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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드시는 하나님 세우시는 하나님

박종렬 지음 | 패스오버


흔드시는 하나님 세우시는 하나님

박종렬 지음

패스오버 / 2021년 4월 / 231쪽 / 13,800원



비상 착륙 - 억지로 쉬어야만 할 때가 있다



이제야 들립니다


광야가 절망스럽지만은 않은 이유: 광야(wilderness, 히브리어 ‘미드바르’)는 시험과 고난의 장소이면서도 하나님의 인도와 사랑도 번번하게 나타나는 곳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탈출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40여 년간 지낸 곳이기도 합니다. 그곳은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구하기 힘들고, 음식도 거칠었으며 위험했습니다(민21:5, 신8:15). 결국, 광야는 사람이 제힘으로는 생존할 수 없는 곳을 말합니다. 모세는 이 광야에서 무려 40년을 살았습니다. 광야에서는 아무것도 바랄 수 없음을 모세는 너무도 잘 알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애굽의 왕자였던 모세를 광야에서 40년 동안 훈련하신 것은 오히려 그를 ‘광야 전문가’로 키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때가 되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광야로 이끌어내 인도해가실 터인데, 이를 위해 광야 40년은 하나님 보시기에 ‘필수 코스’였습니다.

광야는 결코 고통과 절망의 장소만은 아닙니다. 광야에서는 하나님만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모두 광야를 걷고 있습니다. 이 광야에서 우리 각자가 하나님과 일대일로 대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만의 광야를 지나며 척박한 땅과 주변 환경에만 빠져 지내지 않고 눈을 들어 하나님을 볼 수 있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보는 눈이 떠지고, 깨닫길 바랍니다(신8:2). 광야의 고통은 잠시요, 하나님의 약속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40세 되는 해, (제 생각에는) 멋지게 헌신했습니다. 제가 왠지 큰 인물이 된 것 같았습니다. 세상 것을 허망하다고 버리고 하늘의 상을 바라보는, 히브리서에 나올 법한 사람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때부터 더러워진 저의 낡은 옷을 벗기고 눌러 붙은 때를 밀어내는 작업을 시작하셨습니다. 멋지게 헌신한 선교 공동체에서 계획한 프로젝트마다, 아이디어마다, 실행팀을 꾸리고 독려하며 추진했던 것마다 모조리 실패했습니다. 그때까지는 커리어에서 잠시 실수는 있었을지라도 실패는 몰랐는데, 모두의 기대를 완전히 저버린 완벽한 실패였습니다. 보탬을 주려던 선교 공동체의 재정은 악화되었습니다.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사람들의 시선을 견딜 수 없어 6개월을 숨어 지냈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세상 경험을 의지하면서 자신만만했던지 그리고 지금은 얼마나 초라한 지를 똑똑히 목격하며 회개의 눈물로 새벽기도를 이어가던 중 다시 기회가 생겼습니다. 평신도 사역자 지원 양성 및 훈련을 목적으로 한 프로젝트가 출발해 많은 사람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눈물로, 기도로 도움을 구했을 때 많은 회복과 위로와 공급하시는 은혜를 온몸으로 체험했습니다. 겸손이 큰 능력임을 비로소 깨닫게 하셨습니다. ‘겸손’은 지금도 나를 세우는 큰 힘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전환이 일어나는 시간: 개인적으로 2020년은 뜻깊은 전환을 경험한 해였습니다. 지금껏 정말 앞만 보고 달려온 생애였습니다. 전임 사역을 시작한 1994년부터 늘 어떤 목표를 정해놓고 쉼 없이 뛰었습니다.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지만 좋은 열매도 거두면서 평생 ‘더 높은 곳을 향하여’ 달음박질하는 인생이었습니다. 50대 중반에 교회를 새로 개척한 것도 지금 보면 하나님의 섭리였지만, 그만큼 열심히 살다 보면 잘 풀릴 거라는 패턴이 하나의 태도로 자리 잡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팬데믹이 되니 그런 목표가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이런 목표는 교회 구성원을 통해 이루어가야 하는데 중요한 축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비전은 있는데 그 비전을 실현할 성도는 같이 뛸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교회가 멈추게 되니 뭔가를 계산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짐을 싸서 조그마한 기도처에서 두 달 동안 칩거하다시피 하면서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생각의 관점과 초점을 명확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는데, 과거에 사회생활하면서부터 현재 목회까지, 전 과정을 살피게 하시면서 제가 무엇을 놓쳤는지 콕 집어 알려주셨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다양하고 폭넓은 스팩트럼의 사역들을 해왔는데, 팬데믹 시대가 펼쳐지자 과거 사역에서는 못 느꼈던 여러 원리가 말씀 속에 다 담겨 있음을 뒤늦게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인생을 재정비하는 시간이 됐습니다. 팬데믹과 부흥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제대로 확인했고, 순수 복음을 성찰하는 가운데 진정성 있는 복음 사역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덧입게 되었습니다.

