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존재한다
프란치스코 교황 지음 | 가톨릭출판사
악마는 존재한다
프란치스코 교황 지음
가톨릭출판사 / 2019년 3월 / 228쪽 / 12,000원
제1장 예수님도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악마는 불화의 아버지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불화의 씨앗을 뿌리는 이들이 있었음을 기억합시다. 그들은 예수님께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아라.”라고 말하고, 다른 이들에게는 “내려오지 않는 걸 봐. 하느님이 아니야.”라고 말했습니다. 불화, 질투, 폭력은 우리가 형제로서 살지 못하게 합니다. “어머니, 우리가 마음에서 불화를 멀리하고, 질투를 멀리하고, 폭력을 멀리하게 해 주십시오. 우리는 형제로서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 이렇게 말씀드립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수난하실 때에도 불화의 씨를 뿌리는 이가 있었고, 역사의 흐름 속에서 언제나 그렇게 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악마는 잠잠히 있지 않습니다. 악마는 거짓의 아비고, 불화의 아비입니다. 그리고 분열의 아비고, 폭력의 아비입니다. 우리는 이런 아버지를 원치 않습니다. 그는 우리가 형제가 되는 것을 막으며 우리를 분열시키기 때문입니다.
더 쉬운 길의 유혹
성령은 우리를 하느님의 신비로, 하느님의 사랑으로 이끄시고, 우리가 우리 내면에서 구원되었음을 느끼게 하십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우리는 구원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성령의 은총입니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되었습니다.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매일 수천 가지 문제 속에서 계속 걸어가야 합니다. 가정 문제, 노동 문제, 여기에도 문제, 저기에도 문제…….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 걸어가야 하고, 심지어는 위험하게도 악마의 유혹 한가운데를 걸어가야 합니다.
악마는 우리에게 언제나 “더 쉬운 길을 택해!”라고 말합니다. 우리에게 길을 따라 걷는 것보다 빠른 길, 지름길을 제시합니다. 우리를 유혹하고, 우리의 희망을 앗아가려 합니다. 마귀는 우리의 등을 토닥이며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야, 이쪽 길이 좋아. 너는 훌륭해 이리와. 돈을 좀 모아 봐.” 돈은 당연히 허영심을 가져오고, 허영심은 교만을 가져옵니다. 그러고 나면, 그 길에서는 마귀가 임금이 됩니다. 마귀가 우리의 등을 토닥이는 것은 우리가 희망을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느님 말씀으로 마귀의 유혹에 맞서기
그리스도인들은 사순 시기(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기 전 40일의 행적을 따라 묵상하는 시기)에 감각을 다스리고, 하느님의 꿈과 계획을 위협하는 수많은 불의에 눈을 떠야 합니다. 이 시기는 하느님이 빚어 만들고자 하신 모상을 깨뜨리고 갈라놓는 세 가지 유혹을 폭로할 때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겪으신 세 가지 유혹이고, 우리가 받은 진리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세 가지 유혹이며, 우리를 타락시키고 품위를 잃게 만들려 하는 세 가지 유혹입니다.
첫 번째 유혹은 재물입니다. 모든 이를 위하여 주어진 재화를 오직 나만을 위해서 또는 내 사람들만을 위해서 차지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땀과 고생과 고통으로 오직 자신의 빵만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패한 가정이나 사회에서 빵을 자신의 자녀들이나 이웃들에게만 먹으라고 주는 것입니다. 두 번째 유혹은 허영입니다. 그것은 다른 이들을 지속적으로 무시하면서 이를 토대로 자신의 영예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다른 이들의 명예를 용납하지 않으면서 자신은 과도하게 한순간의 명예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토대로 가장 나쁜 세 번째 유혹이 생겨납니다. 그것은 교만의 유혹, 곧 자신은 언젠가 죽을 보통 인간들의 삶을 함께 겪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매일 “주님, 저를 저 사람들처럼 만들지 않으셨음에 감사드립니다.”라고 기도하고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우위에 두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가 겪으신 세 가지 유혹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매일 이 세 가지 유혹에 직면합니다. 이 유혹들은 인간을 타락시키고 파괴하며 복음의 기쁨과 신선함을 잃게 합니다. 또한 우리를 파괴와 죄의 순환 속에 가둡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격 안에서, 우리 자신 안에서 이러한 유혹을 얼마나 의식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재물, 허영, 교만이 삶의 원천이며 힘이라고 생각하는 생활 방식에 얼마나 익숙해져 있습니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것, 다른 이들의 빵과 명예와 존엄성을 염려하고 그것을 위해 일하는 것이 기쁨과 희망의 원천이라고 얼마나 믿고 있습니까?
