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오름
김종수 지음 | 교회성장연구소
피어오름
김종수 지음
교회성장연구소 / 2019년 11월 / 262쪽 / 12,000원
나는 그분을 버려도 그분은 나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교회는 늘 그렇게 거짓말을 했다11시부터 시작한 예배…. 한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도 강단에선 설교가 한창이다. 끝날 때까지 버텨 보려 하지만, 어쩌다 들리는 다음과 같은 상투적인 설교 문구 몇 가지가 오늘따라 유난히 거슬린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늘 그렇게 교회는 거짓말을 해대곤 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둥,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둥,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둥,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를 위해 일하신다는 둥…. 도무지 동의할 수도 없고 납득할 수도 없는 거짓말들을 늘어놓을 때마다 나는 더없이 견디기 힘들었다.
어떻게 해서든 믿어 보고 싶어서 하루는 무작정 교회 전도사님을 찾아갔다. “전도사님,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데요. 아니,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것 자체가 안 믿어져요.” 솔직히 그 순간에는 위로라도 받고 싶었다. 그러나 들려오는 전도사님의 답변은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 뿐이었다. “의심하지 말고 무조건 믿으면 돼. 의심하는 것은 죄야.” 결국 의심 많은 죄인 취급만 받은 채 그 자리를 나와야 했다. 이제 더 이상은 돌아볼 것도 없었다. 마음 따라 몸도 떠났다. 내 인생에 교회에 발을 붙이는 일은 더는 없으리라 다짐하며 서서히 교회와 이별을 고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첫 번째 증거하나님을 향해 그 어떤 복을 바란 것도 아니다. 그저 남들처럼 평범하게라도 살고 싶었다. 그러나 나에겐 그런 ‘평범함’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괴기스런 웃음소리가 동네를 가득 메우던 때가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수군대었다. “참 안 됐어. 어쩌다 저 지경이 되었을까. 어린 아들은 어쩌고….” 그렇게 동네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던 그 여인은 우리 어머니였다. 내가 세 살이 되던 해, 예고 없이 그런 순간이 찾아왔다. 그 비극이 있기까지는 영화나 소설에서나 있을 법한 사연이 우리 어머니에게 있었다.
전라남도 화순군 북면 평지리는 외갓집이 사는 동네다. 6.25가 터지면서 외가 동네는 공비들의 주요 공략지역이 되어 버렸다. 어느 날 아침, 공비들이 음식을 빼앗아 가는 것을 참다못한 할아버지는 한마디 하셨다. “그렇게 다 가져가면 우린 대체 뭘 먹으라고.” 공비들은 그 다음날 외할아버지 댁으로 몰려왔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는 물론, 외할아버지의 형제들과 삼촌들까지 다 포함해 16명이 마당에 모였다. 도망갈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었다. 그 상황에서 그분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연신 터져 나오는 총탄에 몸을 내놓는 것뿐이었다. 그때 유일하게 생명을 건진 사람이 외삼촌이었다. 그 끔찍한 살육의 현장을 벗어난 외삼촌은 달리고 또 달렸다. 그렇게 다다른 곳이 누나의 집, 곧 우리 집이었다.
어머니는 만신창이가 된 외삼촌의 모습에 놀랐고, 외삼촌으로부터 들은 참혹한 소식에 정신을 잃었다. 하지만 눈물을 흘리며 슬퍼할 겨를조차 없었다. 경찰들이 어떻게 알고 우리 집에 찾아왔다. 외삼촌이 산을 넘어 누군가의 집으로 가는 것이 의심스러웠는지, 마을의 누군가가 신고를 한 것이다. 한순간 외삼촌은 빨갱이의 첩자로 찍혀 그대로 연행되었다. 빨갱이들에게 피해를 입은 사람이 빨갱이로 몰리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우리 집 마당에서 그대로 펼쳐졌다. 이후 외삼촌은 고문을 당했고, 몇 달 후에 풀려났지만 외삼촌의 몸은 더 이상 제 기능을 할 수 없었다. 한 순간에 친정 식구를 모두 잃고 그나마 살아남은 남동생마저도 고통을 겪는 것을 보며 어머니는 어느 순간 정신줄을 놓아버리셨다.
