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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을 이끈 놀라운 어머니

존 맥아더 지음 | 스타북스


목적을 이끈 놀라운 어머니

존 맥아더 지음

스타북스 / 2020년 10월 / 172쪽 / 12,000원



하와



모든 생명과 인류의 어머니(창세기1-3)


하나님의 하와 창조에 대한 이야기는 모든 여자에 관한 여러 가지 아주 중대한 진실을 알게 한다. 하와는 근본적으로 아담과 똑같다. 하나님은 남자에게서 뽑아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셨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여자는 본질이 남자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여자의 품성이 남자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았고, 그녀는 남자와 한 쌍이었다.

그 여자는 아담 옆구리에서 취한 갈빗대로 만들어졌다. 그를 지배하도록 머리에서 취하지 않고, 그를 짓밟지 못하게 발에서 취하지 않고, 그와 대등하도록 옆구리에서 취했고, 보호받도록 그의 팔 밑에서 사랑받도록 심장 가까이에서 취한 그의 갈빗대로 만들어졌다. -매튜 헨리-

하와의 창조에는 하나님이 의도한 몇 가지 중요한 여자 역할의 성서적 교훈도 들어있다. 하나님의 의도는 아담은 지아비, 먹고 입을 것의 공급자, 지킴이 그리고 지도자였다. 하와는 지어미, 위안을 주고 보육하는 자, 그리고 도우미였다. 남성, 여성, 양성의 그런 근본적 차이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은 오늘의 남녀 동권주의와는 어긋나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이다. 하늘에서 창조되고 지상에 떨어지기 전까지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동반자였고 동료였다. 하나님은 아담을 인종의 우두머리로 삼았다. 하와는 자기 남편을 돌보게 했다. 이것은 참 낙원이었고 그들은 하나님이 의도한 대로 인류의 완벽한 소우주를 구성했다. 그러나 머지않아 그것은 죄로 인해 파멸되었다. 이 이야기는 창조를 끝내고 사탄의 추락이 있기까지 매우 짧은 기간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아담이 죄 짓기 전에 그의 지도력은 항상 빈틈없이 현명하고 사랑이 넘치고 부드러웠다. 하와가 죄 짓기 전에는 그녀의 복종은 온유함과 정숙함의 완벽한 표본이었다. 그러나 죄가 그 모든 것을 바꿔버렸다. 그녀는 이제 그이 지배를 받으면서 짜증부리고 남자를 지배하려고 했다. 남자의 성향은 잔인무도하게 여자를 억누르는 것이었다. 이성간의 갈등은 최초의 우리 부모들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알 수 있다.

가혹한 하나님의 저주는 하와의 심장을 산산이 부서지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엄격하고 절망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저주 속에도 상당한 은총이 담겨 있었다. 신앙의 눈에는 하나님의 분노가 구름을 뚫고서도 빛나는 희망의 번득임이 보였던 것이다. 비록 그들의 관계가 에덴에서는 없었던 정신적 긴장을 지니게 되었지만, 하와는 여전히 아담의 배우자로 있었다. 그녀는 아내로서의 역할을 유지했고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였다. 그래도 하와가 자식들을 분만하리라는 언약은 그 저주의 여러 가지 다른 양상을 완화시켜주었다. 그 단 하나의 기대 속에는 전 인류를 위한 희망의 빛이 담겨 있었다. 그 저주 속에는 하와의 자손 중의 하나가 끝내 죄를 없애버리고 모든 죄의 어둠을 거두어 내리라는 암시가 있었다. 하와는 불복종으로 온 세계의 악을 가동시켰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의 자손을 통해서 구세주를 만들어낼 것이다. 이 강력한 희망은 이미 조건 없이 그녀에게 주어졌다. 사라



하나님 언약에 대한 신앙(창세기11-21)


사라가 족장 아브라함의 아내가 된 후에 그녀가 무엇보다 가장 바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자녀를 갖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정상적으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나이에 임신을 하지 못했다. 사라는 자기의 불임 때문에 몹시 괴로워했다. 집안에서의 짜증이나 다툼에 관한 모든 기록들은 불임으로 인한 좌절과 관계가 있었다. 그것은 그녀를 쇠약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결사적으로 어머니가 되고 싶어 했지만, 끝내는 하나님이 그녀에게 아이를 허락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창세기16:2).

