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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이 열심을 이긴다

최민기 지음 | 쿰란출판사


진심이 열심을 이긴다

최민기 지음

쿰란출판사 / 2024년 9월 / 216쪽 / 12,000원





주님, 지금 어디 계십니까?




사람에 따라 회심의 순간이 비교적 분명한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나는 전자에 속하고, 아내는 후자에 속한다. 아내는 모태신앙으로 평생 교회에서 자랐다. 장모님은 전도사님이신데, 신학을 마치자마자 처녀 때 교회를 개척하셨다. 교회가 한 번도 세워진 적이 없는 시골 마을에 교회를 개척하여 많은 고난을 겪으셨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그 시절 개척 교회의 일상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개척한 교회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목사님을 모셨고, 그 교회는 지금도 남원의 시골 마을에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가정에서 자란 아내는 교회가 학교보다도 더 편하고 친근한 곳이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어 보면, 모태신앙인들이 대체로 그렇겠지만, 뜨거운 신앙생활을 한 것은 아니었다. 또한 분명한 회심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을 믿고 있었다고 인식한다. 이런 모태신앙인들은 겉으로는 느슨하고 열정이 없어 보일지 몰라도 신앙의 뿌리가 든든하여 잘 흔들리지 않는다는 강점이 있다.

하지만 나는 완전히 다르다. 어릴 때는 성당에 다녔는데 그마저도 상당히 띄엄띄엄 다녔기에 내 기억에는 복음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말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어쩌면 오히려 반기독교적인 정서가 강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중 대학 졸업을 앞두고 복음을 직접적으로 전해 준 전도자를 만났다.“…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 4:12).

전도자는 이 두 구절을 인용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원색적으로 전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큰 죄인인지, 또 죽을 수밖에 없는 나를 구원하실 분은 예수님뿐임을 확신있게 이야기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예수가 인류의 죄를 위해 십자가를 졌다는 것과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린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런 이야기는 진부한 종교적 가르침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날만큼은 달랐다. 내가 끔찍한 죄인이라는 사실과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이 믿어졌다. 생각해보니 내가 찾는 하나님은 힘이 세거나 내 소원을 들어주는 존재라기보다는, 나를 위해 죽어 줄 수 있는 절대적 사랑의 존재였다. 내 영혼이 그런 존재를 찾고 있었다는 사실을 내 육신이 깨달았다고 할까….

그날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나를 위해 죽어 주심으로 나의 하나님이 되셨다. 나는 하나님 앞에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예수님을 나의 진정한 주인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믿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주님을 위해 나의 삶을 바치겠다고 결단했다. 그때 나는 사명자가 된 것이다. 그날 밤 전도자는 나의 회심에 도장을 찍듯이 마지막 질문을 했다. “주님께서 지금 어디 계십니까?” 나는 대답했다. “지금 내 안에 계십니다.” 그 하나님이 오늘도 내 안에 살아 계신다.“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 14:20).



다른 일을 하세요




교회 사역을 내려놓은 뒤 다섯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했다. 목회 외에 다른 일을 해본 경험이 별로 없기에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몰랐다. 벌써 40대가 되었고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이 없으니 앞날이 막막했다. 나는 교육전도사와 신학생 시절을 합하면 거의 20년을 사역자로 살았다. 하지만 세상에서 직장을 구하는 데 목회 경력은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요즘 교단이나 신학교에서 ‘목회자 이중직’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목회만으로 생계를 감당하기 어려운 목회자들이 세상 직업을 병행할 수 있도록 허용해 주느냐 마느냐에 관한 논의이다. 하지만 나는 목회자 이중직은 본질적으로 ‘허용’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에는 6만여 교회가 있고 그중 80퍼센트가 교인 30명 미만의 개척 교회이다. 그리고 대다수의 개척 교회가 자립이 어려운 실정이다. 부모에게서 많은 재산을 물려받은 경우를 제외하고 최저생계비도 보장받지 못하는 목회자가 허다하다. 한국에서 목회자는 노동자가 아닌 종교인이기 때문에 사회적 보장도 받지 못한다.

