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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의 인도하심

윤종남 지음 | 교회성장연구소
성령님의 인도하심

윤종남 지음

교회성장연구소 / 2019년 8월 / 230쪽 / 12,000원





성령님이 인도하시면 맨땅도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이 된다



맨땅, 그곳은 하나님이 일하시기 딱 좋은 공간이었다

막막함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계획: 애굽을 등지고 나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해방의 기쁨도 잠시, 막막함이 엄습해 왔다. 그리고 그 막막함은 어느새 걷잡을 수 없는 두려움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막막해 보일 법한 그 상황을 허락하신 분은 다름 아닌 하나님이셨다. 하나님의 능력을 온전히 나타내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 그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서는 인간의 머리로는 도저히 계산되지 않는 막막함이 전제되어 있어야만 했다. 그것이 하나님의 방식이었다. 막막함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이스라엘 백성을 오직 하나님의 방법으로 인도하셨던 하나님이 지금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신다.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그러고 보면 하나님은 맨땅을 참 좋아하시는 것 같다. 텅텅 비어 있는 공간은 ‘비어 있는 만큼 채울 수 있는 영역’이 넓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우리 계산으로 빈 공간을 채워 나갈 필요가 없다. 맨 땅에 헤딩하는 것에 대한 부담에 사로잡혀 있을 필요도 없다. 우리가 할 일은 그저 하나님이 채우실 여지를 최대한 많이 남겨 놓는 것! 그야말로 맨땅을 그대로 남겨 놓기만 하면 된다.

막연한 미래를 앞에 두고 시작된 주의 종의 길: 나 역시 막막함의 연속에 놓여 있던 시절이 있었다. 개척 초기가 그때였다. 어쩌면 개척을 하기에 앞서, 신학교에 간다는 것부터가 나에게는 무모해 보이는 도전이었는지도 모른다. 군대도 다녀오고 결혼까지 한 후에야 걷게 된 신학도의 길…. 누군가는 늦깎이로 신학도의 길을 가는 것에 대해 걱정이 되지 않느냐고 물을지 모르나, 나는 조금도 걱정되지 않았다. 불안, 염려는커녕, 평강만이 임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하나님의 확실한 음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한 사명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만큼 나는 도전의 길 앞에서 설렘과 기대만이 가득했다.

“서른에 교회 개척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아무것도 없는 내가 교회를 세운다는 것은 함부로 가늠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막연한 미래였을지 모르나,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하나님은 나를 하나님의 방법대로 서서히 움직이고 계셨다. 마침 선배 목사이자 친구이기도 한 김남수 목사님의 소개로 신동수 목사님이 시무하시는 교회에 부교역자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신학교 1학년 말, 나에게 찾아온 그 기회는 하나님이 나의 빈 공간을 채우고 계신다는 첫 번째 신호탄이었다. 쓰임 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던 그 시절, 나는 그곳에서 1년 반가량 사역하며 신학공부도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

맨땅으로 나와 다시 시작하다: 신학교 3학년을 앞두고, 사역하던 교회의 신동수 목사님이 미국 선교를 떠나게 되셨다. 그리고 새로운 목사님이 부임하시면서, 나도 그곳을 떠나 새로운 사역지를 찾기 시작했다. 사실 그곳으로 나를 이끌어 준 김남수 목사님은 후임 목사로 나를 추천했다. 그러나 아직 신학교 2학년에 불과한 내가 교회를 담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다시 맨땅에 나오게 된 나. 그 상황 역시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의 역사를 온전히 이루시겠다는 소중한 사인이었다. 막막함 때문에 오히려 더 기도할 수 있었고 오로지 하나님만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와 사모는 새로운 사역지를 두고, 성령님의 인도하심만 바라고 40일 작정 부부기도를 시작했다. 당연히 금식기도도 빠질 수 없었다. 기도원으로 들어가 7일 금식기도를 시작했다. 그리고 금식이 끝나고 난 후, 내 앞에 선택지가 도착했다. 첫 번째 후보는 의정부에 있는 어느 교회였다. 장로님이 나에게 소개해준 그 교회는 성도들이 갈라져 나와 새로 세워진 교회였으며, 20~30세대가 출석하고 있어 목회자의 기본 생활은 보장되는 곳이었다. 두 번째 후보는 성남시에서 새롭게 개척하는 교회였다. 정해진 것도 갖춰진 것도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의 개척이 바로 두 번째 선택지였다. 두 가지 선택지를 두고 고민하는 나에게, 성령께서는 확신과 응답을 주셨다. 맨땅에 또 다시 헤딩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 뜻이었다. 그때만 해도 성남시는 지금과 달랐다. 그곳은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동네였다.

