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의 예수
레프 톨스토이 지음 | 이다북스
톨스톨이의 예수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다북스 / 2022년 7월 / 296쪽
프롤로그복음서는 모든 것이 생명 자체에 대한 깨달음에서 비롯된다는 진리를 설명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자리에 삶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심어준다. 이런 이해 없이는 삶도 없다. 인간은 삶을 이해하는 만큼 살기 때문이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육신이 생명의 근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참 생명으로부터 자신을 단절시킨다. 그러나 사람이 육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령에 의해 산다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은 참 생명을 얻는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이런 참 생명을 가르치기 위해 세상에 왔다. 사람의 생명이 깨달음에서 시작된다는 진리에 근거해서 예수는 깨달음의 삶을 몸소 가르치고 실천해 보여주었다.
초기의 종교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법으로 정해 알려주는 식이었다. 반면에 예수의 가르침은 오직 삶에 대한 깨달음에 대해 말한다. 지금까지 아무도 외적인 하나님을 본 적이 없으며, 그분을 볼 수 있는 사람도 아는 사람도 없다. 그러므로 그런 신을 섬기는 일을 우리 삶의 목표로 삼을 수는 없다. 다만 하나님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그분의 절대적인 원칙에 비추어 삶에 관한 내적인 깨달음을 얻음으로써 우리는 삶의 여정을 이어갈 수 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말씀.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게 된 모든 사람이 참 생명을 얻는다는 구원의 말씀이다. 만물의 근본과 시작은 삶에 대한 이해이며, 삶에 대한 이해가 하나님이다. 이런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만물의 근본이며 시작을 계시한다. 모든 것은 삶에 대한 깨달음 위에 세워지며, 그것 없이는 삶도 없다. 그 속에 참 생명이 있다.
이런 깨달음은 진리의 빛이다. 그런데 이 빛은 어둠이 아무리 에워싸도 빛나며, 어둠은 이 빛을 가리지 못한다. 진정한 빛은 언제나 세상에 있으면서 모두를 비추어주었다. 세상에 이 빛이 있기에 세상도 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그 빛을 따르지 않았다. 빛은 그 자리에 있었으나 자리가 빛을 보존하려 하지 않은 것이다. 삶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 사람은 그 믿음을 통해 빛과 같아지는 기회를 얻는다. 깨달음 속에 삶이 있음을 믿는 사람은 육신이 아닌 깨달음의 아들이 된다. 삶에 대한 깨달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 안에서 육신과 화합했다. 그리하여 육신을 가진 인간이 생명의 근원이자 그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같은 본질을 가졌음을 깨닫는다.
예수의 가르침은 완전하고 참된 믿음이다.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함으로써 우리는 낡은 믿음을 대신할 새로운 믿음을 알았다. 모세는 우리에게 율법을 주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참된 믿음을 깨우쳐 준 것이다.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다. 다만 아버지 안에 있는 아들이 삶의 길을 보여주었다.
하나님의 아들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이러했다.
그의 어머니 마리아는 요셉과 약혼한 사이였다. 그러나 두 사람이 부부가 되기 전에 마리아는 아이를 잉태했다. 선량한 요셉은 마리아를 불명예스럽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녀를 아내로 맞이했으며, 아기를 낳을 때까지 그녀와 관계를 갖지 않다가 태어난 아기에게 예수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아이는 자라면서 점점 철이 들고, 나이에 비해 영리했다.
예수가 열두 살이었을 때 마리아와 요셉은 예수를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열리는 유월절 축제에 갔다. 축제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길을 나섰는데 아들을 챙겨 데리고 가는 것을 깜박 잊었다. 그리고 삼 일째 되던 날 성전에서 예수를 찾았다. 어린 예수는 학자들 사이에 앉아 질문도 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는 중이었다. 학자들은 모두 예수의 영특함에 놀라고 있었다. 예수를 발견한 마리아가 말했다. “왜 이렇게 우리를 걱정시키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얼마나 애를 태우며 너를 찾았는지 모르느냐?”그러자 예수가 두 사람에게 말했다. “저를 어디서 찾으셨단 말입니까? 아들이 아버지 집에 있을 줄 모르셨습니까?”마리아와 요셉은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으며, 누구를 아버지라 부르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런 일이 있고 난 뒤, 예수는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항상 어머니의 말에 순종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예수는 점점 더 지혜로워졌으며, 사람들은 그가 요셉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예수는 그렇게 살았다.
