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기적
이영훈 지음 | 두란노
믿음의 기적
이영훈 지음
두란노 / 219쪽 / 11,000원
1주 믿음의 본질
예수님만으로 충분합니다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믿음에 대해 이해하고자 할 때 그 무엇보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이 믿음의 창시자이시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우리 믿음은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나, 우리 지식이나 경험으로 개발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믿음의 창시자, 믿음의 완성자인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믿음을 주실 수 있으며, 그 믿음을 온전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근본적으로 시선의 문제입니다. 언제나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만 바라보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바라보는 시선이 흐려지고,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면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에겐 ‘비참해질 권리’가 없다. 우리에겐 ‘기쁨이 없을 권리’가 없다.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그분의 마음, 그분의 이해하심, 그분의 부드러우심, 그분의 겸손하심을 보라. 우리를 도와주시고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실 준비를 갖추고 계신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나의 친구들이여,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라. 그러면 ‘주님의 기쁨’을 얻게 될 것이며, 점점 더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게 될 것이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입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은 단순히 사람의 신념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은 믿음에 대해 말씀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우리의 육신의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영의 눈으로 바라보면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은 부정적인 것들로 가득 차 있어서 우리의 말하는 것, 보는 것, 듣는 것이 모두 부정적인 것에 익숙합니다. 우리는 이 부정적인 것들에 익숙한 나의 옛 사람과 싸워야 합니다. 그대로 두면 어느새 우리 안에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 싹트게 되고 영안이 어두워지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7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믿음의 길을 떠났습니다. 그는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을 수 없는 중에 믿었습니다. 그의 믿음에 대해 로마서 4장 17-18절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믿음의 기초는 말씀입니다
온전한 믿음이 되려면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로마서 10장 17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리스도의 말씀, 곧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믿음만이 온전한 믿음입니다. 내 생각, 내 뜻대로 아무렇게나 믿는 믿음은 온전한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 안에 믿음이 생기게 됩니다. 헨리 나우웬은 그의 책 『영혼의 양식』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숙고하고, 되씹고, 영혼을 위한 양식으로 먹으며, 항상 그 말씀에 가까이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 속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갈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성령의 감동’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후서 1장 20-21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한 후 우리 삶에 적용할 때 반드시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이때 그 말씀이 우리 삶과 전인격을 변화시키게 됩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인류를 위한 구원의 빛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에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그러나 이런 축복이 우리에게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보배로운 피를 흘려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 예수님의 보혈이 우리 마음을 정결하게 하고 새롭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죄에서 자유하게 만들어 줍니다.
베트남 호치민에 가면 엠마누엘순복음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는 지독한 가난과 소외로 절망에 빠져 마약에 중독된 채 살아가는 베트남인들에게 그리스도의 희망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성도들이 매일 모여 기도하고 예배드리며 성경을 읽습니다. 그중에 마약 중독으로 인한 폐결핵과 심각한 위통으로 고통 가운데 살았던 흐엉 레 씨가 있습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마약 중독으로 황폐화된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현재는 교회에서 찬양팀을 인도하며 성령 충만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더 살고 싶지 않았어요. 죽고 싶었지요. 의사들도 포기하고 저를 집으로 돌려보냈어요. 그런데 그때 이곳에 머물며 중독을 치료한 사람을 만났지요. 그는 저에게 예수님을 전했고 전 희망을 느꼈어요.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날 위해 기도할 때 전 놀랐습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통해 치유받고 통증을 거의 느끼지 않으며 마약에서도 벗어나게 되었어요.”
