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하나님 설계의 비밀
티머시 R. 제닝스 지음 | CUP
마음, 하나님 설계의 비밀
티머시 R. 제닝스 지음
CUP / 2019년 5월 / 366쪽 / 15,000원
기독교의 마음병: 뭔가 잘못되었다
뭔가 잘못되었다
뭔가 잘못되었음을 당신이 먼저 알았던 적이 있는가? 아무런 위험도 없다고 상사나 다른 전문가가 판정한 상태에서 당신이 위험을 밝혀내느라 애먹은 적이 있는가? 당신이 공식 발표한 이견과 새로운 증거를 지도자가 들여다볼 마음조차 없었는가? 내가 믿기로 기독교 내에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나는 기독교가 뭔가 잘못되었다고 본다. 그런데 많은 지도자가 현 상태를 옹호한다.
기독교는 뭔가 잘못되었다. 미국은 인구의 70~82%가 자칭 기독교인이지만, 십대 임신과 낙태 비율이 서구화된 국가 중 가장 높다. 기독교적 성품의 추세를 비교 연구한 결과 2차 대전 이후 세대마다 성품이 더 부패해졌다. 가장 위대한 세대(2차 대전 세대), 침묵의 세대, 베이비붐 세대, X세대, 밀레니엄 세대를 비교해보니 우려스러운 추세가 드러났다. 가장 위대한 세대부터 밀레니엄 세대까지 불륜은 3%에서 21%로, 거짓말이나 사기는 3%에서 22%로, 직무 유기는 30%에서 56%로 증가했다. 인구의 높은 비율이 자칭 기독교인임을 고려할 때 기독교는 틀림없이 뭔가 잘못되었다.
예수는 자신을 따르는 무리가 사랑과 사명과 목적과 메시지에서 하나로 연합하도록 기도하셨고(요 17:20~23), 사도 바울도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이 머리 되신 예수 아래 통일될 것으로 예측했다(엡 1:10). 그럼에도 『세계 기독교 백과사전』에 따르면 기독교는 3만 3천 개 이상의 집단으로 갈라져 분열했고 늘 자기들끼리 싸우느라 바쁘다. 그 중에는 교리와 의식과 성경 해석을 두고 싸우는 집단도 많지만, 기독교의 가장 비참한 문제는 하나님에 관한 왜곡된 관점이다.
왜곡된 관점
마라(Mara)는 우울하고 불안해 내 상담실을 찾아왔다. 빨래는 쌓여있고 부엌은 엉망이었다. 집 청소도 안 한 지 몇 주 되었고 샤워도 하기 싫었다. 사는 게 말이 아니었다. 마라의 딸이 세 살 때 암에 걸렸는데 다행히 화학치료에 차도를 보였다. 그런데 화학치료의 후유증으로 자꾸 발작을 일으키더니 급기야 아홉 살에 암이 재발했다. 마라는 괴로운 눈빛으로 나를 보며 물었다. “내가 뭘 어쨌다고 하나님이 벌을 내리시나요? 왜 우리 딸한테 암을 주신 거죠?” 매사를 이런 관점에서 보는 사람은 비단 마라만이 아니다. 예수는 하나님에 대해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요 14:9)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암을 주시고, 교통사고로 자녀를 죽게 하시고, 남편을 외도에 빠뜨리신다고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의심의 여지없이 기독교가 뭔가 지독하게 잘못되었다는 증거다.
하나님은 말세에 기독교가 뭔가 잘못될 것을 미리 아시고 이렇게 경고하셨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딤후 3:1~5)
이 딱한 사람들은 경건의 모양만 있고 자유와 이겨낼 능력이 없어 세상의 온갖 문제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바울이 말하는 그들은 무신론자가 아니다. 말로는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삶에 승리할 능력이 없는 부류다.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며 그리스도처럼 살고자 애쓰고 성령의 내주하심을 주장하는 사람이라면 아내를 학대하고 자녀를 성희롱하고 남편을 공격하고 염려와 중독에 빠지고 포르노를 보는 일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사람보다 마땅히 적어야 하지 않겠는가? 분명히 기독교는 뭔가 잘못되었다. 이제 처방과 해법을 찾아야 한다. 기독교에 소생의 능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그래야 예수를 따르는 이들이 더는 세상을 본받지 않고 생각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을 수 있다(롬 12:2).