그즈음 예언자 요한이 유다에 나타났다. 요한은 사람들에게 부정한 마음을 씻어내려면 삶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설파했다. 그리고 변화의 증표로 사람들을 요르단강 물로 씻어주었다. 예루살렘의 주민들과 요르단강 일대에 사는 유대인들도 찾아왔다. 이들은 요한에게 자신의 부정한 마음을 고백했으며, 요한은 그들이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증표로 요르단강 물로 씻어주었다. 갈릴리에 계시던 예수도 요르단으로 와서 요한에게 씻김을 받고 그의 설교를 들었다.
요르단에서 세례를 받은 예수는 광야로 갔으며, 거기에서 영적인 시험을 받았다. 예수는 광야에서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이 사십 일을 지냈다.그때 육신의 소리가 들렸다. “네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로 빵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지 못하는 걸 보면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야.”예수께서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돌로 빵을 만들 수 없다면, 이는 나의 육신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나의 영혼이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빵으로 살지 않고, 영혼의 양식으로 산다. 나의 영혼은 육신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그러나 배고픔은 예수를 괴롭혔고, 또다시 육신의 소리가 들렸다. “네가 영혼의 양식만으로 살 수 있으며 육신을 무시할 수 있다면, 육신을 벗어던져도 영혼은 살아있을 것 아니냐.”그 순간 예수는 성전 지붕 위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육신의 소리가 다시 말했다. “너의 영혼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 성전 위에서 뛰어내려 보아라. 그렇게 하더라도 죽지 않을 테니. 신비로운 힘이 너를 지켜줄 것이고, 받쳐줄 것이며, 다치지 않게 해줄 것이다.”예수는 그 소리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육신의 지배를 받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벗어던지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성령에 의해 육신을 빌려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 영혼의 아버지이신 분의 뜻이며, 나는 그 뜻을 거스를 수 없다.”그러자 육신의 소리가 말했다. “성전 위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내놓는 것이 네 아버지를 거스르는 일이고, 네가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음식을 먹어야 할 때 육신을 굶기는 것도 네 아버지를 거스르는 일이다. 그러므로 육신이 원하는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충족시켜주어야 한다.”그러더니 예수의 눈앞에 세상의 모든 왕국과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이 보였다. 모두 육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며 사는 듯 보였다.육신의 소리가 말했다. “자, 보아라. 나를 섬기는 자들이다. 나는 저들이 원하는 걸 모두 주었다. 네가 나를 섬긴다면, 너도 저들과 똑같이 누릴 것이다.”그러나 예수는 자신에게 말했다. “나의 아버지는 육신이 아닌 성령으로 존재하신다. 나는 그분의 뜻에 따라 산다. 내 안에는 항상 그분이 계시다. 나는 그분만 섬기고, 그분을 위해서만 봉사할 것이며, 그분이 내리시는 포상만 받을 것이다.”그러자 유혹이 끝났고, 예수는 영혼의 힘이 작용했음을 알았다.
영혼의 힘을 깨달은 예수는 광야를 떠나 다시 요한에게로 가서 그와 함께 지냈다.
예수가 요한의 곁을 떠날 때 요한이 말했다. “이분은 인류를 구원할 분이시다.”
요한의 말을 듣고 그의 제자 두 명이 예수를 따라나섰다. 그들이 따라오는 것을 본 예수는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너희는 무엇을 원하느냐?”그러자 그들이 대답했다. “곁에서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
그러자 예수가 말했다. “나를 따라서 오너라. 내가 모든 것을 가르쳐주겠다.”
그들은 예수를 따라가서 밤늦게까지 그의 곁에 머물며 그의 가르침을 들었다.
그 두 명 중 한 명은 안드레였는데, 그에게는 시몬이라는 형이 있었다. 예수의 가르침을 들은 안드레는 형 시몬을 찾아가 말했다. “예언자들이 메시아라고 기록했던 사람을 찾았소. 우리에게 구원을 전한 사람을 찾았단 말이오.”그리고 안드레는 시몬을 예수에게 데리고 갔다. 예수는 시몬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었는데, 이는 바위를 뜻했다. 그렇게 해서 둘은 예수의 제자가 되었다.
