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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결혼학교

게리 토마스 지음 | CUP
행복한 결혼학교



게리 토마스 지음

CUP / 2019년 6월 / 311쪽 / 15,000원





사랑하기와 소중히 여기기



등한시되는 말



많은 부부가 결혼할 때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기”로 서약했다. 여기서 사랑 부분은 거의 누구나 이해하고 알아듣는다. 헌신하고, 상대를 앞세우고, 섬긴다는 뜻이다. 그런데 배우자를 소중히 여긴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소중히 여김이란 결혼생활에서 우리가 무엇이 되어 무엇을 하도록 부름을 받았는지 더 잘 알게 해 주는 개념이다. 따라서 서로 소중히 여긴다는 의미를 탐색하고 이해하면 부부관계가 풍성하고 깊어지고 영적으로 강건해진다.

참고로 소중히 여긴다는 단어는 안타깝게도 사람보다 물건과 추억에 더 널리 쓰인다. 예로 소중히 여기는 물건이라면 당연히 보호하고(억대의 벤츠를 차 문도 열고 열쇠도 꽂은 채로 길가에 두지는 않는다). 애지중지하고(“와서 내 새 차 좀 구경하시게!”), 부드럽게 대하고(험한 노면을 피한다), 양분을 공급하고(엔진오일을 교체하고 정비한다), 일부러 정성을 쏟는다(자주 세차하고 깨끗이 닦는다). 그리고 소중한 물건일수록 귀히 여기게 마련이다. 또 뭔가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그게 자신에게 중요한 물건임을 일부러 밝힌다. 그리하여 그 물건을 드러낸다.

이것을 관계에 적용해 보자. 누군가를 소중히 여기면 상대를 보호한다. 물리적 보호만 아니라 정서적, 영적 보호일 수도 있고, 명예나 건강을 보호해 줄 수도 있다. 또 상대를 부드럽게 대한다. 자신에게 더없이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또 상대에게 양분을 공급할 방법을 찾아내고, 적어도 가끔은 일부러 정성을 쏟는다. 또 소중한 사람일수록 귀히 여긴다. 일부러 상대를 생각한다는 뜻이고, 생각할 때마다 큰 기쁨을 얻는다는 뜻이다. 그 사람을 떠올리면 미소가 머금어진다. 이런 애정을 가꾸면 당연히 상대의 가치를 남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어진다. 그래서 방법을 찾아 사람들에게 배우자를 드러낸다. 배우자의 장점을 보고 그들도 나처럼 기쁨을 얻도록 말이다. 어떤 의미에서 사랑이 결혼생활의 양분이라면 소중이 여김은 결혼생활의 ‘맛’이다. 사랑은 필요를 채워주고 소중히 여김은 혀를 자극한다.

“너무나 소중한 사람”



사랑과 소중히 여김은 경쟁하지 않고 서로를 보완해 완성한다. 당연히 양쪽이 겹쳐질 때도 있다. 힘써 소중히 여길수록 사랑도 더 잘하게 된다. 남자들이여, 아내가 당신에게 바라는 바는 헌신한다는 의미의 ‘사랑’만이 아니다. 아내는 당신이 자신을 소중히 여겨 주기를 바란다. “절대 당신을 떠나지 않고 당신에게 헌신하겠소”에서 그치지 않고 다음과 같은 말까지 듣기를 원한다.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도다.”(아2:2)