그럼 목회를 그만두거나 이중직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있다. ‘Business as Mission’, 목회자 이중직, 비즈니스 선교, 카페 교회, 일하는 목회자 등 모두 경제 활동을 하면서 사역을 하는 것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상을 경험해 보면 그렇지 않다.

목회자는 대부분 30대에 목사 안수를 받는다. 교단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대학을 졸업하고 신학대학원에 진학한다. 신학대학원 이후 교단 교회에서 몇 년간 수련 목회(전도사, 강도사 등)를 하면 목사 안수를 받을 자격이 주어진다. 그리고 대개 30대 초반에 목사로 사역을 시작한다. 초임 목사 대부분은 규모 있는 교회에서 부교역자의 일을 감당한다. 부교역자의 사례가 넉넉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생존은 가능하다.

하지만 부교역자의 생명은 대부분 40세까지이다. 그 이후의 길은 많지 않다. 재정적으로 자립한 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청빙을 받거나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다. 정상적인 교회에 담임목사로 청빙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이다. 그러면 남은 것은 교회 개척인데, 개척된 교회는 대부분 미자립 교회로 남는다. 그래서 목회자가 생계 전선에 뛰어드는 것은 40대가 되어서이다.

목사로서 세상 직업을 갖고 일하는 경우 무엇이 힘든가? 내가 40대에 대한민국에서 생계 전선에 뛰어들어 보니, 가장 힘든 것은 어떤 일을 하든 40대 나이에도 숙련자가 아니라 초보라는 것이다. 40대에 무언가를 새로 배우고 숙련자가 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리고 당장 가족의 생계 때문에 직업 전선에 뛰어든 것이니 수년간 배우기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빨리 익혀서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은 대부분 단순한 업무로 인건비도 낮다. 몇 개월 배워서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일은 대부분 사기성이 있다.

그 당시 내가 시작한 일은 에어컨 설치와 청소 일이었다. 이미 생계 전선에 나가 있는 신학교 동기 목사가 찾아와 그 일을 추천했다. 나는 먼저 공조냉동기기의 지식과 기술을 배우러 학원에 다녔다. 가족을 생각하며 죽을힘을 다해 새로운 지식을 익혔다. 그 덕분에 학원에서 표창까지 받으며 성실함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현실은 냉정했다. 한동안 보조 기사로 최저 임금만 받고 일을 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평생 기계를 다룬 사람들과 같을 수는 없었다. 잦은 실수로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가끔 고객들에게 실력이 들통 날 때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보조 기사님이 나이가 많아 보이네” “이런 일 하실 분처럼 안 생기셨는데, 다른 일을 하세요” 하는 식의 말을 들으면 나의 인생 전체를 평가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 숙련 기술은 밤낮 현장에서 10년은 일해야 생기는 것이다. 목회자의 최소한의 자존심은 ‘그래도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라는 사명감이다. 그래서 사역에 방해가 안 될 만큼만 일하려고 하는데, 그것이 또 숙련자가 되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리게 한다.

내가 교회 목회에 실패한 것은 성도들의 평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 의해 실패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대가는 혹독했다. 하지만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은 내가 목회하면서는 배울 수 없는 것을 알게 하셨다.“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빌 4:11).

어느 날, 이른 아침부터 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늦은 저녁까지 일을 하고 나니 주머니에 100만 원이 넘는 돈이 들어 있었다. 하나님께서 하루에 100만 원이 넘는 돈을 벌게 하신 것이다. 당시 돈은 내가 많이 벌고 싶다고 많이 벌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떤 날은 만 원도 벌지 못했다. 하지만 하루에 100만 원 넘게 벌어도, 만 원짜리 한 장 만지지 못해도 전혀 기쁘거나 슬프지 않았다.“하늘이 주의 것이요 땅도 주의 것이라…” (시 89:11).



