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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청년 바보의사

안수현 지음 | 아름다운사람들



그 청년 바보의사

안수현 지음

아름다운사람들 / 2018년 7월 / 304쪽 / 15,000원





그 청년 바보의사



주로 암환자들이 누워 있는 6인실에서 한 환자가 아까부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병실의 문이 가만히 열리는군요. 의사 가운을 입은 청년 한 명이 조용히 들어와 환자 곁으로 다가갑니다. 청년은 뼈만 남은 환자의 앙상한 손을 잡고 조그마한 소리로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여호와 라파 치유의 하나님, 우리 A 환자 분의 병을 낫게 하여 주십시오. 좀 더 시간을 주셔서 사랑하는 가족들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보게 하여 주시고, 무엇보다 예수님을 믿고 신앙을 고백하게 하여 주십시오. 저는 치료만 할 뿐이니, 우리 주님께서 몸과 영혼을 깨끗하게 치유하여 주실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청년의사는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조용히 병실 문을 열고 나갑니다. 꼼짝도 하지 않던 환자의 눈에서 눈물이 흐릅니다. 어쩐지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오랜 병치레에 지쳐 가족들도 줄 수 없는 따스함을 청년의사가 믿는 예수님의 사랑이 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청년의사는 환자와 눈이 마주치면 큰일이라도 나는 듯, 눈도 안 마주치고 할 말만 하고 휙 돌아서는 그런 쌀쌀맞은 의사가 아니었습니다. 많이 아프시냐고 묻기도 하고, 빨리 처치를 못 해줘서 미안하다고 웃어주기도 하고, 간호하는 아들이 잘생겼다고 덕담도 해주었습니다. 청년의사는 입원 첫날부터 한밤중이면 살며시 찾아와 환자의 침대 곁에서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청년의사의 그러한 행동에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예수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자꾸 예수한테 고쳐달라는 게 우습게 들렸기 때문이지요. 그러던 어느 날, 환자는 갑갑증을 느꼈고 죽으면 그만이지 이깟 주사는 뭐하려고 맞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링거바늘을 빼버리고 행패를 부렸습니다. 간호사들이 몰려왔습니다. 그러나 젊어서 힘깨나 쓰던 환자였기에 제어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어쩔 줄 몰라 할 때 청년의사가 달려왔습니다. 주치의니까요. 청년의사는 환자를 야단쳤습니다. “할아버지, 가만 계세요. 제발 저희 말을 들으세요.” 청년의사의 팔이 환자를 힘껏 안았습니다. “힘드신 거 다 알아요. 살기 싫으신 거 다 알아요.” 그 말을 들은 환자는 청년의사의 팔에 안겨 실컷 울었습니다. 간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이후 처음이었지요. 황소처럼 목 놓아 오래오래 울었습니다.

그 후로 매일 밤, 환자는 청년의사를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아직 그 환자는 예수님이 누군지 확실하게는 모르지만, 청년이 믿는 누군가라면 한번 믿어볼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내일 회진 때, 지난번 거절했던 성경을 갖다달라고 말하려고 합니다. 그 의사는 기뻐서 씩 웃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일 밤이 지나기 전, 머리맡에 커다란 돋보기와 함께 성경을 놓아줄 것입니다. 청년의사의 이름은 안수현. 고려대학교 의대 91학번, 내과전문의입니다. 고려대학교 부속병원에서 인턴과 레지던트를 마치고 군의관으로 복무하면서 국방부장관 주치의를 맡았었지요. 단정하게 깎은 짧은 머리에 105사이즈의 흰색 폴로셔츠, 푸른색 바지를 즐겨 입던 그는 환자들에게는 따뜻했고, 동료들에게는 친절했으며, 자신에게는 의사로서 엄격했습니다. 그는 환자를 위해 기도하는 의사였습니다. 의사 경력은 짧았지만, 그의 정성이 환자들의 병든 몸과 상처 입은 마음을 치유하여 예수님 앞으로 인도했습니다.

의약분업사태로 전국의 의사들이 파업을 할 때, 그는 병원에 남아 환자 곁을 지켰습니다. 하루 한두 시간 겨우 눈을 붙이고, 한 끼를 먹어가며 환자들을 돌봤습니다.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엄격한 위계질서의 의사 사회에서 자칫 앞날에 불이익이 생길 수도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주님이 가르쳐주신 대로 자기 소명에 충실했습니다. 한편 청년의사는 글을 잘 썼습니다. 의대생 시절부터 ‘스티그마’란 ID로 신앙과 음악과 책에 관한 글을 쓰는 작가였습니다. 그의 해박한 지식과 올곧은 신앙의 자세가 드러난 글들은 온라인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리고 청년의사는 기독교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에게 다가가기 위해 교회 문턱을 낮춘 ‘예흔’이란 헬퍼십 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예흔’은 예수님의 흔적을 줄인 말로, 해외의 감동적인 찬양팀과 목사님들의 예배 실황을 DVD로 보며 함께 찬양하는 열린 예배 형식의 기독교 문화사역 팀입니다. 청년의사는 자기 것을 아끼지 않고 나누는 사람이었습니다. 누군가 필요하다면 자기 시간을 내주었습니다. 누군가 필요하다면 찬양 테이프와 신앙서적을 선뜻 선물했습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그의 사랑은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한 발 한 발 다가가게 만들었습니다.

