 살았습니다. 내 인생 내가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내 욕망이 주인이 되어 살았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피조물이 되면 내가 목적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나의 목적이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새로운 피조물이 되면 나의 옛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혀 이미 죽었기 때문입니다(고후 5:15). 주님이 나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셨기 때문에 이제는 주님을 위한 삶이 내 삶의 목적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노예로 살 때는 자신들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면 소망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바로를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들이 출애굽을 한다면 목적이 바뀌어야 합니다. 목적이 내가 아니라 주님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새로운 피조물이라면 목적이 바뀌어야 합니다. 올 한 해 잘살고 싶으신 분은 인생의 목적을 주님으로 바꾸길 축원합니다. 정체성을 깊이 인식하지 못하면 여전히 나를 위해서 살 수 있습니다. 여전히 하나님은 나만을 위한 하나님으로 여길 수가 있습니다. 부모도 여전히 나를 위한 부모입니다. 그러나 철이 들면 목적이 바뀝니다.
남녀가 결혼을 하면 섬기는 대상이 바뀝니다. 돈 버는 목적이 달라집니다. 철이 납니다. 여러분, 임신한 엄마를 보면 참 아름답습니다. 아기를 가지면 몸이 변합니다. 생명의 씨앗을 받으면 숨길 수가 없습니다. 엄마의 몸이 변하는 것입니다. 생각도 변합니다. 아기를 위해 몸이 아파도 약을 안 먹고 견딥니다. 예수님의 생명을 받아들이면 내 삶이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삶의 목적이 예수님으로 바뀌게 됩니다.
여러분, 올 한 해에는 내 삶의 목적이 예수님이라고 정하고 고백하고 결단하고 살길 축원합니다. 그러면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면 두 번째 어떤 변화가 옵니까? 올 한 해 잘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둘째, 관점이 바뀌어야 합니다: 한 해를 행복하게 살려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어야 합니다(고후 5:16). 육체로 알지 않겠다는 말은 세상적 관점으로 바라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예수님을 육체적인 관점으로 평가를 한다면 어떻습니까?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태어난 목수의 아들입니다. 예수님을 육신적으로 생각하면 아버지가 불분명합니다. 동정녀라는 것을 어떻게 이성적으로 육신적으로 믿을 수 있습니까? 의심스럽습니다. 누구의 씨인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배운 것도 없습니다. 스펙도 없습니다. 공부도 많이 하지 못했습니다. 33세 나이에 십자가에서 처형을 받은 대역죄인입니다. 그런데 그분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어떻게 됩니까?
그분은 엄청난 분이십니다. 천지를 만드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영광스런 천국을 버리고 이 땅에 나를 위하여 탄생하셨고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신 분이십니다.
육체로 보는 것과 믿음으로 보는 것은 이렇게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도 새로워지길 축원합니다. 나 자신을 보는 관점도 바뀌길 축원합니다. 육신적으로 보면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고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는 보잘것없는 인생입니다. 소망도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보면 아닙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죽음을 이긴 자입니다. 세상을 이긴 자입니다. 정복자보다 나은 자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죽도록 사랑하시는 자입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있습니다. 나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나는 내 앞길을 알지 못하나 주님은 아시고 나를 이끌어 가십니다. 내 인생을 인도해 가십니다. 여러분,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도 믿음으로 바라보시길 축원합니다.
여러분,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물 한 그릇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 대접하는 것도 그 상을 결단코 잃지 않는다고 합니다. 제자의 이름으로 대접하면 제자의 상, 선지자의 이름으로 대접하면 선지자의 상을 받습니다. 믿음으로 바라보길 축원합니다.
