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독교를 위한 변명
차한 지음 | 라온누리
개독교를 위한 변명
차한 지음
라온누리 / 2019년 2월 / 251쪽 / 12,000원
기독교의 실제
세 부류의 사람들
들머리: 매스컴에서 기독교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그 피드백이 엄청나다는 것을 여러분들도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특별히 익명성을 갖고 있는 인터넷 공간에서는 기독교라는 말보다 ‘개독교’라는 표현이 일반 네티즌들에게 더 친숙한 말이 된 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독교 비하는 너무도 많은 근거와 팩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제 대학 동문 중에 큰 병원을 경영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는 일 년에 몇 번 부인을 따라 교회에 나가지만 아직 구원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제가 오래전부터 복음을 전하기 위해 기도해 오고 있는 중인데, 하루는 이 친구가 제게 결코 믿고 싶지 않은 얘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자기 병원 재무 책임자가 아주 독실한 기독교 장로인데 (그래서 더 재무 담당을 시켰을 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만) 몰래 수억 원을 착복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지난달 정말로 믿고 싶지 않은 사건이 모 교회에서 일어났습니다. 주일마다 각기 다른 두 번의 예배 곧 ‘열린 새 신자 예배’ 및 한국으로 돌아온 교포나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포인트 파이브 예배’를 인도해 왔고, 비서실과 통역실 등 그 교회의 실제 업무를 담임 목사를 대리하여 모두 맡아 온 J 목사의 불륜 행각이 밝혀졌습니다. 자, 이와 같은 현실에서 여러분들은 ‘개독교’라 칭해지는 오늘날의 기독교에 대한 변명을 어떻게 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오늘 ‘세 부류의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기독교에 대한 변명을 하는 동시에 우리의 영적 상태가 어떠한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과 제가 함께 주님께로 온전히 나아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본성에 속한 사람: 주일에 전 세계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각 지역 교회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은 예배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 영적인 상태에 따라 크게 세 부류로 나눠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먼저 고전2:14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본성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의 것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나니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니라. 또 그가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이는 그것들이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니라.”
첫 번째 부류는 ‘본성에 속한 사람’입니다. 영어로는 natural man입니다. 14절을 보면 본성에 속한 사람의 정의는 “하나님의 영의 것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사람입니다. 즉 하나님의 영을 소유하지 못한 자 곧 구원받지 못한 자를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도, 십일조 이상 헌금도 하고, 찬양대도 하고, 주일 학교 교사도 하고, 심지어 장로나 목사의 직분을 맡고 있더라도 구원받지 못한 ‘본성에 속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14절을 보면 ‘본성에 속한 사람’의 특징은 하나님의 영의 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은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시편 14편 1절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즉 ‘본성에 속한 사람’은 어리석어서 하나님을 믿지 못하여 구원에 이르지 못할 뿐 아니라,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지 못하는 자를 말합니다.
육신에 속한 사람: 두 번째 부류는 ‘육신에 속한 사람’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절을 보겠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영에 속한 자에게 말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갓난아이들에게 말하는 것 같이 하였노라.” ‘육신에 속한 자’는 일단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입니다. 영어로는 ‘carnal Christian’ 곧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구원은 받았지만 영적으로 갓난아이라 표현되는 경우입니다. 이는 구원 받은 지 며칠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10년, 20년 또는 한평생 신앙생활을 하였어도 영적으로 갓난아이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제 전공 분야는 소아 소화기 영양학입니다. 그래서 신생아나 영아에게도 내시경을 시행하곤 합니다. 특히 동전이나 수은 배터리 같은 이물질들을 삼킨 아이들에게 내시경을 시행하여 위장관 이물질을 자주 제거하곤 합니다. 분별력이 있다면 결코 삼킬 수 없는 각종 이물질들을 삼키며 사고를 치는 것은 그들이 아직 성숙하지 못한 갓난아이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은 받았지만 영적으로 갓난아이이기 때문에 각종 사건, 사고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3,4절을 보겠습니다.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하였도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다툼과 분열이 있으니 너희가 육신에 속하여 사람들처럼 걷지 아니하느냐? 어떤 이는 말하기를, 나는 바울에게 속하였다, 하고 다른 이는 말하기를, 나는 아볼로에게 속하였다, 하나니 너희가 육신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냐?” ‘육신적인 자’ 곧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의 또 다른 특징은 시기와 다툼과 분열을 일으키며 세상 사람들처럼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비록 구원은 받아 천국 시민권을 소유하고 있지만, 믿지 않는 불신자와 결코 구별되지 않는 인생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영에 속한 사람: 세 번째 부류는 ‘영에 속한 사람’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15,16절을 보겠습니다. “오직 영에 속한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하나 그 자신은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누가 주의 생각을 알아서 그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생각을 가졌느니라.” ‘영에 속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고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는 사람입니다(요14:26, 벧전2:12). 즉 성경 말씀을 늘 묵상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이 영에 속한 사람입니다. 영어로는 spiritual Christian, 영적인 그리스도인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2절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영에 속한 자에게 말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갓난아이들에게 말하는 것 같이 하였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음식으로 하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지금까지 너희가 그것을 능히 감당하지 못하였으며 지금도 능히 못하기 때문이라.” ‘영에 속한 자’ 곧 영적인 그리스도인은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과 달리 젖이 아니라 비프스테이크 같은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영적으로 장성한 그리스도인을 말합니다. ‘영적인 그리스도인들’은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자들입니다. 곧 성경 말씀의 깊은 이해를 통해 영적 감각들을 단련시킴으로써 선악을 분별하는 능력을 갖게 됩니다.
