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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발자취를 따라서 1

피터 워커 지음 | 도서출판CUP


바울의 발자취를 따라서

피터 워커 지음

도서출판CUP / 2023년 3월 / 578쪽 / 26,500원





다메섹



길 위의 드라마


이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턱수염을 기른 젊은 남자가 외국의 도시를 향해 가고 있다. 그에게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이 열정적인 율법 학자는 은밀히 전략을 세우며 거의 일주일 전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240km에 이르는 힘겨운 여정의 종착지에 접어들고 있다. 그는 몇 사람의 일행과 함께 출발했고, 낮에는 나귀를 타고 밤에는 별 아래에서 야영했다. 그들 중에는 그가 죄수를 체포하는 일을 도울 병사들도 있었다. 그저께 그들은 갈릴리 호수 근처에 있었고, 해변 길(Via Maris)을 따라 가버나움이라고 부르는 작은 마을을 통과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가울라니티스(Gaulanitis)의 황량한 화산 지형을 지나 마침내 내리막길로 내려가고 있다. 그들의 왼쪽 뒤로는 헐몬산 단층지괴가 있었고, 북동쪽 약 15km 앞에는 그들의 목적지인 낮은 산지 안에 자리 잡은 평원이 있었다. 이스라엘의 오랜 원수인 수리아의 수도 무역도시 다메섹이었다.

이 오아시스 도시는 한낮의 작열하는 햇볕 속에서 확실히 매력적으로 보인다. 그는 한 번도 이 이교도의 상업 도시에 가본 적이 없었지만, 나사렛 예수에 관한 이 사악한 가르침이 더 퍼지기 전에 싹을 잘라내야만 했다. 어쩌면 오늘 밤에는 이 위험한 ‘도’의 추종자들을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 있을 것이다. 이곳에서 성공을 거둔다면 틀림없이 고향의 상관들에게 주목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전혀 예상하지 않았고 원하지도 않았던 일이 일어났고, 이로 인해 그의 작은 세계가 완전히 뒤집히고 말았다. 그가 체포하려는 추종자들이 따르던 바로 그 사람이 나타나 그의 이름을 부르며 직접 그에게 말했다. 자신이 그토록 미워했던, 의로운 분노와 열심의 대상이었으며 사기꾼이라 생각했던 예수 앞에서 두려움에 말을 할 수 없을 지경이 된 그는 땅에 엎드러졌다.

길 위에서 만난 그리스도


이것은 강력한 이야기다. 바울의 ‘다메섹 도상 경험’은 한 사람의 신념이나 방향이 갑자기 바뀌는 것을 묘사하기 위해 다양한 맥락에서 사용되는 표현이다. 그러나 사도행전에서 이 사건을 서술하는 누가는 이것이 당사자가 원하지도 않았고 스스로 초래하지도 않았던 변화였다고 이해했다. 이 변화는 그에게 이루어진, 외부로부터 온 변화였다.

누가는 이 사건이 수도 외곽의 어떤 ‘길’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난 또 하나의 사례라고 생각했다. 누가의 첫 책 ‘누가복음’의 절정은 부활하신 예수가 예루살렘 외곽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그분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던 이야기다. 이제 누가는 그의 두 번째 책 ‘사도행전’의 주요한 초점이 될 이야기(바울의 모험과 선교)를 시작하면서 같은 방식으로 이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바울에게 나타나셨다. 이 놀라운 관념 - 예수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심 - 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바울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누가는 말한다. 부활하신 그리스도 없이는 바울도 없다. 더 심층적인 차원에서 바울의 이야기는 그의 종을 통해 일하시는 부활하신 예수의 이야기다.

우리 역시 다메섹 외곽의 이 길에서 성 바울의 발자취를 따라 걷기 시작해야 한다. 바울은 어렸을 때 다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주했다. 하지만 바울은 이 초기의 삶을 전혀 참된 삶으로 여기지 않았다. 여러 해가 지나서 그는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이라고 말했다(빌 3:7). 무엇이 그를 변화시켰는지 이해하고자 한다면 바로 여기 다메섹 인근의 교역로에서 시작해야 한다. 정말 이상한 곳이지만, 그 누구보다 바울이 그렇게 하는 데 동의했을 것이다!