우리는 마귀가 아니라 예수님을 선택했습니다. 예수님은 마귀에게 당신 자신의 말로 응답하지 않으셨고 하느님의 말씀으로, 성경 말씀으로 대답하셨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것을 머릿속에 잘 기억해 둡시다. 마귀와는 대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항상 우리를 이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말씀만이 악마를 물리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마귀가 아니라 예수님을 선택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려고 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돈, 명예, 권력에 매혹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압니다. 그래서 교회는 우리에게 이 사순 시기를 주고, 한 가지만을 확신하며 회개하도록 초대합니다. 그것은 그분이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며, 자신의 품위나 다른 사람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모든 것에서 우리의 마음을 치유하고자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자비라는 이름을 지니신 하느님이십니다. 그분의 이름이 우리의 재산이고, 그분의 이름이 우리의 명예고, 그분의 이름이 우리의 권력입니다. “나의 하느님, 나 그분을 신뢰하네.”(시편 91,2)
주님께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악마에게 기도합니다
우리는 스스로가 원하는 대로 걸어갈 수 있고 많은 것을 건설할 수 있지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가 아니라 비정부 자선 기관이 되고 말 것입니다. 걸어가지 않는다면 멈추게 됩니다. 집을 바위 위에 짓지 않는다면, 모래밭에서 모래로 성을 쌓는 어린이의 경우와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모두가 지탱하지 못하고 허물어집니다. 프랑스의 작가인 레옹 블루아의 말이 생각납니다. “주님께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악마에게 기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지 않는다면 악마의 세속성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걸어감, 건설함, 고백함……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걸어가는 데에는, 건설하는 데에는, 고백하는 데에는 때로는 흔들림이 있고 길에 속한 본래의 움직임이 아닌 다른 움직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뒤로 잡아끄는 움직임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라고 고백했던 바로 베드로 사도가 그분께 말씀드립니다. “당신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저는 당신을 따릅니다. 하지만 십자가에 대해서는 말하지 맙시다. 그것은 상관없는 일입니다. 저는 십자가 없이 다른 방법으로 당신을 따르겠습니다.”(마태 16, 15-23) 그러나 우리가 십자가 없이 걸어갈 때, 십자가 없이 건설하고 십자가 없는 그리스도를 고백할 때, 우리는 주님의 제자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고, 주교이고 신부이고 추기경이고 교황이지만 주님의 제자들은 아닙니다.
제2장 마귀와 대화하지 마십시오
유혹의 세 단계
요한묵시록은 강한 말로 시작됩니다. “그때에 하늘에서 전쟁이 벌어졌습니다.”(묵시 12,7) 이어서 그 전쟁이 어떠했는지 말합니다. 그것은 최후의 전쟁, 마지막 전쟁, 종말의 전쟁입니다. 성 미카엘 대천사의 휘하에 있는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탄에게, 옛 뱀에게, 악마에게 맞서 싸우는 전쟁입니다. 이것은 마지막 전쟁이고 여기에서 모든 것이 끝납니다. 그 후에는 주님이 당신께 충실했던 당신의 모든 자녀와 함께 누리시는 영원한 평화만이 남습니다. 하지만 역사 전체에서 이 전쟁은 매일매일 일어납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그리스도인들과 비그리스도인들의 마음속에서 일어납니다. 우리가 선과 악 가운데 어떤 것을 원하는지 선택해야 할 때, 선과 악 사이의 전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두 원수들 사이의 전쟁 방법은 서로 완전히 반대됩니다.
