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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플랜드

애비 존슨, 신디 램버트 지음 | 가톨릭출판사


언플랜드

애비 존슨, 신디 램버트 지음

가톨릭출판사 / 2020년 7월 / 215쪽 / 13,000원



초음파




8년 동안 가족계획연맹에 근무했지만, 낙태 수술 중에 의료 팀을 돕기 위해 검사실로 불려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도대체 왜 내가 필요한 걸까? 나는 낙태 수술 중에 이 방에 들어가는 것을 한 번도 좋아하거나 달갑게 여긴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일을 끝내기 위해 언제든지 투입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기 때문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 환자에게 초음파 영상을 통한 낙태 수술을 할 예정입니다. 초음파 기기를 잡아 주세요.”라고 의사는 설명했다.

나는 가족계획연맹에 8년 전에 입사했고, 이 곳의 목표가 원치 않은 임신을 예방하고 따라서 낙태의 숫자를 줄이는 것이라고 믿었다. 이것은 확실히 나의 목표이기도 했다. 나는 가족계획연맹이 생명을 구하고 있다고 믿었다. 이 단체에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으면, 여성들은 불법 낙태 수술소에 갔을 것이리라. 이 모든 생각을 하면서 조심스럽게 기기를 제자리에 고정시켰다. 검사실의 차가운 공기가 느껴졌다. 나는 완벽한 아기의 모습에 새로운 것이 등장하는 것을 화면에서 보았다. 빨대처럼 생긴 기구로 끝에는 석션관이 부착된 캐뉼러였다. 캐뉼러는 자궁안에 들어가 아기의 옆쪽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화면에 어울리지 않는 침입자 같았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처음에 아기는 캐뉼러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캐뉼러로 조심히 아기의 옆쪽을 살피는 것을 보면서 나는 짧은 몇 초 동안 안도했다. ‘그래, 당연하지. 태아는 고통을 느끼지 못해.’ 나는 가족계획연맹에서 배운 이 점을 이용해서 수많은 여성들을 안심시켰다. ‘태아 조직은 제거될 때 아무것도 느끼지 못해. 정신 차려, 애비. 이건 단순하고 빨리 끝나는 의학 절차야.’ 내 머릿속은 내 반응을 통제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었지만, 화면을 보자 순식간에 공포에 치닫는 불쾌감을 떨쳐 낼 수 없었다. 아기는 마치 침입자에게서 달아나려는 듯 발길질을 했다. 아기의 작은 발이 갑자기 확 움직였다. 캐뉼러가 안으로 들어가자 아기는 몸을 돌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기 시작했다. 태아가 캐뉼러를 느끼고, 그 느낌을 싫어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나는 갑자기 “그만!”이라고 소리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환자를 흔들어 “아기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보세요! 깨어나세요! 어서요! 그들을 막으세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말을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 나는 기기를 붙들고 있는 내 손을 보았다. 나는 이미 이러한 행위를 하는 ‘그들’의 일부였다.

지금 2009년 9월 말을 되돌아보면, 나는 미래를 우리에게 보여 주시지 않는 하느님이 얼마나 현명하신지 깨닫게 된다. 그 당시 내가 감내해야 했던 그 거센 폭풍을 알았더라면, 나는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가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몰랐기 때문에 용기를 구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거짓말을 하고, 거짓말을 퍼뜨리고, 내가 돕고 싶은 여성들을 상처 입게 한 나의 모습을 어떻게 발견했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다음에 해야 할 일을 절실히 알고 싶었다.



자원봉사 박람회




2001년 9월 따뜻한 오후, 학생회관 플래그룸(Flag Room)을 지나 카페테리아 쪽으로 향했다. 때마침 자원봉사 박람회가 열린 것을 보았다. 비영리 단체들은 박람회장 부스에 흩어져 있었고, 대부분은 채용 담당자였다. 부스에 있는 여성은 친절하고 말을 붙이기 쉬워 보였지만 한편으로는 전문적이고 품위 있어 보였다. 그 여성은 가족계획연맹은 지역 사회에 피임 방법 교육을 제공하는 선두자라고 설명했다. 여성들에게 피임 방법을 제공했기에 수천 건의 낙태가 필요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여성들이 실제로 낙태가 필요한 경우, 가족계획연맹 클리닉은 여성들의 안전을 우선시한다고 말했다.