이방 땅 안의 식민지


주후 1세기 무렵 다메섹은 수리아 배경을 지닌 사람들뿐 아니라 많은 헬라인과 유대인의 거주지가 되었다. 주후 1세기에 이곳에는 꽤 큰 규모의 유대인 거주지가 존재했다. 이곳은 자연스럽게도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파하기 원했던 예수의 첫 제자들과 (이 전염성이 강한 새로운 종파를 제어하기 바랐던) 바울 모두가 처음으로 선택했던 곳이다.

놀라운 점은, 예수에 관한 메시지가 이미 다메섹까지 전해졌다는 사실이며, 또한 그 소식이 다시 예루살렘에 알려졌다는 사실이다. 예수에 관한 메시지가 이렇게 급속도로 퍼졌다는 것은 예수의 부활에 대한 추가적인 증거가 된다. 그저 십자가에 달려 죽은, 따라서 실패한 메시아에 관한 메시지였다면 다메섹의 유대인 거주지에 정착해 사는 사람들이 이를 열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가 단지 거룩하고 위대한 선생일 뿐이었다면, 그래서 어떻단 말인가? 예수가 메시아라는 메시지가 갑자기 완전히 새로운 차원을 갖게 된 이유는 오직 부활 때문이었다.

계시의 순간


누가는 바울이 다메섹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세 차례나 흥미진진하게 서술한다(사도행전 9장. 22:5~11.26:11~18). 그리고 각각의 이야기 안에는 이 사건의 핵심을 이루는 동일한 대화가 포함되어 있다. 그 목소리는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라고 말한다. 바울은 “주여, 누구시니이까?”라고 묻는다. 그리고 예수가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라고 답하신다. 이 대화는 남은 평생 바울의 기억 속에 깊이 새겨졌다. 모세가 불붙은 떨기나무에서 자신의 이름을 ‘나는 나다‘라고 알려주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만났던 것처럼(출 3장), 바울은 정오의 태양 아래에서 - 하지만 이번에는 예수를 통해 그분을 만났다.

모세가 이 만남을 통해 박해받는 하나님의 백성을 구해내고 그들을 해방시키라는 새로운 사명을 부여받은 것처럼, 바울도 며칠 후 다메섹에서 아나니아를 통해 새로운 책무를 부여받는다. 바울은 자신이 이방인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전하기 위해 선택받은 그분의 도구(그릇)임을 알게 된다(행9:15). 이를 통해 바울은 자신이 과거 바로처럼 제일의 박해자 역할을 하는 것을 중단해야 하고, 예수의 백성이 참으로 하나님의 백성이며, 모든 곳에서 사람들이 참된 자유를 경험하고자 한다면 그가 예수에 관한 이 메시지를 선포함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갈라디아서 1장 15~16절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었던 이 사람은 이 급진적인 새 메시지를 이방인들에게 전하는 데 역설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 유대교 신앙에 깊이 몰두해 있던 사람만이 신학적인 민첩성과 필수적인 권위를 가지고 이방인들을 아우를 수 있도록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왔다고 선언할 수 있었다.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고린도전서 15장 9~10절

더 개인적인 차원에서 바울은 자신이 대단히 잘못 이해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의 종교적인 “열심”이 잘못된 것이었고, 율법에 대한 그의 헌신이 그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었으며,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심각한 죄인이었고, 이제 예수를 따르는 것이 그에게 최고의 목표가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깨어진 다음 개조되었다. 그는 겸손해진 다음 높이 들림을 받았다. 그는 받을 자격이 없으며 기대하지 않았던 ‘은총’에 관해 말했다. 나중에 이 사건을 설명하는 바울의 말 역시 이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디모데전서 1장 13~15절