그리고 여자들이여, 알고 보면 소중히 여김을 받는 남편이 가장 행복한 남편이다. 내 친구가 남성 친구들 일곱에게 물었다. “아내가 자네를 사랑하는가?” 일곱 모두 그렇다고 답했다. 이번에는 그가 “아내가 자네를 좋아하는가?” 라고 물었더니 모두가 한결같이 아니라고 답했다. 일곱 명의 남편 모두 사랑받는다고 느끼지만, 소중히 여김을 받는다고 느끼지는 않기 때문이다. 남편들은 아내에게서 이런 말을 듣기를 원한다. “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아2:3). 다행히 우리는 배우자를 소중히 여기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그것은 단지 느낌만이 아니다. 배우자를 소중히 여기는 느낌이 들게 해 주는 영적, 관계적 실천이 있다. 그대로 행동하면 정말 마음으로 상대를 귀히 여기게 된다. 소중이 여김을 배우면 실제로 기쁨과 보람과 행복과 만족이 싹튼다. 논리적으로 맞아들지 않는 듯해도 믿음으로 실천하면 통하는 영적 실체가 있는데, 소중히 여김도 그중 하나다.

당신의 결혼생활이 정체되었거나 조금이라도 진부해졌다면 이제부터 부부 간에 서로 소중히 여기는 법을 배울 수 있다. 하나님은 자신이 우리를 소중히 대하시듯 우리도 배우자를 소중히 대하도록 가르침과 능력을 주실 수 있다. 거기에 우리의 희망이 있다. 지금까지 많은 결혼 서적을 통해 당신은 사랑하라는 도전을 받았다. 이 책의 도전은 소중히 여기는 일인데, 그러면 당신의 사랑이 전혀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려진다. 소중히 여기는 나의 성경적 행위를 통해 배우자는 능히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본연의 자신이 될 수도 있고, 그 과정에서 나도 더 본연의 자신이 되어 간다. 그 결과 결혼생활이 더 귀하고 잘 소통되고 만족스럽게 느껴진다. 성경적 결혼의 주요 요건인 사랑을 축소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사랑은 언제나 성경적 관계의 근간이다. 그러나 소중히 여김의 특별한 속성을 공부하면 사랑이 광택을 입어 빛을 발한다. 그리하여 우리 삶과 부부관계에 특별한 윤기가 더해진다.



세상에 하나뿐인 남자와 여자



세상에 하나뿐인 여자



아내를 소중히 여기는 법을 배우려면 에덴동산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담은 동물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가지각색의 식물을 찾아냈고, 기어오를 나무도 많았고, 상상을 초월하는 하나님과 대화도 나누었다. 그런데 자기 같은 사람은 없었다. 아무도 없었다. 그때 하나님은 아담을 잠들게 하셨다. 잠에서 깨어난 아담은 자신의 눈이 믿어지지 않았다. 앞에 하와가 서 있었다. 하와는 중요한 면에서 아담과 같았지만, 더 중요한 면에서 그와는 사뭇 달랐다. 입술! 부드러워 보이는 눈빛. 아담과 같으면서도 왠지 멋있게 다른 두 다리. 그리고 가슴! 오늘날까지도 남자들의 탄성을 자아내는 어깨에서부터 발까지의 곡선. 그런 그녀가 그의 것이었고, 그는 그녀의 것이었다.

이 순간이 강렬하고 중대하고 매혹적이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할리나 샤니스나 소피아는 없었다. 오직 하와뿐이었다. 아담은 하와의 뒤태를 카밀라와 비교하거나 하와의 다리를 엠마와 비교할 수 없었다. 하와가 재닛보다 친절하다거나 클레어만큼 똑똑하지 못하다는 말도 할 수 없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하와뿐이었다. 하와는 첫 남자에게 ‘여자’를 규정해 준 여자였다. 하와 외에는 없었기에 아담은 다른 여자를 상상할 수 없었다. 하와는 그냥 존재했다. 세상에 하나뿐인 여자였다. 그대로 아담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결혼생활에 온전히 만족하고 싶은가? 아내를 소중히 여기고 싶은가? 그렇다면 마음속으로 아내를 하와처럼 대하라. 그렇게 아내를 세상에 하나뿐인 여자로 생각하라.