믿으면 성령 충만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 1:4-5). 여기서 성령 세례는 성령 충만의 최초 경험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면 권능을 받고 복음의 증인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열두 제자를 포함한 120명의 제자들은 이 말씀을 붙잡고 예루살렘의 어느 한 곳에 모여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오순절 날이 이르렀을 때 그곳에 모인 모든 제자들이 성령 충만을 받았습니다. 그 후 제자들은 담대한 복음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저는 4대째 장로교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그러다가 1964년도에 할아버님께서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출석하기로 하시면서 온 가족이 순복음교회 교인이 되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저는 성령 충만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순복음교회에 와서는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한다는 말씀을 늘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1966년 2월 부흥회 때 성령 충만을 받았습니다. 그때 제가 달라진 점은 예수님 생각만 하면 저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의 은혜가 감사해서 눈물이 그치지를 않았습니다. 제가 이러한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은 성령 충만은 궁극적으로 예수님 체험이라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을 받으면 이천 년 전의 예수님이 아니라 오늘 나와 만나 주시고 동행해 주시고 치료해 주시고 역사해 주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기도할 때 기적을 경험합니다
기도는 주님과의 대화이며, 영적인 호흡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대한 우리 믿음이 선명해집니다. 미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크리스천 여성 베스트셀러 작가인 스토미 오마샨은 『기도의 용사』에서 말했습니다. “상황이 아무리 절망스러울지라도,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그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공급해 주신다. 우리는 상황에 압도당할지 몰라도, 하나님은 결코 그렇지 않으시다. 우리 눈에는 출구가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하나님은 보고 계신다. 바로 그분으로 인해 우리는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예레미야 33장 3절은 전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또한 시편 40편 1절은 “내가 야훼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라고 말합니다. 마태복음 7장 7-8절은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예기치 못한 고난이 다가올 때 하나님을 떠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고난 가운데 오히려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수시로 다가오는 염려와 두려움, 고난을 피할 수는 없지만, 거기에 매이지 않도록 기도하는 사람들이 기적을 경험합니다. 날마다 ‘말씀의 씨’를 심고, ‘기도’로 물을 주다 보면, 어느새 ‘믿음의 나무’에서 ‘성령의 열매’가 열리게 될 것입니다!
믿기만 하면 죄에서 자유를 얻습니다
우리가 죄에 대해 심각한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죄는 우리 믿음에 가장 치명적인 독이기 때문입니다. 죄는 우리 믿음을 병들게 만들고, 무기력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육신을 입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어떻게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피 흘림의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피 흘림의 제사는 궁극적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예표합니다. 예수님이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단 한 번의 영원한 제사를 드리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기만 하면 죄 사함을 받고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날마다 보혈의 능력을 의지해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을 뿐만 아니라 죄책감으로부터 해방될 때, 담대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 때를 따라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 8:1).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히 10:19).
믿음은 십자가만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어야 합니다. 내 지식, 경험, 주장, 생각, 아집, 교만, 거만, 자존심이 죽어야 합니다. 날마다 나의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으면 세상에 빠지고 맙니다. 특히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하고 예수님의 보혈로 날마다 정결하게 씻어야 하는 것이 바로 우리 안에 있는 정욕과 탐심입니다. 우리가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님의 보혈로 씻지 않으면 죄의 종노릇하던 옛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4).“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롬 6:6)
2주 믿음의 깊이와 성장
믿음은 하나님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인생은 선택과 결단의 연속입니다.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우리는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망설이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의 자녀는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믿음에 합한 것인지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또한 무엇을 하든 믿음에 근거해서 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하는 일들을 통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해서 선택하고, 하나님이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믿음을 가질 때 우리 삶에 놀라운 일을 이루십니다. 잠언 16장 9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야훼시니라”
하나님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를 기뻐하시고 상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고 십자가를 통해 축복의 통로를 여셨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가장 놀랍고 큰 축복과 기적은 바로 주님과 함께 기뻐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 기쁨은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이고, 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기쁨입니다.
믿음은 예배를 통해 완성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찬양 드리기 위해 창조된 존재이며,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보혈로 대속함을 입어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할 수 있는 특권을 받은 존재로서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증거가 바로 예배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함으로써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가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우리 안에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감동과 감격이 있다면 우리의 믿음이 살아 있는 믿음이라는 증거입니다. 공적 예배 시간만이 아니라 우리가 어느 곳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간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간다면 우리 삶이 예배가 되고 모든 삶의 순간에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동행의 기쁨을 알게 합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하늘에 올라간 두 사람이 나옵니다. 에녹과 엘리야입니다. 하나님은 에녹의 삶을 기뻐하셔서 에녹으로 하여금 죽음을 겪지 않게 하셨습니다. 성경은 그 이유에 대해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히브리서 11장 5절)
엘리야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엘리야의 삶은 전적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었습니다. 온 이스라엘에 우상숭배가 가득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대적들의 기세가 등등할 때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키는 일꾼으로 그의 사명을 다했습니다. 그의 이러한 삶의 비결은 믿음이었습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현실이 괴롭고 어렵고 힘들어도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늘 함께해 주시고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
믿음은 천국 소망을 품게 합니다
이 땅은 우리가 거할 영원한 집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11장 16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천국의 소망은 이 땅에서의 고난과 절망과 아픔과 슬픔을 이길 수 있는 힘이 됩니다. ‘종말 신앙’이란 ‘오늘이 내게 허락된 마지막 날’이라는 고백 속에서 다시 만날 예수님을 바라보고 항상 오늘이 주님을 맞이하는 날이라는 자세로 살아가는 신앙입니다. 따라서 종말 신앙은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게으른 삶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천국 소망을 품고 주어진 삶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