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민의 답답답 2
조정민 지음 | 두란노
조정민의 답답답 2
조정민 지음
두란노 / 2023년 5월 / 232쪽 / 15,000원
1 하나님의 뜻이 궁금해요 _ 분별/기도/친밀함
선택과 결정을 앞두고● 선택의 기로에서 하나님의 뜻이 아닌 선택을 할까 봐 두렵습니다. 만약 잘못된 선택을 하면,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거나 저주를 받을까요?
▲ 성경은 하나님의 뜻이 기록된 말씀입니다. 성경을 읽을수록 하나님의 뜻은 분명합니다.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라”(레 11:44) 하셨고, 호세아를 통해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호 6:3)고 백성을 부르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시며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 4:19) 하셨고, 바울을 통해서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6-18)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집으로 이사 갈까요. 저 집으로 이사 갈까요.’ 이런 질문을 합니다. 형편대로 가면 됩니다. 형편이 안 되는 집을 갈 수는 없는 일이지요. 직장에서 멀더라도 살기 편하면 그 집으로 갈 수도 있고, 원하는 것보다 좁지만 직장에서 가까운 편이 우선이면 그리로 가면 됩니다. 내가 어떤 기준을 가지고 선택하는지만 분명히 하면 이런 문제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묻는 까닭은 하나님을 위해 묻는 것이지 나를 위해 묻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보다 더 중요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보다 더 중요해서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합니다. 내가 잘되기 위해서, 내가 복을 받기 위해서 끊임없이 신의 뜻을 묻는 것이 이방 종교의 목적입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세상의 빛으로, 소금으로 역할하지 못하는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예수의 도를 따른다 하면서 실상은 우상을 따르니까 세상에 아무런 영향력도 갖지 못하는 겁니다.
예를 들면 내 뜻은 번듯한 교회 건물 하나 갖는 거예요. 남의 건물에서 예배드리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내 뜻을 꺾고 불편하지만 건물을 소유하지 않기로 결정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걸음을 맞출 때 대부분 고생스럽습니다.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계속 묻는 이유는 편하고 쉬운 길을 가기 위해서일 때가 많습니다. 내 뜻에 하나님이 맞춰 주기를 원하니까 묻고 또 묻는 겁니다. “이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하나님 뜻입니까?” 하는데 먼저 상대방에게 결혼 의사가 있는지 확인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면 만약 상대가 끝까지 반대해도 강제로 결혼할 겁니까?
●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선택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 다윗이 사울왕에게 쫓길 때 이스라엘 땅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블레셋 땅으로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그 여부를 묻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안 된다고 하실 줄 알았으니까요. 그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죽을 뻔했고 톡톡히 망신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윗을 버리시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다시 돌이켜 하나님의 길로 가도록 인도하셨습니다. 다만 다윗이 다시 하나님의 길로 돌이킬 때까지 겪지 않을 수 있었던 고생을 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 고생은 저주받은 것이 아니라 교훈을 얻은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믿음 안에서 겪은 고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결혼을 하고 직장을 선택하면 훨씬 덜 고생합니다. 내 뜻을 고집한 끝에 겪게 되는 뜻밖의 고통을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내 뜻을 미리 세워 놓고 그것을 관철하기 위해 고집하지 마십시오. 어떻게든 내 뜻을 이루고 싶어서 하나님의 뜻을 묻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하나님은 성경 전체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에는 내 뜻을 구하는 기도가 없습니다. 이 기도의 핵심은 “하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입니다. 이 한 문장에 우리가 드리는 모든 기도의 방향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떤 기도를 드려야 할까요. ‘제가 날마다 아버지의 뜻을 확인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버지의 뜻이라면 제가 어떤 상황에서도 불순종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아버지의 뜻을 붙들고 살아가는 기쁨을 날마다 맛보게 해주십시오’ 이런 기도를 드리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겠습니까?