영혼 안에 사는 삶한번은 안식일에 예수가 제자들을 데리고 밀밭을 지난 적이 있었다. 배가 고팠던 제자들은 지나면서 밀 이삭을 뽑아 손바닥에 놓고 비벼 알곡을 먹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손으로 비비는 것을 보고 말했다. “안식일에 그렇게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안식일에는 일을 멈추어야 하는데 당신들은 밀 이삭을 비비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하셨고, 이를 어기는 사람을 죽음으로 벌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그 말을 들은 예수가 말했다. “하나님께서는 ‘나는 제물보다 사랑을 원한다’라고 하셨다. 너희가 그 뜻을 헤아린다면 비난받을 일이 아닌 일을 가지고 이들을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안식일보다 사람이 중요하다.”
또 다른 안식일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예수가 회당에서 설교하고 있을 때였는데, 몸이 아픈 여인이 그에게 와서 도움을 청했다. 그러자 예수가 그녀를 치유해주었다. 그것을 본 회당의 책임자가 분개하며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하나님의 율법에 규정되어 있기를 일주일에 엿새만 일하게 되어 있소.”그러자 예수가 율법학자인 그들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너희는 안식일에 환자를 돌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그들은 대답할 바를 알지 못했다.
예수가 다시 말했다. “그건 속임수다! 너희는 안식일에도 가축을 풀어 물가로 데려가지 않느냐? 만약 양이 우물에 빠진다면 안식일이라도 누구든 달려가 꺼내줄 것이다. 사람이 양보다 훨씬 귀하지 않으냐. 그런데 돕지 말아야 한다니. 안식일에 선을 행해야 하느냐, 아니면 악을 행해야 하느냐? 영혼을 구해야 하느냐, 버려야 하느냐? 선은 언제든 행해야 마땅하니, 안식일도 예외는 아니다.”
예루살렘에 사는 바리새파 율법학자들이 예수에게 왔다. 그들은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빵을 먹는 것을 보았다. 바리새파 율법학자가 예수에게 물었다. “왜 교회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씻지 않은 손으로 빵을 먹는 것이오?”그러자 예수가 그들에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너희는 왜 교회의 율법은 따르면서 하나님의 계명은 어기느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부모를 공경하라’라고 하셨다. 그런데 너희는 그 말씀을 왜곡해 ‘부모님께 드리던 것을 이제 하나님께 바친다’고 말하며 자기 부모를 돌보지 않는다. 그것은 교회의 전통을 따르느라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것이다. 너희는 모두 협잡꾼이다! 예언자 이사야의 말씀이 옳았다. ‘이들은 정작 마음은 멀리 있으면서 말로만 내 앞에 무릎을 꿇고, 혀끝으로 나를 찬미한다. 나에 대한 두려움도 그들이 알고 있는 인간의 법규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들에게 놀랍고도 진기한 일을 일어나게 할 것이다. 이들 중 현자들은 지혜를 잃을 것이며 사상가들의 논리는 흐려질 것이다. 영원하신 그분 앞에 자기들의 욕망을 감추려는 자들, 그리고 어둠 속에 숨어서 악행을 저지르는 자들에게 재앙이 내릴 것이다’라고 하지 않았느냐. 너희도 그렇다. 정작 중요한 하나님의 계명은 외면하고 그릇을 닦는 것과 같은 사람이 세운 전통을 따르니 말이다!”그러고 나서 예수는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모두 듣고 깨달으라. 밖에서 들어가는 것 가운데 사람의 몸을 더럽힐 수 있는 것은 없다. 하지만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것은 그럴 수 있다. 사랑과 자비로 영혼을 채우라. 그러면 모든 것이 정화될 것이다. 이 말의 참뜻을 이해해야 한다.”
예수가 유대교인의 집에 있는 동안 마을에 사는 한 여자가 왔다. 그녀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예수가 바리새파 사람의 집에 있다는 것을 알고 향유가 담긴 병을 들고 찾아온 것이다. 여자는 예수 앞에 무릎을 꿇더니 눈물을 흘려 예수의 발을 씻은 다음 자기 머리채로 닦고,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부었다.이 모습을 본 바리새파 사람은 생각했다. ‘이 사람은 예언자가 아니다. 정말 예언자라면 자기 발을 닦는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지 않겠나. 행실이 바르지 못한 여자인 것을 알아보았을 것이고 자기 몸에 손도 대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이런 속내를 꿰뚫어 본 예수가 말했다. “내 생각을 말해주어도 되겠는가?”