삶이 두려운 이유는 내 안에 빛이 없기 때문이다: 때론 우리 삶에 이해할 수 없고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아픔과 고통이 찾아옵니다. 남편과 아내에게도 차마 말하지 못할, 그런 깊은 고민을 안고 살아갈지도 모릅니다. 누군가에게 기도 부탁을 하기에도 힘든 그런 문제로 깊은 침체의 터널을 지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질문을 제대로 던져야 합니다. “내 인생이 어디서부터 꼬였을까?”보다는 “하나님이 내게 무엇을 깨닫게 하시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내게 주어진 현실이 바닥이더라도 그 안에만 매몰되어서는 안 됩니다. 받아들이기 쉽지 않지만, 하나님의 큰일을 나타내시려고 내게 주신 특별한 기회임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빛이신 예수, 생명 되신 예수가 우리의 현실, 맹인 된 삶을 회복시키십니다.

지금, 여기에서 믿음으로 사는 길


믿음이 ‘선물’인 이유: 믿음은 우리의 노력과 수고가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은혜로 주셨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이 믿음은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의를 나타내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 하나님의 의, 즉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선물 안에는 이렇게 복음으로 살아가게 하는 능력까지 포함됩니다. 그 믿음이 계속 우리를 키워 가십니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는 의미가 여기 있습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바른 기준을 알게 하고 그것으로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이 다스림을 받도록 하십니다.

진짜 믿음은 성장한다: 잔잔한 웃음으로, 언제나 누구에게나 한결같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상대의 어려운 사정 이야기를 듣고 난 뒤에 그는 항상 자기 일처럼 생각하고 적극 달려들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좋아하고 반겼으며 금세 친구가 되었습니다. 어쩌다가 그의 기도를 들으면, 인생의 참 내공이 깊다고 느껴졌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과거에 사업하던 중에, 누군가의 모함에 자신의 실수가 더해져 큰 시련을 겪었습니다. 결국, 상대방에게 모든 것을 물어줘야 하는 억울한 일을 당하면서 인생 기반을 다 접은 후 고향 시골 마을에 새롭게 터를 잡게 되었습니다. 가까운 곳에 있던 작은 교회를 다니며 하나님을 만났고, 사업의 길도 새로 열려 이제는 자신의 인생 경험을 통해 다른 사람의 어려움에 진심으로 함께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한참 어려움을 겪을 때, 원망과 분노와 살기가 마음을 채울 때도 있었지만 어느덧 그런 부정적인 생각과 마음을 물리쳤고, 그 자리에 하나님이 인생의 주인으로 오셨습니다.

