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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작은 빛이

도한철 지음 | 쿰란출판사


어디선가 작은 빛이

도한철 지음

쿰란출판사 / 2023년 10월 / 168쪽 / 11,000원





가지 않은 길


“숲속의 두 갈래 길, 나는 덜 다니는 길을 택했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의 한 부분입니다.

루게릭병(ALS) 환자가 팔다리가 마비되고 최종적으로 호흡곤란이 오면 의사로부터 두 가지 길 중 선택을 권유받습니다. 자기 운명을 받아들이고 빠른 죽음의 길(자연사)을 선택하거나, 인공호흡기에 의존하는 삶의 불확실한 길을 선택해야 하는 시점에 놓이는 것입니다. 제가 선택한 후자와 같은 불확실한 길은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에 나온 것처럼 풀이 무성하고 사람들이 적게 다닌 미지의 길입니다. 말 그대로 “Living as a Dead Man”(죽은 자로 사는 것), 그리고 “Dependent Life”(의존하는 생활)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삶이 전개되는 길입니다.

병실에서 만났던 ALS 환자들을 보면 가족들이 육체적,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힘들어하고, 제 담당 의사가 추천한 것과 같이 요양원에 보내져 누워서 천장만 바라보다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나의 선택이 가족의 헌신적인 희생과 사랑이 없었으면 힘든 길이었음을 시간이 갈수록 더 깊이 깨닫습니다. 그 불확실한 길을 걸어오며 많은 것이 달라졌음을 경험합니다. 그 길을 동행해 오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살아가며 정말 소중한 것이 관계임을 알게 되니 어떠한 것이라도 용서하며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또 육신이 죽은 자처럼 살다 보니(Living as a Dead man) 영은 점점 더 맑아집니다.

두 번의 죽음을 경험하며 지나온 삶의 순간순간이 다 하나님의 은혜요 감사였음을 고백하게 되었고, 언제라도 올 수 있는 죽음을 담대하게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가족들의 따뜻한 돌봄 덕분에 장애를 장애로 느끼지 못할 정도로 질 높은 삶을 즐기고 있습니다.

제 곁을 떠나지 못하면서 “엄마, 아빠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선교사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한다”고 고백하는 둘째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사람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지 보여 주려고 해 왔어. 이제는 하나님의 사람이 어떻게 죽음을 대하는지 보여 줄게.”

뜻하지 않게 가지 않은 길을 걷게 되었지만, 주님과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동행이었습니다. 이제 내가 걸어간 자리가 나와 같은 길을 걸어야 할 사람들이나 동행해주는 사람들이 편하게 갈 수 있는 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에필로그

유튜브 채널 ‘베데스다의 집’을 운영하는 유튜버가 되었습니다. 제가 투병 중 경험한 하나님의 사랑을 더 많이 그리고 더 쉽게 나누고 싶어서입니다. 예전에 큰애가 이 상태라도 아빠의 경험으로 선교 지도를 하고, 유튜브로 아빠의 삶을 올려 보라고 했는데 그 말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둘째는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도록 ‘아이트래킹(Eye Tracking, 시선 추적) 컴퓨터’ 환경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누군가에게 하루는 평범하고 단조로운 삶의 연속이지만, 제게 허락된 오늘 하루는 매 순간이 기적이고 경이로움입니다. 트윈사이즈 침대 하나가 제 24시간 생활 공간이고 스튜디오 작업 공간이지만, 이 공간에서 아내와 함께하는 중보기도로 아침을 시작해 말씀 묵상을 하고, 지인들과 SNS를 통해 삶을 나누며, 온라인 성경 강의 준비와 유튜브 영상 작업을 하다 보면 하루가 너무 짧습니다.

새로 시작한 유튜브 운영을 위해 그동안의 글과 새 글들을 정리해 아이트래킹으로 영상 작업을 합니다. 아내는 제 목소리를 대신해 ‘글 읽어주는 여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싶은 분들, 삶에 지친 분들께 희망과 위로가 되면 좋겠습니다.



