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쾌한 해설과 그림이 있는 천로역정
존 버니언, 릴랜드 라이큰 지음 | CUP
명쾌한 해설과 그림이 있는 천로역정
존 버니언, 릴랜드 라이큰 지음
CUP / 2024년 2월 / 512쪽 / 27,000원
01 무거운 짐 진 구도자, 늪에서 구출되다, 그리고 그때 나타난 율법주의자 세상 광야를 두루 다니던 중, 우연히 동굴이 있는 어떤 곳에 이르른 나는 그곳에 몸을 눕히고 잠을 자던 중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보니 누더기를 걸친 한 남자가 어떤 곳에 서 있었다. 집을 등지고 선 그 남자의 손에는 책 한 권이 들려 있었고, 등에는 커다란 짐을 지고 있었다. 또 보니 그 남자가 책을 펼쳐서 읽는 게 보였다. 책을 읽다가 그 남자는 울며 몸을 떨었다. 더는 참을 수 없었는지 “어떻게 해야 할까?”라며 비탄에 잠겨 울부짖었다. 집으로 돌아간 그 남자는 아내와 자녀들에게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았다. “여보, 얘들아, 우리가 사는 이 도시가 하늘에서 내리는 불로 다 타 없어질 거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 모두 비참하게 죽고 말 거야. 피할 길을 찾아야 우리가 살 수 있을 텐데.”
가족들은 남자의 머리가 이상해졌다고 생각했다. 밤이 되어 남자는 잠자리에 들었지만 한숨과 눈물로 밤을 새웠다. 아침이 되어서도 남자가 똑같은 이야기를 하자 가족들은 그를 비웃으며 그의 말을 완전히 무시했다. 그러자 남자는 자기 방에 틀어박혀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고 자신의 비참한 상태를 스스로 위로했다. 남자는 홀로 들판을 거닐며 책도 읽고 기도도 하면서 며칠을 그렇게 보냈다.
내가 보니 한번은 남자가 들판을 거닐며 책을 읽다가 괴로워하며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라고 큰소리로 울부짖었다. 그때 전도자가 남자에게 다가와 물었다. “왜 그렇게 울고 있습니까?” 그러자 남자가 대답했다. “선생님, 이 책을 읽어보니, 저는 반드시 죽고 그 후에는 심판받을 거라고 합니다. 저는 죽기도 싫고 심판도 감당 못 합니다.”
전도자는 다른 세상에 관한 좋은 소식으로 크리스천에게 따뜻한 인사를 건네고 어떻게 하면 그 세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지를 알려주었다. 이어서 전도자가 말했다. “이생은 수많은 악으로 가득한데 왜 죽기 싫다는 겁니까?” 남자가 대답했다. “왜냐하면 제가 등에 지고 있는 이 짐 때문입니다. 이 짐 때문에 무덤보다 깊은 곳으로 가라앉아 도벳으로 떨어질까 두렵습니다.” 전도자가 말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멍하니 서 있는 겁니까?” 남자는 대답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요.” 그러자 전도자가 양피지 두루마리 하나를 남자에게 주었다. 그 두루마리에는 “닥쳐올 진노를 피하라”고 적혀 있었다.
남자는 그 글을 읽고는 전도자에게 물었다. “어디로 피해야 할까요?” 전도자는 넓디넓은 들판 너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 너머 반짝이는 빛을 따라 올라가면 좁은 문이 보일 겁니다. 도착해서 문을 두드리면 거기서부터 또 어떻게 해야 할지 누군가가 일러 줄 겁니다.”
꿈속에서 나는 남자가 달리기 시작하는 것을 보았다. 남자의 아내와 자녀들이 남자의 등 뒤에서 돌아오라고 소리쳤지만 남자는 귀를 틀어막고 계속 달리면서 외쳤다. “생명! 생명! 영원한 생명!” 그렇게 남자는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들판을 향해 달렸다. 이웃 사람들도 남자를 보며 조롱하거나 돌아오라고 고함을 질렀다. 남자를 따라가서 데려오겠다고 나선 사람도 둘이나 있었다. 한 사람은 옹고집(Obstinate)이었고 또 한 사람은 팔랑귀(Pliable)였다. 두 사람은 곧 남자를 따라잡았고 남자에게 함께 돌아가자고 설득했다. 하지만 크리스천이라는 그 남자는 말했다.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두 분은 조만간 그곳에서 죽을 것이고, 불과 유황이 타오르는 곳으로 들어가게 될 겁니다. 내가 가는 곳은 모든 게 풍족하고 넉넉합니다. 썩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시들어 없어지지 않는 기업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기업은 아주 안전하게 하늘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두 분도 나와 함께 갑시다.”
