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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발자취를 따라서

피터 워커 지음 | 도서출판CUP


예수의 발자취를 따라서

피터 워커 지음

도서출판CUP / 2022년 9월 / 528쪽 / 25,000원





베들레헴



초라한 시작


이곳은 동쪽으로 사막이 내려다보이는 모서리가 둥근 언덕 위에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10㎞ 떨어져 있는 이 마을은 언덕 능선을 따라 나 있는 오래된 ‘족장의 길’ - 북부의 세겜에서 남부의 헤브론까지 이어지는 ? 로 여행하는 이들이 자주 들르는 곳이었다. 이 마을의 이름인 베들레헴은 ‘빵집’이라는 뜻이다. 정말이지 여행하다가 멈추어서 필요한 물품을 얻기에 좋은 곳, 밀밭과 경작지로 둘러싸인 곳이었다. 바로 이 작고 오래된 마을에서 예수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어떤 의미에서 그의 이야기는 이미 오래전 다른 곳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곳이 바로 그분이 ? 주전(BC) 5년 무렵에 ? 태어나신 곳이었다.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 - (미가 5장 2절을 인용하는) 마태복음 2장 6절’

주전 베들레헴:
이 사건 덕분에 자그마한 베들레헴은 그 크기에 전혀 걸맞지 않은 명성과 중요성을 얻는다. 하지만 그 나름대로 흥미로운 역사가 있었다. 다음과 같은 구약의 주요 인물 이야기 몇 가지가 베들레헴과 연관이 있다. ① 야곱과 그의 가족은 (베델에서 마므레까지) ‘족장의 길’을 따라 여행했다. (에브랏이라고도 알려진) 베들레헴에서 가까운 곳에서 그의 아내 라헬이 베냐민(‘내 오른손의 아들’)을 낳다가 죽었다. 그녀는 그곳에 묻혔으며 기둥을 세워 그녀의 무덤을 표시했다(창 35:16~20).

② 룻기의 이야기도 이곳을 배경으로 삼는다. 룻은 원래 (동쪽에 있는) 모압 출신이지만, 결혼해 히브리인 가정에 속하게 되었다. 남편이 죽었을 때 그는 슬픔에 잠긴 시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나오미의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갔다. 여기서 그는 나오미의 친척인 보아스를 만나 그와 결혼하고 다윗 왕의 증조할머니가 되었다(룻 1~4장). ③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예언자 중 한 사람인 사무엘은 이새라는 사람의 가족을 만나기 위해 베들레헴을 찾아왔다. 그는 이새의 막내아들 다윗에게 기름 부어 사울을 이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웠다(삼상 16:1~13).

④ 다윗의 말년에 베들레헴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점령을 당했고, 다윗은 베들레헴 우물에서 길어온 물을 마시고 싶다고 했고, ‘세 용사’가 몰래 물을 길어왔지만, 그는 그 물을 마시기를 거부하고 대신 하나님께 바쳤다(삼하 23:13~17). ⑤ 그 후로 베들레헴은 다윗과 연관되었으며, 하나님이 다윗과 같은 왕을 보내실 것이라는 기대가 커짐에 따라 예언자 미가는 베들레헴이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곳에서 ‘그의 근본’이 ‘상고에’ 있는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나올 것이라고 예언했다(미 5:2~4).

예수가 이 마을에서 태어나신 것은 적절했다. 성경 속에서 베들레헴은 이미 위험(라헬에게, 다윗의 부하들에게)과 기쁨(베냐민의 탄생, 다윗의 기름 부음, 메시아에 대한 소망을 위한 초점)의 공간이었다. 두 아들이 모두 죽었을 때 (‘복’을 뜻하는) 나오미는 (‘쓰라림’을 뜻하는) ‘마라’로 불리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의 쓰라림은 기쁨으로 변했다. 누가는 예수의 탄생을 ‘큰 기쁨’으로 보지만, 이 기쁨은 고통으로 제어될 것이다. 그분의 탄생에 대한 반응으로 헤롯은 무고한 아이들을 살육한다(마 2:16~18). 그리고 조금 지나 누가의 이야기에서 마리아는 이 아이의 삶이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할’ 것이며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할 것이라는 말을 듣는다(눅 2:34~35).

