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부모갱신

조봉희 지음 | 교회성장연구소



부모갱신

조봉희 지음

교회성장연구소 / 2018년 4월 / 190쪽 / 12,000원





부모의 뒷모습 양육



몇 해 전 조선일보에 실린 김혜준 대표의 글 ‘사단법인 함께하는 아버지들’을 읽으며 공감한 적이 있다. 수능을 마친 고3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앞으로 1년밖에 살지 못한다면, 꿈을 이루는 것과 돈 5억 원 중 무엇을 선택하겠습니까?” 학생들은 모두 같은 것을 선택한다. “꿈을 이루고 싶습니다.” 스무 살 젊은이다운 응답이다.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한 아버지들의 대답은 다르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꿈을 이루는 것보다 5억 원을 선택한다. 이유는 하나다. 바로 ‘가족들을 위해서’다. 이것이 아버지의 모습이다. 아버지의 본질적 사명의식이고 가장의식이다. 그런데 이처럼 아버지로서 사명감을 품고 살아도 가족들에게 존경받지 못하고 씁쓸한 뒷모습을 남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남자로서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는 실패한 것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남자들이 ‘아버지 됨’에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돌이키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린 경우도 있다.

진정한 성공은 가정에서 드러난다

‘문제 자녀’ 배후에 ‘문제 부모’가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우리는 외형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수완이 좋은 사업가, 뛰어난 전문가, 부자, 실력 있는 의사 등 소위 잘나가는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런데 아무리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사회적으로 활발히 활동하며, 자기 분야에서의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아버지로서 혹은 남편으로서 실패했다면, 그 어떤 성공으로도 이 실패는 보상할 수 없다. 가정을 이룬 한 남자의 성공은, 아내와 자녀들을 통해 드러난다. 당신은 가족들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가?

자녀는 부모의 뒷모습에 영향을 받는다

자녀는 부모의 앞모습보다 뒷모습을 보고 배운다고 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보다는 잘 드러나지 않은 속 모습이 참 가르침이 된다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자녀에게 좋은 부모가 되고 싶다면, 말이 아닌 삶으로 바른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을 인생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는 모습을 삶에서 보여 주어야 한다.

최근 경제적인 여유가 가정생활에도 스며들어 주일에 예배보다는 휴가를 우선으로 여기는 가정이 늘고 있다. 주일에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대신 산 좋고 물 맑은 곳으로 자녀들을 데리고 나간다. 그런데 이러한 환경은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제대로 심어 주지 못한다. 경제적인 유익을 누리고, 새로운 문화를 접할 기회는 많겠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바르게 인식시켜 주지 못한다. 이런 가정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교회는 다녔기에 부모가 죽은 후에 추도 예배는 드리겠지만, 신앙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지는 않을 확률이 크다. 당신은 자녀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가? 자녀가 바라보는 당신의 뒷모습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브람의 뒷모습을 따른 이삭

아브람과 사래는 금실이 좋은 부부였다. 두 사람은 고생을 하면서도 서로를 다정하게 챙기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가나안 땅에 큰 가뭄이 들어 그들은 이집트로 가게 되었다. 이집트에 도착하기 직전에 남편 아브람은 부인 사래에게 말했다. “당신은 매우 아름다운 여자요. 이집트 사람들이 당신을 보면, ‘이 여자는 저 사람의 아내다’라고 말하며 당신을 빼앗기 위해 나를 죽일 것이오. 그러니 당신은 그들에게 내 ‘누이’라고 말하시오. 그러면 나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게 될 것이오.” 실제로 사래는 아브람의 이복 여동생이기에 오빠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하지만 이미 남편과 아내가 된 두 사람 사이에서 ‘누이’라는 호칭은 아브람 자신이 살기 위한 속임수였다.

아브람의 이런 거짓말은 이후에도 이어진다. 나중에 팔레스타인 남부지역의 왕 아비멜렉에게 동일한 거짓말을 한 번 더하게 된다(창 20장). 이것이 아버지 아브람이 아들 이삭에게 보여 준 부끄러운 뒷모습이다. 자기가 살기 위해 두 번씩이나 아내를 버리는 아버지의 뒷모습은 결코 아름답지 못했다. 그래서 아들 이삭도 훗날 자신의 생사가 위기에 처했을 때 아버지와 똑같은 행동을 하고 만다(창 26:7).