5kg의 무게


투병 초기, 곳곳에 근육의 세미한 부분들이 하나씩 죽어가면서 팔다리가 뒤틀리고 머리를 가누기 힘들어 걷는 모습이 흡사 허수아비같이 우스꽝스러웠습니다. 그 진행 과정에서 몸의 각각의 근육들이 나를 위해 어떤 일을 해 왔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손가락 하나가 움직일 때 어떤 근육들이 사용되었는지. 몸의 어떤 근육들 덕분에 작은 발바닥을 땅에 딛고 무거운 몸이 똑바로 서 있을 수 있었는지. 목의 어떤 근육들이 5kg이나 되는 머리를 똑바로 세우고 자유자재로 돌릴 수 있게 했는지.

평소엔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몸의 모든 것들이 하나씩 그 기능을 잃어갈 때 절망과 함께 찾아온 것은 전능자의 능력을 향한 경외감이었습니다. 인공호흡기에 생명을 의존하고 보니 보이지 않던 공기의 존재를 깨닫게 되듯, 몸의 기능을 잃고 보니 우리 몸의 모든 기능과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살아계신 하나님의 존재와 은혜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호흡 곤란으로 응급실에 실려가 소생실에 들어가기 전 까마득히 떨어지는 의식의 가닥 속에서 제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하나님, 제 영혼을 받아주소서”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의식이 돌아와 의료진들 간에 나누는 대화가 아득히 들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살아난 걸 보니 환자분의 살려는 의지가 강했던 것 같아.” ‘아니요! 저는 더 이상 잃을 게 없어 하나님께 제 영혼을 맡겼거든요.’ 이제 온몸이 마비되어 제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로키산맥을 넘어가는 중, 인공호흡기가 꺼져 산소 공급이 10분 가까이 중단된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아무런 상함도 없이 저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저에게 아직 끝나지 않은 일이 있나 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이 땅에 보내진 목적과 소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젊은 나이에 사고로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든, 병으로 고통 가운데 죽음을 맞이하든, 건강하게 살다 나이 들어 죽음을 맞이하든, 우리는 누구나 언젠가는 똑같이 죽음을 맞이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 땅에서 맡겨진 소명을 다한 우리에게 죽음이란, 하나님을 기쁨으로 만나게 되는 새로운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어느 날 병상에 누워 창밖을 바라보다 문득 “내가 하나님을 몰랐다면 이 상황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몰랐다면 무슨 소망을 가질 수 있었을까?” 생각하고 울컥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지나온 모든 순간순간이 감사요, 살아온 모든 날과 평안으로 함께해 주시는 지금 이 상황까지도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손과 발을 못 움직이고 오랜 시간 짓눌려 답답하고 고통스러울 때는 십자가에 손과 발이 못 박히신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합니다. 약해진 폐 기능 때문에 멈출 줄 모르는 기침과 가래로 고통스러울 때는 십자가에서 숨 쉬기도 힘드셨을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린 피, 십자가의 사랑과 부활이 저를 구원했고 소망을 주었습니다.



절망을 이기는 방법


영화 <마션>
그 같은 상황에서 제가 시작해 볼 수 있는 일은 단 한 가지, 상황을 뛰어넘는 생각의 전환밖에 없었습니다. 꼼짝없이 누워있으면서 먼저 그동안 외웠던 말씀들을 묵상했습니다. 말씀과 성령의 감동 안에 있다 보니 내 몸의 상황보다 이날까지 지켜주셨던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가 나오고, 이 절망의 상황에도 평강으로 인도해 주심에 감사가 나오고, 죽은 육체가 되어버린 남편과 아빠를 정성으로 돌보는 가족들의 사랑에 감사가 나왔습니다. 제 모습 속에 감사가 나오니 고통 중에도 웃음을 잃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떠 제 얼굴에 띤 미소를 본 아내는 힘들고 고된 간병의 하루지만 그날을 웃음으로 시작합니다.