어느 면으로 보아도 사라는 참으로 아주 특별한 여자였다. 그녀의 믿음은 종종 흔들렸지만 믿음으로 엄청난 장애물들을 견디어냈고 믿음의 핵심으로 상징되는 한 사람이 되었다. 사실 신약성경에서는 그녀를 믿음의 전당에 모시고 있다. 그녀는 약속하신 분을 신실하신 분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비록 마음속으로는 말할 수 없이 초조하고 비참했지만 사라의 전반적인 생활의 특징은 겸손함, 온유함, 친절함, 성실함, 남편에 대한 깊은 애정,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사랑 그리고 결코 시들지 않는 소망이었다.

가끔 감정이 폭발하고 낙담으로 몸부림을 쳤지만, 사라는 근본이 쾌활한 성격의 여자였다. 쓰디쓴 긴 세월의 좌절을 맛본 뒤에, 그녀는 그 기이한 결과에 감사할 수 있었고 그런 고령에도 어머니가 되는 희극을 즐길 수 있었다. 그녀 일생의 대망이 실현되었고 오랜 세월의 쓰디쓴 실망의 추억이 깨끗이 사라졌다. 참으로 신실하신 하나님이셨다.

하갈



잃어버린 특별한 기회(창세기16-17)


수태하지 못한 채 여러 해가 지난 뒤, 사라는 불임의 아내가 자기의 여종을 통해서 아이를 얻을 수 있는 그 시대의 관습에 따라 여종을 통해 도움을 받으려 했다. 전부터 상속자를 정하려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에게 매달렸다. 그러나 기약 없는 하나님 응답만 듣게 되자 죄받을 짓이지만 사라의 강요에 굴복해 버렸다. 이스마엘을 임신한 뒤 하갈은 사라를 업신여겼다. 그 결과 사라가 그녀를 혹독하게 다루게 되자 하갈은 달아나버렸다.

이때 사막에 있는 샘 곁에서 하갈은 주님의 천사로부터 예언의 특별한 선물을 받았다. 이 만남에서 천사는 사라에게 반항하는 것이 모든 두통거리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하갈에게 분명히 알려줬다. 도망가지 말고, 아브라함의 야영지로 돌아가서 하나님이 자기를 도와주신다고 믿어야 했다. 그녀의 자손이 셀 수도 없을 만큼 불어나게 하리라고 그 천사가 약속을 했다. 그들이 오늘날 우리들이 알고 있는 아랍인들이다. 하갈은 그 천사를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보고 자신이 하나님의 너그러운 관심의 대상이었음을 알고 깜짝 놀랐다. 또한 천사의 출현과 예언을 듣고 그녀는 하나님은 살아서 나를 보시는 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스마엘은 믿음이 깊은 가정의 한 사람으로 키워졌지만 그 자신의 계보에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의 유산을 세우지 못했다. 하갈이 천사의 방문을 두 번이나 받았지만 하갈이 자기 아들을 하나님을 믿도록 키웠다는 내용이 성경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하갈이 이스마엘의 배필로 이집트 여인을 데려왔다는 사실은 그녀를 격려해주고 아들의 큰 축복을 약속해주신 여호와 하나님을 거부했다는 뜻이 된다. 그녀는 만약 하나님이 이스마엘보다 이삭을 더 축복해 주신다면 이스마엘이 하나님을 첫째로 받들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 결과는 무수한 이삭과 이스마엘의 후손들이 그들의 어머니들이 분노 속에 결별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서로 경멸하고 있는 것이다. 하갈의 이 사례는 무릇 어머니들에게 이런 경고를 준다. 당신의 믿음은(또는 믿음이 없으면 없는 대로) 다가올 수많은 세대에게 영향을 끼친다.

리브가



그녀의 사랑은 끝이 없었다(창세기24-27)


이삭은 놀랄 만한 하나님의 언약으로 태어난 기적의 아들이었다. 사라가 세상을 떠난 뒤,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훌륭한 아내를 구해주려고 했다. 그 시대에는 혼사 결정을 부모들이 했다. 주로 선택되는 배우자는 같은 부족출신이었다. 아브라함은 나이가 많은 노인이 되었을 때, 자신의 부족들이 하나님 언약대로 대를 이어 가며 멸하지 않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늙은 종에게 메소포타미아에 돌아가서 이삭에 걸맞은 아내 될 사람을 데려오겠다는 맹세를 하게 했다.