부모의 뒷모습은 자녀들에게 그대로 답습된다. 안타깝게도 좋은 점보다 나쁜 점을 더 잘 닮게 되는 것이 사람의 습성이다. 우리 민족의 지도자 백범 김구 선생님이 애송했던 다음과 같은 시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함부로 어지럽게 걷지 말지어다. 오늘 내가 디딘 발자국은 언젠가 뒷사람의 길잡이가 되기 때문이니라.’ 아브람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의 발자국은 아들 이삭에게 길잡이가 되고 말았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해당된다. 우리의 살아가는 모습이 자녀에게 길잡이가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녀들에게 어떤 뒷모습을 보여 주면 좋을까?

아내를 실망시키지 맙시다

남편은 아내를 실망시키지 말아야 한다. 아내를 잘 돌보고 책임져야 한다. 예수께서 교회를 지키기 위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셨던 것을 기억하자. 바로 그 사랑으로 아내를 돌보아야 한다. 그것이 남편의 사명이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아내를 지키는 것이 남편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가정에서 자녀들은 아버지의 남자다움과 남편다운 뒷모습을 보며 자란다. 그러므로 아버지들은 아름다운 뒷모습, 존경스런 뒷모습을 보여 주며 살아가야 한다.

남편의 위상을 높여 줍시다

아브람이 아내 사래를 ‘누이’라고 속인 사건은 이삭이 태어나기 25년 전의 일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삭이 아버지와 똑같은 속임수로 위기를 모면하려 할 수 있었을까? 이유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어머니 사래에게서 들어온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삭이 이 사건의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그의 나이가 10살은 넘었을 것이다. 이 말은, 사래가 35년 이상 상처를 품고 살았다는 의미가 된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한 번도 아닌 두 번씩이나 자기만 살겠다고 비겁하게 처신한 남편에 대한 실망은 쉽게 잊히기엔 너무나 컸다.

그래서 아들 이삭에게 아버지의 뒷모습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이야기했을 것이다. 어머니로부터 아버지의 실수를 얼마나 많이 들었으면, 그 역시 아내 리브가를 여동생이라고 둘러댔을까? 학습의 결과인 셈이다. 그래서 학습된 성품이 무서운 것이다. 어머니의 뒷모습이 바르지 않았던 것이다. 남편 앞에서는 남편을 존중하는 것처럼 상냥하게 굴면서, 남편이 없는 자리에서는 아이들에게 남편의 흉을 보는 어머니의 뒷모습은 이처럼 큰 역효과를 초래한다. 어머니들이여, 자녀들 앞에서 아버지의 위상을 세워 줄 것을 권한다. 사람들 앞에서 남편의 체면을 높여 주자. 특히, 남편의 허물을 들추어내지 말자.

대부분의 남자들은 과거의 실수에 대한 미안함과 반성을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사과의 표시가 서툴고, 전달력이 떨어질지는 몰라도 남자들의 본심은 착하다. 남자는 창조의 첫 작품이기에 순진하고 착한 존재다. 그에 비해 여자는 두 번째 작품이기에 약고 영리하다. 그래서인지 여자들은 간혹 남편의 과거 잘못을 들추어낼 때가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한 죄를 바다 깊이 빠뜨리시고, 그 옆에 다음과 같은 푯말을 세워 놓으셨다. ‘「낚시 금지」(시103:12; 미 7:19)’ 지금 이 순간, 가슴에 깊게 새겨놓은 남편과 자식들의 잘못이 있다면 다 덮고 용서하기를 바란다. 사랑은 허물을 덮는다. 용서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만큼 세워 준다(벧전 4:8). 삶의 현장에서 행복하려면 세 가지 F를 잘해야 한다. “Forgive, Forget, Forever.” 잘못이나 실수는 용서하고, 잊고, 영원히 기억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나 자신이 행복해지는 비결이다. 모든 아내들이 남편의 위상을 세우는 현숙한 여인이 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바로 자녀들에게 현숙한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여 줄 수 있는 방법이다.



가정은 사랑으로 끌어안는 안식처



이 시대는 사람들이 자기감정을 잘 처리하지 못해 사고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처리되지 못한 감정은 대부분 어둡고 아픈 감정이다. 이런 상한 감정을 제대로 풀지 않으면 영혼의 변비가 된다. 내면세계를 썩게 하고, 정신적인 암을 유발한다. 그렇게 안으로 쌓아 둔 감정은 자신의 세계만 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무서운 사고를 저지르게 만든다. 처리하지 못한 어두운 감정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 성경은 여러 곳에서 경고의 메시지를 준다. 그중 하나가 압살롬의 이야기다.