사역자: 그래서 영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사역자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3장 5절입니다. “그런즉 바울은 누구며 아볼로는 누구냐? 그들은 단지 주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영적인 그리스도인의 대표적 인물이 바울과 아볼로입니다. 그들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이 믿고 구원을 받게 하였던 사역자들 곧 복음 전도자들입니다. ‘영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사역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며 오직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는, “I am nothing. He is everything.”이라는 신앙 고백을 하게 됩니다. 아울러 영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사역자로서의 삶을 살아갈 때, 곧 심고 물을 주는 등의 행위, 일, 수고 등을 통해서 보상을 받을 수 있음을 믿는 자들입니다.
행위와 보상: 퀴즈를 내겠습니다. 맞으면 O, 틀리면 X입니다. “아무개 형제, 당신 그러고도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어?” 이 말은 가능한 표현일까요 아니면 틀린 표현일까요? 또 “아무개 형제, 당신 그러고도 천국 갈 수 있어?” 이 말은 어떻습니까? 네, “그러고도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어?” 이 말은 가능한 표현입니다. 그러나 “그러고도 천국 갈 수 있어?” 이 말은 성경적으로 틀린 말입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을 보겠습니다.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것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오직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게 됩니다. 결코 행위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한번 받은 구원은 영원히 보장되는 것이 성경적 진리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후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자녀 또는 천국 시민권자로서의 행위가 요구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단지 천국에 들어가도록 하시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선한 행위를 하도록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약함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선한 행위를 잘 할 수 있도록, 그 동기를 유발하기 위해 우리에게 보상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심판석: 그리스도인의 삶의 기초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어떠한 삶을 살았느냐에 따라 그 보상이 다르게 됩니다. 성도의 삶이 금인지 은인지 보석인지 나무인지 건초인지 짚인지는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0절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다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타나리니 이로써 각 사람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자기가 행한 것에 따라 자기 몸 안에 이루어진 것들을 받으리라.” 교회 시대에 구원받은 성도들은 예수님의 지상 재림에 앞서 공중으로 들려진 후 어린양의 혼인 만찬에 들어가기 전에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이때 보상으로 다섯 가지 관(crown, 왕관, 면류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섯 가지 관(crown, 왕관, 면류관): 첫째, 의의 왕관으로, 이것은 주님의 나타나심을 사모하기만 하면 받을 수 있는 크라운으로서 주님께서 나타나시는 날에 그분께서 주실 것입니다. 둘째, 썩지 않을 왕관으로, 이것은 승리자의 크라운으로서 자기 몸을 억제하여 복종시킨 자들 곧 육신의 정욕에 굴복하지 않은 자들이 받을 것입니다. 셋째, 생명의 왕관으로, 이것은 순교자들이 받을 크라운입니다. 넷째, 영광의 왕관으로, 이것은 예수님께서 나타나실 때 말씀의 꼴을 잘 먹인 장로나 목양자들에게 주실 크라운입니다. 다섯째, 환희의 왕관으로, 이것은 영혼을 구원하는 자가 받게 될 크라운입니다.
마무리: 이제 말씀을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소개해드린 세 부류의 사람들 중 어디에 속해 있으신지요? 첫 번째로 여러분은 본성에 속한 사람이신가요? 그렇다면 영원히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고백하고 회개하여 속히 예수님을 구원자와 주님으로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10:13)고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의 죄가 얼마나 크고 많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다 깨끗이 씻어질 수 있습니다. 주님의 그 보배로운 피로 제거될 수 없는 죄란 없습니다. 오늘 이 시간 예수님을 여러분 개인의 인격적인 구주로 마음에 모셔 들이셔서 영생의 복을 얻게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두 번째로 혹시 여러분은 육에 속한 사람이신가요? 구원은 받았지만 영적으로 자라나고 있지 못한 육신적 그리스도인이신가요?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심판석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상태로 머무르게 된다면 보상의 손실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과 불에 의해 받는 것 같은 구원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영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자라나도록 힘쓰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혹시 여러분은 영에 속한 사람이신가요? 그렇다면 빌3:13,14에 나온 사도 바울의 고백과 비전이 바로 여러분의 고백과 비전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 함께 한목소리로 빌3:13,14을 읽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내가 이미 붙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다만 이 한 가지 일을 행하나니 곧 뒤에 있는 그것들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그것들에 도달하려고 나아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높은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푯대를 향해 밀고 나아가노라.”
