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비전에 인생을 싣다

전성민, 유경상, 양승훈 지음 | 도서출판CUP


비전에 인생을 싣다

전성민 · 유경상 편집

도서출판CUP / 2022년 6월 / 268쪽 / 12,000원





1부 양승훈이 말하다



마지막 부름을 따라 에스와티니로 갑니다


예언적 파송:
존경하는 동역자님들께, 이미 알려드린 대로 저는 금년 9월부터 아프리카의 에스와티니기독의과대학교(Eswatini Medical Christian University, EMCU)에서 섬기게 됩니다. 지난 두어 달 동안 EMCU 사역을 준비하면서 저는 오래전인 1997년 12월 7일 서울 승복교회에서 열린 파송식에서 받은 파송패를 다시 한번 찬찬히 들여다보았습니다. 당시 저를 밴쿠버로 파송하셨던 기독학술교육동역회의 문선재 이사장님은 아쉽게도 2018년에 소천하셨지만 파송패의 내용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파송의 의미를 되새겨보았습니다.

이 파송패는 24년 전, VIEW 설립을 위해 파송을 받으면서 받은 것인데 이번 EMCU 사역과 관련해서도 예언적 내용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한국에 훌륭한 기독교대학을 만들어보자는 마음으로 몇몇 친구들과 더불어 1981년 3월에 기독교대학설립동역회(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전신)라는 모임을 만들고 기독교대학과 관련된 준비 활동들을 하였습니다. 학술지 <통합연구>도 창간하고, 통합연구학회도 만들고, 도서출판CUP(Christian University Press) 출판사도 만들었습니다. 당시에 제가 출간했던 『예수님이 주인이 되시는 새로운 대학』(도서출판CUP, 1993)이라는 책은 부족하지만 훌륭한 기독교대학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한 나름대로의 생각들을 정리한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대학을 만드는 것은 몇몇 학자들의 열정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님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우리에게 주어진 비전은 훌륭한 기독교대학이 아니라 기독교 세계관대학원을 만들어서 다른 기독교대학들이 훌륭한 기독교대학으로 발전해 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는 동역회 사역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면서 저는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VIEW)을 시작하기 위해 밴쿠버로 떠났습니다.

밴쿠버에 간 후에는 VIEW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데 집중하면서 동역회가 좋은 기독교대학을 만들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는 중단했습니다. 지난 24년 동안 캐나다의 대표적 기독교대학인 트리니티웨스턴 대학 캠퍼스에서 VIEW를 운영하면서 기독교대학과 관련된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기독교 대학의 이념과 실제를 탈고하기도 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기존의 기독교대학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더 이상 기독교대학을 만들어서 운영하는 것은 저에게나 동역회에 주신 비전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런데 작년 후반기부터 몇 달 동안 EMCU 사역과 관련한 논의를 진행하면서 저는 오래전에 기도를 중단했던 기독교대학에 대한 비전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파송패에 적힌 내용 중 “내가 말하였은즉 정녕 이룰 것이요 경영하였은즉 정녕 행하리라.”는 이사야서의 말씀과 “우리는 비록 잊을지언정 하나님께서는 잊지 않고 그 약속을 이루십니다.”라는 구절이 뼈를 때렸습니다. 나는 다 잊어버렸는데…아마 소천하신 문선재 이사장님도 이 파송패의 의미를 다 아시지는 못했으리라 생각됩니다.

아프리카로 떠나면서:
1997년 11월에 저희 가족이 밴쿠버에 왔으니 캐나다에 온 지 벌써 24년째를 맞고 있습니다. 흰머리가 없었던 40대 초반에 밴쿠버에 왔는데 어느새 65세를 지났습니다. 1983년 9월, 27세의 나이로 경북대 조교수로 부임하여 강의를 시작한 이후 경북대에서 14년,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VIEW에서 24년을 근무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난 2021년 3월 19일 오후, SCS 501 ‘기독교와 환경문제’ 과목의 필드트립을 마지막으로 현역으로서 VIEW 강의를 마무리했습니다. 이제 저는 8월 31일부로 VIEW 전임교수직에서 물러나 시간강사로서 필요할 때 일부 강의만 할 예정입니다.

