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학교
게리 토마스 지음 | 도서출판CUP
부부학교
게리 토마스 지음
도서출판CUP / 2022년 5월 / 408쪽 / 17,000원
결혼생활의 변화는 나에게서부터 시작된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존감을 회복하라계산대에 줄을 서서 기다리던 중에 나는 여성 잡지의 표지를 읽었다. 그런데 그 기사들 중에 이런 제목을 옮겨 적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많은 똑똑하고 착한 여자들이 왜 호통만 치는 형편없는 남자를 참고 사는 것일까?” 나는 그것을 보면서 웃었는데, 무엇 때문에 웃었는지 아는가? 유명 남성 잡지에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기사가 실린다는 것은 나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 많은 훌륭하고 점잖은 남자들이 왜 속임수와 조종에 능한 여자를 참고 사는 것일까?” 그런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남자를 미워하는 여자들과 그들을 사랑하는 남자들』 같은 제목의 책을 볼 일도 절대 없을 것이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나는 역사적으로, 신경학적으로, 사회적으로, 성경적으로 이런 주장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여자들은 관계와 결혼에 남자들보다 더 비중을 두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심리학자이자 결혼 및 가정 치료자인 내 친구 멜로디 로드 박사는 이렇게 표현한다. “여자들은 남편에게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에 비하면 남편들은 그냥 그렇다.” 이러한 현실의 뿌리는 인류 최초의 가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세기 3장을 보면 타락 후에 하나님이 하와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는 남편을 원[할]… 것이니라”(창 3:16). 구약 주석가인 카일과 델리취는 이곳에 쓰인 히브리어가 ‘병에 가까운 갈망’을 연상시킨다고 했다. 이 말의 어근에는 ‘지독한 욕구’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여자들 중에서도 이것이 더 심한 사람들이 있다. 최근에 나는 어느 토크 프로그램을 들었는데, 어떤 여자가 전화를 걸어 자기 남편이 4년도 넘게 몰래 바람을 피운 이야기를 했다. 그 남편은 다방면으로 잔혹한 행동을 했다. 예컨대, 정부를 자기 아내한테 소개하는가 하면, 아내가 없을 때 정부를 집에 데려오기도 했다. 그리고 아내의 침대에서 정부와 함께 자기까지 했다.
불륜의 관계는 정부가 죽고 나서야 비로소 끝났다. 그런데 그 전화 통화에서 내가 가장 놀란 게 무엇인지 아는가? 그 아내는 남자 없는 삶에 부딪치는 것보다 그 비열한 남자를 잃는 것이 더 걱정인 듯 보였다. 그 남자는 그녀를 경멸할 대로 경멸했고, 결혼의 친밀함을 짓밟았고, 부부의 침소를 욕되게 했다. 그런데도 그녀는 아침에 그 남자 옆에서 깨어나는 것보다 그 남자 없이 깨어나는 것을 더 두려워했다. 이것을 최근에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지에 실린 문답 기사와 비교해 보라. 다수의 프로 운동선수 남자들에게 ‘달아난 신부’, 즉 결혼식장에 자기를 두고 가버려 일가친지 앞에서 망신을 준 여자를 다시 받아들일 마음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그렇다고 답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남녀가 왜 이렇게 다를까? 정말 여자들이 영적, 정서적으로 더 성숙하여 가정과 더 큰 것을 위해 선뜻 용서를 베풀려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고상하지 못한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어떤 여자들은 자기에 대한 남자들의 호감(수용)으로 자신을 규정지으려는 죄악된 성향에서 좀처럼 벗어날 줄 모르는데, 안타깝게도 어떤 남자들은 고감도의 정신적 레이더로 그것을 포착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여자들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과 성령의 승리하시는 능력에 힘입어 이런 심리적 종속과 파멸에서 해방될 수 있다. 유진 피터슨이 『메시지』에 옮긴 고린도전서 7장의 한 대목을 들어보라. “네가 어디 다른 곳에 또는 다른 사람과 함께 있었으면 하고 바라지 말라. 지금 네가 있는 그곳이 하나님이 너를 두신 자리다. 바로 거기서 살고 순종하고 사랑하고 믿으라. 네 삶을 규정짓는 것은 하나님이지 네 결혼 여부가 아니다”(고 7:17). 당신의 삶을 규정짓는 것은 하나님인가? 그럴수록 당신은 더 성공적으로 남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나약한 여자들은 대개 영향력을 잃기 때문이다.