“위기에 처한 여성들을 돌보는 것이 우리가 하는 전부예요. 자원봉사자로서 당신은 직접 보게 될 것이에요.” 그녀가 말했다. “우리는 텍사스 남동부 여성들에게 가장 신뢰받는 생식 보건 의료 공급자예요.”라고 질은 결론지었다. “애비, 슬픈 사실이 있어요. 낙태를 막고 싶은 사람들은 피임을 믿지 않아요.” 질은 나에게 생명 운동가는 임신을 예방하는 것에 관심도 없이 낙태를 금지하기 원하고, 여성들이 돌볼 수 없는 원치 않는 아기들과 함께 더 큰 가난 또는 위험한 뒷골목을 선택하도록 강요한다고 말했다. 나는 왜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까? 나는 왜 지금까지 살면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깨닫지 못했을까? ‘여기가 바로 내가 있어야 할 곳이야!’ 나는 그 자리에서 결정했다. 나는 내가 믿었던 대의명분에 참여하고 싶은 들뜬 마음으로 자원봉사 신청서를 작성했다.



비밀에 담긴 힘




마크는 나보다 여덟 살 많았고 우리의 관계는 감정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빠르게 발전했다. 마크는 이미 결혼을 했던 사람으로 저스틴이라는 세 살짜리 아들도 있었다. 부모님은 마크와 관계를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었지만 나는 듣지 않았다. 나와 마크는 곧 약혼했고, 나는 텍사스 A&M 대학교에 들어가서 결혼한 여성으로서 학업을 계속할 계획이었다. 그러던 중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부모님에게 이 사실을 알리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한편 마크는 우리 미래에 아기를 포함시킬 계획이 없었다. 마크와 나는 며칠 안에 계획을 세웠고, 낙태 비용인 500달러를 지불하기 위해 첫 신용카드를 신청했다. 그러고는 클리닉에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았다. 수치스럽게도 나는 이 해결 방식 말고 다른 방식을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 일은 끝났다. ‘문제’는 사라졌다. 절차는 고통스러웠지만 나는 후회하거나 슬퍼하지 않았다. 내가 한 일이 옳은지 그른지도 고민하지 않았다. 그저 안도감만 있었다. ‘휴, 이제 끝났어. 이제 내 삶을 살 수 있어.’

나는 그 경험을 상자 안에 넣어 못질하여 닫아 버리고 내 영혼의 어두운 구석에 있는 선반에 밀어 넣고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듯이 행동했다. 내가 질의 가족계획연맹 이야기를 빨리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나의 비밀스러운 결정에 타당성을 부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가족계획연맹에서 나의 역할은 다른 여성들이 그들의 ‘권리’를 수호하고 그들이 위기를 겪을 때 이러한 의료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다.



사십 일 밤낮




한편 더그와 나는 약혼을 하면서 주일을 지키기로 결정했다. 나는 대학을 위해 집을 떠난 이후로 주일을 지키지 않았던 터였고 생명운동연합의 생명 수호를 위한 40일 캠페인 이후 하느님과 더 깊이 관계 맺기를 열망했다. 우리는 교회 몇 개를 방문해 보고는 둘 다 좋아하는 교회를 발견했다. 그 교회의 예배는 현대적이고 보수적인 가정 교육을 받은 우리에게 새로웠고, 특히 설교가 마음에 들었다. 나는 다시 교회를 다니게 되어 기뻤다. 그러나 여전히 하느님이 멀게만 느껴졌다. 가끔은 그분이 내가 하는 일을 포기하라고 말씀하실까봐 기도하는 것이 두려웠다. 나는 내 일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몇 달 동안 이 교회를 다닌 후, 우리는 이 교회의 일원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교회 직원은 “목사님은 당신이 이 교회에 오는 것은 매우 환영하지만, 교회의 일원이 될 수 없을 것 같다고 하십니다. 애비, 당신은 낙태 클리닉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생명 수호를 지지하는 교회입니다. 우리는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믿습니다.” 나는 항의하고 싶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눈물을 참는 것이었다. 나의 괴로움을 감지한 더그는 내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그 교회가 생명 수호 입장이었음을 깨닫는 동안, 거절당한 고통은 깊어졌다. 위기에 처한 여성들을 위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기에 클리닉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을 거부당할 것이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더그와 나는 이 상황을 상세히 논의했고 다른 교회를 방문하기로 결정했다. 매주 나는 하느님과 교감을 나누기를 기대했고, 그분의 존재에 대한 깊은 의식을 희망했다. 그러나 첫 번째 교회에서 거절당한 쓰라림은 여전했다. 상처와 떨림은 점점 심해지며 계속되었다. 하느님이 화가 나신 걸까? 종종 기도를 할 때, 나는 하느님께 내 마음을 말씀드리기를 두려워했다. 나는 무언의 두려움과 씨름하기 시작했다.