본기도에서 우리는 이러한 악마의 간계에 맞서 성 미카엘 대천사의 보호를 받을 은총을 청합니다. 악마는 간계를 뿌립니다. 그의 손에서 생명의 씨, 일치의 씨가 뿌려지는 법은 없습니다. 언제나 간계의 씨만을 뿌립니다. 간계의 씨를 뿌리는 것, 이것이 그의 방법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여기에서 지켜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또 한 가지 방법, 전쟁을 하는 다른 방법을 우리는 들었습니다. 유혹하는 악마는 간계의 씨를 뿌리는 자이며 유혹자입니다. 그는 악마적인 매력으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여러분이 모든 것을 믿게 만듭니다. 그는 이러한 매력을 사용하여 어떤 것을 팔 줄을 알고, 잘 팝니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잘 갚지 않습니다! 그것이 그의 방법입니다.
복음에서 처음 악마가 등장 하는 때를 생각해봅시다. 예수님은 40일 동안 광야에서 단식하며 기도하시고, 마지막에는 좀 지치고 시장하셨습니다. 그때에 그가 옵니다. 뱀처럼 천천히 움직이며, 예수님께 세 가지 제안을 합니다. “당신이 하느님이라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여기 이 돌들이 빵이 되도록 해 보시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그렇게 고생할 것이 무엇이오? 나와 함께 성전 꼭대기에 올라가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 그러면 사람들이 이 기적을 볼 것이고, 당신은 고생하지 않고도 하느님의 아들로 인정받을 것이오.” 악마는 그분을 유혹하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기에 마지막으로 말합니다. “내가 당신에게 세상의 모든 권력을 주겠소. 나를 경배하시오. 거래를 합시다.”
이것이 옛 뱀, 곧 악마의 세 단계입니다. 그 첫째는 소유입니다. 이 경우에는 빵으로 나타납니다. 재물은 사람을 서서히 부패하게 만듭니다. 부패는 동화 속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디에나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두 푼에 영혼을 팔고, 행복을 팔고, 삶을 팔고, 모든 것을 팝니다. 이처럼 돈과 재물이 첫 번째 단계입니다. 돈을 가지고 있으면 그 다음으로는 자신이 중요한 사람이라고 느낍니다. 두 번째 단계는 허영입니다. 악마가 예수님께 “성전 꼭대기로 가서 몸을 던지시오. 대단한 광경을 만들어 보시오!”라고 했던 것이 이것입니다. 사람들이 허영을 위해 살도록 악마가 이끄는 것입니다. 셋째 단계는 권력, 자랑, 교만입니다. 악마는 “세상의 모든 권력을 주겠소. 당신이 지배자가 될 것이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일어납니다. 우리는 재물에 너무 집착합니다. 그리고 공작새처럼 사람들이 칭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허영심은 우리를 웃음거리로 만듭니다. 마지막에는 권력을 갖게 되면 스스로 하느님인 것처럼 느낍니다. 이것이 가장 큰 죄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싸움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주님께 성 미카엘 대천사의 전구(轉求, 성모 마리아나 천사 또는 성인들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은혜를 구하는 기도)로 옛 뱀의 간계에서, 매력에서, 유혹에서 우리를 지켜 주시기를 청합니다. 여러분은 어려운 일을 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언제나 대립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질서를 유지해야 하고 범죄나 악행을 막아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 미카엘 대천사의 전구로 주님이 여러분을 모든 유혹에서 지켜 주시기를 열심히 기도 하십시오. 돈이나 재물, 허영이나 교만으로 부패할 유혹에서 지켜 주시기를 기도하십시오. 여러분의 봉사가 예수님처럼 더 겸손할수록 우리 모두가 더 유익하고 풍요로운 결실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겸손을 본받야 합니다. 예수님의 유혹 이야기에는 예수님 당신의 말씀이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의 말씀으로 대답하지 않으시고, 세 번 모두 성경의 말씀으로 대답하십니다. 이것은 악마와는 대화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유혹이 다가올 때 이것은 매우 큰 도움이 됩니다. “나는 너와 말하지 않는다. 주님의 말씀만을 말한다.”라는 것입니다. 매일의 이 싸움에서 주님이 우리를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봉사를 위한 싸움입니다. 여러분은 봉사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사회를 위하여, 다른 이들을 위하여, 세상에서 선이 더 커지도록 하기 위하여 봉사하는 사람들입니다.