교회를 바라보는 관점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바라볼 때 코로나를 증폭시키는 발상지요, 광신자들, 이기적인 집단이라고 비난하고 손가락질할 때 여러분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합니까? 주님의 생명을 잉태하고 낳고 키우는 곳은 교회밖에 없습니다. 교회가 인간적인 냄새가 날지라도 절대 교회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말하지 마십시오. 교회를 비난하지 마십시오. 교회를 원망하지 마십시오. 교회는 이 땅에 유일하게 영혼을 구원하는 주님의 신부요 기관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내 자녀를 바라보는 관점도 변화되어야 합니다. 아직도 철이 없고 믿음도 부족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 가정에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여러분의 남편도,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고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이 내 자녀를 위하여 계획하신 것이 많고, 우리 가정을 빛나게 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소중한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올 한 해는 모든 것을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환경도, 고난도, 바람도 보는 관점이 바뀌길 축원합니다. 살다 보면 어려워지는 일도 있습니다. 고난도 있지만 그러나 그 고난 위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고난은 힘들지만 하나님은 이 고난을 통하여 더 위대한 일을 이루어 가실 줄 믿습니다.
셋째, 화목게 하는 자가 됩시다: 무슨 일을 하시든 여러분의 직분과 직책은 이제 화목게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주님이 먼저 우리를 화목게 하셨습니다(고후 5:18). 새로운 피조물이 된 우리에게 주님이 주신 직분이 뭡니까? 화목하게 하는 직분입니다. 누구를 만나든 화목게 하십시오.
하나님과 화목하십시오. 사람과 화목하십시오. 이 땅에 주님께서 화목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이제 이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트러블메이커였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올 한 해부터는 화목하게 하는 자로 살아가길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화목하게 하는 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세 가지가 되어야 합니다.
첫째로 17절에 이전 것은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과거를 자꾸 들추면 화목할 수 없습니다. ‘옛날에도 그랬지, 넌 항상 그래.’ 이래서는 화목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좋아, 과거는 어렵고 힘들었지만 이제는 지나간 일이야. 이제부터는 과거를 잊고 새롭게 시작하자.’ 그래야만 화목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의 모든 과거를 지워 주신 것처럼 말입니다.
두 번째로 19절에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셨다고 합니다. 상대방에게 죄를 돌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 너 때문이야!’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래서는 화목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트러블의 원인이 상대에게만 있는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나에게도 있겠지.’ 하며 자기의 책임을 인정해야 화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책임을 상대방에게 다 전가하면 절대 화목할 수가 없습니다.
세 번째로 사랑으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14절을 보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라고 하는데, 우리가 받은 사랑이 어떤 사랑인가요?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된 사랑입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은 사랑, 사랑 중에 가장 큰 사랑, 아니 인간 세계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사랑, 너무도 감격스러운 사랑, 나는 그런 사랑을 받은 자요, 그런 사랑 가운데 태어난 자요, 그런 사랑을 가진 사랑 덩어리라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아는 것이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비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먼저 사랑할 때 방해되는 생각이 뭡니까? 밑진다는 생각입니다. 내가 손해 본다는 생각입니다. 내가 먼저 사랑하고 용서를 구하면 손해 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이것이 통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미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헌신한다고 해 봤자 그것은 내가 받은 평생 갚지 못할 큰 사랑의 지극히 일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아무리 많이 사랑한다 할지라도 나는 주님으로부터 더 큰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결코 밑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 큰 사랑 받았음을 기억하면서 그 큰 사랑의 일부를 흘려보내는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이 새로운 피조물의 특징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살 때 진정 하나님의 축복이 퍼져 갑니다.
여러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올해 첫 주일, 저절로 새롭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새로워져야만 진정한 새해가 옵니다. 내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진정한 사랑을 하게 될 때 모든 것이 변하게 됩니다. 내 남편도, 자식도, 환경도 새로워집니다.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오, 너 완전히 새로워졌네.
그래, 그러라고 내가 한 해를 너에게 선물로 주는 것이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바라보실 때 이러한 칭찬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은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 가는 올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고난의 관점을 디자인하라
고난과 선물(고후 1:8-14)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이 증언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오직 너희가 읽고 아는 것 외에 우리가 다른 것을 쓰지 아니하노니 너희가 완전히 알기를 내가 바라는 것은 너희가 우리를 부분적으로 알았으나 우리 주 예수의 날에는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그것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