행동 규칙




2006년 11월 16일, 나는 건강한 여자 아이를 출산했다. 이름은 ‘그레이스’라고 지었다. 극도로 난산이었는데 이로 인해 몇 가지 심각한 합병증이 발생했다. 며칠 동안 등을 붙이고 누워 있어야 했고 모유 수유를 하거나 유축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나는 모유수유를 통한 유대감을 기대했기에 매우 실망했다. 상실감과 실패감에 사로잡혀 기쁨보다는 슬픔과 혼란스러움으로 가득 찼다. 나는 우울증을 경험하면서 고객들과 직접적으로 일하는 것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상기했다. 셰릴이 이 점을 알았던 모양이다. 그녀는 계열사의 지역 의료 서비스 대표로 승진했고 나를 클리닉의 대표 자리에 추천했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나는 그날 밤 늦게 기도했다. “사랑하는 주님, 제가 가족계획연맹에서 일하는 것을 원치 않으시면, 승진하지 않게 해주세요. 아멘.” 이미 지원을 해놓고 이런 기도를 드렸다. 다음 날 나는 승진했다.



나의 적, 나의 친구




대표로서 첫 몇 주 동안 나는 새로운 모범 사례를 만들고 싶었다. 첫 번째 이유는 우리가 여기서 일하는 이유가 고객을 돕기 위한 것임을 직원들에게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예를 들어, 오후 4시 30분까지 진료한다고 알렸으면 우리가 오후 6시까지 일을 할지라도 오후 4시 30분까지 문을 열고 있어야 한다고 상기시켰다. 또한 아주 조용한 날에는 아파트 단지, 빨래방, 텍사스 A&M 대학교 캠퍼스에 전단지를 붙이기 위해 직원들을 내보내 우리의 무료 연례 검사, 자궁 경부 검사, 피임 정보를 제공하려고 했다. 또한 나에게 매우 중요한 것은 수술의 의료적 위험, 특히 약물 낙태의 사전 동의였다. 나는 이 점이 특히 화났다. 내가 직접 겪은 끔찍한 경험을 기억하면서, 직원들에게 고객들과 상담할 때, 특히 임신 6~7주 고객들에게 약물 낙태의 심각한 부작용을 분명히 알고 있는지 확인해 줄 것을 강력히 권고했다.

한편 취임 시 나의 새로운 방침 - 생명운동연합 때문에 ‘경찰에 절대 전화하지 말라’는 방침 -으로,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클리닉 직원들과 생명운동연합 사이의 긴장감은 계속 감소하는 것 같았다. 울타리에 있는 사람들 중 엘리자베스는 친절한 사람으로 끈질기게 나와 친구가 되려고 애썼다. 생명운동연합은 친절과 우정을 통해 그들의 편에 설 수 있기를 희망하는 사람으로 나를 정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일하러 가는 길에 꽃다발을 들고 있는 엘리자베스를 봤다. 나는 기겁했다. 내가 도망치듯 사무실로 달려가자 그녀는 슬프고 실망한 표정이었다. 30분쯤 지나자 그녀는 차도 중앙으로 가서 꽃을 가운데에 놓았다. 나는 차가 꽃다발 위로 지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쓰레기통을 비워야 한다고 변명하고 나왔다. 아름다운 백합 꽃다발 안에는 손으로 쓴 카드가 들어 있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큰일을 하셨기에 우리는 기뻐하였네.(시편126,3) 당신을 위해 기도해요, 애비! -엘리자베스- 엘리자베스가 꽃다발을 고르고 카드를 쓰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나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양립할 수 없는 차이




2008년 초반 더그와 나는 미국 성공회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미국 성공회가 낙태지지 경향임을 알고 있었고, 일요일 아침에 더 이상 내 직업을 숨길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더그와 나는 교회 전례의 일부가 된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호기심을 느꼈다. 우리가 처음 교회를 방문했을 때부터 나는 특히 죄를 고백하는 대목에서 감동받았다. “가장 자비로우신 주님, 우리는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당신께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기도했고 침묵의 시간이 곧바로 이어졌다. 단지 하나의 문제가 있었다. 낙태에 대한 부분을 고백하고자 하는 나 자신과 이에 반대하는 자신을 마주해야 했다. 나는 하느님이 내가 하는 일을 못마땅해하실 수 있다는 두려움에 불편했지만 그분과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꼈고 가까워지기를 원했다.

