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은 존재한다
베르나데트 모리오 지음 | 가톨릭출판사
기적은 존재한다
베르나데트 모리오 지음
가톨릭출판사 / 2019년 10월 / 236쪽 / 13,800원
더 이상 아프지 않습니다
2008년 7월 8일, 나는 루르드 순례에서 브렐의 작은 수녀회의 내 방으로 돌아왔다. 나는 69세였고 42년째 투병 생활을 해왔다. 고통은 27세 때 처음 찾아왔다. 좌골 신경통이었다. 이 통증은 점점 심해져 마미 증후군으로 이어졌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반은 마비 상태다. 내 왼쪽 발은 저절로 뒤로 뒤집혔다. 등, 척추, 골반은 전체적으로 상태가 좋지 않아서 목에서 허리까지 보호해 주는 단단한 의료용 보호대로 지탱한다. 의료 기구를 착용한다고 해서 내 몸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시들이 쉴 새 없이 찌르는 듯한 고통을 줄이기 위해 많은 양의 모르핀을 투여했다. 그러다가 고통을 견뎌 낼 수가 없어서 피부 속에 척수 신경 자극기를 삽입했다. 나는 환자였다.
루르드에서 돌아온 지 3일이 지나 금요일이 되었다. 그동안 나는 장거리 여행을 다녀온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이전보다 몸의 고통이 더 심해졌다. 보통 오후 5시에는 경당에서 성체 조배를 한다. 성체 조배 시간이 가까워지자 나보다 19년 선배인 마리 알베르틴 수녀의 발소리가 들렸다.
알베르틴 수녀와 나는 이 수녀원에서 많은 것을 함께했다. 심지어 그녀는 내가 루르드로 순례를 갈 때 나무 묵주를 주기도 했다. 묵주는 어릴 때부터 하느님과 나를 이어주었다. 또 나는 하느님과 마주하는 이 성체 조배 시간도 사랑한다. 나도 경당에 갈 준비를 해야 했다. ‘하느님, 하느님은 실제로 존재하십니다. 이 경당을 포함한 모든 곳에, 그리고 개개인 안에 계십니다. 이번 루르드 순례를 다녀올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마음속으로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자 처음으로 루르드를 갔던 기억, 이전에 순례를 갔던 기억, 그리고 이번에 루르드로 순례를 떠나게 된 일 등이 떠올랐다.
나는 11세 때 처음으로 루르드에 갔다. 우리 집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자주 아프셨고 어머니는 가정부 일을 하셨다. 그러나 나의 신앙 고백식 때 본당 신부님이 나를 아버지와 함께 루르드로 보내 주셨다. 두 번째로 갔던 때는 수도자의 삶에 접어들기 직전이었다. 그리고 여동생과 1970년에 루르드를 찾았던 것이 세 번째였고, 1985년에는 가족과 한 번 더 루르드를 찾았다.
이번에 나에게 루르드에 다녀오자고 권유한 사람은 나의 주치의인 크리스토프 퓌메리였다. 열정적인 가톨릭 신자인 퓌메리는 40여 년 전부터 매년 보베 교구 환자들을 데리고 기차로 루르드 순례를 가고 있었다. 그는 내게 이렇게 권했다. “교구 환자들과 루르드 순례를 가려 하는데 같이 가지 않으실래요?” 나는 말했다. “선생님, 저에게 기적이 일어날 리가 없습니다!” 병원을 나오면서 그렇게 쏘아붙인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수녀가 된 지 50여 년이 다 되어가고 신앙이 깊다고 자부하건만, 나는 나를 위한 기적이 일어날 리가 없다고, 기적을 믿지 않는다고 답한 것이다. 사실 그렇게 큰 은총이 나에게 찾아올 것이라고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는가. 만약 루르드로 순례를 가서 완치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 사람이 내가 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수녀들은 이렇게 갑자기 이동하는 법이 없다.