창립해서 20여 년간 원장을 맡았던 VIEW 사역에서는 이미 2018년에 신임원장을 세워서 리더십을 물려주었습니다. 제가 2007년에 창간한 학술지 <창조론 오픈 포럼>은 이번 8월까지만 제가 편집장을 하고 그 후에는 다른 편집장을 세워서 편집 책임을 넘기기로 했습니다. 제가 1988년에 창간했다가 2018년에 편집장을 맡았던〈통합연구> 역시 금년 11월부터 새로운 편집장 체제로 출발하게 됩니다. 2010년에 창립한 쥬빌리교회는 8월 31일부로 담임목사직에서 물러날 예정입니다.

제가 그동안 맡았던 직책들에 더하여 저의 분신과도 같았던 많은 연구자료들도 대부분 흩어 기증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1980년 8월, 한국창조과학회 창립준비위원회 참여를 시작으로 지난 40년간 창조론 연구에 매달렸습니다. 창조론 운동에 참여한 지 오래지 않은 1981년 1월, 저는 창조론 연구는 인생을 걸 만한 연구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언젠가 준비가 되면 제대로 된 창조론 연구서를 출간해 보고자 하는 ‘야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야심이 2011년에 출간한 다중격변창조론을 시작으로 일곱 권의 창조론 대강좌 시리즈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저의 창조론 연구가 마무리되어감에 따라 저는 지난 1~2년간 제가 소장한 많은 창조론 자료들(화석, 책, 학술지, 각종 모형, 포스터 등)은 마침 대전에 있는 침례신학대학교로부터 제가 기증하는 자료들을 기초로 창조신학박물관을 만들겠다는 제안을 받게 되었고, 저는 흔쾌히 저의 모든 창조론 자료들을 기부하기로 했습니다. 나머지 영어책 1,500여 권은 에스와티니기독의과대학교 도서관에 기증했습니다.

저의 인생 시간표를 살펴보니 이제 이 자료들은 저보다 더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넘겨주어야 할 때가 된 것이 분명합니다. 사랑하고 베푼 것만 남는다는 이 평범한 진리를 이제야 조금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의 품을 떠난 모든 자료들이 후학들의 연구와 교육을 위해 귀하게 사용되기를 기대합니다.

에스와티니기독의과대학교(EMCU) 사역:
선생과 학자, 목회자로서의 삶을 정리하면서 이제 저는 저의 인생에서 마지막 하나님의 부름이라 생각되는 바에 순종하고자 합니다. 8월 23일, 아내와 더불어 EMCU에 가서 대학행정 책임자로 섬기려고 합니다. 에스와티니는 남아공 내에 육지섬처럼 존재하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작은 나라이자 유일한 절대왕정 국가입니다. 총 116만의 인구에 경상북도보다 작은 국토를 가진 나라입니다.

이 나라의 가장 큰 당면 과제는 국민의 25% 이상이 후천성면역결핍증(AIDS/HIV)에 감염되어 있고, 감염자들 중 80%가 결핵에 감염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국민들의 평균수명이 60세가 채 되지 않고, HIV 감염으로 인한 고아들의 수가 전체 인구의 10%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런 곳에서 EMCU는 그 나라의 첫 의과대학이자 유일한 의과대학이기 때문에 국가적인 관심이 지대합니다. EMCU는 36년째 남부 아프리카에서 사역하고 계시는 아프리카대륙선교회 ACM 김종양 선교사님이 개미 군단 후원자들을 모아서 2013년에 설립한 신생 기독교대학입니다. 현재 940여 명의 학생들이 7개 학과(약학과, 간호학과, 임상병리과, 방사선과, 심리학과, 사회복지학과, 정보통신기술학과)에 재학하고 있고, 곧 의학과가 시작되면 8개 학과가 됩니다. 현재 82명의 교직원들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EMCU는 2018년에 첫 졸업생을 배출한 이래 금년 4회까지 총 6백여 명의 졸업생들을 배출하였습니다. EMCU가 남부 아프리카의 의료와 선교의 허브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2부 양승훈을 말하다



그리스도의 친구, 나의 동역자 양승훈 박사 / 전광식 _전 고신대학교 총장


이번 학기에는 신입생들에게 철학개론 과제를 내주면서 ‘나의 인생 재산목록 일곱 가지’를 적어보라고 했다. 어쩌면 이런 자기성찰적인 주제를 가지고 고민해 보는 것이 이 수업에 걸맞고 학생들에게 도전도 되고 더 철학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면서 이 질문을 내 자신에게 던져보았다. 과연 내 인생의 재산목록 일곱 가지는 무엇인지, 그리고 나의 지나온 삶의 여정에서 의미 있고 중요했던 일곱 명의 사람을 꼽으라면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아도 내 스스로가 선호했던 것은 강의와 설교, 학교행정 등 다소 번잡한 인간관계들을 형성할 수밖에 없었던 ‘활동적인 삶(vita activa)’의 겉 삶과 달리, 고독을 즐기고 자연 속의 몰입 등을 좋아하는 ‘명상적인 삶(vita contemplativa)’의 속 삶이었기에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떠오르지가 않는다. 그래도 걸어온 나날들을 반추해보면 내 삶에 이런저런 발자국을 남긴 이들이 몇몇 떠오르는데, 그중에 한 사람이 바로 양승훈 박사이다.