사실 많은 성도들의 기도가 이방 종교와 다르지 않게 된 데는 목회자의 책임이 큽니다. 목회자들의 기도, 목회자들이 가르치는 기도, 온 교회가 합심해서 드리는 기도 중에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나라와는 거리가 먼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날마다 일용할 영의 양식인 성경을 읽지 않고, 묵상하지 않고, 마음에 새기지 않고, 손과 발로 살아 내지 않으면서 드리는 기도가 얼마나 하나님의 뜻을 따른 기도가 되겠습니까?
또한 말씀을 스스로 떠먹지 않고 누가 떠먹여 주는 것만 먹는 성도, 듣기 편한 말씀만 편식하고 듣기에 불편한 말씀은 외면해 버리는 성도들은 미숙한 신앙의 책임이 바로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부디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직접 먹고 그 먹은 말씀이 내 안에서 살아 움직이며 나를 강권하는 바른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그 바른 기도는 반드시 바른 선택을 가리킬 것입니다.
2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에게 _ 두려움/고난/갈등/중독
나의 고난은 하나님의 연단일까, 사탄의 시험일까?● 고난이 왔을 때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고난인지 사탄의 시험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 시험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test’는 하나님이 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 하신 것은 아브라함을 테스트한 것이었습니다. ‘temptation’은 유혹으로 욕망을 자극하는 것입니다. ‘trial’은 시련으로 연단을 의미합니다. 내 욕망을 자극하는 것인지(temptation), 하나님께서 내 믿음을 연단하는 것인지(trial), 아니면 다음 단계의 믿음을 위한 시험(test)인지는 본인이 잘 압니다. 또 본인이 분별해야 합니다.
말씀을 매일 읽고 묵상하는 사람이라면 여러분이 어떤 시험 가운데 있는지 분별할 수 있을 겁니다. 가령 은근히 뇌물을 바라고 그런 내색을 비쳤다가 막상 뇌물이 손에 들어오면 “하나님, 이거 받아야 합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있습니다. 본인이 잘 알면서 왜 묻습니까? 하나님이 허락하시리라고 믿고 묻는 것입니까, 아니면 죄책감을 벗고 싶어서 하나님께 묻는 것입니까? 어리석고 비열한 모습입니다. 믿는 사람은 늘 정결의 훈련을 해야 합니다. 애초에 남의 것을 탐하지 않도록 훈련해야 합니다.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도록 끊임없이 훈련해야 합니다.
제게 필요한 것이 식사 조절입니다. 식욕을 조절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주일에 설교하고 나면 배가 고프거든요. 아무리 배가 고파도 적당히 먹어야 하는데 포만감을 느낄 때까지 먹습니다. 그러면 속도 더부룩하고 허리 1인치 느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스스로 건강을 해치는 것이지요.
사실 식욕을 조절하고 뇌물을 받지 않고 누구한테든 온유하게 말하는 이 모든 훈련은 우리 마음의 상태를 옥토로 만드는 일입니다. 뇌물만 끊으면 됩니까? 식욕만 조절하면 됩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기꺼이 연단을 받아들이며 어떤 어려움에도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 상태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 마음 상태를 만들고 유지하는 훈련을 하면 식욕 조절과 뇌물을 받지 않는 것은 물론 모든 일에 걸림이 없게 될 것입니다.
내 안의 두려움 몰아내기● 내 안에 있는 두려움을 이겨 내고 싶습니다.
▲ 성경에는 “두려워하지 말라”가 366번 나옵니다. 매일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듣는 셈입니다. 그만큼 두려움은 우리의 본능적인 반응 중 하나입니다. 이 두려움을 어떻게 말씀으로 무장해서 이겨 내느냐가 신앙의 과제이기도 합니다.
시편 1편의 말씀처럼 우리는 악인을 봐도 두렵고, 죄인을 봐도 힘들고, 오만한 자를 보면 속이 뒤집어집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이 감정들에 지지 않을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말씀이 아니고는 그런 감정들을 이겨낼 방법이 없습니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불화살을 물리칠 방법은 말씀의 검밖에 없습니다(엡 6:16-17).
