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RE_Think Church(리싱크처치)

이상훈 지음 | 교회성장연구소
RE THINK CHURCH

이상훈 지음

교회성장연구소 / 2019년 9월 / 253쪽 / 12,000원





ISSUE



불안과 공포의 시대

공포의 시대: 혁신 기술이 이끌 미래 사회는 인류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까? 극대화된 편리와 자동화가 인간을 더 행복하게 만들 것인가? 아니면, 쓰나미와 같은 대변혁이 인류를 불안으로 내몰 것인가? 만약 기술의 발전과 인간의 행복이 비례한다면 오늘 우리는 과거보다 훨씬 더 큰 행복과 만족을 누리며 살 것이다. 그러나 이 시대의 현대인들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큰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며 산다. 이것은 정말 아이러니한 현상이다. 물론 사람들이 불안을 느끼는 이유가 단지 불완전한 사회 구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문화 자체가 불안을 조성하는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는 것도 주원인이다. 그리고 불안을 가중시키는 또 하나의 요소는 변화의 속도다. 변화의 내용을 이해할 수도 없을 만큼 빠른 속도가 사람들을 불안의 함정으로 내몬다.

교회의 공포: 물론 이러한 변화는 단지 개인의 삶의 현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오늘날 서구 교회가 놓여 있는 현실 역시 마찬가지다. 데이비드 올슨은 북미 교회의 상황을 마치 생명유지장치에 의존해 가는 모습과 같다고 묘사했다. 현재 북미 교회 헌금의 80%는 55세 이상의 성도들로부터 나오는데, 이들이 역사의 현장에서 사라지는 그날, 생명유지장치의 플러그가 뽑힐지도 모른다. 오늘의 교회는 마치 낭떠러지 앞에 서 있는 듯 위태로운 모습이다. 한국의 상황 역시 마찬가지다.

그도 그럴 것이 서구 사회가 3백 년에 걸쳐서 완성했던 근대화를 한국은 불과 30년 만에 이루었다. 급격한 경제 성장과 도시화, 세계화, IT의 발전과 끝없는 경쟁….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전통과 혁신이 뒤섞여 사회는 참으로 혼란스럽다. 문화의 차이는 세대와 지역의 갈등을 불러일으켰고, 갑자기 창출된 부의 공습은 경제적 양극화와 불균형을 초래했다.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풍성함을 누리면서도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것이 한국 사람들의 현실이다. 교회는 어떠한가?

경제 성장과 함께 찾아온 한국 교회의 부흥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렇지만 한때 ‘이 세대 안에 세계 복음화’를 이루겠다는 사명 선언서를 자신의 것으로 여겨 왔던 한국 교회의 현실은 너무도 비관적이다. 안타까운 사실은 그러한 상황이 외부적 환경의 변화뿐만 아니라, 교회 내부의 문제들로 인해 촉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세속적이고 부도덕한 일들이 봇물 터지듯 수면 위로 부상하면서 교회를 향한 사회의 시선 또한 냉소적으로 변했다. 교회의 미래, 오늘의 한국적 상황에서 보면, 그 미래는 너무 암울해 보인다. 세속화의 거센 파도와 무능해 보이는 교회의 반응은 과연 어떤 결과로 나타날 것인가? 이대로 무너질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갱신과 대응을 통해 다시 부상할 것인가?

부패한 치즈

오늘날 교회 갱신에 대한 우리의 자세는 스펜서 존스가 쓴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에 나오는 - 과거 수북이 쌓여 있던 치즈 창고를 그리워하며 현장 주변을 서성이고 있는 - 꼬마 인간의 모습과 같다. 과거에 누렸던 영화를 그리워하며 미련에 빠져 새로운 도전과 모험을 기피하는 연약한 모습! 눈앞에 닥친 변화조차도 직시하지 못한 채 현실을 회피하고,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교회는 갖가지 이유를 만들어 낸다. 전통과 신학을 수호한다는 미명 아래 교권과 교리를 방패삼아 철옹성을 쌓고 안전을 추구하는 모습은 세상과의 소통과 호흡조차 막아버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러나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변화를 두려워하고 회피하는 조직은 쇠퇴할 수밖에 없다. 오래된 치즈가 맛을 잃고 악취를 풍기는 것처럼, 세상을 변화시키고 회복시켜야 할 교회는 과거의 성공이라는 기억과 제도 속에 갇혀 스스로 그 맛을 잃어가고 있다.