둘째, 베들레헴은 한때 목동이었던 위대한 통치자 다윗 왕의 고향으로 기억되는 장소다. 이제 목자들은 ‘다윗의 동네’로 가서 예수를 보라는 말을 들으며, 나중에 신약에서 그분은 참된 ‘다윗의 자손’, 기다려온 메시아, ‘위대한 목자’로 묘사될 것이다. 셋째, 베들레헴은 이미 신적인 역전과 연관된 공간이었다. 하나님이 놀랍게도 다윗을 형들보다 더 높이셨을 때 그는 아직 아이였고 막내아들이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을 택하실 때 인간의 기대를 뒤엎으셨다. 인간은 겉모습을 보지만, ‘여호와는 중심을 보신다’고 성경의 저자는 논평한다(삼상 16:7). 그 논평은 예수에게도 적용된다. 그분은 작은 마을에서 초라한 모습으로 태어나셨지만, 온 세상이 여기서 태어나신 분을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겸손히 세상으로 오심:
누가복음은 예수가 겸손한 모습으로 태어나셨음을 강조한다. 그의 이야기에서 예수를 처음 방문했던 사람들이 동네의 목자들이라는 것은 놀랍지 않다. 대조적으로 마가복음의 저자는 예수가 왕으로 태어나셨음을 강조함을 느낄 수 있다. 마태가 언급하는 (훨씬 더 나중에 도착했을 ? 헤롯은 2살 미만의 모든 아이를 학살하라고 명령했기에) 방문자들은 더 이국적이다. 그들은 황금과 유향, 몰약이라는 왕에게 걸맞은 선물을 들고 ‘유대인의 왕’을 찾아온 신비로운 동방의 박사들이다.

누가 역시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분명 밝히고 있다.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는 천사들의 등장을 통해 예수의 탄생이 다른 어떤 탄생과도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탄생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 아기는 하나님이 세우신 ‘구원자’이시다. 이방인인 누가에게 복음이란 그분이 단지 유대인의 메시아(‘그리스도’)이실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복과 ‘땅 위의 평화’를 전해주기 위해 오시는 ‘주’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사건은 가이사 아구스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벽지에서 일어난 보잘것없는 사건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가는 독자들이 예수가 온 세상의 참된 주이심을 깨닫기를 원한다. 이것은 거대한 규모의 신적 역전이 될 것이다. 다른 신약 저자들이 말하듯이 이 아기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친히 인간의 형상을 입고 그분이 창조하신 세상 안으로 들어오시는 것을 본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요 1:14). 이렇게 베들레헴은 영원이 시간 안으로 들어오고 창조주가 창조된 세계 안으로 침투해 들어오신 공간이다. 캐럴의 가사처럼 작고 보잘것없는 장소가 그 ‘어두운 거리’에서 ‘영원한 빛’을 비추고 있다(“오 베들레헴 작은 골”의 원곡 1절 가사).

오늘날의 베들레헴


배경 정보:
오늘날 베들레헴은 계획성 없이 퍼져 있는 아랍 마을로, 서쪽으로는 벳잘라(Beit Jala)와 동쪽의 사막 방향으로는 벳 사후르(Beit Sahour) 마을과 맞닿아 있다.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10㎞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이제는 팔레스타인의 고립된 영토가 된 지역으로 들어가기 위해 검문소를 지나야 한다. 그래서 이곳까지 가는 데 긴 시간이 걸린다. 2004년에 건설된 ‘보안’ 벽이 현재 유대인과 아랍인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을 강력하면서도 슬프게 전하고 있다. 베들레헴은 방문자들에게 완벽히 안전한 곳이며, 당신의 방문은 이 지역의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큰 격려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 지역 안에 존재하는 긴장도 경험할 것이다. 오늘날 ‘베들레헴 작은 골’에 실제로 사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그곳에 방문한 주된 내용이 될 수도 있다. 예수가 정치적으로 긴장된 상황 속에서 태어나셨다면, 우리도 우리 시대에 그런 긴장을 경험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볼 만한 유적지:
방문할 만한 세 지역이 있다. (사해 방향으로 베들레헴에서 남동쪽 5㎞ 떨어져 있는) 헤로디움, [베들레헴에서 동쪽으로 3㎞ 떨어져 있으며 현재는 벳사후르(Beit Sahour)의 주거 지역인] 목자들의 들판 지역, 구유 광장과 예수 탄생 교회를 중심으로 한 베들레헴 자체다.