압살롬은 자기 여동생을 성폭행한 암논을 미워했다. 하지만 자신의 분노감정을 은폐하기 위해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압살롬은 그렇게 2년 세월을 보내며 속에 응어리를 품고 살았다(삼하 13:22-23). 그리고 압살롬은 치밀한 계략을 세워 결국 암논을 살해한다(삼하 13:29). 분노의 응어리가 초래한 비극이다. 끔찍한 사건을 저지른 압살롬은 외갓집으로 도망가 거기서 3년을 보낸다(삼하 13:38). 그러다가 우여곡절 끝에 집으로 돌아오며 아버지의 사랑과 용서를 기대했다. 그러나 아버지 다윗은 그를 따뜻하게 받아 주지 않았다. 다윗은 3년 만에 돌아온 아들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압살롬을 집으로 불러들이기는 했지만, 인격적으로 받아 주지는 않은 것이다. 5년이 흘렀는데도 다윗은 여전히 분노의 감정을 풀지 않았다. 그래서 압살롬이 자기 앞에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했다. 그렇게 또 2년이 지났다.

압살롬에 대한 다윗의 감정이 미움만은 아니었다. 한쪽 가슴에는 미운 감정이 남아 있었지만, 다른 한쪽 가슴에는 사랑이 있었다. 두 감정이 혼재하는 가운데 풀어야 할 감정을 풀지 못하고 다스리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결과적으로 아들을 비인격적으로 대하게 됐다. 아버지로서 아들을 따뜻하게 포옹해주지 않았다. 사법적인 사면은 있었지만, 사랑의 사면은 없었다. 그러자 압살롬은 아버지로부터 환영받지 못해 더욱 화난 감정으로 병들어 갔고, 이런 상한 마음은 그를 외로운 늑대, 굶주린 사자로 만들었다. 결국, 그는 또다시 끔찍한 일을 벌인다. 엄청난 유혈 사태를 가져온 왕좌의 난이다. 아들이 아버지를 거역하여 모반을 일으킨 것이다. 한 가정의 감정 문제가 국가적 비운까지 초래하고 말았다.

비극과 불행의 요인

다윗의 가족들은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 초기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상황으로까지 치닫게 된 것이다. 우리 역사에도 이런 아픈 이야기가 있다. 조선의 21대 임금인 영조와 그의 아들 사도 세자에게 일어난 사건이다. 영조는 후궁의 아들로서 태생적 한계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은 그의 성격을 날카롭게 만들었다. 그래서 결국 아들 사도 세자로 하여금 정신질환을 앓게 하고, 끝내는 그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게 했다. 자신의 열등감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아들을 사랑으로 품지 못한 결과다.

우리는 어떤가? 배우자나 자녀, 더 나아가서 가까운 관계의 사람들을 용서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안 한 것도 아닌 어정쩡한 관계로 두고 있지는 않은가? 어둡고 쓴 상한 감정을 쌓아 두고 있지는 않은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상한 감정의 폭탄을 품고 있지는 않은가? 의학적 진단에 의하면 우리에게 가장 해로운 감정이 분노라고 한다. 분노는 독이 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쉽게 분노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사람이 얼마나 화를 잘 내는지 성경에서는 600번 이상 ‘화’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특히, 현대인들은 화(anger) 때문에 암(cancer)이 생긴다. 분노가 이처럼 위험한(danger) 것이다. 이에 대해 성경은 분노의 감정을 다스리는 원리와 방법을 아주 실제적으로 가르쳐 준다. ‘… 해가 지도록 화를 품지 말며 (엡 4:26, 우리말성경)’ 화난 감정을 끌고 가지 말라는 것이다. 이 말씀은 과학적으로도 증명된 중요한 가르침이다. 인간의 뇌는 어떤 일을 단기 기억장치에 저장했다가, 해가 지고 사람이 수면 상태에 들어가면 임시로 저장해 두었던 것을 장기 기억장치에 옮겨 저장한다고 한다. 따라서 화난 감정을 밤까지 가져가게 되면, 내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아 있게 되는 것이다. 즉, 해가 지기 전에 화를 풀어야 그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분노를 풀 수 있을까?