주인이 좋다고 하자 예수가 말했다. “말하자면 이렇다. 두 사람이 어떤 부자에게 각각 오백 냥, 오십 냥씩 빚을 졌다. 그런데 둘 다 갚을 능력이 없었고, 부자는 이 두 사람의 빚을 탕감해주었다. 그렇다면 이 두 사람 중 누가 더 부자를 사랑하고, 마음 깊이 감사하겠는가?”그러자 유대교인이 말했다. “당연히 더 많은 빚을 졌다가 탕감받은 사람이겠지요.”
그러자 예수가 여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대와 이 여자도 그렇다. 스스로 바리새인이라 생각하는 그대는 저 여인보다 적은 빚을 진 셈이다. 그리고 저 여자는 하나님을 믿지 않으므로 스스로 더 큰 빚을 졌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내가 그대의 집에 왔을 때 그대는 내게 물을 주지도 않았고, 발을 씻어주지도 않았다. 저 여자는 자신의 눈물로 내 발을 씻어주고, 머리채로 내 발을 닦아주었다. 그대는 내게 입맞춤을 하지 않았지만, 저 여자는 내 발에 입을 맞추었다. 그대는 내 머리에 기름을 부어주지 않았지만, 저 여자는 귀한 향유를 내 발에 부어주었다. 자기를 옳은 사람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사랑을 실천하지 않겠지만, 스스로 믿음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랑을 실천할 것이다. 그리고 사랑의 실천을 통해 모든 것을 용서받을 것이다.”예수는 여자를 향해 말했다. “그대의 모든 죄는 용서받았다.” 그러고 나서 말을 이었다. “모든 것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달려 있다. 스스로 선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선하게 살지 못한다. 하지만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선해질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예수는 도시와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아버지의 뜻을 실현하는 행복을 사람들에게 가르쳤다. 사람들이 참된 삶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채, 목자 없는 양떼처럼 이리저리 내몰리고 고통받으면서 그 이유도 모르고 죽어가는 것을 가엾게 여겼다.
한번은 그의 가르침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모여들자 예수는 산 위로 올라갔다. 제자들은 그의 주위에 둘러앉았다. 예수는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가에 대해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의 말은 다음과 같았다. “가난하고 집 없는 자들은 축복을 받을 것이니, 아버지의 뜻이 그들에게 닿아 있기 때문이다. 지금 굶주리는 자들은 충족하게 채워질 것이며, 지금 슬퍼하고 우는 이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업신여김을 받으며 천대받고 내몰리는 이들은 기뻐할지니, 하나님의 백성은 늘 그렇게 박해받아 왔으며 천국의 보상을 받을 것이다.”
“부유한 자들은 슬퍼할지니, 그들은 이미 원하는 모든 것을 가졌으므로 더 이상 얻을 것이 없다. 지금 충족한 자들에게는 곧 굶주림이 찾아올 것이며, 지금 즐겁고 행복한 자들에게는 슬픔이 찾아올 것이다. 모두의 찬사를 받는 자들은 슬퍼할지니, 속임수를 쓰는 사기꾼만이 모두의 찬사를 받는 법이다. 가난하고 집 없는 사람들은 축복받을 것이다. 다만 외적으로 가난한 것이 아니라 영혼이 가난해야 한다. 소금도 진짜 소금만이 그 효과를 발휘한다. 외양만 그런 게 아니라 진짜 소금의 짠맛을 지녀야 한다. 그러므로 가난하고 집 없는 자들아, 너희가 세상의 스승이다. 가난하고 집 없는 삶에 참된 행복이 있음을 안다면 너희는 축복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오직 외양적으로만 가난하다면, 짠맛을 내지 못하는 소금처럼 아무 곳에도 쓸모가 없을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 빛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너희가 가진 빛을 숨기지 말고 사람들에게 내보여주어라. 너희가 촛불을 켰다면, 그것을 의자 밑에 숨겨두지 않고 식탁 위에 올려놓아 방을 비추게 하지 않겠느냐. 그러니 너희도 빛을 숨기지 말고 너희의 행실로써 드러나게 하라.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가 진실을 깨달은 사람임을 알아볼 것이며, 너희의 선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깨달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