아내로 선택된 사람이 바로 리브가이고 이삭은 리브가를 보자 그녀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행운의 출발은 있었지만 그들도 사라가 시달렸던 똑같은 문제에 부닥쳤다. 20년 동안의 불임을 겪게 되자 이삭은 아내가 아이를 갖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하나님이 이삭의 기도를 들어주시니 그의 아내가 쌍둥이를 가졌는데, 그 둘이 태 안에서 서로 싸웠다. 그래서 리브가는 “이렇게 괴로워서야 내가 어떻게 견디겠는가?”하면서 이 일을 알아보려고 하나님께 나아갔다. 하나님이 그녀에게 대답하셨다. “두 민족이 너의 태 안에 들어 있다. 너의 태 안에서 두 백성이 나뉠 것이다. 한 백성이 다른 백성보다 강할 것이다.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다.”

그들은 쌍둥이지만 야곱과 에서는 분명하게 서로 달랐다. 그 두 아들의 차이는 여러 가지 면에서 확실하게 드러났다. 하나님이 리브가에게 주신 언약을 무시하고, 이삭은 에서의 한심한 혼사도 눈감아주고, 이삭의 마음은 장자인 에서에게 상속권의 축복을 주는 쪽으로 기울어졌다. 리브가는 기를 쓰고 가부장의 축복을 야곱에게 베풀게 하려고 속임수의 농간을 동원했다. 야곱은 자기와 에서의 차이 때문에 아버지를 속이지 못하고 발각되면 축복은커녕 저주를 받게 될 거라 생각했다. 리브가가 야곱에게 말했다. “아들아, 저주는 이 어미가 받으마. 내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창세기27:13).” 비록 야곱은 그날 이삭의 축복을 받았지만 그 속임수는 가혹한 결과를 가져왔다. 1. 그는 그 일이 있은 뒤 그의 어머니를 한 번도 만나 볼 수 없었다. 2. 에서는 그가 죽기를 원했다. 3. 그의 삼촌 라반이 그를 속였다. 4. 그의 가정 살림은 다툼이 끊이질 않았다. 5. 그는 여러 해 동안 집에서 쫓겨났다. 그의 아버지가 딴 마음을 품었어도 하나님의 언약에 따라 상속권을 받았을 것이다. 그는 어머니와 함께 이 속임수를 쓸 필요가 없었다.

리브가가 자기 아들을 다시 볼 수 없었으나 하나님이 야곱을 에서보다 더 훌륭하게 만들어 준다는 언약을 어기시지 않을 것을 믿었다. 하나님은 리브가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축복을 말씀대로 해주셨다. 나중에 이스라엘로 이름을 고친 야곱을 통해서 열두 족속들이 나왔고, 그 중의 한 족속에서 만왕의 왕과 예수 그리스도가 나왔다. 신앙적으로는 오늘의 크리스천들은 이 특별한 어머니의 무수히 많은 후손들이라 할 수 있다. 라헬과 레아



강력한 가족의 어머니들(창세기29-35)


야곱은 라헬을 사랑하였다. 그래서 그는 “제가 칠 년 동안 외삼촌 일을 해드릴 터이니 그때에 가서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과 결혼하게 해주십시오.”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라반이 말하였다. “그 아이를 다른 사람과 짝지어주는 것보다 너에게 짝지어주는 것이 더 낫겠다. 그러면 여기서 나와 함께 살자.” 야곱은 라헬을 아내로 맞으려고 7년 동안이나 일을 하였지만 라헬을 사랑하기 때문에 7년이라는 세월을 마치 며칠같이 느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고 아내를 얻기 위한 노력봉사이기 때문에 야곱은 단순한 종업원이 아닌 거의 사위 대접을 받으며 라반의 집안일을 처음 7년 동안 즐거운 마음으로 해냈다. 그러나 사기꾼 야곱(창세기27:1-29)이 이번에는 사기당하고 있었다(창세기29:22-25).

그 지역의 혼인 관습, 라헬을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딸을 주는 대가로 7년 동안 더 부려먹으려는 라반의 욕심 등이 원인이 되어 야곱은 라반 밑에서 7년간의 노력을 더 팔았고 그 결과 라헬과 그녀의 언니 레아까지 아내로 거느리게 되었다. 그래서 레아가 첫째 아내가 되고 라헬이 둘째 아내가 되었다. 나중에 이 두 아내는 질투의 아이 낳기 경쟁 속에 휘말리게 되었다. 그와 같은 친족 관계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고 뒤에 모세의 율법도 금지하는 일이었다. 일부다처는 야곱의 생애 속에 드러나듯이 항상 슬픔을 가져왔다.