뉴에이지
스포츠와 영적 손상
들머리: 바야흐로 스포츠 전성시대다. 동네마다 태권도장이 지천이고 또 검도, 복싱 등 특화된 무도를 수련할 수 있는 곳들이 아파트 상가에 자리 잡고 있어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은 게 현실이다. 보릿고개 시절부터 있어 왔던 고전적인 조기 축구회, 탁구 동호회, 산악회 등에서부터 최근에는 직장인 야구 동호회, 테니스 동우회, 골프 친목회, 자전거 동우회, 승마 강습회 등에 이르기까지 스포츠는 우리 삶의 공동체적 영역에서도 그 스펙트럼을 무한히 확장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스포츠 문화라는 도도한 시대적 조류 가운데 놓여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스포츠의 존재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 한번 성경적 관점에서 살펴보며 우리의 영적인 유익을 구해 보고자 한다.
스포츠: 스포츠에 대한 사전적인 정의는 ‘경쟁과 유희성을 가진 신체 운동 경기의 총칭’ 또는 ‘일정한 규칙에 따라 개인이나 단체끼리 속력, 지구력, 기능 따위를 겨루는 일’로 표현될 수 있다. 한편 스포츠에는 잘 알려진 바대로 신체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신적, 사회적으로도 우리를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도움을 주는 순기능이 있다. 성경에서도 우리의 믿음의 삶을 경주(race)에 비유하고 있듯이, 신체 운동 경기라는 본래의 성격상 개인적 차원에서의 스포츠는 장려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히12:1, 고전9:24). 그러나 구원받지 못한 인간의 모든 행위가 다 그러하듯이 스포츠도 분명 적지 않은 역기능이 있고 특별히 프로 스포츠의 경우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에 심각한 침해를 줄 수도 있다.
경쟁: 경쟁은 스포츠를 정의하는 데 꼭 필요한 개념이다. 특별히 사회ㆍ심리학적 관점에서 볼 때 경쟁은 스포츠에 있어서 최고의 가치이며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 할 수 있다. 즉 상대방이 실패하고 대신 내(우리)가 승리하여 내(우리) 자신을 높이는 것이 스포츠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단호히 말씀한다. 잠21:4 - “거만한 눈빛과 교만한 마음과 사악한 자의 쟁기질은 죄니라.”
그래서 잘 알려진 복음 전도자 빌리 선데이는 그가 미국 프로 야구 선수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다가 선수 생활을 그만두게 된 열 가지 이유 중 하나로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었던 것이다. “(프로 스포츠는) 질시와 이기심을 부추기는 영이 생기게 하며, 다른 선수들의 형편을 돌아보지 못하고 자신의 성공만을 추구하게 만든다.” 아울러 경쟁의 강조는 인간에게 이익과 위험, 그리고 유용과 남용 같은 양면성을 더욱 드러나게 해 준다. 그래서 상황에 따라 뒤바뀌는 경기 점수판을 바라보고 열광하는 가운데 불법 스포츠 도박, 승부 조작, 오심 파동, 선수 폭행, 부정ㆍ부패 행위의 유혹 등이 항상 더불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경쟁에서 승리, 형통, 성공하는 하나님의 방법은 세상의 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며, 진정한 패배란 오직 구원과 영생에 이르지 못하는 것뿐임을 알아야 한다(수1:8, 눅9:25).
유희성: 스포츠로 정의하기 위한 또 하나의 개념은 유희성이다. 곧 나름 재미가 있는 운동이어야 스포츠라 할 수가 있는 것이다. 특히 프로 스포츠의 경우 재미가 없으면 관중이 동원될 수 없기에 경기 운영 방식이라든가 마케팅이나 홍보 등에서도 우리의 오감을 자극하며 즐거움을 주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성경은 단호하게 말씀한다. 요일2:15-17 -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어떤 사람이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세상에 있는 모든 것 즉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인생의 자랑은 아버지에게서 나지 아니하고 세상에서 나느니라. 세상도 그것의 정욕도 사라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토록 거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