밀레니엄이 끝나는 해였던 1999년, 양 박사는 그의 가장 중요한 책 한 권을 내는데, 바로 『기독교적 세계관』(도서출판CUP, 1999)이다. 나는 이 책의 추천사를 쓰면서 그의 ‘인생의 계절은 가을이 아니라 봄’이기에 그가 ‘열매를 추수하는 기쁨보다 씨앗을 뿌리는 수고를 해야 한다’고 적었는데, 세월의 흐름이 그렇듯 그에게도 어느새 가을이 왔다. 그가 봄날의 수고와 희생으로 뿌린 기독교 세계관 운동의 파종 작업은 이제 세상 곳곳에서 크고 많은 열매들로 맺히게 되었는데, 그의 풍성한 인생 광주리를 바라보면서 ‘나의 동료, 나의 친구, 나의 가까운 친우(시 90:10)’로 지내온 그의 관계들에 대한 몇 가지 개인적인 소회들을 끄적여 보고자 한다.

첫째, 양 박사는 무엇보다 먼저 신앙의 동지였다. 내가 그를 만났을 때, 그는 물리학자요 자연과학자였고, 나는 형이상학자요 신학자였다. 또한 그는 과수원 밭을 가꾸는 등 스스로는 농부티를 내어도 영락없이 유복한 집안 출신답게 도회적 세련미를 잔뜩 풍긴 데 비해서, 나는 공부한답시고 독일이며 영국이며 누벼도 그의 표현처럼 ‘지리산 산중에서나 만나볼 수 있는 흙 내음이 물씬 나는’ 숨길 수 없는 촌부였다. 그리고 신앙의 컬러에 있어서는 나는 무지한 자들에 의해 율법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의 엄격한 보수적 신앙 행태와 개혁주의 신학을 고수한 데 비해, 그는 비교적 포용성이 있는 복음주의적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이렇게 전공이나 모습, 그리고 신앙 내지 신학의 색깔에서 어울리기 어려운 이런 우리가 서로를 신뢰하고 오랜 세월 동안 관계를 이어오게 한 근거에는 그래도 우리가 공유하고 있던 말씀 중심적 신앙과 우리가 추구했던 경건한 인격 및 삶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와 나는 한국 교회가 보이고 있던 개인주의적 신앙, 형식적 교회생활, 이원론적 삶, 그리고 교회의 세속화 등에 대한 비판적, 반성적 시각을 가지고 있었고, 철저히 복음의 원리와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데에 깊이 공감하고 있었다. 특히 우리가 갖는 회합들은 한결같이 지성적이고 학문적인 모임이었지만, 만날 때마다 매번 합심기도와 말씀묵상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정도로 영적 갈급함과 간절함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그는 정말 예수쟁이였다.

둘째, 양 박사는 기독교 세계관 및 학문 운동의 동반자였다. 주지하는 바대로 한국에서의 기독교 세계관 운동과 학문 운동은 1980년대 중반부터 기독교 학자들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운동들은 기독교대학설립동역회(이하 ‘기대설’)와 기독교학문연구회(이하 ‘기학연’)가 주축이 되어 전개되었는데, 전자는 대구와 부산 등 지방을 중심으로 주로 카이스트 출신의 과학자들에 의해, 후자는 주로 서울에 있던 기독교 인문학자들에 의해 진행되었다. 특히 기대설을 이끌고 있던 사람이 바로 카이스트 출신의 물리학자면서 당시 경북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양 박사였던 것이다. 한국에서 기독교 세계관 및 대학 설립운동은 그를 빼고는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양 박사는 이 분야의 진정한 선구자요 선도자였다.

당시 신학계에 속해 있었던 나는 지방에 있다가 독일로 유학을 떠났기에 애당초 이런 운동들을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같은 교단 내의 후학으로 당시 기대설 간사를 맡고 있던 현 경북대 문계완 교수가 연락이 와서 한국에서 이런 운동이 일어났으니 참여했으면 하고 강력하게 권유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기대설에의 동참을 통해서 귀국 직후 부산 기대설이 주관한 부산 기독교 세계관학교를 맡게 되었고, 장기간 <통합연구> 편집인으로도 봉사하게 되었으며, 나아가 여러 책을 이 기관의 출판사인 도서출판CUP에서 발간하게 되었다.