라헬과 레아는 여러 번 만만치 않은 도전에 직면했다. 그 도전의 내용은 형제간의 적대관계, 또 다른 아내를 좋아하는 남편, 많은 아이들을 분만할 때 겉으로 나타나는 고통, 임신 불능에서 생기는 내적인 고뇌, 남편 침실에 있는 다른 여인들, 그들의 친정과 남편 사이의 의견충돌, 처남 매부의 분노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사라와 리브가처럼 그들의 막강한 가족 유산을 확립할 때에 쓰임 받는 도구가 될 거라는 예상 등등이다.

어머니들이 오늘날 직면하는 많은 도전들은 일반적으로 아주 많이 다르다. 그러나 신앙심이 깊은 어머니들은 아직도 자식들 사이에 믿음의 유산을 세워주는 책임을 지닌다. 수천 년이 지나고 문화의 광대한 변화가 있었지만 사라, 리브가, 라헬 그리고 레아의 영적 자손들에 대한 이런 욕구는 줄어들지 않았다.

요게벳



그녀는 자기 아이를 하나님께 맡겼다(출애굽기1-2)


이름이 요게벳이라고 하는 한 어머니가 자기의 예쁜 아기를 삼 개월 동안이나 간신히 감추고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 숨길 수 없어서 갈대상자를 구해 와 역청과 송진을 바르고 아이를 거기에 담아 강가의 갈대 사이에 놓아두었다. 그 아이의 누이가 멀찍이 서서 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자기 아이의 안전한 성장을 하나님에게 전적으로 맡겼다. 모세를 나일 강에 띄울 때 그것도 왕족이 목욕하는 강 가까이에 띄워 놓고 미리암이라는 자기 딸을 시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지켜보게 한 것은 무언가가 그 어린이를 제대로 돌볼 것이라는 요게벳의 소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소망이 제대로 이루어졌다. 파라오의 살인명령을 무시하고 이스라엘인들을 위해, 하나님이 선택한 지도자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하나님은 이집트의 공주를 사용하여 도와주셨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은 미리암이 왕실 사람들에게 접근해 공주가 그 아이에게 젖을 먹여 기르는 그 아이의 엄마에게 대가를 지불하도록 교묘하게 설득할 수 있는 용기를 주셨다.

그래서 그 여인은 그 아이를 데리고 가서 젖을 먹였다. 그 아이가 다 자란 다음에 그 여인은 그 아이를 파라오의 딸에게 데려다 주니 공주는 이 아이를 양자로 삼았다(출애굽기2:9-10).

모세는 살아남을 기적이 필요했고 기적이 왔을 때 요게벳은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믿었기에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벗어나는 첫발을 디뎠다.

드보라



암흑기의 한줄기 빛(사사기4-5)


드보라가 이스라엘에서는 대표적인 영도자였다. 그러나 그녀는 기꺼이 싸움에서 거둔 영광을 바락의 공으로 돌렸다. 사실 그는 전투에서 좀 더 충실히 싸워야 했었다. 지휘권도 매우 망설이면서 맡았던 것이다.

너희 왕들아, 들어라. 너희 통치자들아, 귀를 기울여라. 나 곧 내가 주님을 노래하련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양하련다. 이스라엘의 어머니인 내가 일어나기까지 이스라엘에서는 용사가 끊어졌다. 나의 마음이 이스라엘의 지휘관들에게 쏠렸다. 그들은 백성 가운데서 자원하여 나선 용사들이다. 너희는 주님을 찬양하여라(사사기5:3,7,9)

전쟁이 끝나고 영도자들과 백성들이 각자 적절한 자리에서 일하고 있을 때 이것은 주님을 찬양하라고 강력하게 타이르는 드보라의 노래이다. 드보라의 노래는 당연히 있어야 할 것과 실제로 다가와서 가버린 것을 대조시키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어머니는 자녀들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다루게 준비시켜야 한다. 이루어져야 할 세상에 관해서도 가르쳐야 한다. 지혜와 신앙과 용기를 갖고 드보라는 자기 자신이 특별한 어머니임을 이스라엘에 보여준 것이다.

삼손의 어머니



모태에서 하나님께 바침(사사기13-14)


아기는 기적 같은 존재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우리는 성경 안에서 그 말이 사실임을 보게 된다. 마누아 아내의 경우도 그랬다. 많은 이스라엘의 여자 가장처럼 임신이 되지 않다가 마침내 강력한 운명을 타고 나는 기적의 아들을 허락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다. 그녀의 이름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하나님의 천사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 앞으로 낳을 아들의 육체적 그리고 영적인 발달을 위해서 임신 중에 지켜야할 엄격한 지시를 받았다. 그는 하나님에게 바쳐질 나실인이기 때문이다. 나실인이란 말은 헤브라이 말로 봉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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