그러나 퓌메리의 제안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자꾸만 생각났다. 나는 내가 소속된 예수 성심 프란치스코 수녀회 장상 수녀에게 물어보았다. 장상 수녀인 마리 프랑수아즈는 곧바로 답을 해 주었다. “갈 수 있는 힘이 있을 때 순례를 떠나세요.” 맞는 말이었다. 앞으로 마지막 순간에 이를 때까지 몸은 점점 더 변형되며 굳어질 것이다. 더 기다릴 이유가 있을까? 신기하게도 출발일이 다가올수록 루르드로 가도록 이끌림을 받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하느님과 교회의 이끌림에 나를 맡기기로 했다. 하느님이 내 주치의를 통해서 나를 부르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빈틈없이 채워진 루르드 일정이 끝나 가던 7월 4일 금요일, 루르드 성지에서 오묘하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제 존재하는 ‘그 일’이 일어났다. 루르드에서 가톨릭교회가 중요하게 여기는 고해성사를 보았다. 그다음 샘물이 있는 동굴 쪽으로 갔다. 특별히 루르드에는 물이 주는 표징이 있다. 1858년 성모님은 루르드에 발현해 14세 소녀 베르나데트에게 이 땅을 파 보라고 했다. 베르나데트가 성모님이 지시한 대로 그 땅을 파 보았더니 눈앞에서 기적처럼 물이 솟아났다. 성모님은 이 물을 마시고 이 물로 씻도록 하라는 말을 베르나데트에게 남겼다. 여기서는 아직도 알 수 없는 물이 솟아나온다.
우리는 이 물을 마시고, 이 물로 세수를 하고 손도 씻을 수 있다. 동굴 옆에는 침수장이 있어서 전신을 담글 수도 있다. 이 침수장은 장애인을 비롯한 모든 사람이 물속에 몸을 담글 수 있도록 이곳 특유의 거무스름한 암석을 파서 특별히 개조한 것이다. 물에 몸을 담그는 행위는 육체적 행동이지만 영적 기도의 한 형태이기도 하다. 세례를 받으며 정화되고 다시 태어났음을 떠올리게 해 주기 때문이다.
나는 이번에 침수장에 몸을 담그면서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전보다 더 강렬한 느낌을 경험했다. 새로 세례를 받는 것처럼 정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몸은 망가진 채였고 고통도 여전했다. 또다시 차가운 물에 깊이 몸을 담갔다. 짜릿한 느낌이 몇 초간 계속되었다.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물 밖으로 나왔다. 물이 바로 말랐다. 다시 태어났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했다.
휠체어를 탄 채 동굴 안팎을 지나다녔다. 그러면서 성모님의 존재를 확신했다. 동굴에 놓인 아름다운 성상이 성모님의 존재를 상기시킨다. 꼭 성상이 있어서가 아니라 성모님은 실제로 이곳에서 우리와 함께하신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불안, 우울, 고통, 장애 등 세상의 모든 불행을 성모님의 발치에 내려놓고, 밖으로 눈물을 쏟아 내거나 몰래 속으로 보이지 않는 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 우리 어머니이신 성모님은 이 모든 것을 받아 주신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를 예수님께 전구해 주실 수 있다.
시에나의 가타리나 성녀를 떠올렸다. 가타리나는 혼돈의 시기에 교황님을 지지하며 로마 교회를 구했다. 그녀는 감실을 찾아가 그 앞에서 하느님께 말했다. “저는 바랍니다!”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수녀인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묵주를 손에 들고 성모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짧게 기도를 바쳤다. ‘주님, 저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여기 제 주위에 있는 사람들, 제가 아는 사람들,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저의 기도를 바라는 사람들, 이 모든 이들의 고통을 위로해 주세요.’
루르드 침수장을 빠져나와 희망의 기차를 타고 성체 행렬을 했다. 이윽고 성체 강복의 시간이 다가왔다. 엄숙함과 감동이 극에 달했다. 사제는 아픈 사람들을 향해 성광을 기울인 채, 천천히 십자가를 그리며 강복했다. 루르드에서 치유가 많이 일어나는 순간이 바로 이때라고 한다. 보베 교구 주교였던 장 폴 제임스 주교가 함께 갔었다. 성광이 내 쪽으로 오자 그는 성광을 잡고 나에게 강복해 주었다. 물론 내가 성체 강복 예식을 처음 경험하는 것은 아니었다. 수도원에서도 이미 여러 번 했으니까. 그러나 2008년 7월 4일, 이날은 분명히 무엇인가가 내 안에서 일어났다. 제임스 주교가 성광을 잡고 나에게 강복해 주었을 때 나는 예수님이 내 안에 찾아오셨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까지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나는 이 순간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예수님이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네가 고통 받는 것을 보았다. 또한 몸이 아픈 너의 형제자매들이 고통 받는 것도 보았다. 나에게 모든 것을 맡겨라.” 몇 초 정도가 흘렀다.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진심으로 그분께 모든 것을 맡겼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하나가 되었다. 나는 어떠한 경우에도 나를 낫게 해 달라고 기도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내가 나를 위해서 무엇을 청할 수 있었겠는가? 나는 내 상태와 병을 받아들였다. 나는 내 삶의 길과 의미를 병 속에서, 고통 속에서 발견했다. 통증 때문에 고통스러웠지만 그래서 더욱 그리스도와 함께할 수 있다고 믿었다. 나의 모든 마음과 영혼, 보잘것없는 몸을 다하여 그리스도와 함께하려고 노력했다. 내 삶을 통틀어 그리스도가 이처럼 강렬하게 찾아오신 적은 없었다. 나는 성체 행렬 중에 하느님을 만났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은총을 경험했을 것이다. 마음이 평화로 가득 찼다.
