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 위를 바라보게 하는 힘
조봉희 지음 | 교회성장연구소
위로, 위를 바라보게 하는 힘
조봉희 지음
교회성장연구소 / 2020년 1월 / 238쪽 / 12,000원
저를 위로해 주세요 고린도후서1:1-11 사람은 누구나 위로가 필요합니다. 위로를 먹고 살아가는 존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자녀를 키우다 보면, 때로 호되게 꾸중을 할 때가 있습니다. 잘못을 지적하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려 주는 것은 필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면 안 됩니다. 그 다음이 중요합니다. 반드시 안아 주고 보듬으며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 아이는 꾸중보다 위로의 말에 더 깊이 뉘우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도 그러한 이유로 고린도후서라는 편지를 썼습니다. 여러 가지 문제로 말썽을 피운 고린도교회를 엄중하게 질타한 것이 고린도전서라면, 고린도후서는 그런 그들을 사랑으로 감싸고 보듬은 위로의 메시지입니다. 이를 나타내듯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위로’라는 말을 무려 18번이나 반복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고린도후서는 위로로 시작하고, 위로로 마무리합니다.
바울은 선교 현장에서 괴롭고 힘겨운 일들을 많이 겪었습니다. 살 희망마저 잃을 지경에 이른 적도 있습니다. 마치 사형선고를 받은 몸으로 느끼기도 했다고 고백할 정도이니, 그 심리적 위축과 고통이 상상이 되십니까? 그럼에도 그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위로하심을 넘치도록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지쳐 있는 우리에게 위로의 영으로 찾아오십니다. 바울처럼 욱여쌈을 당하고, 감당하기 버거운 일로 숨이 쉬어지지 않을 때, 사라지고 싶을 만큼 절망적인 순간에, 주님은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의 상한 마음을 위로해 주십니다. 탈진 상태에 있는 우리의 내면을 어루만져주시고 우리에게 새 힘과 새 기운을 주십니다.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십니다. 인생의 다정한 친구가 되어 주십니다. 성자 예수님은 늘 소외되어 외로운 자들, 약한 자들의 편에 서셨습니다. 그들의 다정한 친구가 되어 주시고, 따뜻하게 먼저 말을 걸어 주셨습니다. 그들에게 용기를 심어 주시고, 힘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많은 시험을 받고 고난을 직접 당하셨기에, 시험받는 자들을 기꺼이 위로해 주시며 도와주십니다(히2:18). 성령님은 지친 우리에게 힘을 실어 주셔서 우리 안에 새로운 의욕이 샘솟게 하십니다. 낙심과 좌절에서 다시 일어나게 하시며, 실패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하고 용감하게 되도록 새 기운을 불어넣어 주십니다(요14:16,15:26,롬15:13).
고난과 시련을 잘 견뎌낸 사람일수록 아픈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누군가 힘든 일을 당할 때 세심하고 따뜻한 위로를 건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은 우리가 고난 중에 있는 자에게 첫째,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위로하며 둘째, 서로 기도로 도와야 합니다.
서로 세워 주는 위로 고린도후서1:12-24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이 예전보다 약해졌다고, 혹은 낙심과 절망에 빠져 있다고 해서 가차 없이 우리를 내치시는 심판자가 아니십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따뜻한 가슴으로 위로하며 그들의 신앙이 더욱 견고하게 세워져 가고 있음을 그들 스스로 바라보게 합니다.