그러자 옹고집은 크리스천이 허튼 꿈을 좇는 바보라며 팔랑귀에게 그만 돌아가자고 했다. 그러나 팔랑귀는 옹고집의 말을 물리치고 크리스천과 동행해 피로 증명된 진리를 찾겠다고 다짐했다. 그리하여 옹고집은 집으로 돌아가고 크리스천과 팔랑귀가 함께 좁은 문을 향해 들판을 걸어가는 것을 나는 꿈에서 볼 수 있었다.
“우리가 가는 곳은 어떤 곳입니까?” 팔랑귀가 물었다. “그곳에서는 우리에게 영생이 주어져 우리는 그 나라에 영원히 살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면류관과 영광이 주어지고, 해처럼 빛나게 해줄 의복을 입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곳에는 눈물도 더는 없고, 슬픔도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곳의 주님이신 분께 사랑을 품었다는 이유로 세상에서 사지가 잘리고 화형당하고 맹수에게 먹히고 물에 던져졌던 사람들이 모두 불멸을 옷처럼 입고 잘 지내는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말만 들어도 황홀하군요. 어떻게 해야 그런 복을 나누어 받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그 나라를 다스리는 주님께서 이 책에 기록해 두셨습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그 복을 받고자 하면 주님께서 값없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때 나는 꿈속에서 그들이 이야기에 팔려 진흙투성이의 늪에 빠지는 것을 보았다. 그 진창의 이름은 ‘낙심(Despond)의 늪’이었다. 크리스천은 등에 짊어진 무거운 짐으로 인하여 진흙 수렁 속으로 점점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광경을 지켜본 팔랑귀는 여태껏 말해준 행복이 이것이냐고 벌컥 화를 내며 늪가로 기어 올라가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때 꿈속에서 보니 도움(Help)이라는 남자가 크리스천에게 다가가 디딤판을 좀 찾아보지 그랬냐고 말하자 크리스천은 너무도 두려워 옆길로 피하다가 빠지고 말았다고 대답했다. 도움은 크리스천이 내민 손을 마른 땅으로 끌어 올려 주고는 가던 길을 계속 가라고 말했다. 크리스천은 도움에게 다가가 멸망의 도시에서 좁은 문까지 가려면 이 늪지대를 반드시 지나야 하는데, 왜 이곳을 개선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도움이 말했다. “이곳은 죄를 자각할 때 생겨나는 찌끼와 오물이 흘러들어오는 곳으로서 낙심의 늪이라 불리지요. 죄인이 자신의 상태를 자각하면, 그 영혼에 두려움, 의심, 낙담, 불안감이 생겨나고 그걸 모두 한데 모아 여기 가라앉혀 두는 거지요. 이 늪은 바로 그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이 늪은 1600여 년 동안 하나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메워지지 않았으며, 늪 한 가운데 커다란 디딤판을 설치했지만 그것도 늪이 뱉어내는 오물에 파묻혀 진흙투성이가 되어버려 잘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크리스천이 외롭게 평원을 걷고 있을 때 한 사람이 다가왔다. 그의 이름은 세상의 현인 씨(Mr. Worldly Wiseman)로, 세속 정책(Carnal Policy)이라는 곳에 살고 있었다. 그곳은 크리스천이 떠나온 곳과도 아주 가까운 대도시였다. 그는 크리스천이 멸망의 도시를 떠나 영생을 구하러 떠났다는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는 터였다. 세상의 현인이 어디로 가느냐고 묻자 크리스천은 답했다. “저 앞에 있는 좁은 문으로 갑니다. 저곳에 가면 이 무거운 짐에서 벗어날 길이 있다고 하더군요. 이 짐이 너무 무거워서 아내와 자식에게서 전처럼 기쁨을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세상의 현인은 말했다. “그렇다면 가능한 한 빨리 그 짐을 벗어 버리세요. 짐을 벗어 버리기 전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의 유익도 누리지 못할 거예요.”
“제가 바라는 게 바로 그겁니다. 이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려고 지금 이 길을 가고 있는 겁니다.” “짐을 벗어 버리려면 이 길을 가라고 누가 그러던가요?” “아주 훌륭하고 고귀해 보이는 전도자라는 분이요.” “세상에! 빌어먹을 작자로군! 그 작자 말대로 지금 가는 그 길로 계속 가다가는 고단하고 괴롭고 배고플 것이고, 한 마디로 여러 힘든 일을 겪게 될 겁니다! 정말이오. 왜 낯선 사람의 말을 듣고 경솔하게 자신을 내던집니까?”