세상에 하나뿐인 남자



여자들이여, 똑같은 여정으로 초대하고 싶다. 참으로 행복한 결혼생활의 관문인 에덴동산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그 문을 열어 최고로 기쁘고 행복한 아내가 되려면 이제부터 남편을 아담으로, 즉 세상에 하나뿐인 남자로 보아야 한다. 이혼 통계와 개인 사례를 종합해 보면 여자가 남자보다 결혼 생활에 더 불만족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 당신은 사납게 엄습해오는 실망에 맞서 사투를 벌여야 하는지도 모른다. 자칫 좌절에 이끌리고 원망에 무너져 멸시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말이다. 어떻게 멸시를 퇴치할 수 있을까? 어떻게 남편을 유일한 남자인 양 소중히 여길 수 있을까?

여기 당신에게 필요한 영적 결단이 있다. 여자는 누구나 결혼할 때 이 헌신에 만족하기로 (의식적으로든 그렇지 않든) 동의한다. 만족의 기준을 영원히 재설정한다. 그래서 아내는 자기 남편을 다른 남편들과 비교하지 않는다(남자들에 대한 비판적 비교는 연애 기간에 해야 할 일이지 부부가 된 후에는 금물이다). 그녀에게는 남편이 세상에 하나뿐인 남자여야 한다.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으며”(아6:3). 당신은 이미 남편을 선택했다. 이상적인 세계에서라면 다른 사람과 다시 시작할 마음이 추호도 없다. 그러니 그 선택을 수호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전력을 다하라. 그 선택의 강점을 살려내고, 이 남자를 선택하기를 잘했다는 감사가 날로 더 깊어지게 하라. 당신 자신을 아담 앞에 서 있는 하와로 생각하라. 하와는 아담을 비교할 대상이 없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생각이라곤 이것뿐이었다. ‘남자란 이런 거구나. 이게 바로 내 남자야.’ 당신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남편은 자신이 비교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당신이 보는 그것을 남자들도 다 본다.



결혼생활은 발레와도 같다



게오르게 발란친은 “발레는 여자다”라는 말을 남겼다. 최고의 남성 무용수들이 인정하듯 남자의 역할은 온통 여성 무용수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데 있다. 혼성 2인조 발레인 파드되에서는 특히 더하다. 대개 사람들은 여자 주인공의 아름다운 자태와 기품과 균형과 협응과 힘을 보려고 발레 공연에 간다. 그런데 이 모든 자질은 남성 무용수가 발레리나를 받쳐 주고 세워주고 잡아 줄 때 더욱 잘 드러난다.

우리도 ‘아름다움을 더 아름답게 하는’ 일을 남편과 아내의 임무로 생각하면 어떨까? 배우자를 떠받치고 안정시키고 들어 올리고 회전시켜 최고의 강점과 성품이 드러나게 해 주면, 상대는 혼자 할 때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이미 있는 아름다움을 보아 주고 인정해 주기만 해도 배우자는 한결 더 아름다워진다. 어떤 배우자는 자신에게 최고의 모습이 있음을 아예 모를 수도 있는데, 이를 찾아내도록 도와주는 게 우리의 임무이자 기쁨이다. 자신감이 없어 최고의 모습을 마음껏 발휘하기는커녕 아예 남에게 보인 적조차 없는 배우자도 있다. 이럴 때 우리가 상대를 소중히 여길 줄 알면 요긴한 버팀목이 되어 줄 수 있다.