오늘 한국 교회도 진정한 위로와 격려가 필요합니다. 이 시대에는 영적으로 흔들릴 수 있는 변수가 많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서로 굳건히 설 수 있도록 받쳐 주는 참된 위로가 필요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흔들릴 수 있습니다. 약해질 수 있습니다. 이때, 위로해 주고 격려해 주는 이가 곁에 있으면 다시 든든히 설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긍정마인드’로 살아가야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밝은 마음’입니다. 목회를 하면서 느끼게 된 것은 긍정적인 사람일수록 심성이 착하고, 세상을 선하게 바라보고, 순수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가까이 지내보면 훌륭한 성품과 인격을 가진 경우가 많았습니다.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는 위로 고린도후서2:12-17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하려면 모든 성도가 함께 자라가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교회를 몸에 비유합니다. 우리 몸을 생각해 보십시오. 어느 한 부분에 이상이 생기거나 아파도 온몸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습니까. 과로로 입안이 헐거나 혀에 작은 염증이 생겨도, 밥을 먹고 말을 할 때뿐만 아니라 항상 통증을 느낍니다. 때로는 쉽게 잠들지 못할 만큼 괴롭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교회를 건강하게 세워 나가기 위해 오늘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모든 상황에서 최선을 추구합시다 우리는 모든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사람을 세워 주어야 합니다. 특히 인격을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일보다 인격을, 사역보다 사람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물론 일을 잘하고 열심히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사람을 잃는 사역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하나님은 최선을 다하는 자에게 최상의 열매를 맺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신뢰하며, 우리가 모든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사람을 세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든 상황에서 사랑으로 세워줍시다 바울은 사람을 세우기 위해 ‘사랑’이라는 최고의 치료제를 사용하라고 당부합니다. 여기 “너희가 그에게 사랑을 나타내 보여라”는 표현은 ‘사랑으로 압도하라’(kurosai)뜻입니다. 사랑으로 감동을 주라는 말입니다. 교회 안에 이런저런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시간이 걸릴지는 몰라도 대부분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입니다. 사랑이 아닌 감정으로 끌고 가기 때문에 응어리가 커지고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성공보다 승리를 지향합시다 고린도후서2:12-17 금세기 리더십의 최고 권위자인 존 맥스웰(John Maxwell)은 그의 책, 『성공여행』에서 성공에 대한 올바른 청사진을 그려 줍니다. “성공은 다른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는 씨를 심는 것이다.” 내가 한자리를 차지하고, 높은 위치에 앉는 게 성공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는 일에 다리 역할을 하고,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씨를 심는 것이 성공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패의식으로 살 것이 아니라, 승승의식(win win)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승승’을 넘어 요즘은 ‘승승승’(win win win)이라고 합니다. 나도 좋고, 그도 좋고 , 주변 사람들까지 유익을 얻게 하는 삶의 방식입니다.
사도 바울은 참된 성공을 지향하는 삶의 표본입니다. 고린도후서 2장 후반부에는 눈에 보이는 성공이 아닌 보이지 않는 승리의식으로 살아가는 바울의 모습이 잘 나타납니다. 바울처럼 우리도 일차원적 성공을 뛰어 넘어, 복된 승리를 지향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승리의식으로 살아가는 것일까요?
사람을 세우는 일에 승리합시다 바울은 스케일과 디테일의 균형을 이루는 멋진 리더십을 보여줍니다. 하나님 나라 선교라는 거시적 스케일과 한 사람을 잘 격려하고 세우는 디테일에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나갑니다. 그는 비전 지향적으로 교회를 세우는 ‘사명 인생’을 살면서, 한 사람을 세우는 일에서도 최선을 다합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단순히 목표 지향적으로 일에만 매달리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사역보다 사람, 사명보다 사랑을 우선하는 훌륭한 본보기를 보여 줍니다.
예수님을 세우는 일에 승리합시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세워진 교회는 오직 그 분의 향기, 그분의 영광만을 드러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의 지체 된 우리가 한 사람, 한 사람을 잘 세우고, 성공의식이 아닌 승리의식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곧 그리스도의 향기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당신이 곧 메시지다 고린도후서3:1-6 우리는 이것을 전적으로 확신합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위해 친히 쓰신 여러분이야말로 우리의 추천서입니다.(4절, 메시지성경)
우리가 성경을 가지고 있는가보다 성경대로 살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성경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얼마나 실행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삶입니다. 기독교는 슬로건이나 캐치프레이즈가 아닙니다. 삶 자체입니다. 우리는 성령을 받는 만큼 변화된 삶을 살게 됩니다. 성령을 체험하는 만큼 새 인생이 됩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가 새 인생이 되어 그리스도의 편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내 인생에 퇴보는 없고 진보만 있을 뿐이다 고린도후서4:1,8-9,16-18
세계적인 의학연구기관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의과대학 연구팀은 사람의 몸이 최대 125년의 삶을 견딜 수 있게 설계되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놀라운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인류 사회는 이미 장수 사회에 진입하였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Live longer, live younger’, 즉 오래 살되 젊게 살 수 있어야합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인생의 중반을 넘어섰지만, 자신이 신비로울 만큼 역동적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선언합니다. 사실 사도 바울은 남들보다 훨씬 더 힘든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는 이 같은 육체적, 환경적 고난 속에서도 결코 지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날마다 새 힘이 넘치고 기운이 솟아났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방으로 옥죄이는 환경에서도 영혼의 근육을 튼튼하게 키웠기 때문에 퇴보가 아닌 진보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근육을 키우고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운동을 합니다. 그런데 육체의 근육에 관심을 갖는 만큼 영혼의 근육을 키우기 위해서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까? 영혼의 근육이 튼튼할수록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약해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쳐도 꿈이 흐려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우리 영혼의 근육을 키울 수 있을까요?