세상의 현인의 말에 크리스천이 대답했다. “만일 이 무거운 짐을 벗어 던질 수만 있다면 그리하여 영생의 구원을 얻을 수만 있다면 도중에 어떤 고통과 어려움을 겪게 될지라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길에서 자초하게 될 그런 위험 없이도 당신이 바라는 것을 손에 넣을 방법을 내가 일러드리겠소.” 세상의 현인은 손으로 한 곳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쪽에 있는 도덕(Morality)이라는 마을에 율법(Legality)이라는 신사분을 찾아가 도움을 받으세요. 그가 집에 없다면 그의 아들 교양(Civility)을 찾으면 됩니다. 그도 역시 아버지 못지 않은 판단력과 기술을 가지고 있으니 당신의 짐을 쉽게 덜어 줄 것입니다.” 크리스천은 이 신사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의 조언을 따르는 게 가장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선생님, 율법이라는 사람의 집으로 가려면 어느 쪽으로 가야 합니까?” “저쪽 언덕까지 가서 첫 번째로 이르게 되는 집이 그 사람 집이라오.”
이리하여 크리스천은 방향을 바꿔 율법주의 씨의 집으로 가서 도움을 받기로 했다. 그러나 힘들게 가까이 가보니 언덕은 아주 높아 금방이라도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릴 것 같아 두려워 걸음을 내디딜 수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등에 진 짐도 더 무겁게 느껴졌다. 바로 그때 언덕에서 불길이 확 타올랐다. 크리스천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크리스천은 세상의 현인의 조언을 받아들인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그때 전도자가 저쪽에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전도자를 본 순간 크리스천은 수치심으로 얼굴이 달아올랐다. 전도자는 엄한 표정으로 크리스천을 쳐다보면서 따져 묻기 시작했다. “여긴 무슨 일입니까, 멸망의 도시 성벽 밖에서 울고 있던 분 아닙니까? 제가 좁은 문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 드리지 않았던가요?” 크리스천이 몸을 떨며 말했다. “네, 맞습니다, 그런데 낙심의 늪을 빠져나오자마자 어떤 신사분이 저 앞에 있는 마을에 가면 제 짐을 벗겨줄 사람을 만나게 될 거라고 했어요.” 전도자는 말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알려 드리리다. 너희는 삼가 말씀하신 이를 거역하지 말라.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히 10:38). 전도자는 이 말씀을 이렇게 적용했다. “당신은 지존하신 분의 권고를 거역하고 평안에서 멀어지는 길로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어요. 파멸을 부를 모험에 가까운 행동을 하고 있다고요.” 전도자의 말에 크리스천은 그의 발아래 죽은 듯이 엎드려 울부짖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그 모습에 전도자는 크리스천의 오른손을 잡으며 말했다.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도 했고요.” 이 말에 크리스천은 다소 생기를 회복하고 떨며 일어나 전도자 앞에 다시 섰다.
전도자는 계속해서 말했다. “당신이 만난 사람은 세상의 현인이라는 자인데, 그는 세상의 교훈을 즐기고 그래서 늘 도덕이라는 마을의 교회에 나가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교훈이 십자가 때문에 당하는 고생을 최대한 면하게 해준다면서 그 교훈을 최고로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이런 세속적 기질을 가졌기 때문에 그자는 내가 지시하는 길이 옳음에도 그 길을 곡해하려고 합니다. 이 자의 조언에는 다음 세 가지 목적이 있으므로 철저히 거부해야 합니다. 첫째, 그자는 당신이 바른 길을 벗어나게 하려고 합니다. 둘째, 그자는 당신이 십자가를 불쾌히 여기게 만들려고 애씁니다. 셋째, 그자는 죽음이 역사하는 곳으로 향하게 만듭니다.
그자는 당신을 율법주의라는 사람에게 보내면서, 이 사람이 당신의 짐을 벗겨 편안하게 해줄 거라고 했지요. 그런데 이 율법주의라는 사람은 지금 자기 자녀들과 함께 종살이 중인 여인의 아들입니다. 이 율법주의라는 자는 당신을 그 짐에서 자유롭게 해줄 수 없어요. 그자의 도움으로 짐을 벗은 자는 한 사람도 없답니다. 사람이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여김 받을 수는 없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치고 율법의 행위로 짐을 벗어 없앨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세상의 현인 씨는 외인(外人)이고, 율법주의 씨는 사기꾼입니다. 그자의 아들 교양(Civility)은 선한 웃음 짓는 얼굴이긴 해도 위선자에 지나지 않아서 당신을 도울 수가 없어요. 당신이 이 바보 같은 자들에게서 들은 허튼소리에는 아무 가치도 없고 그저 내가 가르쳐 준 길에서 당신을 돌이켜 세워서 당신의 구원을 빼앗으려는 수작일 뿐입니다.”
이렇게 말한 뒤 전도자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자기 말을 확증해 달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산에서 말씀이 들리며 불길이 치솟았고, 그 산 아래 서 있던 가여운 크리스천은 두려움에 온몸의 털이 곤두셨다. 산에서는 이런 말씀이 선언되었다.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0).