2003년 군의관으로 입대한 그는 2006년 1월, 갑자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서른 셋, 예수님과 같은 나이에, 예수님의 흔적을 좇아 달려가던 그는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갚을 수 없는 사랑의 빚을 남겨놓고서 말입니다. 이 책은 그가 쓴 글들을 엮은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라도 그의 자취를 우리 곁에 두고 싶었습니다. 바보같이 주기만 하던 그를 기억하면서. 오늘, 그 청년이 더욱 그립습니다.

배꼽동맥 이야기

응급실 당직을 마쳤다. 환자들을 잘 치료할 수 있게 하심에 감사 기도를 드리며 병동으로 올라왔다. 임종을 앞두고 있는 J 씨를 잠깐 만날 수 있을까 해서였다. 처치실은 비어 있었다.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오늘 정오쯤 갑자기 상태가 나빠지더니 운명하셨다고 한다. 이런! 마지막 순간에 자리를 지켜드리고 싶었는데……. 주치의로서 책임감과 아쉬움이 남았다. 저녁에 단정하게 옷을 갈아입고 병원 지하에 있는 영안실을 찾았다. J 씨의 자녀 여섯 남매와 그 가족들이 나를 맞이해주었다. 그들의 얼굴은 슬픔보다는 평안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크리스천이기 때문이었을까? J 씨의 자녀들은 아버지를 정성껏 간병하는 분들이었다. 어느 날 병실을 돌아보는데 J 씨의 막내아들이 ‘부흥’이란 복음성가를 듣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마침 내 가운 주머니에 들어 있던 찬양 테이프를 건넸다.

J 씨는 자신의 병이 회복될 수 없음을 알고 있었기에 마음이 많이 위축되어 있었다. 찾아갈 때마다 그를 안심시키고 용기를 북돋아주려고 애를 썼다. 어느 주치의보다 J 씨의 마음을 가장 평안하게 해줬다며 가족들은 나에게 고마워했다. 생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마칠 수 있기를 기도하며 위로하고픈 내 마음이, 알게 모르게 그들에게 전해졌다고 생각했다. J 씨가 돌아가시기 전 일요일 밤, J 씨는 혈압이 떨어지면서 급성신부전상태가 되었다. 나는 환자 보호자들에게 곧 운명하실 것 같으니 모두들 만나보시라고 당부했다. 임종 예배까지 드렸지만 J 씨는 그 상태에서 사흘을 버텼다. 가족들은 하나님께서 왜 J 씨를 데려가시지 않은 채 시간을 끄시는지 의아해했다. 그런데 임종하시던 날 아침, 막내아들이 교제하던 자매를 병실에 데려왔다. 일본에 공부하러 갔다가 만난, 일본선교를 위해 기도하는 신실한 자매였다. 그 형제가 어릴 때 “난 선교사가 될 거야.”라고 고백했던 것을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친히 그쪽에 소망을 둔 자매에게로 인도하셨던 것이다. 평소 막내아들이 혼인하는 것을 보고 눈을 감고 싶어 했던 J 씨는 맑은 의식으로 두 사람을 알아보고 반가워했다고 한다. 그리고 한 시간 뒤, 평안한 표정으로 눈을 감은 것이다. 이에 예수님을 믿지 않던 첫째 아들의 입에서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군요!”라는 고백이 터져 나왔고, 가족들은 그때서야 하나님께서 J 씨의 생명을 연장해주신 이유를 알았다고 한다. 슬픔일 수밖에 없는 아버지의 죽음. 그러나 하나님은 그 사건을 통해서도 역사하셔서 J 씨의 마지막 바람을 들어주시고, 가족들을 믿음 안에 하나 되게 하셨다. 하나님의 예비하심과 계획이 얼마나 완벽한지 보여주신 것이다.