첫째는 아빠의 루게릭병 증상을 보고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고난과 훈련에 대해 분노와 두려움으로 아파했습니다. 그러던 중 힘든 군 생활 가운데 문득 아빠와 함께했던 단기 선교지에서 가졌던 하나님의 임재 경험을 떠올렸고, 살아오면서 가장 마음이 편하고 행복했던 시간이 언제였는지를 생각해 보니 말씀 읽을 때와 기도할 때, 단기 선교지에서 현지 아이들과 뒹굴 때였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께로 삶을 돌이키고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진정한 행복의 근원이시며, 우리 아버지이심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리고 신학대학원을 지원하여 채플린(군목) 장교를 한 뒤 선교지에서 고아 사역을 하기로 헌신합니다. 아빠가 평안 가운데 웃음을 잃지 않고 믿음을 굳건히 지키는 모습을 보며 ‘고난은 하나님의 변장된 축복’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둘째는 아빠 곁에 있기 위해 다니던 건축 회사를 사직하고 20대에 ‘Bethesda Studio’라는 Landscape Design 회사를 창업합니다. 담담한 모습으로 무엇이라도 시작해 보려는 아빠의 모습을 보고, 바쁜 와중에도 아빠를 위해 아이트래킹 컴퓨터를 찾고, 장애인 차를 찾아보고, 아이트래킹으로 조정하는 전동식 휠체어를 찾았습니다. 둘째 덕분에 지인들과 SNS로 연락을 나누고,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예배 후에 캔사스시티 곳곳을 드라이브하며, 간증 글을 유튜브 영상으로 올리고, 말씀 묵상한 것을 성경 공부 영상으로 만드는, 스스로 생산적인 일을 하는 아빠가 될 수 있었습니다.

감사와 긍정의 생각과 그 시작은 우리 가족에게 이처럼 연쇄 반응을 일으켰습니다. 생각의 시작만으로 이 모든 것을 일으키신 재미있는 하나님이십니다.



선택의 시간


디지털 시대의 꽃을 피우기 시작할 때 저는 대학 입시에서 전자공학을 선택했습니다. 컴퓨터의 기본은 1과 0, 즉 True와 False의 선택입니다. 아무리 복잡한 우리 인생의 문제도 잘게 쪼개 보면 1과 0, Yes 혹은 No의 선택으로 단순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잘못된 선택이란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 중에 개입하시고자 할 때 즉, 하나님의 때에는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는가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대학 캠퍼스에 처음 들어섰을 때 학생회관에 걸린 대학생선교회 현수막이 제 눈을 사로잡았습니다.“K대학교는 20년 동안 당신을 기다렸습니다. 예수님은 2000년 동안 당신을 기다렸습니다.”그날 제 영혼을 구원하고 영생을 보장받는 제 인생 최고의 선택을 했습니다.



이후 아프리카, 페루, 팔레스타인 등 틈틈이 단기선교를 다닌 후 집을 정리하고 장기 선교사를 준비하는 중 저의 불치병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업과 교회 사역을 내려놓고 캔사스시티 기도의 집을 찾았습니다. 생전 처음으로 아무 일도 안 하고 기도실에 앉아 종일 말씀 묵상과 기도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마음과 연약한 몸으로 무릎 꿇은 제게 찾아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이것은 재앙이 아니며 네 신앙의 위대한 시작이 될 것이다.”

이 병이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님을 알게 되자, 이러한 상황에서 믿음의 모습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길을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 개입하실 때는 동전의 양면처럼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 어두운 면과 밝은 면과 같은 두 가지 선택의 갈림길에 놓이는 것 같습니다. 제가 병 때문에 어두운 면을 선택했다면 욥처럼 태어난 날을 저주하거나 세상을 원망하며 신세 한탄만 하다 우울증에 빠져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밝은 면을 선택하기로 결정하자 가족의 사랑이 보였고, 중보기도 팀이 보였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저와 함께하시는 것이 보여 진정한 사랑과 평강을 알게 되었습니다. 말씀이 나의 영에 들어와 내 일부가 되고, 생각과 확신뿐 아니라 나의 몸이 되었습니다. 제 신앙의 ‘Breakthrough’(돌파)가 일어난 것입니다. 기도실에서 기도하는 중에 “네가 걸으면 걸을수록 네 발에 힘을 붙여 줄 것이고, 네가 나를 증거하면 할수록 네 입에 말을 붙여 줄 것이다”는 말씀을 받고 아내의 부축으로 탄자니아-팔레스타인 선교지에 좋은 소식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의 마지막 여정을 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기대와 희망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지금, 하나님께서 주신 여러 말씀 가운데 이 말씀만은 아직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 개입하시면 진정한 회복과 부흥이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최고의 하이라이트가 될 선택은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 있을 때와 죽기 직전 우리 앞에 예수님이 찾아오셨을 때 하는 선택일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좌우 십자가에 두 죄수가 달려 있었습니다. 한 죄수는 예수님을 욕하며 “그리스도라면 자신과 우리를 구해 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다른 죄수는 “우리는 우리의 죄 때문에 벌을 받는 것이지만 예수님은 죄가 없다”고 그를 꾸짖으며 “주님의 나라에 들어갈 때 저를 기억해 달라”고 예수님께 부탁합니다. 똑같이 죄 많은 인생을 살아온 두 사람이었지만, 죽기 직전 예수님이 인생에 찾아온 선택의 시간에 한 죄인은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 있게 되는 선택을 한 것입니다.