순례 여정은 끝났고 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휘어진 내 몸은 아직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찌릿한 느낌이 드는 물속에 몸을 담가 내게 묻었던 무엇인가를 깨끗이 씻어 냈고, 불처럼 강렬했던 성체 강복 예식 때는 하느님의 사랑을 장작 삼아 한껏 타올랐다. 물과 불을 경험하는 두 차례 찰나의 순간, 수녀로서 이미 예전에 새 삶을 시작한 나였지만 이 순간 또 한 번의 새 삶이 시작되려는 듯 했다.
나는 회상을 마치고 성체 조배를 하러 가기 위해 내 방을 빠져나왔다. 마당 건너편의 간소한 경당에 도착했다. 몇 걸음 떨어진 곳에 마리 알베르틴 수녀가 와 있었다. 마리 알베르틴 수녀와 나는 주님과 하나가 되어 세상의 평화를 위해, 아픈 사람들을 위해, 그 종류가 무엇이든 모든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가난한 사람들과 교회를 위해 기도했다. 브렐의 이 작은 경당의 성체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나 루르드의 성체 행렬에서 본 성광의 대형 성체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는 같은 그리스도시다. 그리스도가 현존하시는 성체는 교회의 핵심이며, 우리 모두를 언제 어디에서나 하나가 되게 한다.
수녀원 경당의 두 번째 줄의자에 앉은 나도 그 순간에는 루르드에 있는 환자들과 하나가 되어 기도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내 몸이 말할 수 없이 이완되는 것을 느꼈다. 심장에서 출발한 따뜻한 기운이 여기저기로 퍼져 나갔다. 그 기운은 내 안을 파고들었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 없었지만 계속 기도했다. 내 마음속에 따뜻한 물이 담긴 욕조가 들어온 것 같았다. 퍼져 나가는 이 따뜻한 기운이 나에게 이로울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 기운은 부드럽게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어루만졌다. 부드러운 기름처럼 곳곳을 돌며 내 신체 기관 전체를 채워 주었다. 내 몸을 진정시키고, 고요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치유해 주었다. 그 기운은 순간적으로 지나갔고 지나간 곳에는 다시 오지 않으려는 것처럼 강력한 효력을 남겼다. 하지만 그 기운은 말이 없었고 눈에 보이지 않았다.
성체 조배에 이어 저녁 기도까지 마친 후,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왔다. 내게 말하는 내면의 목소리가 들렸다. ‘보조기를 벗어라.’ 곧바로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예수님이 38년이나 앓으며 누워 있는 병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요한 5,8) 그러자 그는 병에서 나아 들것을 들고 걸어갔다. 나는 1초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전혀 의심하지 않은 채, 내가 찼던 보조기를 모두 벗었다. 다리를 고정하던 보조기, 의료용 보호대, 다 벗어 버리고 내 몸에 보조기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감을 잡을 수 없었지만 기분은 최고였다.
내 몸에 달려 있던 모든 보조기를 벗어 던졌던 그때, 무언가 달라져 있었다. 내 왼쪽 발이 제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발이 휘어져 발꿈치가 땅에 닿지 않았었는데 반대 발과 모양이 똑같아진 것이다! 의료용 보호대를 하지 않았는데 목도, 등도, 허리도 더 이상 어느 곳도 아프지 않았다. 나는 신경 자극기도 껐다. 방에서 나가 알베르틴 수녀를 불렀다. 그녀는 내 쪽으로 오다가 깜짝 놀랐다. 그러고는 나에게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아무렇지 않아요. 아프지 않아요…….” 우리는 성모상과 수녀회 창립자의 사진이 있는 방으로 가서 아이처럼 울고, 또 울었다.
기쁨과 경악, 감동과 흥분의 눈물이었다. 그러고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수녀로서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하느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렸으며, 망덕에 다시 한 번 감사드렸다. 곧바로 모르핀을 끊었다. 그것도 단 한 번에. 모르핀은 마약성 진통제라 보통 단번에 중단할 수는 없지만 아무렇지 않았다. 부작용 하나 없었다. 그동안 고통을 많이 진정시켜 주었던 신경 자극기는 완전히 불필요하게 되었다. 신경 자극기 리모컨도 버렸다. 나는 스스로 하던 도뇨도 중단했다. 모든 것이 질서를 되찾아가고 있었다.