인생에서 계속 시련과 고난을 만나면 누구나 한없이 작아지고 움츠러듭니다. 인생을 잘못 살아온 것 같은 자괴감이 뼛속 깊이 파고들어 살 소망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소백산의 주목나무 군락 안에 옹골찬 생명의 기운이 있었던 것처럼, 믿음은 우리 안에 한번 심기고 나면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자라고 퍼지고 뿌리내려 찬란한 생명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재정비 - 인생의 두 번째 기회는 어떻게 오는가



생각의 회로가 바뀌면 질문이 달라집니다


변두리에서 나타나는 역동적 영성: 큰일을 이루려면 큰 규모의 힘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영향력을 키우려면 그만큼 실력이 필요하다는 말은 어느 정도 사실입니다. 조직 크기에 따라 할 일이 더 확장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큰 것, 집중화된 것이 우리를 위험하게 만들 수도 있음을 경험하면서 변두리, 빈 곳, 빈 들, 작은 것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런 원리가 잘 드러나는 곳이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골방 혹은 다락방은 원래 기도 장소를 의미했습니다. 골방(다락방)은 구별된 곳이자, 은밀한 곳입니다. 오직 하나님과 일대일로 대면하는 곳입니다. 주님은 그곳에서 기도를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기도에 힘썼을 때 약속하신 성령이 그들의 인생을 바꾸셨을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새로운 시대를 여셨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자기 삶이 중심에 있기만을 소망했고 여기서 밀리면 큰일 날 것 같은 조바심도 있었습니다. 지금 내가 위치한 삶이 비록 변두리요, 중심에서 밀려나 있다 해도 바로 그곳이 새로운 힘, 역동적 능력을 키우는 시간이요 공간임을 깨닫습니다. 모두가 외면하는 변두리에서 이 나라, 이 사회를 세우고 미래를 준비하는 새 일, 새 사고, 새 가치, 새 세대가 일어나는 큰 물결을 보고 싶습니다. 비록 변두리에 섰더라도 하나님의 중심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다르다: 하나님은 가장 약한 것에서 강한 것을 완성하십니다. 가장 초라한 것에서 부요한 것을 완성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고전1:27-28)

하나님은 남들은 고개를 돌리는 인간 밑바닥에서 가장 위대한 것을 길어 올리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세상 지혜와 명철에서 나온 것들이 얼마나 세상을 악하게 만드는지 보셨습니다. 그래서 다 폐하셨습니다(사29:14). 오직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에게 세상의 모든 악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은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마9:6)

존재를 변화시키는 5가지 만남


침묵과의 만남: 주님은 일해야 할 때와 떠나야 할 때를 정확하게 아셨습니다. 그 뜨거운 환호성과 지지를 뒤로하고 다시 혼자가 되셨습니다. 침묵의 시간 속으로 다시 들어오십니다. 사방에 아무것도 없는, 세상의 모든 환호성도 칭찬도 위협도 염려도 두려움도 걱정도 어떤 소망도 기대도 다 내려놓고 오직 아버지 하나님과 독대하는 침묵의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세밀히 살펴보면, 예수님 사역의 시작과 끝이 모두 침묵으로 열리고 침묵으로 닫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의 아우성과 영향력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곳으로 오셔서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이 바로 기도의 시간이었습니다. 이 시간에 예수님은 내면의 소리를 듣고 이 땅에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과 끊임없이 대화하였습니다.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눅6:12) 이 침묵의 시간을 보내시고 난 후 제자들을 세우십니다(눅6:13). 또한, 이 침묵의 영성으로 하나님과 시간을 보내신 후 복음을 전하러 가십니다(막1:35). 이렇듯 예수께서 행하신 사역의 능력은 하나님과 독대하는 침묵의 시간에서 출발합니다.

성장하는 모든 것에는 반드시 긴 침묵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열매를 맺을 만한 에너지를 응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침묵은 바로 하나님과 대면하는 시간을 의미합니다. 나의 주장과 생각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앞서지는 않았는지 깊은 침묵의 시간에 헤아릴 수 있습니다. 그분 앞에서 내 모든 삶을 아뢰고 주의 뜻을 구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침묵이요 세상과 구분된 영적인 삶을 말해줍니다.