5.5평짜리 개척교회를 세우신 하나님: 기도 응답 후, 직전 교회로부터 받은 퇴직금 10만 원을 들고 성남시 복덕방으로 갔다. 지금도 기억나는 이름 ‘천복 부동산.’ 그곳에서 도움을 받아 상대원동에 5.5평짜리 세를 얻었다. 물론 안내한 분은 복덕방 주인이지만, 실제로 나를 인도하셨던 분은 하나님이었다. 당시 내 나이 31세였고 이제 겨우 신학교 3학년 초였다. ‘30세에 교회 개척을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던 나를 위해, 하나님은 31세에 개척의 길을 열어 주신 것이다. 1976년 3월 6일, 성남시 한 구석에 성남만민교회가 세워졌다. 물론 아무것도 없었다. 말 그대로 맨땅이었으니, 무엇 하나 갖추어져 있을 리 없었다. 강대상이 없어 사과 궤짝을 구해다가 강대상으로 삼을 정도였다. 건물 밖에는 교회 간판이나 십자가도 없었다. 사택도 없어서 지하실에 붙은 조그마한 창고 방에 가족이 모여 살았다.

출석교인이 없진 않았다. 나와 사모와 20개월 된 아들과 3개월 된 아들, 총 네 명의 교인이 개척 멤버였던 셈이다. 새벽 4시 반이 되면 유일한 성인 성도였던 사모를 앉혀놓고 예배를 드렸다. 낮 11시 예배, 저녁 예배도 빼놓지 않았다. 참석 인원은 둘이지만, 예배는 세 번이나 드렸다. 얼마 후 신학공부를 하던 여동생 윤영자 전도사가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고 한동안 주일학교 사역을 맡게 되었다. 그렇게 하나님은 서서히 맨땅을 채워주셨다. 우리가 기도하고 예배하며 하나님을 향해 입을 넓게 벌릴수록, 하나님이 일하신 공간을 더 크게 남겨 둘수록, 하나님은 더 적극적으로 역사를 이루어 가셨다. 공허한 심령에 충만한 기쁨을, 병든 육체에 건강을, 가난한 곳에 부요를, 실패한 인생에게 성공을 채우시는 하나님이 텅텅 빈 그곳을 채워 가셨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신 전능하신 하나님은 막막한 환경에 놓여 있던 우리 가운데서도 동일하게 역사하셨다.



당신의 운명, 어디 한 번 바꿔 보시겠습니까?



눈높이를 맞춘 채로 마음 문을 두드리라

꿈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때를 기준으로 인류의 역사는 양분된다. B.C.(기원전)와 A.D.(기원후)로 갈라지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예수를 믿으면 우리 인생도 바뀐다. 예수 믿기 전의 인생과 믿은 후의 인생이 달라지는 것이다. 부분적인 변화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신분 자체가 바뀌어 버리니 새로운 인생이 펼쳐진다고 보면 된다. 죄인이 변하여 의인이 되고, 마귀의 노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저주가 변하여 축복이 되니, 말 그대로 운명이 바뀌는 것이다. 세상 표현으로 팔자가 바뀌는 것이다.

특히, 운명이 바뀌는 것은 꿈이 바뀌는 것과도 연관이 된다. 이 세상 사람들은 꿈을 꾸며 살아간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꿈에 따라 그 인생도 바뀌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성공적인 지위를 얻는 꿈을 꾸며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던 어떤 여성이 결혼을 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를 낳았다고 해보자. 그리고 그 순간부터 아이를 건강하고 안전하게 잘 키우는 것을 꿈에 우선순위를 두게 되었다고 해보자. 그럼 그 여성이 살아가는 모습은 완전히 바뀌게 될 것이다. 이전까지 그녀의 삶이 성공을 위해 공부하고 준비하던 모습으로 채워져 있었다면, 그때부터는 아이에게 시간을 쏟는 것에 주력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그 여성은 아이가 갑자기 아프다면 그 이전까지 중요하게 여겼던 일들을 다 뒤로 하고 아이를 돌보는 데에 집중할 것이다. 그만큼 꿈은 사람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을 수밖에 없다.