아직 할 수 있는 것


불치병인 루게릭병 환자로 산다는 것은, 신체가 다시 회복될 수 없는 상태에서 각 부분이 단계적으로 죽어가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적응해야 하는 삶입니다. 손을 못 쓰게 되면 누군가의 손을 빌리고, 발을 못 쓰게 되면 휠체어를 타고, 호흡이 힘들고 음식 넘기기가 힘들어지면 의료 기기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처음엔 엄지손가락 하나로 마우스를 클릭하고, 그 다음엔 발로 조이스틱을 움직이고, 그 다음엔 아이트래킹으로 컴퓨터를 사용하며 세상과 소통했습니다.

내게 닥친 현실과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주님이 보이지 않고 세상과 단절되어 죽어가는 근육만 바라보게 됩니다. 병으로 근육이 죽어가는 상황이 절망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단절되고 소망을 잃어가는 상황이 절망적인 것입니다. 병으로 점점 불구가 되어 가는 모습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세상과 단절하고 굴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부끄러운 것입니다.

ALS 환자들은 보통 1~5년 동안 20 또는 60, 80마일의 속도로 근육 약화가 진행됩니다. 운전을 할 때 속도감에 몸을 맡기고 스쳐 지나가는 자연 경관을 즐기며 가는 것이 좋듯이, 근육 약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그 속도에 맞춰 아직 사용할 수 있는 몸의 기능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해 보고 싶었습니다. 고통의 기간이지만 내게 주어진 오늘이 앞으로 다가올 내 인생의 어떤 날보다 최고의 날이다 생각하니 한순간 한순간이 소중해져 그런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가족들의 부축을 받아 한국과 미국 곳곳으로 가족 여행을 다니며 새롭게 발견하게 된 세상은 아름다웠습니다. 또 저와 눈이 마주치면 손을 흔들거나 미소로 격려를 보내주는 사람들이 정겨웠습니다. 더 살고 싶은 생각이 들 만큼 인생은 아름다운 것이었습니다. 두 손을 못 쓰고 발의 힘도 약해졌지만 마지막으로 선교지를 밟아 보고 싶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네가 걸을수록 네 발에 힘을 붙여줄 것이고, 네가 나를 증거할수록 네 입술에 말을 붙여줄 것이다”라는 말씀으로 확신을 주셨습니다.

두 달 동안의 탄자니아-팔레스타인 선교 여행을 떠나기 전 저희 부부는 산호세 온누리교회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 중간 김영련 담임목사님은 저희 부부를 단상으로 불러 전 교인이 기도하는 시간을 갖게 하셨습니다. 그때 손을 못 쓴다는 사실을 깜박 잊고 무릎을 꿇다 그대로 넘어져 머리를 바닥에 ‘쿵’ 하고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예배실은 곧 울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이마에 피멍이 든 채 단상을 내려오며 따져 물었습니다. “하나님, 선교지에 가라고 하시고 교인들 앞에서 이 무슨 창피입니까?” 그러자 하나님은 즉각 응답을 주셨습니다. “네가 다시 교인들 앞에 설 때는 부끄러운 모습이 아니라 명예로운 모습으로 서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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