고난과의 만남: 예수님의 십자가에는 인간이 겪는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고통이 응집해 있습니다. 그분이 감당하셔야 했던 사람들의 죄의 무게에 더해, 제사장과 바리새인의 종교적인 위선, 환호하던 백성의 배신, 충성을 외쳤던 제자들의 비겁한 외면, 빌라도의 정직하지 못한 태도, 로마의 폭력 등이 모두 합력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의 길로 떠밀었습니다. 이 아픔과 고통의 무게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압도적인 무게의 고난을 어떻게 기꺼이 질 수 있었을까요? 이는 주님께서 그 고난의 한가운데로 직접 들어가셨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고난으로 돌파하셨습니다. 고난은 현실입니다. 우리는 예수 믿으면 고생은 끝나고 탄탄대로가 펼쳐지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누구도 고난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고난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그 고난을 끌어안고 정면으로 돌파하는 것뿐입니다. 고난에 짓눌려 자꾸만 원망하지 말고, 고난의 문제를 피해 달아나지 말고 정면으로 마주해야 합니다. 그러면 고난이 피해 갑니다. 내가 죽기로 결정하고 버티어 서면 고난이 슬슬 피해 갑니다. 죽기로 하면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내가 모든 것을 포기할 때, 두려움이 아닌 평안이 찾아옵니다. 고난과 직면한다는 것, 고난과 맞부딪친다는 것, 그것은 바로 예수의 십자가를 함께 지는 것입니다. 고난의 십자가를 내 신앙의 중심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수와의 만남: 예수님에게는 놀라운 비밀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반드시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은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을 말합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 그리고 거한다는 것은 하나 된다는 말과 같습니다. 서로를 향한 마음이, 인격 전체가 하나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신앙은 머리뿐 아니라 가슴, 삶이 전인격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의 영, 성령님은 살리는 영입니다. 이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우리도 생명의 능력을 나타낼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될 때 하늘 문이 열렸습니다. 이는 주께서 하늘의 주인 되신 하나님과 소통하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께서 거룩한 임재로 예수님에게 임하면서 예수님의 공생애는 시작되었고 공생애 내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매일 그리스도 예수와 동행하고, 매일의 인생에 성령님이 함께하실 때, 우리 인생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아무 목적도, 의미도 없이 주어진 그날그날을 살아오던 우리 인생에 하늘 문이 열리고 성령이 물 붓듯이 부어져 거룩한 생명의 능력을 나타내는 거룩한 존재가 됩니다.

네가 할 수 있는 것만 해라, 나머진 내가 한다


부르심을 따르면 길은 그분이 여십니다: 후배의 전도로 온누리교회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거기에서 하용조 목사님을 만났고, 그분의 요청에 따라 본격적으로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교회 전문 사역자로 들어갔는데, 시간이 좀 지나서 하 목사님의 권유로 일과 공부를 병행하며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그때가 40대 중반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정말 가리지 않고 아무 것이나 다 했습니다. 온누리교회 프로그램들을 좀 더 목회적으로 나누자는 마음에서 OMC(Onnuri Ministry Celebration)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기획 및 실행을 담당하게 됐습니다.

어떤 사업가가 당시에 인터넷으로 국가 간 무료로 국제전화를 쓸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는데 이걸 상장해 대박이 난 것이었습니다. 이 분이 갑자기 큰돈이 생기니깐 덜컥 겁이 나서 17억이 넘는 돈을 십일조로 헌금했습니다. 정확히는 인터넷과 미디어를 통한 선교에 써달라고 목적성 헌금을 한 것이었습니다. 하 목사님은 저에게 그 돈을 주면서 “마음껏 써서 방송 만들어 내 봐요”하셨습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서는 관련 분야 전문가를 찾기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어느 날 새벽 기도 끝나고 나서 답답해 식당에 내려갔는데, 거기에 청년 여섯 명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무슨 일을 하는지 물었더니 웹 기획, 웹 마스터, 웹디자인 회사에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들은 깨끗한 인터넷 환경을 위해 관련 직장에 다니면서 중보기도를 해온 인터넷 전문가들이었습니다. 이들의 동참으로 인터넷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이 전문가들이 달려들어 2주를 고생하니 홈페이지가 만들어지고 동영상을 걸 수 있는 시스템까지 완성되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 환경을 모르니까(내가 아는 건 제작이라) 열심히 콘텐츠를 찍어 동영상으로 올리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아마 제가 인터넷을 좀 더 많이 알았다면 포털로 방향을 잡았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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