Key Note - 베들레헴의 히에로니무스


베들레헴에 거주한 것으로 잘 알려진 사람으로 히에로니무스가 있다. 위대한 고전문헌학자였던 그는 주후(AD) 384년에 로마에서 출발해 팔레스타인으로 여행했다. 이 시기에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성지를 방문했고, 그중 다수는 그곳에서 지내기로 했다. 그 결과 공부하며 기도하기를 바라는 이들을 위해 여러 수도원 공동체가 세워졌다. 히에로니무스는 베들레헴에 있는 콘스탄티누스의 예수 탄생 교회와 가까운 곳에 자신의 공동체를 세우기로 했다. 곧 파울리라는 여인과 그의 딸인 에우스토키움이 그가 세운 공동체에 참여했고, 두 사람은 히에로니무스를 도와 중요하며 존경받는 공동체를 건설했다.

히에로니무스는 성경의 신구약을 라틴으로 번역한 것으로 가장 유명하다. 그 전에 서방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헬라어 성경밖에 없었다. 히에로니무스는 베들레헴에 머무는 동안 구약의 히브리어 원문을 연구하고 지역 랍비들의 도움을 얻어 성경 전체를 새롭게 번역할 수 있었다. 그의 작업은 세월의 검증을 거쳐 20세기까지도 로마 가톨릭 교인들에게 권위 있는 성경 번역본으로 인정받았다.

예수 탄생 동굴 근처에 있는 동굴들을 방문하면 히에로니무스가 어떻게 연구했을지 상상해볼 수 있다.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히에로니무스가 이 자리에서 연구했다고 보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귀하게 여기는 사람에게는, 요한복음에서 하나님의 궁극적인 ‘말씀’이라고 부르는(요 1:1) 예수의 탄생지 옆에서 히에로니무스가 이 ‘말씀’을 번역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는 것은 강력한 경험이 될 것이다. 히에로니무스는 파울라가 “주의 동굴 옆에 있는 바실리카 아래에 묻혔다”라고 썼으며 자신의 장지도 이곳에 마련했다. 그들의 무덤은 남아있지 않지만, 이 동굴들 안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 그들은 자신들이 ‘주’라고 여겼던 그분의 탄생지에서 가까운 곳에 묻혔을 것이다.



감람산



예수가 좋아하셨던 곳


예수 시대에 감람산은 그 이름이 암시하듯이 감람나무 숲으로 덮여 있는 언덕이었다. 도로로 베다니에서 감람산 정상까지는 약 20분이 걸렸을 것이며, 거기서 서쪽 능선을 따라 20분 정도 걸어 내려가면 예루살렘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사실 이곳은 (스코푸스산을 포함해) 연속되는 언덕 중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산으로서, 예루살렘과 동쪽의 유대 광야 사이의 보호 장벽을 형성했다.

구약의 감람산:
구약에서 시편 기자들은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언덕에 대해 호의적으로 언급했다.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 (시 125:2). 그중에서 감람산이 가장 높았으며 그 정상은 도시보다 약 90m 더 높았다. 파수꾼들은 이 도시의 성벽에서 적을 감시하기 위해 “산을 향하여 눈을 들었다.” 또한 아침을 기다리는 파수꾼들은 동쪽을 바라보며 여명의 첫 햇빛이 감람산의 정상을 비추기를 기다렸을 것이다(시 121:1, 130:6). 참고로 구약 시대에 감람산은 다음과 같이 다섯 차례만 명시적으로 언급된다.

① 압살롬이 배반했을 때 다윗 왕은 도시에서 도망쳐 울면서 감람산으로 올라갔다(삼하 15:30). ② 개혁적인 요시야 왕은 ‘예루살렘 앞 멸망의 산 오른쪽에 세운’ ‘산당들’ - 솔로몬이 자신의 외국인 아내들의 신들(아스다롯과 그모스, 밀곰)을 위해 세웠던 ? 을 무너뜨렸다(왕하 23:13). ③ 더 긍정적인 면으로 감람산은 붉은 송아지를 제물로 바치는 것과 연관된 정결 예식을 위해 성전 의례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스라엘은 ‘진영 밖’에서 이 특이한 제사를 드리라는 명령을 받았다(민 19:1~10). ④ 에스겔은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을 떠나는 환상을 받았을 때 이 쉐키나-영광이 ‘성읍 가운데에서부터 올라가 성을 동쪽 산에 머무르는’ 것을 보았다(겔 11:23).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이 극적인 환상에서, 감람산은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보였던 하나님의 임재가 그분의 백성을 떠나기 전 ‘마지막 기착지’였다.