해부학 책을 보면 우리 배 속에 흔적만 남아 있고 피는 흐르지 않는 혈관 하나를 찾아볼 수 있다. 배꼽에서부터 이어져 있는 이 혈관은 한글로 굳이 표현하자면 ‘배꼽동맥’의 흔적이다. 사람들은 태어날 때 모두 탯줄을 달고 나온다. 엄마 배 속의 아기에게 탯줄은 유일한 생명선이다. 탯줄 안에 혈관이 있고 이 혈관을 통해 아기는 엄마로부터 필요한 영양과 모든 물질을 공급받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 혈관은 잘 발달되어 있다. 하지만 아기가 세상에 나옴과 동시에 탯줄은 끊어지고, 피가 흐르지 않는 이 혈관은 차츰 퇴화되어 마침내 흔적만 남게 된다. 그리스도인은 의학적으로 혈관에 비할 수 있다. 사람이 자기 능력으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을 통해 흐르는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가 그로 하여금 어떤 일을 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더 많이 나누고 베풀수록 그 ‘혈관’ - 그리스도인 - 을 통해 더 많은 피가 흘러, 혈관은 더 튼튼해지고 커져서 더 많은 생명의 피를 흐르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려는 노력을 멈추면, 그 혈관은 퇴화되고 더 이상 생명이 전해지지 않는다. 마침내 주변의 다른 혈관이 자라나 그 일을 대신하게 되는 것이다.

장경철 목사는 『축복을 유통하는 삶』에서 그리스도인을 ‘유통업자’라고 정의한다. “(……) 신앙생활이란 하나님의 은혜를 유통하다가 그 은혜에 물들어가는 삶입니다.” J 씨의 빈소를 떠나 돌아오는 내 마음도 뜨거워지고 있었다. 그저 위로하기 위해 찾아갔던 발걸음이 하나님의 간섭하심과 역사하심에 동참했다는 감사함으로 가득 차올랐다. 나는 또 한 번 ‘유통업자’가 되는 은혜를 입은 것이다.



아주 특별한 처방전



병원 응급실 한구석에서 오스왈드 챔버스의 『주님은 나의 최고봉』이란 QT 책을 읽고 있는 의사를 만난다면 그 환자는 행운입니다. 그 의사는 환자를 인간으로 대해주고, 병뿐만 아니라 환자의 마음도 고쳐주는 크리스천 의사일 테니까요. 안수현은 바로 그런 의사였습니다. 우울증에 빠져 힘들어하는 대학생이 있었습니다. 교회에는 건성으로 나왔지만 그날따라 예배에는 들어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학생의 어깨를 툭툭 쳤습니다. 안수현 그 청년이었습니다. “우리 얘기 좀 할까?” “조금 있으면 예배 시작할 시간인데요.” 예배를 가장 귀하게 생각하는 수현 형이었기에 학생은 머뭇댔습니다. “잠깐이면 될 거야. 요즘 어떻게 지내니?” 학생은 자기도 모르게 마음 문을 열었습니다. 스스로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때까지 그는 학생의 말을 조용히 들어주었습니다. 드리고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처방을 내렸습니다. “네 마음은 지금 네 생각으로 꽉 차 있어. 자, 이제 좀 비워봐. 20퍼센트는 남을 위해 베풀어. 사랑을 해. 그럼 네 마음이 기쁨으로 꽉 차게 될 거야.” 지금도 그 학생은 그 청년을 기억합니다. 아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 자기를 위해 예배 시간까지 바꿔가며 곁에 있어주던 그 청년의 ‘사랑의 처방전’을 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청년은 책과 음악 CD, 커피, 그리고 음악회 티켓을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아낌없이 다른 사람과 나누었습니다. 병원의 환자와 보호자, 간호사, 식당 아줌마, 선후배, 교회의 지체들, 국방장관,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그에게 선물을 받았습니다. 환자들은 평생 처음 의사로부터 책과 음반을 선물 받고 감격했습니다. 그 청년은 생일 선물을 직접 전하지 못하는 경우엔 밤중에라도 우편함에 선물을 넣어주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집을 나서던 사람이 문밖에서 기다리던 자신의 생일 선물을 보고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비록 자신은 도시락과 붕어빵으로 점심을 때우더라도 사람들에게 선물하기를 좋아한 그 청년은 주는 기쁨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선물 고르는 안목은 탁월했습니다. 책, 음반, 슬리퍼, 나무 십자가, 액자, 작은 케이크 등등. 받을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꼭 필요한 물건들이 그를 통해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선물들은 신기하게도 받은 사람의 인생에 큰 획을 긋거나, 상처를 치유하거나, 사랑의 물줄기를 터뜨려 다른 곳으로 흘러가게 했습니다. 특별한 선물도 있었습니다.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후배의 집에 찾아가 아무 말 없이 DVD를 같이 보기도 했습니다. 서울이 처음인 사람에게는 드라이브를 시켜주고, 영화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극장과 콘서트장에 동행해주었습니다.