서로 존중하라



서로 먼저 하기



로마서 12장 10절에 보면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라고 했다. 딱히 결혼에 관한 말은 아니지만, 교인들끼리 그러하다면 부부간에는 특히 더 그래야 한다. 이는 존중을 표하기를 말 그대로 배우자보다 ‘먼저’ 하라는 명령이다. 일상적 표현으로 바꾸어 보면 이렇다. “매일 아내가 당신을 소중히 여기는 것보다 당신이 아내를 더 소중히 여기도록 힘쓰라.” “매일 남편이 당신을 소중히 여기는 것보다 당신이 남편을 더 소중히 여기도록 힘쓰라.” 본능적으로 우리는 그와 반대로 행동하지 않는가? 배우자를 소중히 여길 방도를 궁리하기보다는 우리는 이 물음에 집착한다. “왜 아내는 내가 자기를 사랑하는 방식으로 나를 사랑할 수 없는 거지?” 성경에 따르면 당신이 집중해야 할 소명은 배우자를 먼저 존중하는 것이다. 존중받기보다 상대를 더 존중하고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날마다 아침에 일어날 때 부부가 둘 다(또는 혼자만이라도) 배우자를 먼저 존중하려는 목표를 품는다면 결혼생활이 어떻게 달라질까? 그러면 계획을 짜고 몇 가지 일에 착수할 것이다. 바로 그게 소중히 여김의 배후 동기다. 존중하고 드러내고 주목하고 섬기고 연모하기를 적극적으로 힘쓰는 삶이다. 그렇게 하루를 살고 나면, 받은 것보다 준 게 많은 듯싶어 억울하기보다는 오히려 순종의 기쁨이 있다. 배우자를 먼저 존중한다는 목표를 달성했으니 말이다. 물론 이 사실을 배우자에게 지적하지는 않는다. 대신 자신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조용한 위안을 얻는다. 배우자를 먼저 존중하는 법을 배우려면 한 가지 실제적인 방법으로, 배우자보다 ‘신호에 더 많이 반응하면’ 된다.

신호에 반응하라



존 고트먼 박사는 부부의 행복과 직결되는 요인을 연구한 뒤 부부들을 ‘승자’와 ‘패자’로 두 부류로 구분했다. 그에 따르면 각 배우자는 상대의 주목을 얻고자 온종일 꾸준히 ‘신호’를 보낸다. 이런 신호를 이 책의 방식대로 표현하자면, “당신은 여전히 나를 소중히 여기나요?”라는 물음과 같다. 에밀리 에스파하니 스미스는〈더 애틀랜틱〉지에 기고한 글에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온종일 배우자는 상대에게 소통을 요구한다. 고트먼의 표현으로 ‘신호’다. 예를 들어 새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남편이 마당에 날아든 오색방울새를 보았다 하자. 그는 아내에게 “바깥의 저 아름다운 새 좀 봐요!”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단지 새에 대한 소감이 아니라 아내의 반응(관심이나 지지의 표현)을 요구하는 말이다. 새를 매개로 잠시나마 소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제 아내가 반응을 선택할 차례다. 고트먼의 표현으로 아내는 남편 ‘쪽으로 고개를 돌릴’ 수도 있고 ‘외면할’ 수도 있다.

연구에서 배우자 쪽으로 고개를 돌린 사람들은 신호에 관심과 지지를 보이며 상대와 교감했다. 반면에 외면한 사람들은 무반응이거나 최소한의 반응으로 그친 채 텔레비전 시청, 신문 읽기 등 자기가 하던 일을 계속했다. “읽는 중이니 건드리지 말아요.”와 같은 말로 적의를 드러낸 때도 있었다. 이런 신호에 대한 반응은 부부의 행복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6년 후에 추적 조사를 해 보니 이혼한 부부들은 신호의 33%에만 상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반면에 6년 후에도 여전히 함께 사는 부부들은 신호가 올 때 상대 쪽으로 고개를 돌린 비율이 87%에 달했다.’ 고트먼 박사의 연구가 예증해 주듯이, 배우자를 소중히 여기려면 상대의 흥밋거리에 적극 흥미를 보일 줄 알아야 한다.