⑤ 몇몇 후기 예언자들은 하나님이 일어나셔서 예루살렘 주변의 골짜기와 언덕에 있는 민족들을 심판하시는 것을 묘사했다. 요엘 3장 2절에서는 이 심판이 (나중에 ‘기드론 골짜기’로 확인되는) ‘여호사밧 골짜기’에서 일어난다고 묘사하는 반면, 스가랴는 감람산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이 강력한 환상 때문에 감람산 기슭에 (또한 기드론 골짜기) 유대인들이 시신을 매장하는 관습이 생겨났을 수도 있다. 이곳에 묻힌 사람들은 심판의 날에 하나님께 복을 받는 첫 번째 사람들이 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보호의 장소, 도피와 떠남의 장소, 우상 숭배의 장소, 제사의 장소, 심판과 매장의 장소, 감람산은 예수와 같은 시대에 살던 유대인들의 머릿속에 이런 이미지를 떠올리게 했다.

순례자의 안식:
더 실용적인 측면에서 이곳은 여리고에서 광야를 거쳐 올라온 지친 순례자가 마침내 처음으로 성전을 바라볼 수 있었던 장소였다. 또한 많은 순례자가 묵게 되는 곳이기도 했다. 특히 예루살렘의 인구가 세 배 이상 많아지는 유월절 기간에는 대부분의 순례자가 감람산의 나무 아래에서 잠을 잤다. 베다니와 벳바게를 제외하면 이 산에 세워진 마을이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가 예루살렘을 마지막으로 방문하시는 이야기에서도 감람산이 매우 자주 등장한다.

그분은 실제로 도시의 성벽 안에 계시지 않을 때 (혹은 베다니에서 쉬고 계시지 않을 때) 이곳에 오셨다. 300년이 지나서 에우세비우스는 이곳을 가리켜 ‘그분이 자주 오셨던 산’이라고 말했다(에우세비우스, 『콘스탄티누스의 생애』 3:43). 복음서의 세 사건이 이곳과 관련이 있다. 그분의 예루살렘 입성을 가리키는 ‘승리의 입성’, 성전의 미래에 관해 그분이 몇몇 제자들과 나누신 대화, 산기슭에 있는 감람나무 동산인 겟세마네에서 잡히시기 전에 그분이 마지막으로 기도하신 때다.

겟세마네 - 예수가 마지막으로 고요함을 누리신 곳:
‘겟세마네’에 대해 보다 상세히 살펴보자. ‘겟세마네’는 ‘기름 짜는 틀’이라는 뜻이다. 아마도 이곳은 예수와 그분의 제자들의 지인이 소유한 곳으로서 감람나무 숲과 올리브 기름을 짜는 틀이 있는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언덕에서 야영하던 많은 갈릴리 사람들과 약간 떨어져서 이곳에서 여러 날을 묵었을 수도 있다. 복음서 기자들은 이 시점에 예수가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셨으며’(눅 22:39), ‘그곳은 가끔 예수가 제자들과 모이시는 곳’이었기에 유다도 이곳을 잘 알고 있었다고 말한다(요 18:2).

예수는 제자들에게도 익숙한 곳을 그분이 마지막으로 기도하는 장소로 선택하신 셈이다. 유월절의 보름달이 비추는 가운데 그들은 찬송이나 시편을 부를 때 말고는 암울한 침묵 속에서 상부의 도시에서 최후의 만찬을 마치고 기드론 골짜기로 내려간 다음 다시 겟세마네를 향해 올라갔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으로 나가시니 그곳에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니라”(요 18:1).

우리는 고뇌하시는 예수, 잠든 제자들과 떨어져서 홀로 아버지께 부르짖으며 고통스럽게 기도하시는 분을 본다. 예수가 영광스럽게 변모하시는 것을 보았던 바로 그 세 제자는 이제 (그들이 잠들지 않았을 때) 그분이 깊은 슬픔에 잠겨 있는 것을 본다. 또한 여기서 우리는 예수를 공격하는 내적 질문과 십자가의 필요성이라는 냉혹한 현실을 본다. 그분의 책무를 완수할 다른 방법이 존재했다면 당연히 그 방법을 알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잔’(렘 25:15~16)은 구약에서 ‘주의 진노’를 상징하며, 하나님은 그분의 원수들에게 이 잔을 마시게 하셨다(렘 25:15~16). 이제 예수가 그분을 따르는 이들이 이 심판의 잔을 마시지 않아도 되게 하시려고 이 잔을 마실 것이다.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 - 마태복음 26장 3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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