소아암 병동의 어린이날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소아과에는 다른 큰 병원들이 그렇듯이 소아암 병동이 따로 있다. 주로 백혈병, 신경아세포종, 망막아세포종 등의 병을 가진 아이들이 항암제를 투여 받으며 병과 싸우는 곳이다. 아이들은 오랫동안 입원해야 하기 때문에 항암치료 일정과 매일매일의 혈액검사수치에 예민하다. 행여 의사들이 약간이라도 실수하면 민감하게 반응한다. 나는 병동 일을 맡은 두 주 동안 항암제를 수액에 섞어 들어갈 때마다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를 했다.

은진이라는 여자아이가 있다. 일곱 살짜리지만 누구보다 어른스럽다. 척수강 내로 항암제를 투여할 때도 주치의를 잘 도와주는 아이다. 끝나고 나면 고맙다는 인사도 빼놓지 않는다. 하루는 은진이 옆자리 아이에게 항암제를 투여하러 들어갔는데, 은진이가 사탕을 집어준다. 어제 척수검사 할 때 힘들지 않게 잡아주어서 고맙다면서. 불현듯 작년 『누가들의 세계』에 실렸던 전우택 선생님의 글이 생각났다. 심한 심장기형인 두 살짜리 아이가 무엇이건 자신이 가진 것을 만나는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것을 보고 이 세상에 남을 도와줄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글이다. 은진이도 가장 약한 처지에서도 남에게 줄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병실을 나서면서 내가 이 아이에게 줄 것은 무엇이 있는지 생각했다. 그리고 아이들을 돌보는 부모들을 향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그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알게 할 수 있을까? 머리에 떠오르는 한 단어가 있었다. 바로 ‘희망’이었다. ‘그래, 아이들과 보호자들을 위해 책을 나누자.’ 그날 오후, 누가회의 P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배는 흔쾌히 응답해 주었고 둘이 합친 20만 원으로 소아암 환자 병동인 세 개 병실에 각각 열두 권씩 서른여섯 권의 책을 구입했다. 그 책들은 그동안 우리 조카와 형수님께 선물했던 것으로 임상적인 효능이 검증된 책이 대부분이었다. 또한 마음을 열고 읽으면 그리스도의 복음에 다가갈 수 있는 책들이었다.

나는 어린이 주일 아침을 디데이(D-day)로 정하고, 나누고 싶은 말씀을 열 개 정도 준비해서 각 책의 앞장에 붙였다. 그리고 소아암 환자들의 병실에 책을 조용히 배달했다. 『사랑의 학교』,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로아네 집』, 『그림성경』 등등. 적지 않은 돈이 들었지만, 나는 분명 남는 장사를 했다. 그 책을 읽게 될 환아들과 부모님들이 그리스도로 인한 희망과 기쁨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될 수만 있다면……. 며칠 뒤, 스승의 날이라고 소아암 병동 7호실의 항암치료(CTX) 받는 아이들, 은진, 재진, 찬범, 민영, 영학이가 꽃을 만들어 달아주었다. 내가 제일 많이 받았다. 마음을 열어준 아이들과 부모들이 고맙다. 정말 값진 선물이었다.



외로운 양치기



인공신장실에서 혈액투석을 받던 한 환자가 갑자기 숨소리가 이상해지더니 헐떡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간호사는 급히 담당 의사를 호출했습니다. 젊은 의사 하나가 뛰어왔습니다. 기도 확보를 위해 인공삽관이 필요했지만 외래 개념의 인공신장실에는 준비가 잘돼 있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환자는 얼굴이 흙빛으로 변하면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보통 의사들 같으면 간호사에게 불같이 화를 냈을 텐데 그 의사는 달랐습니다. 그는 간호사에게 끝까지 존댓말을 잊지 않고 침착하게 후속 처치를 했습니다. 환자 침대에 올라탄 채로 앰뷰를 짜면서 중환자실로 내달렸습니다. 인공신장실의 간호사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자신이 뭔가 잘못한 게 아닌가 하는 죄책감으로 괴로워했습니다. 얼마 후, 그 젊은 의사가 인공신장실로 간호사를 찾아왔습니다. “놀라셨죠? 환자가 의식을 되찾았다는 소식 전해주려고요.” 간호사는 젊은 의사가 특별한 은사를 지닌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의사는 안수현이었습니다. 얼마 후, 간호사는 교회에 등록하고 신앙생활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지방에서 올라와 연고가 없던 그 간호사 자매가 새 교회에 잘 적응하도록 수현은 끝까지 마음을 써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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