아주 실제적인 관점에서 생각해 보라. 당신이 별로 존중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 사람이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당신은 크게 신경을 쓰겠는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사람이 어떻게 당신에게 영향을 미치겠는가? 그들의 의사 표현이 분명하고 솔직하고 실제적이라 해도, 그들의 의견이 중요하지 않다면 당신은 어차피 그들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남편이 당신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당신이 하나님의 딸이라는 정체성보다 남편의 수용을 더 우위에 두는 죄를 범한다면, 그런 당신이 어떻게 남편에게 좋은 쪽으로 영향을 미치겠는가?
이번에는 이것을 긍정적인 쪽으로 돌려보자. 당신이 존중하고, 훌륭하게 여기며, 함께 있으면 즐거운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런 사람이 염려하는 마음으로 당신을 찾아온다면 당신은 그들의 말에 각별히 더 마음을 쓰지 않겠는가? 정말 맞는 말일 수도 있으니 귀담아들어야 한다고, 적어도 그런 생각이라도 하지 않겠는가? 물론 그럴 것이다. 남편을 감동시키는 여자가 남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음이 그 때문이다. 나는 어떤 남편이 자기 아내의 사업 수완에 대해 열정적으로 말하는 것을 들었다. 다른 남편은 자기 아내가 똑똑하다고 열변을 토했다. 또 다른 남편은 자기 아내의 영적 성숙과 성경을 이해하는 실력에 대해 말을 그칠 줄 몰랐다. 어느 얌전하고 내성적인 남편은 자기 아내가 친구를 잘 사귄다고 탄복하며 말했고, 또 다른 남자는 자기 아내가 최근에 보여 준 운동 실력에 대해 상세히 말했다.
당신이 몰랐을지 모르지만, 남편들은 아내 자랑하기를 좋아한다. 당신한테는 말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당신의 장점을 유심히 보고 그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하지만 당신의 사업 수완이나 사교성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당신의 영적인 정체성이다. 그것이 당신에게 힘과 자존감을 가져다준다. 결혼생활에서 경건한 변화의 주역이 되려면 그런 힘과 자존감이 꼭 필요하다. 그것은 또한 당신의 남편에게 엄청난 복이 된다. 디모데전서 3장 11절에 보면, 남자가 영적 직분을 얻는 자격에 그 아내가 ‘존중받을 만한’(NIV) 여자라는 항목도 들어있다. 남편에게 영향을 미치려면 우선 그런 여자가 되는 것이 첫걸음이다. 하나님이 본래 창조하신 당신다운 사람, 당신의 영광이 활짝 피어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배우자를 통하여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역사가인 데이비드 맥컬로우는 존 애덤스가 독립전쟁이 한창일 때 그의 아내 애비게일에게 쓴 다음과 같은 놀라운 편지 한 통을 우연히 발견했다. “이번 전쟁에서 우리는 승리를 보장할 수 없지만, 그보다 더 나은 일을 할 수 있소. 우리는 승리에 걸맞은 사람이 될 수 있소.” 나중에 맥컬로우는 또 다른 편지를 읽었다. 이번에는 조지 워싱턴의 편지였는데 똑같은 말이 적혀 있었다. 맥컬로우가 추적해 보니 그 말은 『카토』라는 희곡에 나오는 대사였는데, 미국이 탄생된 배후 정신이 그 말 속에 잘 녹아 있다. 또한 그 말은 오늘의 여자들이 결혼생활을 개혁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맥컬로우는 이렇게 설명한다. “애덤스의 편지에 적힌 이 말은 전쟁의 결과가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그것을 통제할 수 없지만 우리의 행동 방식은 통제할 수 있다. 성공에 걸맞은 사람이 될 수 있다.” 동일한 원리가 결혼생활을 하는 당신에게도 적용된다. 당신은 모든 일의 결과를 보장할 수 없다. 당신이 다른 인간을 통제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그러나 당신은 성공에 ‘걸맞은’ 사람이 될 수 있다. 변화가 거의 일어날 수밖에 없게끔 행동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해 보라. 당신의 남편의 결점들이 당신을 빚으시는 하나님의 도구라면 어떨까? 남편의 모습 중 당신을 가장 괴롭히는 바로 그 점이 당신에게 뭔가 새로운 것을 가르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라면 어떨까? 결혼생활의 변화(남편의 마음을 움직이는 과정)가 당신에게서부터 시작될 수 있음을 당신은 받아들일 마음이 있는가?