“어머나!” 어느 날 동료가 소리 내는 것을 들었다. “수녀님이에요. 진입로에 수녀복을 갖춰 입은 수녀님이 서 있어요.” 그때 막 낙태를 한 고객 중 한 명이 자원봉사자의 도움으로 문 밖으로 나가 차로 향했다. 우리의 눈은 수녀에게 고정되었고, 수녀의 눈은 그 고객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 엄청난 슬픔과 진정한 고통의 눈물을 흘렸다. 나는 수녀의 모습을 보고 생각했다. ‘저 수녀님은 내가 평생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은 무언가를 느끼고 있어. 수녀님은 진정 고통 속에 있어. 이것이 수녀님에게는 진실이야. 고객이 낙태를 했다는 사실을 아는 고통.’ 수치심을 느꼈다. 나는 털어 버리려고 노력했으나 내 클리닉 안에서 일어난 일 때문에 수녀가 비통해한다는 사실을 피할 수 없었다.



이사회실




5월 계열사 회의는 아수라장이었다. 우리는 더 이상 저소득층 여성들에게 피임약을 할인된 가격으로 제공하지 않는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은 화를 내고 본사의 관리자들은 고객보다 수익에 더 관심이 있는 것 같다는 불만을 토로했다. “우린 비영리잖아요!”라고 나는 열정적으로 항변했다. 그러나 나는 회의에서 우선으로 해야 할 일을 바로 잡아야 하며, 수입을 창출하기 때문에 낙태를 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명확하고 뚜렷한 설명을 듣고 나왔다. 이는 클리닉 대표로서 낙태 수술 수를 증가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나는 간담이 서늘해졌다.

5월의 나쁜 일들이 마치 끝나지 않았다는 듯이, 그 달의 마지막 날에는 클리닉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끔찍한 타격이 있었다. 더그, 그레이스와 내가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전화가 왔다. 셰릴이 끔찍한 소식을 들려주었다. 낙태 수술자 조지 틸러 의사가 그날 아침에 교회를 갔다가 극단적인 낙태 반대주의자의 총에 맞아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다음 목표물이 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첫날은 극심하게 두려웠다.

2009년 8월, 보통 나는 행정 일로 바빠서 봉사자들에게 여성을 동행해서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일을 맡긴다. 하지만 이번에는 셰릴에게 “제가 나갈게요.”라고 말했다. 여성의 엄마는 심하게 흐느끼며 “지금 네 뱃속에 있는 그 아이가 지금 있는 딸처럼 아름다울 거야! 네 삶에 이 아이가 가져다 준 온갖 기쁨을 생각해 보렴. 딸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 봐! 제발 이러지 마라!” 내가 목격한 가장 강렬한 엄마와 딸의 순간이었다. 나는 뒤로 물러나, 멍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사무실로 돌아가서, 책상에 앉아 울기 시작했다. 내 안에 자리한 깊은 내면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 젊은 여성은 낙태를 했고 그녀가 도착한 지 세네 시간이 흐른 후에 그녀는 딸과 친구와 함께 떠났다. 나는 그녀를 다시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의 엄마가 자신의 손주를 살리기 위해 울타리 사이로 비통하게 간청하는 모습을 잊을 수 없었다. 내 눈을 가리던 비늘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한 가족이 사랑하고 돌보려고 한 아기의 생명을 구하려는 모습은 틸러 의사의 사건에 가려 보지 못했던 것에서 나를 깨웠다. 나는 조각들을 맞춰 보기 시작했다. 나에게 직업을 준 이 단체가 곧 후기 낙태 사업에 가담할 것이라는 사실은 피할 수 없었다. 나는 깊은 딜레마에 빠졌다. 나는 이제 가족계획연맹의 돈과 낙태를 우선시하는 태도, 특히 후기 낙태에 대한 태도를 받아들이기 더 어려워졌다. 나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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