성경은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고, 우리의 모든 소유도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믿고 행동하는가? 이 세상에서 가장 교만한 생각은 ‘내 힘과 실력으로 번 돈이니 내 마음대로 써도 된다’는 것이다. 나는 나에게 허락된 물질을 사용할 때 주인에게 묻고 있는가? 주인이 원하는 데 사용하고 있는가? 일할 수 있는 힘은 누가 주었는가? 누가 그 시간들을 허락했는가? 적은 물질이든 큰 물질이든 모든 물질은 하나님의 것이다. 시간 역시 하나님의 것이다.

에어컨 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이 일은 여름밖에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겨울에는 가스 배관공 보조 일을 했다. 가스를 다루는 일은 위험했기에 더욱더 숙련이 필요했고, 전문가가 되는 것은 불가능했다. 또 몇 달간 팀으로 지방에 내려가 합숙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장 왕성하게 일하는 전문가들이 나와 같은 40대였다. 내 나이가 적지 않음에도 현장에서 막내 일을 하며 지냈다.

배관공 보조 일은 나를 훨씬 더 낮아지게 했다. 어느 한겨울 여수 산업단지 공사 현장에 새벽같이 출근했다. 수많은 인파가 새벽 바닷바람을 맞으며 현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워 양말을 두 겹으로 신어도 발이 얼어붙어 갈라지고 쓰라렸다. 나는 그동안 책상머리에 앉아 세상을 다 아는 듯 목회했던 것이 떠올랐다. 고단한 성도들의 삶을 위로하고 격려했지만, 솔직히 내가 더 힘들다고 생각했다. 교만한 모습이었다. 차라리 말로만 위로하지 말고 함께 울어 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해 겨울, 손발은 차가웠지만,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보는 시간이었다.

그 후 하나님은 내가 교회를 개척하고 목회하면서 지게 된 빚을 3년 동안 일하면서 모두 갚게 하시고 다섯 식구를 건사하게 하셨다. 교회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세상 속에 서 계신 하나님의 풍성함도 경험하게 하셨다. 물질로 인해 사람을 잃게도 하셨지만, 새로 얻게도 하셨다. 돈, 사람, 시간, 모든 것이 지나가는 가운데 그런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묵묵히 일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셨다.“…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벧전 1:24-25).



낮아짐




성경을 읽다 보면 꼭 ‘나’ 같은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의 이야기’를 발견하면 눈물을 멈출 수 없다. 낮아짐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을 때 가장 크게 나를 위로한 말씀이 그랬다.

사도 바울은 복음이 전 세계로 퍼지고 교회가 이방 지역에 세워지는 데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사람이다. 그래서 일부 신학자들은 지금의 교회는 예수교가 아니라 바울교에 가깝다고 말할 정도이다. 하나님은 바울을 ‘이방의 빛’(행 13:47)으로 삼아 구원이 땅끝까지 이르도록 그를 사용하셨다. 그래서 그의 삶은 지금도 빛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바울이 있기까지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바로 바나바이다. 바나바는 초대교회가 막 형성되어 갈 때 교회의 일원이 되었고 훗날 사도라고 칭함을 받게 된다. 한마디로 초대교회가 키운 최초의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성경은 바나바가 구브로섬(지금의 사이프러스) 출신이라고 밝힌다. 구브로섬은 현재 튀르키예와 그리스의 분쟁을 상징하는 소외된 지역이다. 그의 원래 이름은 요셉이었으나 사도들이 그에게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의 ‘바나바’라는 새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는 초대교회에서 사도들에게나 성도들에게 큰 위로를 주었다. 그중 한 가지 사건이 사도행전 4장에 기록되어 있다. 바나바가 자신이 가진 밭을 팔아 교회에 헌납한 일이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행 11:24).



바나바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를 보면, 그의 헌신은 그가 직분이나 혜택을 바라보고 한 일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바나바는 초대교회의 확실한 신임과 존경과 사랑을 받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자신이 가진 영향력을 선한 곳에 사용한 사실이 한 사건을 통해 드러난다. 초대교회에서 바울을 받아주도록 신원을 보증해 준 것이었다.