멸시에 맞서 싸우라



멸시의 사이클



홀딱 반해 사귀는 연인을 보라. 남자고 여자고 얼굴에 빛이 난다. 그런 사람들을 공항에서 볼 수 있다. 둘 사이에 강렬한 눈빛이 오간다. 바짝 붙어 서로 그윽이 바라본다. 눈을 깜박이기조차도 아까운 듯한 모습이다. 행여 45㎝ 이상 떨어지기라도 하면 30초 내로 다시 손을 잡는다. 하지만 소중히 여김의 그 정점에서 대개 멸시의 서글픈 사이클이 시작된다. ‘친해지면 만만해진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부부보다 친한 사이는 없다. 불완전한 사람과 결혼한 상태에서 은혜에 대한 이해와 소중히 여기려는 헌신마저 없으면, 결국 실망하기 쉽다. 실망은 좌절을, 좌절은 원망을, 원망은 멸시를 낳는다. 영적으로 그 작동 원리는 이렇다. ‘실망 → 좌절 → 원망 → 멸시’

이것은 결혼 여정이기 이전에 신앙 여정이며, 멸시는 ‘죽음의 악순환’을 부른다. 멸시하는 부부는 배우자가 말하는 동안 바닥이나 옆쪽을 응시한다. 자기가 말로 역공을 퍼부을 때 외에는 상대를 보지 않는다. 그나마 그때 시선도 사랑하고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잔뜩 쏘아붙이기 위해서다. 상대의 말이 잠시 끊기는 그 들숨의 순간만을 기다리는 배우자의 눈빛, 그보다 더 조급한 것은 세상에 없다. 그 순간 아내는 득달같이 끼어들어 남편의 최악의 잘못을 늘어놓으며 증거를 들이댄다. 때로는 망측한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한 아내는 내 사무실에서 홧김에 남편에게 정말 고함을 질렀다.

존 고트먼 박사에 따르면 멸시는 ‘이혼의 가장 확실한 전조’다. 그가 정의하는 멸시란 우월감의 자세로서, 욕설이나 직설적 모욕처럼 상대를 깎아내리는 말투로 나타난다. 물론 이는 앞서 우리가 정의한 소중히 여김과는 정반대다. 소중히 여기면 배우자의 장점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소중히 여김은 멸시를 퇴치하는 최고의 해법이다. 서로 소중히 여기기로 헌신한 부부도 싸우긴 하지만, 결코 서로에 맞서 싸우지는 않는다. 그들은 멸시에 맞서 싸우며 늘 서로를 힘써 보호한다.



아름답게 변하는 신부



이스라엘이 사랑스러워서 하나님이 소중히 여기신 게 아니라 하나님이 소중히 여기셔서 이스라엘이 사랑스러워졌다. 예루살렘의 됨됨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시고자 하나님은 소중히 여김이라는 전략을 쓰셨다. 하나님이 예루살렘에 하셨듯이 우리도 부부간에 서로 소중히 여겨야 한다. 결혼생활은 하나님의 성품을 예시하는 일인 만큼, 배우자를 향한 우리의 사랑과 지원도 그만큼 간절하고 열렬해야 한다. 그래야 비슷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당신도 이런 비전을 품으면 어떨까? 당신의 수용과 헌신과 사랑 덕분에 배우자가 부진한 삶에서 헤어나 명예로운 이름을 떨치는 삶으로 도약할 수 있다. 정말 가능한 일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를 높여 주기 원하시며, 성령으로 말미암아 능히 당신의 배우자를 높여 주실 수 있다. 당신이 배우자와 함께 협력하면 된다. 어안이 벙벙한 주변 친구들의 대화를 들어 보면,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잘 알 수 있다. “그 여자의 어디가 좋아서 이러는 거지?” “그 남자의 무엇을 보고 저러는 걸까?” 배우자를 향한 당신의 헌신을 보다가 그 사랑의 대상을 보면, 그들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소중히 여김을 받는 대상이 그들로서는 그 정도의 사랑과 헌신을 받기에 합당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본받는 사람들이므로 우리의 결혼에 그런 사랑과 헌신이 나타나야 한다. 하나님이 소중히 여기시듯 우리도 소중히 여기려면 남들에게 거부당한 사람을 수용하여 그 속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고, 양분을 공급하고, 응석도 받아 주고, 실컷 충족시켜 주어야 한다. 상대의 아름다움이 만인의 눈앞에 드러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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