특히 양 박사는 기대설이 세운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VIEW) 원장으로 가게 되었는데, 나는 1998년 학교 설립 시 그 학교의 첫 강의를 내가 맡는 등 그 이후 무려 십수 년에 걸쳐 매년 두 차례씩 그곳을 방문하여 강의도 하고 양 박사와 많은 교제를 나누곤 하였다. 그리고 기대설 실행위원뿐 아니라,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이하 ‘동역회’)에서도 오랫동안 같이 이사로 봉사하는 등 숱한 세월을 함께 하게 되었다. 양 박사는 대단한 이론을 겸전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 운동에서는 주로 내가 이론가 행세를 했다면 양박사는 실천가였으므로 우리 둘이 이 운동의 이론과 실천의 실제적인 쌍두마차노릇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으로 본다. 하여튼 이런 점에서 그는 정말 열심쟁이였다.

셋째, 양 박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비전의 동역자이다. 양 박사와 대화하거나 교제해본 이들은 누구나 그가 늘 가슴에 새로운 꿈들을 품고 있음을 알게 된다. 양 박사는 범인들은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로 본인의 삶이나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지속적으로 새로운 꿈을 꾸고 비전들을 실천해간다. 카이스트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정말 약관의 나이에 모교인 국립대 교수가 되어서도 대구 시내를 떠나 평광동 시골로 들어가 과수원이 딸린 농가에 살면서 농사를 짓고 살았다.

그리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교수직을 아예 던지고 캐나다로 떠나는 과감한 결단을 한다. 기독교 세계관을 가르치는 좋은 교육기관을 세우기 위해 전 세계를 살핀 후에 캐나다 밴쿠버를 선정하여 그 근교의 기독교 대학인 트리니티웨스턴대학의 ACTS 신학대학원과 협력하여 VIEW를 설립하였던 것이다.

그곳에서도 그저 안주한 것이 아니었다. 기독교 세계관을 가르치면서 동시에 미국 등지에 창조교육프로그램을 진행했고, 쥬빌리채플이라는 교회도 설립했다. 어디 그뿐인가? 이미 카이스트 재학시절인 1981년에 한국창조과학회를 창립하였고, 그 후 기대설 중심의 기독교 세계관 운동을 하면서도 제 학문 분야를 성경의 진리 위에 구축하려는 학술단체인 통합연구학회도 만들고 학술지 <통합연구>를 간행하였다. 나아가 출판사 도서출판CUP 설립, 기독교대학설립의 비전 및 운동, 지역교회를 통한 기독교 세계관운동의 보급과 확산, VIEW 운영을 통한 제자들 배출, 기학연과의 통합을 통한 기독교학술세계관동역회의 구상 등 많은 일들이 대개 그의 비전으로 시작되고 성취된 것들이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그의 이런 다채로운 비전들과 사역에 나는 줄곧 동행하면서 마음과 뜻을 같이하고 같은 걸음으로 헤쳐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누구보다 가까이 지켜보면서 그가 진정한 꿈쟁이라는 것을 거듭거듭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사역의 동반자로 살아오다가 근년에 이르러 내가 학교 행정을 맡는 등 나름대로의 분주한 삶으로 우리가 이전처럼 종종 만나지 못하고 그에 대한 소식도 뜸하게 듣고 있었는데, 어느새 은퇴라고 하니 우리가 헤쳐 온 지난 세월이 그야말로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시편에서 모세가 고백한 대로 그야말로 ‘신속히 날아가는’(시 90:10) 것이 우리의 인생인 듯하다.

하지만 주님께서 주신 생명의 길이를 보면 아직도 갈 길이 요원하니 나는 그가 주님 앞에 서는 그 순간까지 그간 살아온 방식대로 한결같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로지 주님만 따르는 예수쟁이, 복음과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에는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놓는 열심쟁이, 그리고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청년처럼 꿈꾸다가 가는 꿈쟁이가 되길 바래본다. 나 역시 그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흉내 내고 싶을 뿐이다. 이렇든 저렇든 순례자의 길에 이런 좋은 벗을 만나게 되었으니 또한 기쁘지 않겠는가(不亦說乎), 세월이 흘러도 한결같은 그의 모습을 보니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不亦樂乎)?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