이제 교회는 과거에 누렸던 권세와 특권에 대한 향수를 잊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이 지향해야 할 나라는 세상의 힘과 권력을 가지고 문화의 중심이 되는 것에 있지 않다.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하나님의 통치와 질서가 회복되는 세상이 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회심을 이루는 갱신이 요구될 뿐이다. 교회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과거의 방식을 청산하고 새 치즈를 찾기 위해 새로운 방향으로 더 과감하게 빨리 움직여야 한다. 중요한 것은 현실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더불어 창조적인 대안을 마련하고 시도하는 노력이다. 더불어 하나님 앞에 자신을 정결케 하고, 자신을 드림과 동시에 시대의 변화를 온전히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는 안목 또한 구비해야 한다. 이러한 요건들을 갖춘다면, 이 시대의 어두움은 절망이 아닌 새로운 희망을 위한 전주곡이 될 것이다.

사라진 무임승차권

1963년 어느 날,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의 그린빌에 위치한 폭스 극장이 주일에 영화 상영을 시작했다. 주일? 일요일에 영화를 상영하는 것이 어떻게 사건이 된단 말인가 생각할 사람이 많겠지만, 그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도시들은 그러한 방침을 가지고 있었다. 안식일 엄수법으로 불리는 이 법은 주일에 모든 비종교적인 활동을 금지하고 있었다. 당연히 주일이 되면 모든 상점은 문을 닫았다. 그러나 폭스 극장이 주일에 영화를 상영하는 첫날, 이미 청년들의 마음은 흔들리고 있었다. 얼굴도장을 찍고 교회 뒷문으로 빠져나와 극장으로 향하는 청년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스탠리 하우어 워스와 윌리엄 윌리몬은 그날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날 저녁은 사우스캐롤라이나 식으로 유지되어 온 기독교 역사의 분기점이 되었다.” 서구 사회에 몰려온 세속화의 물결과 맞서 싸운 마지막 보루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변화된 역사적 상황을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교회를 위한 무료입장권, 무임승차권은 사라져 버렸다. 누가 젊은이들에게 세계관을 심어 줄 것인가를 놓고 폭스 극장과 교회가 담판을 벌였다. 1963년 그날 밤, 전초전에서는 폭스 극장이 승리를 거두었다.” 교회의 시대는 그렇게 끝이 났다. 이후 미국에서 세속화가 얼마나 빠르게 진행되었는지, 그 속에서 기독교적 가치와 문화가 얼마나 미약해졌는지 상상하기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행히 그 후 미국 교회는 지속적인 갱신의 노력을 통해 다양한 시도와 새로운 모델이 등장하면서 복음의 역동성이 이어지고 있다. 죽어가는 메인 라인 교회 대신, 새롭게 부상하는 젊은 교회들이 일어나고 있다. 일례로 ‘When God left the Building’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했던 슐츠는 심도 있는 조사를 통해 오늘날 제도적이며 교파적이고 회중적인 모델이 얼마나 급격하게 쇠락해 가고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는 거대한 교회 건물에 남아있는 소수의 회중을 통해 죽어가고 있는 교회의 모습을 실감나게 묘사했다. 그러나 그의 연구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미래의 교회는 건물이 아닌 믿는 자들의 공동체로서의 교회, 즉 성도들이 진정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며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신앙적 열정을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계속 진화해 나갈 것임을 보여 주었다.

우리는 여기서 한국 교회의 과제를 발견한다. 한국 교회에는 과연 새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모델의 교회들이 일어나고 있는가? 기존의 교회에 실망감을 피력하며 교회를 떠나고 있는 세대들에게 다시금 신앙의 용기와 헌신을 유도할 수 있는 창조적 시도가 일어나고 있는가? 어느 한 부분도 긍정적으로 전망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제도적이고 교파적인 교회들은 고리타분하고 구시대적인 조직으로 치부될 것이다. 시대를 읽고 문화와 호흡하며 사람들의 약함과 갈증을 치유하고 채워줄 수 있는 교회가 될 때 선교적 열정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진정한 갱신은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선교적인 이해로부터 시작되어야 함을 기억하며 현재 상황에 대한 간략한 이해를 시도해보자.