성경에 나오는 혈루병을 앓던 여인도 마찬가지였다. 그 여인은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의원에게 괴로움을 받아왔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가진 것도 다 허비하여 빈털터리가 되었지만, 정작 건강엔 아무런 효험이 없어 병만 더 중하여졌다. 그런 중에 그녀는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고 새로운 꿈을 갖게 되었다. “내가 그의 뒤로 가서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그녀는 예수님을 찾아갔고,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다. ‘주님의 옷자락에 손만 대어도 나으리라’는 꿈이 실현되는 순간, 그녀의 인생도 변했다. 생각과 꿈이 그녀를 행동하게 했고 그녀의 병을 낫게 했고 운명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시부모를 전도하겠다는 꿈: 우리 교회를 최초로 찾아왔던 세 명의 여성 중에 김방실이라는 성도님이 있었다. 그분이 나중에 따로 찾아오더니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전도사님, 우리 시아버지, 시어머니가 불교와 유교에 빠져있는데 제가 교회 간다고 날마다 곰방대로 때려요.” 교회 간다는 이유로 때렸던 이유는 다름 아닌 제사 때문이었다. 시아버지의 걱정은 바로 ‘며느리가 교회 다닌다는 이유로 자신의 장례도 제대로 안 치러주고 제사도 안 지내면 어떡하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김방실 성도에게는 자신을 학대하는 시부모님을 전도하겠다는 꿈이 있었다. 그 어떤 이들이 가진 꿈보다 거룩하고 위대한 꿈이 아니었을까. 그 꿈을 안고 개척교회 전도사를 찾아와 그렇게 간절히 간청했던 것이다.

물론 김방실 성도가 기존에 다니는 교회에서도 노력할 만큼 했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목사님도 열심히 도우셨지만 복음을 전할 시도조차 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런데 목사님도 하기 어려운 것을 개척교회 전도사가 어떻게 한단 말인가. 하지만 여의도순복음교회 청년부 시절, 7, 8년간 전도하던 담력이 있었기에 담대히 찾아갔다. 복음을 전하는 것도 결국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 믿고 나아갔다. 우리는 도구일 뿐, 그냥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르면 되는 게 아닌가. 나는 그분들에게 90도로 허리를 굽혀 정중하게 인사드렸다. 나를 보자마자 여든이 넘은 시아버지 되시는 분이 물었다. “누구단갑요?” “예. 전도사입니다.” 그러자 두 분은 전도사가 뭐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고 나를 내치지는 않았다.

전도하려면 먼저 상대의 눈높이에 맞추어야 한다: 나는 이미 그분들이 중시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터라, 그분들이 좋아하실 만한 이야기를 했다. “제가 돌아가신 분 20여 명 정도 직접 다 닦고 염을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떤 분은 잠자는 것처럼 부드러운데, 어떤 분은 그리도 뻣뻣할 수가 없어요.” 본인들이 관심 있는 이야기를 하자 두 사람은 솔깃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궁금했을 것이다. 대체 어떤 사람이 잠자는 것처럼 부드러운 몸을 가진 채로 죽는지를, 나는 이어서 대답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부드럽고 평안하게 죽어요. 할아버지, 할머니도 우리 교회 오시면 돌아가실 때 그렇게 만들어 드릴게요. 약속합니다.” 그렇게 두 분은 교회에 나오게 되었다.

전도에는 정답이 없다. 알맹이에 해당하는 복음이야 분명하고 명확하게 전달해야 하지만, 전하는 방법은 천차만별이다.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추는 것, 그것이 지혜다. 오로지 돈에만 관심이 많은 사람에게 ‘죽으면 하나님 나라 들어갑니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복음이 귓가에 들어올까? 일단 예수님에게 관심을 갖게라도 하려면 그들이 관심 있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하다못해 ‘예수 믿어야 부자 된다’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게 맞다. 교회에 발걸음이라도 하게 해야 그 다음에 하나님과 인격적인 만남도 갖고 성령을 통해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날 테니까. 복음의 진정한 가치를 전하는 것은 교회 안에서 해도 된다. 밖에서는 우선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역시나 그들의 결말은 달랐다: “돌아가실 때 부드러운 몸으로 돌아가게 해드리겠다.”고 약속하여 전도했던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 두 분은 훗날 어떤 결말을 맞았을까? 전도한 후 4, 5년 정도가 지나 두 분 모두 천국에 가셨다. 할머니가 먼저 돌아가시고 열흘 사이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역시나 살이 보들보들했다. 평안한 인생을 살다 가신 사람처럼.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킬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했고 평안히 하나님 품에 안길 수 있어 감사했다. 며느리가 아니었으면 그분들의 결말은 어떠했을까. 그분들의 운명이 바뀔 수 있었을까. 시부모를 전도하겠다는 꿈을 가진 며느리, 그 꿈대로 영원한 행복을 선물한 며느리야말로 세상 최고의 며느리가 아닐까.