마귀와 대화하지 마십시오
이제 주님의 기름부음이 그분의 적들의 오류와 간계를 물리치는 데에서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바라봅시다. 주님은 결코 경솔하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이 마귀와 대화를 하지 않으신 것,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 사람들 앞에서 입을 열지 않으신 것, 힘 있는 이들 앞에서 침묵하신 것, 당신을 거칠게 다루었던 악한 이들에게 당신을 드러내지 않으신 것은 기름부음을 받으신 분의 행동 방식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우리는 거기에 동참하도록 초대받았습니다. 자신을 다스리는 것의 모든 소위 ‘부정적’ 측면은 그분이 겸손한 이들의 마음속에 씨 뿌리시던 좋은 말씀과 어울립니다. 우리가 따르는 기름부음받으신 분은 신자들에게 광폭하게 강요하시거나 신자들을 마구 다루지 않으십니다. 말씀이신 그분은 선한 의지를 가진 이들의 내면에 온유하게 스며들고, 원수가 어떤 말도 악하게 사용하지 못하도록 마음 갑옷을 입히십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과거의 어느 때보다도 이와 같은 말씀의 기름부음의 은총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주님 또는 교회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자유를 잃을까봐 두려워하는 일이 없도록, 진리를 내면화하는 기름부음받은 말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를 내면에서부터 가르쳐주는 기름부음받은 말이 필요합니다. 또한 입안에 나쁜 맛을 남기고 마음을 언짢게 하는 어떤 나쁜 말에도 우리를 기뻐하게 하는 기름부음받은 말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말씀이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의 마음을 불타오르게 했던 것처럼 우리는 그리스도인 백성들의 마음을 불타오르게 하는 그런 말들을 설교하는 것을 필요로 합니다. 나쁜 말, 수많은 불평과 야비한 말, 수많은 거짓과 사심이 담긴 말이 그들의 마음속으로 뚫고 들어가지 않도록 그들의 마음을 방어할 기름부음받은 말이 필요합니다. 오늘날에는 언제나 어디에나 나쁜 말이 너무 많아서, 기름부음을 훼손하고 잃어버리게 합니다.
제3장 지옥의 길은 좋은 의도로 닦아집니다
천사와 악마
“마귀가 진행하는 파괴와 비인간화의 교활한 계획에 맞서 싸우는 것은 일상의 현실입니다. 마귀는 인본주의적 설명까지 꾸며 내면서 이들을 마치 선한 것처럼 제시합니다. 우리가 그 싸움에 바로 뛰어든다면 우리는 패배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홀로 싸우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주님이 대천사들에게 인간을 보호할 임무를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에 성녀 마르타의 집 성당에서 거행한 미사에서 기억한 천사들의 역할입니다. 교황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독서와 복음 다니엘 예언서(다니 79-10, 13-14)와 요한복음서(요한 1,47-51)에서는 모두 영광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영광, 천상궁정,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경배를 말합니다. 영광이 있고, 그 영광 가운데에는 예수그리스도가 계십니다.”
다니엘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이렇게 밤의 환시 속에서 앞을 보고 있는데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나 그에게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가 주어져 모든 민족들과 나라들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를 섬기게 되었다.”(다니47, 13-14) 교황은 이에 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분은 하늘의 영광 중에 아버지 앞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복음에서도 이를 다시 제시합니다. 교황은 계속해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놀란 나타나엘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앞으로 그보다 더 큰일을 보게 될 것이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1,50-51) 예수님은 야곱의 사다리의 표상을 사용하십니다. 영광의 중심에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영광이십니다. 그 영광은 다니엘에게서 약속되었고, 예수님에게서도 약속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영원히 약속된 영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