현대 한국 사회의 문화적 상황은 서구 사회로부터 유입된 근대와 포스트모던의 영향이 전통적 가치관과 공존하고 있는 형국이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의 근대화는 급격하게 이루어졌다. 서구에서 수세기에 걸쳐 진행되었던 근대화를 한국은 3~40년의 짧은 기간에 집약적으로 경험했다. 급격한 흐름은 모든 면에서 변화를 유도했다. 서구 근대 문화의 유입과 함께 전통적 삶의 양식은 도전을 받았고 사고와 가치, 시스템과 구조 등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 그러나 그것에 채 적응하기도 전에 포스트모던의 물결이 밀려왔다. 컴퓨터와 인터넷, 스마트 기기의 보급과 함께 그 물결은 모든 분야를 급습했다.

그 충격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적어도 서구 사회는 새로운 변화가 발생할 때마다 그에 대한 성찰과 고민, 철학적 해석을 할 여유가 있었다. 물론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20세기 중후반부터 몰아치기 시작한 포스트모던이라고 하는 새로운 사조의 부상과 도전에 대해서는 여전히 그 실체를 놓고 당황해 하는 기색이 역력하지만 말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모든 분야에서 진통을 겪고 있는 한국의 사회ㆍ문화적 혼란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일 수도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포스트모던을 근대 문화와 완전히 구별하여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한국은 여전히 근대주의의 영향 아래 사회 구조가 형성되었으며, 한쪽에서는 전통적 사상이, 다른 한쪽에서는 포스트모던의 영향이 공존해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사실은 젊은 세대일수록 포스트모던의 영향이 강하고, 전통적이고 근대적인 사고방식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보인다는 점이다. 오래된 세대는 전통적 가치를 고수하며, 정부나 기업, 조직의 구조는 근대적이며, 그 속에서 자라는 젊은 세대들은 포스트모던적 성향을 보이는 복잡한 상황이 우리 현실이다. 그런 차원에서 근대적 가치와 포스트모던적 가치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다음 세대를 향한 선교적 접근 방식을 간구해야 한다.

소비주의의 파괴력

포스트모던이라는 새로운 문화적 흐름 속에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 교회는 소비주의라는 강력한 도전 앞에서도 교회 됨의 본질을 잃어버릴 위급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소비자가 된 성도들은 마치 쇼핑 카트를 몰고 필요한 물건을 고르는 고객들처럼, 자신의 필요를 채워 줄 종교 기관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교회는 그런 소비자들에게 선택받기 위해 브랜드를 구축하고 마케팅을 한다. 결국, 참된 제자도가 결핍된 소비자 중심적 시스템은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을 공급해 주는 제도적 교회에 헌신하게 되는 미묘한 결과를 낳고 말았다.

한국 교회도 소비주의 문화 조류에 적응해 버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자기 교회 중심적인 사고가 팽배해지면서 하나님 나라의 관점을 상실해 버렸음에도, 애써 그 위험을 외면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벗어나 기독교 공동체의 사명에 대해 다시 물어야 한다. 현대문화의 한복판에서 우리의 사명은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최대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지만 이것을 세상과의 동일시, 세속화 수용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이 모든 것은 결국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서 경험케 하고 도래케 하며 복음으로 세상을 전복시킬 수 있는 대안적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의 공동체가 형성될 때만 가능하다.

성공에 대한 욕망

우리가 교회의 위기를 논하는 근간에는 교회 됨의 본질과 가치의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단순하게 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 즉 문화 변화에 따라 교인이 줄고 전도가 안 되며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이슬람이나 민속 종교 등이 부상한다는 내용은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이 시대 기독교의 위기는 겉으로 드러나는 급격한 쇠락의 흐름보다 교회 됨의 본질과 가치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오랜 관행과 제도에 갇혀 시대에 맞는 새로운 교회론을 정립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 교회는 세상 문화의 영향으로 걷잡을 수 없이 세속화되어 가고 있는데, 참된 복음은 시대와 문화에 구속되지 않고, 시대적 물음에 응답하여 대응할 뿐 아니라 그에 대한 궁극적 대답을 제시해야 한다. 이렇게 참된 갱신으로 가기 위해서는 먼저 교회 안에 내부적으로 고착된 잘못된 신화를 파악해야 한다.

바이올라는 초대교회의 모델을 연구하면서 기독교는 역사상 최초의 성전 없는 종교였음을 밝힌다. 초대 교인들에게 있어 교회란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정에서 모였고 공동체를 형성했으며, 삶의 현장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선교적 삶을 살았다. 교회는 하나님을 믿고 예배하는 백성들의 회집, 집합체를 일컬었다. 그들이 곧 하나님의 성전이며 집이었다.