이 책의 취지는 사고의 전염병과 왜곡된 신념을 파악해 제거하도록 돕는 데 있다. 그런 변질된 관점이 너무도 많은 선량한 그리스도인의 마음속에 이미 뿌리내려 그들을 두려움과 중독과 폭력의 노예로 삼았다. 나아가 이 책의 취지는 삶을 변화시켜 해방을 가져다줄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의 위력에 사람들을 접속시키는 데 있다. 하나님의 (마음이 새롭게 되어 진정한 평안과 자유를 누린다는) 약속을 경험하도록 돕고, 또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도록 돕기 위해서다.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은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다(요일 3:2).
마음을 해치는 전염병의 실체
마음 쟁탈전
문제를 진단하지 못하면 참담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문제를 밝혀내서 치료해야 할 전문가가 문제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면 사태는 훨씬 심각해진다. 내가 보기에 오늘날 기독교 내에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사고의 한 전염병이 이미 기독교계에 깊이 뿌리내려 많은 사람이 이를 정통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 병은 조용히 허다한 생명을 죽이고 있다. 이 사고의 전염병은 마음을 부패하고 망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이 병이 하나님의 치유력을 막아 마음이 변화되지 못하게 한다.
성경 용어로 마음은 자아의 응어리, 심연의 내밀한 자아를 가리킨다. 개성의 핵심 요소인 각 사람의 참 갈망과 애정과 동경과 신념과 정체가 머무는 곳이다. 마음은 이 모든 요소로 이루어져 나를 나 되게 하는 성품이다. 그래서 마음(참 자아, 개성, 성품)은 우리 삶의 모든 면에 개입된다. 그런데 아담 이후로 인류의 마음(자의식)은 타락해 이기적이고 두려움에 가득 차 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구원은 마음을 치유하고 성품을 새롭게 한다. 존재의 심연 속에 그분의 온전하심을 회복한다.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서 주시는 변화인 중생(重生)은 마음속에 이루어진다. 존재의 심연에서 세상적 가치관과 욕심과 동기와 신념과 애착을 도려내고 우리 성품을 하나님과 천국에 조화되게 빚는다.
영적 전투
인간의 정신이라는 컴퓨터가 효율적이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 손상되지 않은 하드웨어(뇌),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소프트웨어(사고, 여기에 건강한 원리로 운영되는 건강한 자의식, 즉 건강한 마음도 포함된다), 확실한 에너지원(건강한 몸의 혈액 공급)이다. 셋 중 둘만 있으면 컴퓨터(사람)가 기능을 다 하지 못한다. 세 가지가 다 있어야 운영체계가 이루어진다. 이것을 알면 영적 전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영적 전투란 핵심 운영체계인 마음을 지배하려는 싸움이다!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고후 10:3~5).’
이론과 앎과 높아짐과 생각을 놓고 싸울 때 그 전투지는 어디일까? 사고 속이다. 그리스도와 사탄의 전투는 하나님의 지성적 피조물의 사고 속에 벌어지는 싸움이며, 그 얻고자 하는 바는 곧 우리 마음이다. 아무튼 사고의 한 전염병이 기독교 내에 워낙 깊이 뿌리내려 많은 사람이 이를 정통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 전염병은 말없이 수많은 생명을 죽인다. 이 사고의 전염병이란 무엇인가? 자연법(사랑의 법)인 하나님의 법을 인간이 만든 법과 사실상 전혀 다르지 않게, 즉 형벌을 위협해 강제로 시행하는 실정법으로 보는 개념이다. 하나님의 사랑의 법은 베풂의 원리이며 바로 그 위에 생명이 지어졌다. 하나님의 사랑의 법은 살아 있으므로 생명체 안에 작용할 때에만 이를 온전히 알 수 있다.
마음의 기제를 알면 해결책이 보인다
1987년 여름에 나는 루이지애나 주에서 육군 장교 기초훈련을 받았다. 훈련의 일환으로 기본 지표항법을 익혀야 했는데, 정해진 시간 동안 지도와 나침반으로 길을 찾아 미지의 지형을 통과해 지정된 장소에 도착해야 했다. 37도를 웃도는 고온다습한 황야를 가로질러 아주 먼 길을 걸어야 했는데, 그것도 전투복과 배낭과 화기로 완전군장을 한 상태로 말이다. 교관들은 우리에게 루이지애나의 폭염과 탈수증의 위험을 주의하라며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물을 마시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몇 시간째 무더위 속에 있다 보니 내 몸이 이상해졌다. 어지럽고 시야가 흐릿하고 속이 메슥거렸다.