그날 밤 내내, 계속 눈물이 났다. 하느님께 영광을 돌렸고 감사드렸다. 이렇게 다 나은 것이 너무 놀라웠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계속 이렇게 지낼 수 있을지 궁금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투병 생활을 한 지 40년이 넘었다. 40년 넘게 고통 속에서 살아왔는데 단 몇 초 만에 아무렇지 않게, 깨끗이 나은 것이다. 거의 순식간에 나타난 이 변화를 두고 경악, 놀람, 당황을 넘어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는 감정이 느껴졌다. 곧바로 루르드가 생각났다. 성모님이 발현하셨던 동굴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거행된 성체 강복과 그때의 강렬한 느낌이 떠올랐다. 모든 것의 시작은 바로 그곳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일어난 일은 분명 루르드의 성모님과 성체에 연관되어 있었다. 나는 확신했다.
그날 밤, 나는 잠들지 못했다. 행복의 눈물을 흘리면서 하느님을 찬양했고, 다른 환자들도 낫게 해 달라고 기도드렸다. 날이 밝았다. 낭트에 있는 수녀회 본원에 연락해 장상 수녀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했다. 나는 장상인 마리 프랑수아즈 수녀에게 전화했다. 그녀는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나는 내가 겪은 기이한 일을 모두 이야기했다. 그녀는 의심하지 않았으나 신중했다. 내게 교구 주교를 만나서 이 일을 이야기하라고 조언했다. 단, 그 밖에 다른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했다.
침묵하며 기다려야 하는 시간
장상 수녀가 나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말라고 한 것은 감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기본적인 신중함을 갖자는 것이었다. 아직 아무것도 검증되지 않았고 병이 재발할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치유되었다고 외치고 다니겠는가. 한편 나는 나았지만 당황스러움과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왜 나였을까? 과연 치유 상태가 지속될까? 나는 지붕이란 지붕 위에는 전부 올라가 나에게 일어난 일을 세상에 외치고 싶었다. 그러나 당분간은 발설하지 말아야 했다. 장상 수녀의 결정은 이성적이었다.
7월 14일 아침, 피에르 에 마리 퀴리가 20번지로 향했다. 퓌메리가 문을 열어 주었다. 중요한 것은 단 하나였다. 그에게 내 새로운 상태를 말하고 보여 준 다음, 그의 소견을 듣고 진료를 받는 것이었다.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새 몸이 확실한 증거였지만, 그래도 내가 다 나았다는 것을 확인해야 했다. 퓌메리는 대단한 일이 일어났음을 금방 알아차렸지만, 자신의 감정을 가라앉혔다. 곧바로 임상 검사를 진행했고, 수십 년 전부터 앓아 온 만성적인 질병으로 악화되었던 내 몸 상태가 ‘육안으로 보기에 이상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라고 증명되었다. 그런데 퓌메리가 주저앉을 정도로 놀란 것은 아니었다.
그는 40년 전부터 1년에 한 번씩 환자들을 루르드로 데려갔었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는 이미 한 번 이상 ‘기적’을 본 적이 있었다. 그래도 그는 내 경우를 보고 놀랐다. 모르핀을 갑자기 중단했는데도 금단 현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새로운 삶도 평온하게만 흘러가지는 않았다. 며칠 뒤 2차 검사를 하기 위해 퓌메리를 다시 찾아갔는데, 대화 중에 그가 제안했다. “보고서를 작성해야 할 거예요. 수녀님의 완치 사례를 조사해 달라고 의뢰하기 위한 것입니다.” “어디서 조사하나요?” “루르드 의료국입니다.” 우리 수녀회는 반대하지 않았다. 보베 교구 주교의 동의를 얻어 절차를 밟아 의료 보고서를 준비해 루르드 의료국에 제출하라고 나를 격려해 주었다.
9월에 보베 교구 주교인 제임스와 만났다. 우리는 오래 이야기했다. 나는 그에게 모든 것을 말했다. 그는 나에게 이 같은 일이 일어나서 기쁘며, 내가 치유되었음에는 한 점의 의심도 없다고 했다. 그러나 우선은 거리를 두고 지켜보아야 한다고 했다. “검증되거나 공식화되기 전까지는 이 일에 관해 이야기하지 맙시다.” “네, 그럼요, 주교님.” 침묵하며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때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받아들였으나, 그것이 자그마치 10여 년이 걸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