사실 이러한 개념은 오늘날에도 이견이 없다. 그러나 신학적으로는 인정하면서도 실제적으로는 교회를 건물로 대치하여 생각하는 것이 실상이다. 교회 건물을 구약의 ‘성전’과 연관 지어 정당화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교회의 본질적 개념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 필자는 여기서 교회 건물의 폐기론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가 건물로 이해되면서 발생하는 왜곡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적 상황에서 교회 건물은 교회를 대표하는 상징이자 그 자체로 인식되고 있다. 참된 교회는 건물에 집중하지 않음을 기억하라. 참된 교회는 하나님과 백성들이 연결되어야 한다. 그들만이 하나님 나라와 통치를 가시화하고 증거하는 유일한 존재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제도화의 그림자

우리는 앞선 글에서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임을 살펴보았다. 주님의 피 값으로 세워진 교회는 수 세기 동안 건물 없이도 지속적인 성장과 영향력을 세속 사회에 끼쳐 왔다. 그러나 기독교가 로마의 종교가 되고, 모든 국민이 의무적인 차원에서 교인이 되어야 했을 때 교회는 변질되기 시작했다. 복음의 야성은 사라지고 제도적 종교로서 체제를 갖추어 갔다. 교회의 관심은 더 이상 세상을 향한 도전과 모험에 있지 않았다. 갑자기 주어진 힘과 권력을 어떻게 보전할 것인지, 어떻게 안정된 기반 위에서 더 강한 지배력을 가질 수 있을지에 초점이 모아졌다.

국가의 지지와 보호가 강화될수록 교회의 제도는 더욱 체계화되었다. 이전의 수평적인 리더십은 어느새 수직적 구조로 대체되었고, 거기에는 사역의 주체가 되는 사제그룹과 사역의 대상이 되는 평신도 그룹으로 나누어졌다. 교회는 더 이상 초대교회와 같은 자유롭고, 참여적이며, 모든 지체가 기능을 발휘하는 공동체가 아니었다. 유기체적 특성이 약화되면서 사역은 점차적으로 경직되어 갔다.

교회의 회복과 갱신을 위해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우리가 정말 바라는 것이 혹, 과거 교회가 누려왔던 세상의 영광을 회복하고자 함은 아닌가? 만약 잃어버렸던 힘과 권력, 특권과 영향력을 얻고자 한다면, 그래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문화적으로 세련되고 매력적인 사역을 실시하는 것이라면 이는 여전히 제도화의 덫에 빠져 허상을 쫓는 타락한 사이비 종교의 모습과 다를 것이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세우시고 이끄셨던 참된 교회가 되기를 원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그 나라를 기대하며 이 땅에서 그러한 모형이 되기를 힘써야 한다. 힘의 회복이 아니라 복음의 회복, 성공이 아니라 고난의 회복을 갈망해야 한다. 크고 넓은 길을 닦는 것이 아니라 좁고 힘든 길을 보여 주고 그 길을 능히 갈 수 있는 헌신이 필요하다. 참된 갱신은 바로 거기에 있다.

소통혁명과 다음 세대

컴퓨터와 각종 스마트 기기, 인터넷과 다양한 소셜네트워크의 발전은 소위 넷세대라는 기존 세대와 전혀 다른 가치관과 양식을 가진 그룹을 부상시켰다. 기존 세대들은 넷세대를 향해 회의적이며 부정적일 뿐 아니라 냉소적인 관점으로까지 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부모 세대에 비해 더 똑똑하고, 빠르고, 더 많은 다양성을 받아들인다. 그들은 사회가 직면한 정의와 문제에 관심이 많으며, 속도와 자유에 유연하게 반응한다. 교회의 미래는 이러한 젊은 세대에게 달려 있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는 새로운 세대에 대한 선교적 부담을 가지고 다가가야 한다.

교회는 다음 세대를 향한 투자와 문화적 접근을 고민하며, 새롭고 창조적인 사역을 시작해야 한다. 기성세대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그들의 관점과 눈높이에 맞는 접근이 필요하다. 관계를 형성하고 사랑을 부여하며 참된 이해와 지지를 보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교회는 그들이 필요로 하고 원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소통의 중요성을 깨닫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교회가 다음 세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며, 그들을 포용하고 사랑하는 교회가 될 수 있다면 오늘날같이 젊은이들로부터 외면 받는 집단은 되지 않을 것이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