소모성열사병 증세였다. 문득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관목이 보이기에 그늘 속으로 기어들어갔고, 배낭 속의 각설탕을 물에 타서 묽은 설탕물을 만들어 수분을 공급하자 서서히 탈수증에서 벗어났다. 그런데 그 일은 나에게 왜 벌어졌던 걸까? 왜 노곤하고 구역질이 나고 시야가 뿌예졌을까? 하나님이 하신 일일까? 하늘에서 천사가 파송되어 내게 현기증과 기타 증상을 유발했던 걸까? 기초훈련 교관들은 우리에게 물을 꾸준히 마시라고 말했는데, 나는 길 찾기에 여념이 없어 물을 충분히 마시지 못했다. 명령에 불복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불순종의 대가로 벌을 받은 걸까?
이 예가 터무니없어 보일지 모른다. 자연법(이 경우 건강 법칙)과 실정법 사이의 긴장을 보여 주는 사례치고는 극단적이고 현실성이 없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설계하신 법을 인간의 시행법으로 대체한 결과, 고금의 수많은 사람이 정신적 고통과 심리적 압박과 영적 혹사를 당해 왔다. 건강 문제를 분노한 신의 형벌로 보는 엉뚱한 결론 때문이다.
예수 당시의 유대인 종교 지도층은 나병을 하나님의 저주와 형벌로 보고 나환자를 비난했고, 1346년에서 1353년까지 7년간 흑사병이라는 선(腺)페스트에 7천 5백만~2억 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금은 대다수 학자가 벼룩을 통해 전염되는 흑사병균이란 박테리아를 그 몹쓸 병의 원인으로 보지만, 당시의 대중은 종교 지도층의 말대로 이를 분노한 신의 형벌이라 믿었다. 지금도 나는 하나님이 왜 자신이나 사랑하는 이에게 암이나 조현병이나 기타 난치병을 주시는지 모르겠다는 환자를 수시로 접한다.
하나님의 법은 자연법이다. 건강 법칙도 그 부류에 속한다. 1987년 여름 내가 당한 일은 순전히 건강 법칙을 어긴 탓이었다. 하나님의 법을 거스르면 해로운 결과가 따른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하나님의 법을 자연법으로 보지 않는 사람도 있다. 아이들은 삶이 설계된 이치와 건강의 원리를 모른다. 그래서 대개 장성할 때까지 부모가 규칙을 정해주어 아이를 보호해야 한다. 그런데 잘 장성하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아예 젖먹이 단계에 머무는 게 더 좋다는 이들도 있다.
젖먹이 단계에 고착된 상태
2012년 5월 20일자 《타임》지는 세 살배기 아들에게 젖을 물린 제이미 린 그러밋의 표지 사진으로 전국을 충격에 빠뜨렸다. 인터넷과 라디오와 텔레비전은 분노와 충격과 혐오 반응으로 시끄러웠고, 지지하는 입장은 소수에 그쳤다. 그 사진이 왜 그렇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을까? 모유 수유에 대한 격노가 아니었다. 모유 수유의 유익이라면 거의 누구나 인정하고 지지한다. 충격과 반감의 초점은 바로 이유기를 모른다는 데 있었다. 히브리서 저자도 영적인 젖을 떼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똑같은 반감을 표한다. 젖먹이로 남으면 의로워질 수 없다고까지 말한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장성할 수 없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성숙하게 발육하고 장성하도록 부르신다. 그러려면 선악을 분별하는 능력을 연단해야 한다. 당신은 어떤 방식으로 선악을 분별하는가? 당신은 옳고 그름의 도덕적 결정을 어떻게 내리는가?
도덕적 결정의 7단계
옳고 그름을 이해하는 능력인 도덕 발달에는 여러 단계가 있는데, 로런스 콜버스 박사는 6단계를 규정한 선구적 연구로 인정받았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얻은 통찰로 그의 이론을 수정 보완하여, 거기에 일곱째 단계를 추가하고자 한다.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단계: 상벌> 옳은 일인지 그른 일인지를 가르는 가장 기초적인 단계는 내게 돌아올 게 상이냐 벌이냐는 것이다. 어린아이에게는 이 기능 단계가 정상이며, 학습의 출발점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성인이 이 단계에서 살아간다면 뭔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2단계: 교환 가치> 2단계의 도덕은 답례식의 옳고 그름이다. 내 쪽에서 뭔가를 해 주면 합당한 합의된 대가를 돌려받는다. 정상적 발달 단계에서 아이는 대개 자기 뜻을 관철할 힘이 없으므로 금세 거래하는 법을 배운다. 이는 어린아이가 거쳐 가는 건강하고 긍정적인 성장 과정이다. 그러나 성인에게는 여전히 미성숙한 기능 단계다.