“나에게 합당한 사람이 되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혁혁한 전공만큼이나 자존심이 강했는데, 한 편지에 그는 자기 아내를 이렇게 꾸짖었다. “필히 더 강단을 키우시오. 듣자 하니 당신은 늘 울고 있다지요. 창피하게 그 무슨 짓이오! … 나에게 합당한 사람이 되어 체통을 지키시오. 파리에서 당당히 과시하시오. … 당신이 늘 눈물이나 흘리고 있다면 나는 당신에게 용기나 기품이 없다고 여길 것이오. 나는 겁쟁이들을 좋아하지 않소. 황후로서 당찬 모습을 보이시오.” 나폴레옹의 고자세가 다소 껄끄럽고 거슬리긴 하지만, ‘나에게 합당한 사람이 되라’는 흥미로운 경구는 그가 우연히 건져낸 꽤 괜찮은 말이다. 이것이 모든 남편과 아내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남편은 자기 아내에게 ‘합당한’ 사람이 되기를 열망하고, 아내는 자기 남편에게 ‘합당한’ 사람이 되기를 열망해야 한다.
우리 문화가 워낙 잘난 체하는 경향이 있다 보니, 남에게 ‘합당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 꼭 악담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 말은 성경에 더 먼저 나온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는 사람은 그분께 합당하지 않다고 말씀하신다(마 10:38). 바울은 로마 교인들에게 뵈뵈를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영접하라고 당부한다(롬 16:2). 또 에베소 교인들에게는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살라고 권고한다(엡 4:1). 이것은 진지하게 영적인 뿌리를 깊숙이 내리라고, 관계의 기술들을 계속 기르라고 우리에게 주는 경종이다. 우리는 성경을 탐구하고, 지혜에서 자라고, 계속 기도하고, 계속 영적인 통찰을 길러야 한다.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시고 성령이 우리를 변화시켜 주시기에, 우리는 계속 미성숙한 상태로 있을 구실이 정말 없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께 받은 은사들을 온전히 개발하라고 당부한 다음 이렇게 썼다.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딤전 4:15). 바울은 디모데가 다음 사실을 알기를 원했다. “너는 완전하지는 않지만 네 삶의 진보가 사람들에게 나타나야 한다. 5년 후의 너는 지금의 너보다 더 지혜롭고 강하고 성품이 더 성숙해져 있어야 한다.”
아내와 결혼할 때 나는 22살의 미성숙한 청년이었다. 나는 지금의 내가 그때보다는 더 성숙해 있고 더 사랑이 많고 덜 이기적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또한 앞으로 10년이 지나면 그만큼 더 성숙해 있고, 사랑도 더 많아지고, 그만큼 더 친절하고 지혜롭고 덜 이기적인 모습이 되어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물론 이런 성장은 우연히 되지 않는다. 내가(바울의 표현을 빌려)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지 않는 한, ‘나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지 않는 한(딤전 4:16), 그런 일은 없다.
내가 성장하지 않는다면 아내가 나보다 더 성장할 것이다. 나는 리자에게 완벽한 남편은 될 수 없겠지만, 영적으로 게으른 남편이 될 마음은 추호도 없다. 나는 아내에게 ‘합당한’ 사람이 되고 싶다. 끝내 거기에 완전히 도달하지는 못할지라도, 아예 내가 시도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나는 전처럼 날씬해지지도 못할 것이고, 전처럼 머리숱이 많아지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내와 결혼하던 22살 때보다는 성품이 훨씬 뛰어난 남자가 될 수 있다. 이렇듯 당신의 성품이 자라면, 영적인 뿌리를 깊숙이 내리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지혜로 사고력을 기르면, 성령께서 당신의 성품을 변화시키시고 마음을 다시 빚으시도록 해드리면, 그러면 당신은 남편을 몇 번이고 계속해서 당신과 사랑에 빠지게 할 수 있다. 남편은 당신의 존중과 애정을 잃지 않으려는 동기가 강해질 것이다. 경건한 여자를 아내로 두는 일에 비할 것은 없다. 반면 자아도취적이거나 나약하거나 두려움이 많은 아내와 함께 사는 것보다 더 빨리 지루해지는 일은 없다. 남편은 과거의 당신을 택하였고 현재의 당신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당신은 장차 되려는 여인의 모습으로 그를 축복할 수 있다. 당신은 그렇게 하겠는가? 당신에 대한 남편의 믿음을 존중하겠는가? 남편이 꿈에나 그리는 그런 여자가 되겠는가?