다메섹을 떠나


순식간에 바울의 삶이 완전히 뒤집혔다. 한 방향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던 그는 다음 순간 벽에 부딪쳤고 정반대 방향으로 달리게 되었다. 우리는 이튿날 일시적으로 눈이 먼 바울이 다메섹에서 침대에 누워 이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다. 놀랍지 않게도 우리는 그가 “기도하고 있었다는 말을 듣는다(행 9:11).” 그는 이 모든 것을 소화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로마화된 성벽도시 안에는 중심 대로가 있었다. 통상 카르도(대로)라고 부르는데, 다메섹 성의 지명을 표기하면서는 ‘직가’로 적고 있다. 며칠이 지나 아나니아는 용감하게 ‘직가’ 어딘가에 머무르고 있는 바울을 찾아갔다. 바울은 곧 시력이 회복되었으며, 성령을 받고 회당에서 설교했다(행 9:18~22). 그리고 예상할 수 있듯이 일부에서는 심지어 그를 죽이려고 했다. “그의 제자들이 밤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 내리니라(행 9:25).”

결국 그의 고향 다소로 피신했던 이 사건은 그가 하나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하시는 과정의 일부로 이해한 사건이기도 했다. 3년 후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메섹을 다시 방문한다(갈 1:18). 그 후로 다시는 그곳에 갈 수 없었지만, 바울은 틀림없이 다메섹 -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힘에 의해 가던 길을 갑자기 멈춰야 했던 예상치 못했던 장소 - 에 관해 자주 생각했을 것이다.

오늘날의 다메섹


다메섹은 세계에서 거주민이 있는 가장 오래된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안티 레바논 산맥에서 발원한 강이 흐르고 사막의 가장자리에 자리 잡은 비옥한 오아시스인 이 도시의 입지 덕분에 일찍부터 사람들은 이곳에 정착했다. 그래서 20세기까지 다메섹에 접근할 때 거의 모든 방향에서 환영하는 풍경 - 사막의 단조로운 갈색을 대체하는 초록색 - 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전반적으로 콘크리트 블록으로 만든 수많은 건물과 고층 아파트로 가득한 도시라는 느낌을 받는다. 나무가 늘어선 초원은 건물과 도로로 대체되었다. 악취를 풍기며 오염된 바라다강이 구시가의 북쪽을 따라 흐르고 있다. 다메섹의 예전 모습을 보고 싶다면 까시윤산 위로 올라가야 한다. 그곳에서 보면 무질서하게 퍼져나간 도시 사이로 여전히 한두 곳의 과수원과 공원을 볼 수 있다. 이 도시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화창한 봄날에도 헐몬산의 눈이 멀리 느껴지지 않는다. 구시가는 향신료 시장, 좁은 골목, 역사적 예배 장소, 여덟 개의 성문이 있는 오래된 성벽이 있는 참으로 인상적인 도시다. 19세기에 몇몇 곳에서 구시가의 성벽이 무너져 내렸고, 이로 인해 자동차가 제한적으로 내부로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구시가의 중심가는 여전히 ‘직가’ - 바울이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머물렀을 때처럼(행 9:11) - 라고 불린다.