4대째 종갓집 맏며느리이면서 총 일곱 번 연속으로 딸만 낳으신 어머니. 그런 어머니는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닌 인생을 사셔야 했고, 그 기간이 도합 22년이었다. 그런 어머니에게도 웃을 날이 찾아왔다. 바로 내가 태어난 날이었다. 그런데 3년이 채 되지 않은 어느 날에…. 미치광이가 되어 더 크게 웃기 시작하셨다. 이제 좀 행복해질 날이 찾아왔는데…. 그러니 어떻게 내가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겠는가? 이것이 내가 하나님을 믿을 수 없는 이유이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증거였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두 번째 증거 어머니가 미치자 온 집안이 뒤집어졌다. 어머니의 안위를 걱정해서가 아니었다. 사실 종갓집 맏며느리인 어머니에게는 아들을 낳는 것만이 아니라, 제사 준비를 해야 하는 책임이 있었다. 아버지는 갑작스레 정신이 이상해진 부인을 위해서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셨다. 하지만 변화가 있을 리 만무했다. 급기야 이사까지 다니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정신병에 걸린 것이 집터에 귀신이 역사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물론 이사를 했다고 해서 엄마의 상태가 좋아질 리는 없었다. 그 이후로도 집안에 어려운 일이 닥치면 이사를 다녔고 그렇게 해서 돌아다닌 것이 총 다섯 번이나 되었다.
‘왜 우리만 이렇게 이사를 해야 하지?’ 이삿짐을 쌀 때는 턱없이 서글펐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 것일까? 왜 우리 집안에서만 이렇게 어려운 일이 반복되는 것일까?’ 이사가 서러웠던 또 다른 이유는 이사를 다닐 때마다 집안의 가세가 더 기울어졌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이 계시는 한,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이것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두 번째 증거였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세 번째 증거 어머니는 산과 들을 돌아다니시는 동안에도 아주 가끔씩은 정신을 차리곤 하셨는데, 어느 날 어머니는 들과 산을 한참 돌아다니다가 갑자기 영음을 들으셨다. “네가 아들을 살리려거든 교회를 가거라.” 어머니는 그날로 교회로 발걸음을 향하셨다. 그런데 어머니가 교회로 향하시고 난 이후, 집안은 발칵 뒤집어졌다. 온 집안이 혼돈에 휩싸였다. 가족들 입장에서는 교회에 간 것이야말로 제대로 미친 행위라고 판단되었던 것이다. 특히, 아버지가 받은 충격은 상상을 초월했다. “네가 미치더니 이제 정말 미쳤구나! 어떻게 종갓집 며느리가 교회를 간단 말이냐!” 그 시대에는 그랬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머리를 자르셨다. 성경책도 태우셨다. 물론 어머니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셨다.
내가 처음 교회를 알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 나도 자연스럽게 교회에 발을 디디게 된 것이다. 그러나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이후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어머니는 회복이 되었는데 내가 아프기 시작했다. 단순한 감기도 열병도 아니었다. 학교보다 병원에 있어야 할 날이 더 길어야 할 만큼, 오랫동안 병상에 있어야 했다. 하나님을 믿은 결과가 그렇게 비참했다. 나에게 하나님은 병을 안겨주는, 그런 분이었다. 그런데 이런 일을 겪은 내가 과연 하나님의 사랑을 인정할 수 있을까?
한편 어머니는 그때부터 나를 낫게 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 나서기 시작하셨다. 급기야 어머니는 한 무당의 제안으로 나를 동자승으로 보내셨다. 살리려면 그 방법밖에는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렇게 열네 살밖에 되지 않은 아들이 이제 집을 떠나, 어머니 곁을 떠나 절에서 지내게 되었다. 이 모든 일을 겪은 나에게 더 이상 하나님이란 존재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이런 이유들이 내가 하나님을 믿을 수 없고 하나님의 사랑을 부정할 수밖에 없는 증거들이었다. 훗날 절에서 나와 다시 교회를 다니긴 했지만 하나님을 믿을 수는 없었다. 교회를 다니는 것과 하나님을 믿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하나님은 내게서 단 한순간도 눈을 떼신 적이 없다그땐 정말 몰랐다. 하나님이 왜 나에게, 우리 가정에 그런 고통을 주시는지를…. 그땐 그저 하나님이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그땐 정말 몰랐다. 나의 아픔과 연약함이, 훗날 아프고 연약한 일을 돌아보게 할 능력이 되는지를…. 그땐 그저 하나님이 나를 외면했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땐 정말 몰랐다. 미친 어머니를 바라보며 느껴야 했던 고통이 나를 주의 종으로 쓰시기 위한 하나의 작전이었음을…. 어린 시절의 나는 충분히 고통스러웠고 그 고통으로 인해 청소년기의 나는 완전히 삐뚤어져야만 했다. 하나님을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그런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돌아보면 그 고통은 오늘날 주님께 쓰임받기 위한 관문일 뿐이었다. 버림받음의 상징이 아니라, 쓰시고 세우시기 위한 토대였다.