바울은 초대교회 지도자 중 하나인 스데반을 돌로 쳐서 죽이는 데 앞장선 인물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러 다니던 유대인 종교 경찰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나 하루아침에 회심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 뒤에 그는 열심히 ‘예수가 그리스도이다’라고 전하지만 그의 회심을 믿어주는 사람은 드물었다. 초대교회 지도자들은 그를 이중첩자로 의심하였다. 이때 바나바가 자신의 위치와 명예를 걸고 사도들에게 그의 신원을 보증해준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보면 이 일은 사도 바울의 모든 사역의 정체성을 보장해 준 위대한 사건이다. 훗날 사도 바울이 개척하는 모든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와의 연합을 통해서만 하나님 나라의 우주적 교회의 확장을 가져올 수 있었다. 바나바는 하나님의 사람 바울의 진실성을 알아본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위치와 직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잘 알았다. “하나님이 나에게 왜 이 자리를 허락하셨는가? 하나님이 왜 이러한 물질을 나에게 맡기셨는가?” 그가 가진 물질과 지위와 환경은 주변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을 세우고 도우라고 주신 것이었다.

바울은 바나바 덕분에 날개를 달았다. 뒤에 초대교회가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기 때문에 더는 두려워할 것이 없었다. 바울은 유대교의 심장인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파했다. 그는 디아스포라 회당의 지도자급 인물이었기 때문에 예루살렘에서는 많은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바울을 적대하기 시작했고 결국 그를 죽이기로 결정했다. 초대교회는 그를 잃을 수 없었기에 그의 고향인 다소로 피신시켰다. 바울의 실제 낮아짐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 (행 9:30).



고향 다소에서 그는 촉망받는 청년이었다. 길리기아 다소는 당시 국제 무역도시이자 교육도시였다. 그는 국제 대도시 출신이었기 때문에 2~3개의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또한 바울은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했다. 지금으로 말하면 최고의 명문대학을 나온 것이다. 전통적인 명문 가문 출신이었으며, 로마 시민권도 갖고 있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와서는 디아스포라 회당의 주요 인물이 되었다. 바울은 소위 ‘다소가 낳은 세계적 인물’이 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러나 바울이 고향으로 돌아온 모습은 어떠했는가? 모두 금의환향할 것이라 기대했던 그가 듣도 보도 못한 예수교 이단에 빠져 자신의 명예, 지위, 재산을 전부 포기하고 도망자 신세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그는 가문의 영광이 아니라 예수를 믿어 가문에 수치인 존재가 되었다.

바울의 모습이 마치 내 모습처럼 보였다. 교회 목회를 내려놓고 우울증과 공황장애, 빚에 허덕이는 중에 가정에 또 다른 위기가 닥쳤다. 전세 계약이 만기가 되어 이사해야 했는데, 그즈음 부동산 법이 변경되고 전세 시장이 폭등했다. 경기도권에서도 몇 개월 사이에 집값이 어마어마하게 상승했고 전세 아파트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우리 가족은 길거리에 나앉게 되었다. 목회의 실패가 이러한 결과를 가져왔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고, 책임감으로 밤마다 잠을 설쳤다. 건축 중인 교회들을 보면 축복해야 함에도 우울증과 공황 증세가 더 심해졌다. 기도해도 마음이 평온하지 않았다.

그때 함께 교회를 개척했던 친구가 나를 찾았다. 부동산 관련 일을 하는 친구였는데, 문제를 이야기하자 직접 일자리를 찾아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며칠 후에 연락이 왔다. 회사를 상속받은 친구의 아버지가 나를 일자리에 참여하도록 권유했다. 우리는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기 때문에 서로를 알고 있었다. 회사에서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친구의 성의에 감사했다. 이에 궁금증을 안고 면접에 참석했다. 그러나 내가 제안받은 일은 최저 임금을 받는 생산 라인 업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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