<3단계: 사회적 동조> 이 단계에서 옳고 그름은 공동체의 합의로 결정된다. 주변에서 찬성하면 옳다고 인정된다. 개인의 복수는 허용되지 않고 집단의 징계가 정의로 통한다. 이 단계의 결정에도 사고나 논리가 요구되지 않는다. 한편 무리나 집단이나 유행하는 문화를 따라 살면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딸다운 인간으로 빚어질 수는 없다.
<4단계: 법과 질서> 이 단계에서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기준은 성문법, 공정한 판사, 규정된 형벌에 있다. 선한 일에 적절한 보수나 보상이 따르고 규정 위반에 합당한 벌이 가해지면 그게 곧 정의다. 이 단계의 사고방식은 흑백논리라서 사람들이 여러 단체나 파벌로 갈라진다. 파벌마다 몇 가지 핵심 규칙이 있어, 그 규칙에 동의하지 않는 남들을 비하하고 비난한다.
<5단계: 타인을 향한 사랑> 이 단계에서 옮음의 기준은 규칙 목록이 아니라 실제로 타인에게 유익하고 이로운 행동이다. 개인은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지닌 자유로운 도덕적 행위자이며 자기 모습 그대로 존중된다. 어떤 행동이 타인에게 유익한지는 상황에 따라 달라서, 그에 따라 옳음이 결정된다.
<6단계: 순리에 따르는 삶> 이 단계의 결정은 삶이 설계 원리나 자연법대로 작용하도록 짜여 있음을 알고 거기에 조화되는 생활을 선택한다. 어떤 특정한 행동을 취하는 이유는 그래야 한다는 규칙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해야 실제로 통함을 알기 때문이다. 이 단계대로 이해하자면, 하나님이 뭔가를 옳다고 말씀하심은 그게 정말 옳고 이치에 닿기 때문이다. 그분이 말씀하셨다는 이유로 옳은 게 아니다.
<7단계: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랑> 7단계의 사람은 하나님과 남을 사랑하고 그분이 설계하신 삶의 순리를 이해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을 알고 지혜롭게 그 목적에 협력하여 자신의 역할을 다한다. 요한복음 15장 15절에 예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7단계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속성인 참사랑, 그분이 설계하신 삶의 본질, 악의 기원, 죄의 본질, 사탄의 무기, 인류를 창조하신 본연의 목적, 타락하여 죄에 빠진 인류, 인류사를 통한 하나님의 일, 십자가의 목적, 마침내 죄 없이 깨끗해질 우주 등을 안다. 정리하면 도덕을 이해하는 데는 여러 단계가 있고, 그 단계별 성장은 점진적이다. 성장하려면 노력해야 하고, 스스로 사고해야 한다.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려면 그분의 방법과 원리를 알고 실천해야만 한다.
영적 성장 장애
4단계 이하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법이 아직 마음에 새겨지지 않고 성품 속에 녹아들지 않는다. 반면 5단계 이상의 사람은 옳고 그름의 문제에서도 이기적 성향에서 이타적 성향으로 옮겨간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시고 우리 인간은 그분의 미성숙한 자녀다. 대가족에 자녀의 연령층이 아기부터 성인까지 다양할 수 있듯이, 하나님의 자녀들도 도덕 발달의 전체 범주에 고루 퍼져 있다. 그리고 부모가 유아와 초등학생과 고등학생과 성인 자녀에게 각기 다르게 말하듯이, 하나님도 각 자녀의 상황에 꼭 맞는 언어로 말씀하신다. 한편 영적 “성장 장애”를 치료하기가 그토록 힘든 이유는 배후 원인(성숙을 가로막는 사고의 전염병)이 교회의 담론 속에 워낙 깊이 뿌리내려 숨어 있기 때문이며, 일부 영적 의사(성직자)들은 이 사고의 전염병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인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