지금도 고통 받는 수많은 영혼들이 있는데, 그들에게는 당장 하나님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저 거짓말로 들릴 뿐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꼭 전하고 싶다.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을 바라보고 있다고…, 당신이 어디로 가든 하나님의 눈은 당신을 떠나지 않는다고…, 그 고통을 통해 당신을 하나님의 사람을 세우신다고…, 하나님의 사랑을 부정했던 그 증거들은 결국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케 하는 증거가 된다고…’ 내 이야기들이 이 모든 것에 대한 하나의 증거가 되지 않을까.
하나님의 존재를 느끼고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던 인생 최고의 그날
너 교회 안 다니지?군대 마지막 휴가 날이었다. 즐거운 휴가가 되기 위해서는 전제되어야 할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돈이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누나를 찾았다. 천사 같은 우리 누나라면 나를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누나. 동생이 마지막 휴가 나왔는데…. 용돈 좀 챙겨줄 거지?” 그런데 미소를 지으며 지갑을 열 것이라 생각했던 누나는 선뜻 돈을 건네지 않았다. “용돈? 음…. 줄 순 있는데, 단 조건이 있어. 뭐, 별 건 아니고. 나랑 어디 좀 가자.” 그렇게 하여 나는 누나를 따라 어떤 건물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허름한 교회 간판이 눈에 보였다.
교회 안으로 들어가니, 많은 환자들이 전도사님에게 기도를 받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 여전도사님 앞에 앉았다. 전도사님은 대뜸 물으셨다. “교회 잘 다닙니까?” 순간 뜨끔했다. 대충 둘러대듯 대답했다. “아, 네, 네, 뭐….” 사실 전도사님 입장에서는 그냥 지나가는 말로 물어본 것일 뿐이었으나, 그 질문이 나에게만큼은 이렇게 다가왔다. “너 교회 안 다니지? 요놈 새끼….” 전도사님의 입을 통해 하나님이 질타하시는 것만 같았다.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이유는 모른다.
다음날 다시 교회로 갔다. 누나와의 일종의 계약이니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전도사님은 이번에는 이렇게 물어보셨다. “어젯밤, 잘 잤어요?” 또다시 뜨끔했다. 사실 이 질문은 어제 하루 동안 잘 지냈냐고 묻는, 그런 평범한 안부 인사였다. 그런데 나에게는 그 질문이 그렇게 다가오지 않았다. ‘어떻게 아셨지? 전도사님이 내가 잠 못 잔 걸 어떻게 아신 거지?’ 그 이틀 동안 나는 그동안 잊고 있었던 하나님의 존재를 다시금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냥 신기했다. 단순히 전도사님이 내 상황을 그대로 맞추어서 신기한 것이 아니라, 그 두 마디를 통해 하나님이 나를 늘 지켜보고 계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나 할까. 어렴풋이 다가오는 하나님의 존재…. 그 느낌은 뭐라 말할 수 없는 특별한 감정이었다. 과거에 교회를 다니는 동안에는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나중에야 알게 된 내 몸의 정체뭔가 특별한 느낌을 받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여전히 나는 철없는 청년이었다. 마지막 휴가를 최대한 즐기기 위해 술도 마시고 담배도 한껏 피웠다. 그런데 양치질을 하는데 갑자기 역겨운 느낌이 들었다. 속이 이상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이물질이 나왔다 (그 순간에는 잘 몰랐는데 나중에 돌이켜보니, 몸에 있던 니코틴이 다 나온 것 같았다). 그보다 신기한 것은 이후 내 몸에 나타난 변화였다. 그 이후로는 담배를 피기만 하면 쓰고 어지러웠다. 그토록 맛좋던 담배가 아니던가. 그런데 담배를 입에 갖다 대기조차 싫을 정도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담배와 작별을 고하게 되었으니 이제는 술에 의존해야 했다. 다행히 술 냄새를 맡아도 별다른 반응이 나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다른 방법으로 술을 먹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왜 이러지? 오늘따라 왜 이렇게 배가 아프지?’ 그렇게 이유 없이 배가 아프기 시작하면 얼마 안 되어 전화가 오곤 한다. “야, 오늘 술 한 잔 어때?” 마치 하나님이 오늘 술 약속이 잡힐 걸 아시고 아예 못 나가도록 배가 아프게 만드신 것만 같았다. 처음에는 우연이려니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상황이 세 번, 네 번 이어지면서 뭔가 알 것만 같았다. 하나님이 대놓고 못 먹도록 막으시는 것임을.