Key Note - 후대 기독교 사상에서 바울의 회심


최근 바울 학자들은 바울의 회심을, 괴로워하며 의심을 품고 있던 그의 영혼이 절망적으로 보였던 문제에 대해 갑작스러운 해법을 발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지 질문을 던져왔다. 교회의 위대한 두 신학자인 아우구스티누스(주후 354~430)와 루터(1483~1546)는 모두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와 마주함으로써 삶이 변화되기 전, 오랫동안 자신에 대해 의심하는 시간을 보냈다. 바울도 그런 경험을 했던 것일까? 바울도 율법이 자신을 의롭게 만들 수 없고 그의 죄를 드러낼 뿐이라고 생각해서 율법을 비판하게 된 것일까? 하지만 흥미롭게도 그의 이전 삶에 관한 언급은 이런 식의 재구성을 강력히 반박한다. 그는 자신이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였다고 말한다(빌 3:6). 그는 내적 불안감이나 절망감 때문에 그리스도께 달려가 그분 안에서 해결책을 발견했다고 볼 수 없다. 그는 그 반대 방향을 향해 전속력으로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그는 그리스도께서 제시하신 ‘해법’에 마주했을 때 비로소 자신이 어떤 ‘곤경’에 처해 있는지 깨달았다. 이 곤경은 자신의 전적인 무지나 불신앙(딤전 1:13)일 뿐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의 곤경이기도 했다. 하나님의 언약적 목적이 이스라엘의 메시아의 십자가 죽음을 뜻한다면 분명히 뭔가가 근본적으로 잘못된 셈이다. 그는 엄청난 학식에도 불구하고 히브리 성경 안에 ‘계시된 계획’을 전적으로 ‘놓친’ 셈이다. 바울은 그리스도께 이끌려 백지상태에서 모든 것을 재평가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이 기각되는 것은 아니다. ‘회심’이라는 단어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이유는, 이 말이 바울이 전에 믿었던 모든 것을 버렸음을 암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의 근본적인 틀은 절대로 바뀌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이스라엘의 언약의 하나님을 열렬히 믿었고 우상 숭배에 철저히 반대했다. 새로운 것은 이 틀 안에 담긴 내용 - 하나님의 성령과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라는 실체로 채워졌다.



다소



고향에서의 성찰


바울은 회심 후 약 3년이 지났을 때 다메섹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당연히 기독교 신자들은 바나바라는 사람이 바울을 옹호하고 나서며 그를 사도들에게 소개할 때까지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바울이 헬라어를 사용하는 회당에서 설교하기 시작했을 때 이는 유대인들 사이에서 소동을 일으켰고, 그 때문에 그는 서둘러 가이사랴로 내려가 거기에서 고향인 다소에 가기 위해 배를 탄다.

다소 : 바울의 고향


다소는 소아시아의 남부 해안에서 중요한 항구였다. 이 도시는 바다에서 시드누스(Cydnus)강을 따라 몇 km 들어간 내륙에 있다. 구약의 ‘다시스’가 다른 어딘가를 지칭한다면 바울의 고향인 다소는 이전 성경 이야기에서 전혀 등장하지 않은 셈이다. 그러나 이 도시는 그 나름대로 중요한 역사가 있었다. 셀레우코스 제국의 중요한 도시였고, 로마의 길리기아 속주 내에서 지역 수도가 되었으며, 알렉산드로스대왕, 율리우스 카이사르,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클레오파트라와 같은 인물들이 이곳을 방문하기도 했다. 다소는 내륙으로 들어가는 상인들과 여행자들에게 중요한 관문 도시였다.

개인적 성장과 성찰


바울은 이 숨겨진 시기 동안 무엇을 했을까? 아마도 이때 그는 장막 만드는 일을 시작했을 것이다. 그가 새로운 메시아 종파의 추종자로 고향에 돌아왔을 때 그의 부모가 그에게서 상속권을 빼앗았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곧 독립적인 수입원을 마련해야 했을 것이다. 나중에 바울은 신자들이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자신의 육체노동을 본보기로 제시하면서 자신이 사람들에게 재정적인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 시기 바울의 일차적인 목표는 그저 더 깊이 생각하고 기도하며 앞으로 자신 앞에 놓인 중요한 여정을 위해 자신에게 필요한 개인적, 영적 자원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 기간에 다소에서 일어난 한 가지 사건 - 바울이 나중에 고린도후서에서 묘사했던 신비 체험 - 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그는 이 경험을 익명의 한 사람이 체험한 것처럼 묘사하지만, 그 익명은 바울 자신을 가리킴이 분명하며 이를 통해 이 기간에 그의 기도 생활이 어떠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고린도후서 12장 2~4절

이런 경험은 미래에 대한 바울의 결심을 강화해주었을 것이다. 또한, 다메섹 도상에서 정확히 어떤 가르침을 받았는지도 점점 더 분명히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갑작스럽게 순간적으로 일어난 사건으로서, 새로운 그리스도 중심적 세계관의 중요한 구성 요소를 집약적으로 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바나바가 그를 안디옥으로 불렀을 무렵 바울의 생각과 마음을 사로잡고 있던 핵심 사상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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