예수님의 생명력으로 새 기운을 얻어 살아갑시다 예수님의 생명력은 절망으로부터 일으켜 세우고 죽음으로부터도 거뜬히 살리는 능력입니다(14절). 그야말로 ‘엄청나게 큰 능력’(all-surpassing power)입니다. 큰 바위도 들어 올리는 영혼의 기운입니다. 그 어떤 질병이나 암의 세력도 넉넉히 이기게 하는 능력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면 우리는 날마다 새 힘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미래 영광을 바라보며 새 기운을 얻어 살아갑시다 바울이 일평생 지치지 않고 열정 인생을 살 수 있었던 비결은 그의 미래 지향적 신앙입니다. 그는 다소 고생스러운 지금이 아니라 미래의 큰 영광을 내다보며 끊임없는 진보를 이루어 나갔습니다. 잠깐 고생한 것에 비해 미래 영광이 크다는 점을 바울은 강조합니다. 바울의 힘찬 선언을 보십시오.
현재의 힘겨운 시기는 장차 다가올 복된 시기, 우리를 위해 마련된 성대한 잔치에 비하면 하찮은 것에 불과합니다.(17절, 메시지성경)
얼마나 역설적입니까? 가벼운 고난에 크나큰 영광, 일시적인 힘겨움에 성대한 잔치, 인생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자꾸 위축되고 낙심하는 것은 안주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미래를 꿈꾸며 미래 영광을 그리며 사는 사람은 주저앉지 않습니다. 물러서지 않습니다. 우리가 미래 영광을 바라볼수록 현실의 문제를 뛰어넘고, 낙심을 극복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새 기운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절망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 가지 시련과 고난을 통해 우리를 더욱 새롭게 만들어 가십니다. 고린도후서 4장의 “새로워진다”는 말에서 21세기 영성신학의 주제인 ‘Renovare’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우리는 신앙적으로 퇴보하는 인생을 살 것이 아니라, 진보하는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는 만큼 날마다 새로워집니다. 퇴보에 익숙해지지 말고, 진보에 익숙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천국의 행복을 바라보며 즐겁게 살아갑시다 고린도후서5:1-9 기독교 신앙의 절정은 종말론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메시지는 종말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의 결론 또한 영광스런 종말입니다. 특히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은 찬란한 종말로 대미를 장식합니다. 종말 신앙이 분명할수록 이 세상에 연연하지 않고 초연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종말 신앙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 세상이 전부인 줄 알고 세상 것을 놓지 않고 꽉 붙잡고 사는 것입니다. 노후는 그렇게 신경을 쓰면서 죽음 이후의 영원한 삶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건, 종말 신앙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천국의 영생복락을 보장받은 자로서, 우리는 그 놀라운 은혜를 주신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사람의 사명입니다. 내가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며 사는 만큼 주님께서도 나를 기쁨으로 맞이하실 것입니다.
함께 은혜 받으며 살아갑시다 고린도후서6:1-2 초기 기독교 교부였던 요한 크리소스톰(John Crysostom)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주어진 기회를 활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어지지 않은 기회는 만들어야 합니다.”
성경은 이 점을 강조합니다. 특히 은혜 받아야 할 때 은혜를 제대로 받으면 영적인 도약과 비상을 이루게 됩니다. 예수님은 은혜 받는 자리에 항상 함께 있으라고 당부하십니다. 은혜 받는 자리에 없으면 스스로 퇴보하고 침체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공로사상이나 성과주의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게 된 사람은, 자신이 이룬 것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게 됩니다.
탁 트인 가슴으로 관계 맺기 고린도후서6:11-13 교회 생활을 은혜롭게 하기 원한다면, 무엇보다 탁 트인 가슴으로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닫힌 관계가 아닌 열린 관계, 폐쇄적 담 쌓기가 아닌 개방적 관계를 형성해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곧 마음의 교감으로 결정됩니다. 오랜 세월을 같이 지내도 마음이 통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통(通)하지 않으면 통(痛)한다.” 마음이 통하지 않으면 아프다는 것입니다. 부부도 그렇습니다. 아무리 함께 산 세월이 길어도 둘 사이에 진정한 소통이 없으면 가슴에 응어리가 맺힙니다.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소통의 문제로 가슴앓이를 경험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이에 대한 좋은 처방을 내립니다. 바로 마음을 넓히는 것입니다. 탁 트인 가슴으로 관계를 맺으며 살라는 것입니다.
나는 할 수 있는 한 알기 쉽게, 애정을 듬뿍 담아서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의 삶을 넓히십시오. 탁 트인 마음으로 대범하게 사십시오!(13절, 메시지성경)
그렇다면 탁 트인 가슴이 가져다주는 행복은 무엇일까요?
마음을 열어야 하나님의 은혜를 받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활짝 여는 만큼 하나님의 은혜를 받습니다. “어떤 말씀도 듣겠습니다”하는 열린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마음을 열어야 자신이 변화를 받습니다 마음을 열지 않으면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귀만 높아지고 교만해집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갈수록 마음이 강퍅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열릴수록 심령이 변화가 크게 일어납니다. 마음을 활짝 열어 변화의 은혜 속에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