변화의 분위기를 조성하라
불완전한 남자를 인정하는 법을 배우라바비 케네디가 미국 법무장관이 되자 민권 운동 지도자들은 절망했다. 바비는 아일랜드계이며, 당시의 한 지도자에 따르면, ‘민권 운동에 관심이 없기로 유명했다.’ 우리로서는 그야말로 큰 문제였다. 기운을 잃고 절망한 우리는 사건의 그러한 반전에 대해 마틴 루터 킹 주니어 앞에서 불평불만을 늘어놓았다. 그때 킹 박사가 손을 탁 내리치면서 우리에게 불평을 그치라고 명하고 말했다. “그만 좀 하세요. 바비 케네디에 대해서 뭔가 좋은 점을 말해줄 사람이 이 자리에 아무도 없소?” 우리는 말했다. “마틴,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이 바로 그겁니다! 아무도 없어요. 그 사람에 대해서 좋게 말할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 사람은 아일랜드계 천주교 보수(비속어)입니다. 골칫거립니다.”
때로 당신도 남편에 대해 그런 기분이 든 적이 있을 것이다. 당신은 부정적인 면들과 문제들과 편견들과 버려야 할 나쁜 습관들만 많이 보아, 솔직히 남편에 대해 좋게 말할 게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생각에 머물러 있는 한 당신은 절대로 남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고, 남편에게 영향을 줄 수 없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그것을 잘 알았다. 그는 동료 지도자들을 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오늘 모임은 여기서 마칩시다. 누군가 바비 케네디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말할 걸 하나라도 찾아내면 그때 다시 모이겠소. 왜냐하면 친구들이여, 그것이 우리의 운동이 통과해야 할 문이기 때문이오.”
그대로 킹은 모임을 끝냈다. 그는 누군가 바비 케네디에 대해서 좋게 말할 것을 알아낼 때까지는 더 이상 할 일이 없다고 역설했다. 킹이 보기에, 그들이 바비에 대해서 뭔가 긍정적으로 말할 걸 한 가지라도 찾아내지 않는 한, 그 사람을 자기네 입장 쪽으로 움직일 수 있는 방도는 없었다. 그 한 가지가 해방의 문, 영향력의 문, 변화의 문이 될 것이었다. 결국 킹의 방법은 통했다. 그들은 바비가 그의 주교와 가깝다는 사실을 알아내고는 그 주교를 통해서 작업했다. 효과가 어찌나 좋았던지, 전에 케네디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말할 걸 하나도 찾을 수 없다던 그 지도자에 따르면, “민권 운동에(바비 케네디보다) 더 우호적인 사람은 없었다. 우리의 진전은 누구보다도 그 사람에게 가장 큰 빚을 졌다.”
최악의 악몽이 최고의 꿈으로 반전된 것이다. 그들은 상대방의 장점을 한두 가지 인식하고, 그것을 토대로 자기네 운동의 길을 찾았다. 그 위력이 기적 같은 승리의 기반이 되었다. 아내가 남편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방법도 그와 똑같다. 남편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에 잠겨 절망하게 되거든,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다음 말을 떠올려라. “누군가 바비 케네디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말할 걸 하나라도 찾아내면 그때 다시 모이겠소. 친구들이여, 그것이 우리의 운동이 통과해야 할 문이기 때문이오.”
당신만 그런 게 아니다: 남편의 배경과 재능과 성격은 부부마다 다 다르지만, 모든 아내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남편이 불완전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정당한 불평의 사유가 하나도 없는 남자와 결혼한 여자는 없다. 하지만 아내라면 누구나 남편에게 개선이 필요한 부분을 찾아낼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이 책을 읽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인 도전이다. 우리는 배우자의 약점에 집착하려는 인간의 본성과 싸워야 한다. 아내에게 남편의 장점을 인정하라고 역설한다고 해서 그의 많은 약점을 축소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날마다 영적인 선택을 하여, 감사할 점들에 집중하라고 권하는 것이다. 약점을 다룰 수 있을 때가 온다. 그 일은 우리가 사랑과 격려의 기초를 든든히 놓은 후에야 가능하다. 우선 지금은 배우자의 장점에 감사하기로 의식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