순종하면 그만인데 무슨 고민이 더 필요할까



목회, 순종으로 시작되고 순종으로 이어진다

순종, 어렵다. 하지만 편하다: 그리스도인 삶의 방식을 한마디로 말하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순종!” 그리스도인이라면 이거 하나로 충분하다. 누구나 순종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순종하기 어려운 내용을 순종하라니까,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순종이 버거울 때가 있다. 그러나 돌아보면 알게 된다. 그 길이 최상의 길이자 최적의 방법이자 최고의 선택이었음을! 사랑하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에게 시키는 것이라면 무조건 좋은 것이다. 무조건 좋은 것이니 무작정 따르기만 하면 된다.

불순종으로 시작된 죄의 역사, 순종으로 시작된 구원의 역사: 순종은 믿음과 직결된다. 믿으면 순종하게 되고 믿지 못하면 순종하지도 못한다. 하나님을 정말로 믿느냐, 믿지 못하느냐가 결국 순종의 길목에서 갈리는 셈이다. 그런데 이 믿음은 구원으로 연결된다. 정리하자면 순종은 결국 구원과 한 세트라고도 할 수 있다. 예수님의 구원 역사 전반을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구원 역사의 시작이 예수님의 순종으로 출발했다. 예수님은 사람이 아니다. 피조물이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런 하나님의 아들이 피조물의 죄를 대신 담당하러 가라는 뜻에 순종하셨다.

오늘날 수많은 권력자나 부자나 지식인들은 대개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싫어한다. 그래서 하나님께 버림을 받을 때가 많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심에도 불구하고 순종의 본을 보이시려고 기꺼이 이 땅에 내려오셨다. 그뿐만이 아니라, 십자가의 형벌을 달게 담당하셨다. 불순종으로 시작된 죄의 역사, 그리고 순종으로 시작된 회복의 역사! 정말로 신기하고 놀랍지 않은가?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으로 모든 사람이 죄의 노예가 되었지만,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모든 인류에게 의인되는 길이 열렸다. 그리스도의 그 위대한 순종이 없었더라면, 인류구원도 없었다. 한 분 예수님의 순종으로, 인류의 살 길이 열렸고 그 길 안에 우리가 있다.

구원 역사 안에 들어가는 것, 우리의 순종에 달렸다: 순종을 통해 구원의 길을 열어주신 예수님이 우리 앞에 있다. 이제 우리는 따르면 된다. 절대 순종으로 구원의 기회가 주어졌듯 인류는 그리스도에게 순종해야 구원을 얻는다. 더 감사한 것은 그 구원이 죽은 후에 천국에 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구원은 지금 이 순간에도 누릴 수 있다. 적어도 하나님의 구원이라면 그렇다. 하나님은 내 삶 자체의 구원, 전인구원을 약속하셨다.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축복을 받는 삶이 곧 구원받은 자의 삶이다(요삼 1:2).

예수님과의 첫 만남, 그리고 시작된 순종의 삶: 내가 처음 교회에 다니게 된 것은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충복 옥천군의 청산장로교회(통합)에서 신앙생활을 했는데, 당시까지만 해도 부모님은 믿지 않으셨고 형제자매들과 나만 교회에 다녔다. 서울에 온 이후로 어머니를 전도하여 권사 직분까지 받으셨지만 그때만 해도 우리 가족이 구원방주 안에 들어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런 집에서 주의 종이 배출되었다는 것도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른다. 무엇보다 나부터가 교회를 다닌다고는 하지만 형식적으로 교회를 출석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교회에는 다니지만 하나님과 인격적인 만남도 없었고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격조차 전혀 느끼지 못했던 나였다. 결국 고등학교 때 교회를 떠났다.

한편 사모는 동대문구 용두동에 살던 시절 처음으로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고 한다. 나와 사모는 그렇게 어린 나이에 교회에 다니게 되었고, 성장한 후에는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다니게 되었다(당시에는 서대문교회였다). 사모는 조용기 목사님께서 전도사로 사역하실 때부터 서대문교회에 다니기 시작했고, 나는 군대에서 제대한 1969년부터 다니기 시작했으니 지금으로부터 거의 50년 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당시 나는 동방속기학원에 다녔는데, 졸업하던 날 김인순 자매님께 전도를 받았다. 그리고 하나님은 서대문교회로 나를 인도하셨다. 이때만 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목회자가 된다는 것도, 훗날 이 교회에서 부목사 사역을 하게 된다는 것도….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청년기를 보내면서 ‘순종해야만 하는 삶’ 안으로 완전히 들어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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