크리스천은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는 세상의 현인 씨를 만난 때를 저주했고, 그의 권고를 귀담아들은 자기 자신은 바보라고 탄식했다. 그러고 나서 크리스천은 진심으로 전도자에게 다시 한번 매달렸다. “선생님, 제게 아직 소망이 있습니까? 이제라도 돌아가서 좁은 문으로 올라가도 될까요? 제 죄가 사함 받을 수 있을까요?” 그러자 전도자가 말했다. “당신은 죄가 매우 큽니다. 두 가지 악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선한 길을 버렸고, 금지된 길을 갔습니다. 그래도 좁은 문 문지기는 당신을 받아들여 줄 겁니다. 그분은 인간에게 선의를 가진 분이니까요. 다만 다시는 곁길로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자칫 그분의 진노가 불붙어 올라 길에서 멸망하는 일이 없도록 말입니다.”
02 좁은 문, 그리고 해석자의 가르침크리스천은 곧 원래 가던 길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리고 얼마 후 크리스천은 좁은 문에 이르렀다. 문 위에는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쓰여 있었다. 크리스천이 문을 두드리자 선의(Good-will)라고 하는 사람이 문을 열어주었다. 선의가 말했다. “여기 오기 전에 어떤 행동을 했든 그 누구도 우리는 가로막지 않습니다. 크리스천, 이제 앞으로 가야 할 길을 가르쳐 드리리다. 저기 앞에 좁은 길이 보입니까? 저 길이 바로 당신이 가야 할 길입니다. 족장들, 선지자들, 그리스도, 그리고 그분의 사도들이 만든 길입니다. 자로 그은 듯 반듯하지요. 이 길로 가야 합니다. 가다 보면 곁길들이 많습니다. 넓고 구불구불한 길들이지요. 하지만 어느 길이 옳은 길인지는 쉽게 구분할 수 있을 겁니다. 옳은 길은 좁고 반듯하니까요.” 크리스천은 자기 등에 진 짐을 벗을 수 있게 도와 줄 수 있느냐고 선의에게 물었다. 그러자 선의는 말했다. “그 짐은 구원의 장소에 이를 때까지는 그대로 지고 가세요. 그곳에 이르면 짐은 저절로 등에서 떨어져 나갈 겁니다.” 그러자 크리스천은 허리띠를 단단히 동여매고 다시 길을 나설 채비를 했다. 선의는 그런 크리스천을 보며 말했다. “문을 나서서 얼마쯤 가면 해석자의 집에 이를 겁니다. 문을 두드리면 해석자가 멋진 광경을 보여 줄 거예요.”
크리스천은 선의 씨가 일러준 대로 해석자의 집으로 찾아갔다. 해석자는 크리스천을 반갑게 맞이하며 크리스천을 아주 넓은 응접실로 데려갔는데, 청소를 한 번도 하지 않아 방은 온통 먼지투성이였다. 해석자는 잠시 방을 둘러보더니 하인을 불러 먼지를 쓸라고 했다. 하인이 비를 들고 쓸기 시작하자 먼지가 사방으로 날리기 시작했고, 그 바람에 크리스천은 거의 숨을 쉴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러자 해석자는 옆에 서 있던 소녀에게 물을 가져와 뿌리라고 했다. 소녀가 지시대로 하자 먼지가 말끔히 쓸려나가고 방이 쾌적해졌다.
이때 크리스천이 물었다. “이건 무슨 의미인지요?” 해석자가 대답했다. “이 응접실은 복음의 달콤한 은혜로 성화된 적이 없는 사람의 마음을 가리킵니다. 먼지는 그 사람의 원죄(原罪)와 내면의 부패로, 이것이 그 사람을 온통 더럽혔습니다. 처음에 먼지를 쓸기 시작한 사람은 율법을 가리킵니다. 물을 가져와 뿌린 소녀는 복음을 가리키고요. 보셨다시피, 처음에 비질을 시작하자 곧 먼지가 사방에 날려서 비질하던 사람이 쓸어낼 수가 없었고, 당신은 숨이 막힐 뻔했지요. 이는 율법은 그 행위로써 마음에서 죄를 깨끗이 씻어내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죄를 소생시켜서 영혼 속에서 죄가 증식되게 만든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왜냐하면 율법에는 죄를 억제할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소녀가 방에 물을 뿌리자, 방이 깨끗해지고 쾌적해졌는데, 이는 복음이 사람의 마음에 들어오면, 소녀가 바닥에 물을 뿌려 먼지를 가라앉힌 것처럼 죄가 사라지고 억제되고, 복음을 믿는 믿음을 통해 영혼이 청결하게 되며 그 결과 영광의 왕께서 거하실 만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