감정(emotion)을 정감(affection)으로 승화시킵시다

늘 기쁠 수만은 없고, 반대로 늘 슬픔에 빠진 것도 아니기에 사람의 감정은 기복을 탄다. 따라서 무슨 일을 할 때 감정이 앞서면 사고가 날 수 있다. 『감정치유기도』라는 책을 쓴 이경용 목사님은 감정을 정감과 대비하여 설명한다. 저자는 감정(emotion)이 날것이라면, 정감(affection)은 성숙한 사랑의 성품이라고 이야기한다. 감정이 설익은 땡감이라면, 정감은 잘 숙성된 단감이다. 땡감은 타닌 성분 때문에 떫고, 소화 장애와 변비를 일으킨다. 그대로 두어서는 속이 꽉 막히고 만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분노, 앙금, 쓴 뿌리, 독기 같은 것이 가득한 떫은 감정에서, 농익은 상태로 승화시켜야 한다. 그 승화된 사랑의 마음이 곧, 정감이다. 떫은 땡감을 단감으로 숙성시키듯이 상처받은 감정을 치유된 정감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장정빈 씨가 쓴 『히든 서비스』에서 공감되는 다음의 글을 읽었다. “고객의 기억을 성공적으로 관리하려며 두 가지 측면에 집중해야 한다. 첫째는 유쾌한 기억을 극대화하는 것이고, 둘째는 불쾌한 기억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기쁨은 나누면 2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으로 줄어든다’라는 말은 행동경제학에서도 사실이다. 행복이나 이익은 더 크게 만들고, 손실이나 아픔은 줄여 주는 것을 행동경제학에서는 쾌락적 편집(hedonic editing)이라고 부른다. 고객의 기억이 즐겁도록 편집한다는 의미다.”

아픔을 사랑으로 끌어안읍시다

이미 살펴본 대로 다윗은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들을 따뜻하게 안아 주어야 할 때, 그러지 못했다. 해결되지 않은 자신의 감정 때문에 아버지로서 마땅히 보여야 할 모습을 보이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들에게 상한 감정을 심어 주었다. 만약 다윗이 압살롬을 사랑으로 끌어안아 주었더라면 더 이상의 불행은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의 그 어떤 잘못도 다 끌어안아 주신다. 누가복음 15장에 나타나는 비유의 주제는 집을 나갔다가 돌아온 탕자가 아니라, 그 탕자를 따뜻하게 받아 주시는 아버지의 포근한 사랑이다.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의 대표작 중 하나가 ‘탕자의 귀향’이다.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돌아온 아들의 행색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그동안의 고초가 그대로 나타난다. 그런 아들을 두 팔로 감싼 아버지의 모습은 아들을 향한 깊은 사랑을 느끼게 해준다. 특히, 그림을 자세히 보면 아버지의 두 손의 모양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왼쪽 손은 힘줄이 두드러진 남자 손이고, 오른쪽 손은 매끈한 여자 손이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손이 함께 있는 것이다. 그림에서 가장 밝은 부분이 바로 이곳이다.

이 그림은 보면 볼수록 사랑과 용서, 치유와 회복의 은총을 느끼게 한다. 하나님은 아버지의 사랑이자 동시에 어머니의 사랑으로 우리를 품고 끌어안아 주신다는 복음을 담은 그림이다. 또한 탕자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치 어머니 뱃속에 머물고 있는 태아처럼 평안해 보인다. 우리가 인생의 본고향인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갈 때 누릴 수 있는 참된 안식과 평안을 상징한다. 이것이 곧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가정의 본질이다. 가정은 사랑으로 서로를 끌어안아 주는 안식처가 되어야 한다. 허물을 덮고 상처 난 곳을 보듬는 사랑으로 서로 간에 상한 감정을 털 수 있게 해주는 자리여야 한다.



감사한 추억을 남기며 살기



나는 어른들과 가까이 지내는 데 별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어른들을 대할 때 예의는 갖추지만, 어른들에 대해 두려움은 갖지 않는다. 생각해 보니 이것이 다 아버지 덕분이다. 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 모임에 나를 데리고 다니시며 자랑스럽게 소개하셨고, 아버지와의 동행으로 나는 어려서부터 어른들과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아버지가 내게 남겨주신 복된 추억이다. 우리 시대의 인간승리자라고 할 수 있는 강영우 박사는 많은 이들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남겨 주었다. 그는 췌장암으로 생을 마감하기 전에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 그리고 수많은 지인에게 감사의 편지를 남겼다. 편지에는 누가 읽어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감사의 마음이 다음과 같이 빼곡히 담겨 있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