말씀이신 예수님이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그분은 두려움이라는 인생의 가장 무거운 짐을 내려놓게 하십니다. 그분의 손을 잡으면 두려움의 골짜기에 있을지라도 아름다운 산봉우리와 푸른 하늘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상하리만큼 평안함 가운데 쉼을 잃지 않습니다. 그분 안에 있으면, 말씀 안에 거하면 성령이 충만해져서 내 안에 두려움이 머물러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혼자 힘으로는 두려움과 싸워서 이길 방도가 마땅치 않습니다. 걱정과 염려를 몰아내기 위해 걱정의 원인과 염려의 결과를 떨쳐내고자 해도 내 마음대로 쫓겨나가지 않습니다. 마치 신발 바닥에 붙은 껌처럼 좀처럼 떨어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생각하지 말아야 할 대상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헛수고 대신에 마땅히 생각해야 할 대상에 집중하고 몰입하는 것이 답입니다.
말씀을 더 묵상하고 주님을 더 생각하고 아버지를 더 사랑하는 것보다 두려움을 속히 이기는 방법은 없습니다. 왜 숱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말에 속아 넘어가겠어요? 내가 차분하게 생각하고 정리할 수 없을 만큼 마음이 불안하기 때문이지요. 상황이 어려울수록 상황 너머에서 이 모든 상황을 다스리시는 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편이 그 어떤 것보다 안전하고 분명한 길입니다.
3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요? _ 돈/성공/직장생활/태도
어떤 삶이 잘 사는 걸까?● 흔히 건강, 돈, 시간이 있어야 잘 사는 거라고 합니다. 목사님이 생각하는 잘 사는 것이란 무엇입니까?
▲ 건강과 돈, 시간이 있으면 ‘편하게’ 살 수 있습니다. 또 잘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가 꼭 잘 사는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라고 봅니다. 백만장자라도 불행하게 사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건강한 육신으로 음란하게 살면서 다른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사람도 많습니다. 가진 것이 많아 평생 게으르게 살면서 시간을 쓸모없는 것들에 낭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가 아는 젊은이는 하반신 불구인데 놀랍게 잘 삽니다. 잘 사는 게 무엇입니까?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걸까요? 분명한 것은 환경이나 조건이 잘 살고 못 살고를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보다는 내가 잘 살기로 결정할 때 잘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사는 것이 정말 잘 사는 것입니까?
성경의 원리에 주목하면, 잘 사는 것은 나보다 먼저 남을 잘 되게 하는 삶입니다. 제가 아는 한 청년이 오랜 시간 직장을 얻지 못해 백수로 살다가 아웃리치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청년은 현장에 가서 남의 짐도 들어 주고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성실하게 봉사했습니다. 같이 아웃리치를 떠난 분 중에서 이를 지켜보던 중견 기업의 CEO가 이 청년을 자기 회사에 채용했습니다.
이 청년이 오랜 백수 생활을 끝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잘 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백수 생활을 오래 하면 열등감도 생기고 자격지심에 시달리기 쉽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백수로 살면서도 자기 자신을 지켰습니다. 원망하고 불평하는 못난 감정에 자기를 버려두지 않았습니다. 이게 쉬운 일일까요? 절대 쉽지 않습니다. 환경이나 조건에 굴하지 않고 그보다 높은 가치를 좇았기에 잘 살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자기를 지키며 잘 살 때 기쁨과 보상이 따르게 됩니다. 우리 모두 잘 살기를 바랍니다.
성공해야 행복할까?● 어른들은 성공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저는 성공보다는 행복하고 싶습니다. 어른들 말처럼 성공해야 행복할까요?
▲ 성공이란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알아주고 우러러보는 것입니까? 또 행복은 무엇입니까? 사람마다 기준이 다른데 행복을 정의할 수 있습니까? 저는 찾던 꿈을 발견하는 것도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꿈을 향해 가는 게 행복입니다. 꿈을 가진 사람은 실패할 수가 없습니다. 꿈을 가진 사람은 실패에 머물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만 내 기대와 다른 경우를 경험하는 것뿐입니다.