그땐 하나님의 마음을 온전히 알지 못했다. 뭔가 하나님의 계략(?)이라고는 느꼈지만,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나중에야 알았다. 하나님이 왜 그렇게 하실 수밖에 없었는지…. 아니, 내가 하나님에게 있어 어떤 존재였는지부터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알고 보니…. 나는 하나님의 전이었다. 그것도 거룩한 전, ‘성전’이었다. 그토록 거룩해야 할 공간이자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 내 몸의 정체였으니, 하나님은 그렇게 술도 담배도 끊을 수밖에 없도록 작전을 펼치신 것이다.
사실 이전까지 나에게 있어 하나님은 나와 상관없는 존재일 뿐이었다. 그냥 한때 믿었던 신(그마저도 겉으로만 믿었던 신)에 불과했다. 그랬던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길들여지는 것 마냥, 하나님의 개입을 받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이 나를 꾸준히 간섭하시고 이끌고 계심을 느끼게 되었고, ‘나’라는 존재가 내 마음대로 살아서는 안 되는 존재임을 알아가게 되었다.
그날에야 알았다. 그분의 존재와 그분의 사랑을 아직은 귀찮고 부담스런 하나님의 개입이긴 하지만, 그 가운데 신앙생활에 대한 열정이 생겨났다. 누나의 작전(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의 작전)이 통한 것일까? 계약이 끝났어도 왠지 계속 교회와 가까이하고 싶었다. 또한 하나님은 나의 신앙생활을 전담해 줄 영적인 멘토 전도사님 한 분을 만나게 해주셨다. 그 전도사님과 꾸준히 영적 교제를 이어가면서 새로운 영적인 세계에 대해 알아가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어떤 책인지를 배우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성경을 볼 수 있는 영적인 시각을 갖게 해주시는 것은 물론, 하나님과 보다 친밀해질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셨다.
그리고 전도사님과의 특별한 영적 교제와 만남이 있던 그 시기, 나는 인생 최고의 선물을 받을 수 있었다. 그 선물은 바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다. 하나님과의 거리가 조금씩 가까워지던 어느 날, 안수를 받다가 성령을 받게 되었다. 말로만 듣던 그런 일이 나에게도 일어났다. 솔직히 그때의 심정을 표현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분명히 깨달았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그리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성령이 역사하신 그날에야,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듣고 그 마음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종수야, 내가 너를 사랑한다.” 그 한 마디에 그냥 눈물만 쏟아졌다. 과거에 교회에서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는데 지금에야 그것이 진짜임을 알게 되었다. 순간 과거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갔다. 내가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사랑을 믿을 수 없는 증거로 제시했던 것들이 떠오르면서, 회개가 절로 나왔다.
그 하나면 충분하다 부교역자 면접을 볼 때, 절대적으로 중요시하는 것이 있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있었음을 자신 있게 고백할 수 있는지를 우선적으로 본다. 하나님께로부터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고백을 분명히 들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삶은 완전히 다르다. 특히, 사역자라면 더더욱 그렇다. 또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일상에서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삶 역시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다. 그만큼 중요한 것이 하나님과의 만남이다. 다른 것, 필요 없다. 그거 하나면 충분하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그 고백 하나만으로도 나의 하루는 행복해지고 나의 인생은 완벽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