인생의 목표는 성공도 아니고 행복도 아닙니다. 안타깝게도 성공과 행복은 매스미디어에 의해 크게 오염되어 있습니다. 언론사에서 25년간 일한 경험으로 말씀드리는데, 가능하면 미디어를 신뢰하지 않는 것이 지혜입니다. 미디어를 너무 많이 접하면 타락한 세상의 기준을 무분별하게 수용하게 됩니다. 미디어는 인간의 의도를 진실인 것처럼 포장해서 우리를 속입니다. 미디어가 소개한 성공한 사람들이 불행한 삶을 사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봅니다. 따라서 미디어가 주장하는 기준은 신뢰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대부분 진실도 아니고 더욱이 진리와는 무관합니다.
저는 젊은이들이 성공을 목표로 삼기보다 세상이 흔들어 대는 물결에 휩쓸리지 않을 확고한 가치관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치관을 세우는 일은 인생의 기초를 놓는 일입니다. 지금 부지런히 땅을 깊게 파서 기초를 튼튼히 해야 합니다. 그 기초 위에 꿈을 세우는 게 젊은이가 할 일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태풍 한번 불면 훅하고 넘어집니다. 젊은이가 꿈을 잃으면 우리의 미래는 없습니다. 부모가 세운 기초는 부모에게 맞는 것일 뿐입니다. 자신의 기초는 자신이 놓아야 합니다. 젊은이가 기성세대에 맞서서 자신들의 길을 냈기에 역사는 지금과 같은 발전을 이룩한 것입니다.
저는 50대가 넘어서야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나 혼자 행복한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나는 행복한데 내 가족이 불행하다면 내 행복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행복은 알고 보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기쁜 것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기뻐하는 것을 지켜볼 때 더 기쁘지 않습니까? 성경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없이 인간이 진실로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성공과 행복은 생각보다 고리가 약합니다.
4 내 배우자가 맞을까요? _ 연애/결혼/부부관계/가정
네 것, 내 것 선 긋고 감추고 속이는 부부관계● 친정에 문제가 생기면 함께 해결해 주길 기대하는데 ‘이 인간’은 네 집안일이니 알아서 해결하라는 투로 말합니다. 집안, 돈, 직장, 관계 등 개인과 공동의 영역을 구별합니다. 부부는 어디까지 한몸을 이루어야 할까요? 이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 먼저 남편을 ‘이 인간’이라고 부르는 것부터 바꾸시길 바랍니다. 부부간에는 모든 것을 공유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정말 많은 대화가 필요합니다. 보안이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직장의 일도 공유해야 합니다. 아주 사소한 것까지 대화를 위해 공유해야 합니다. 그래야 부부간에 공통분모가 많아져서 눈빛만 봐도 서로 알 수 있는 친밀한 관계가 될 수 있습니다.
요즘은 시댁이니 친정이니 하는 개념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아내든 남편이든 부모가 두 분 더 생긴 겁니다. 부모님 일은 부부가 함께 의논하고 마음을 쓰는 게 당연합니다. 요즘 젊은 부부들은 경제 공동체가 아니라 각자 도생하는 경향이 있는데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재물은 내 것 네 것이 아니라 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 부부에게 허락된 재물을 지혜롭게 사용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려야 합니다. 그러려면 부부가 재물로 인해 나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마음을 합해야 합니다.
남녀가 가정을 이룬 뒤 문제가 생기는 데는 대개 두 가지의 원인이 있습니다. 성적인 문제와 돈 문제입니다. 결혼은 내 몸이 상대방에게 속한 존재라는 걸 선언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내 몸이라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몸이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졌다면 돈은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돈이건 몸이건 내 것이 아니라 우리 것입니다. 부부는 서로에게 투명한 만큼 곧 성결한 만큼 잘 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