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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기도

안젤름 그륀 지음 | 나무의마음



치유의 기도

안젤름 그륀 지음

나무의마음 / 2014년 12월 / 264쪽 / 13,800원





사람들은 왜 싸우는가?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프랑스의 신학자 마르크 오레종은 갈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를 내렸습니다. “인간에게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은 것이자 곧 삶의 증표이다.” 즉 태어남이 갈등의 시작이고, 젖을 뗄 때나 미운 일곱 살, 사춘기 등 삶의 굽이굽이에서 다양한 갈등과 충돌을 겪으면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부모의 기준을 따르라고 속삭이는 ‘초자아’의 목소리와 자신의 고유한 감각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합니다. 그리고 삶의 조건이 되는 환경과도 갈등을 겪습니다. 우선 가정이라는 환경에서 부모는 자식에게 이것저것 금지하고 한계를 정합니다. 나이가 들면 직장이나 소속 집단에서 갈등을 겪기도 합니다. 각 단체나 지향하는 바가 다른 정당 사이에서도 갈등이 생깁니다. 오레종은 이렇게 말합니다. “살면서 갈등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 사이든, 여러 집단 사이든 갈등이 생겼을 때 무작정 피할 게 아니라, 오히려 갈등을 통해 자신이 꼭 옳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갈등을 회피할 때 무너지는 것들

갈등에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습니다. 발전적으로 나아가는 생산적인 긴장을 만들어 냅니다. 갈등은 우리를 감싸 주는 안전이라는 울타리를 흔들어 우리를 의문에 휩싸이게도 만들지만, 진실을 직시하도록 돕기도 합니다. 물론 한 집단 혹은 한 국가를 마비시키는 갈등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갈등을 해결하려다 공동체의 질서를 무너뜨리지 않을까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갈등을 회피해 버리면 평화와 안정이라는 수면 아래에서 더욱 격렬한 충돌이 생깁니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잠재된 갈등’이라 부릅니다. 겉으로는 대체로 모든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원만하게 지내는 것처럼 보입니다. 서로에게 친절하고 정중합니다. 하지만 수면 아래에서는 긴장과 분노가 존재합니다. 거대한 폭발이 두려운 나머지 갈등이 솟아오르지 못하게 억누르기 때문입니다. 공동체의 안전을 위한다는 명목하에 갈등을 억압하다 보면 사람들의 분노 지수가 높아지고, 발전해 갈 수 있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빼앗는 결과를 낳습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갈등하는 존재이고, 갈등을 통해 성장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갈등을 회피하면 성장할 기회를 스스로 차 버리게 됩니다. 우리의 삶은 갈등을 통해 다양한 자극을 경험하면서 의식의 폭이 넓어집니다. 오레종은 “우리가 그런 갈등을 부정하면 우리의 내면세계는 정체되고, 결국 자기 삶을 부정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자기 의견만 고집하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 역시 갈등을 부정하는 행위입니다. 이런 유형은 자신의 내적 불안을 들키지 않기 위해 갈등을 회피합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과 늘 조화롭게 지낸다고 주장하는 사람에 대해 마르크 오레종은 “자기 내면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않는 것이므로, 결국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 채 진정한 자아와 분리된 왜곡된 정체성을 갖습니다. 이런 사람과 함께 있으면 뭔가 겉도는 기분이 들어서, 진정한 관계가 이루어지기 힘듭니다.

인간은 갈등을 통해 신에게 다가간다

스위스의 정신의학자 카를 융은 갈등을 ‘자기로부터의 소외’라고 표현합니다. 인간이 느끼는 갈등은 인간의 본질에 속합니다. 인격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음양처럼 대극을 형성하기 때문입니다. 사랑과 공격성, 사고와 충동, 이성과 감성처럼 인간은 언제나 대립하는 양극 사이에 놓여 있습니다. 융은 “기독교 윤리가 해결할 수 없는 갈등을 불러온다”고 주장하며 “이런 충돌과 갈등은 견딜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합니다. 인간은 충돌과 갈등을 통해 신에게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십자가를 바라보는 심층심리학적 관점은 중요합니다. 융은 십자가를 대립의 전형으로 보았습니다. 인간은 십자가를 마주하며 자신의 대립성을 견딤으로써 더 높은 단계, 바로 신의 단계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가장 극단적이고 위협적인 갈등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부숴 버리는 대신,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고통을 견딤으로써 구원을 경험한다”고 했습니다. 자기 내면의 대립을 견디는 사람은 예수의 십자가와 함께하며, 예수를 통해 구원, 즉 온전함을 경험합니다.

융은 주로 개인을 다루었지만, 개인의 내면이 사회 현실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서도 설명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혹은 집단과 집단 간의 갈등은 곧 인간 내면의 갈등이 밖으로 불거져 나온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자신의 대립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을 밖으로 투사한다는 것이죠. 그러다 보면 다른 사람이 가진 대립되는 의견과 부딪치게 되고, 결국 싸우게 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의 갈등을 자신의 내적 대립을 비춰 주는 거울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내면에서 대립하는 양극을 밖으로 투사하는 한 진정한 갈등 해소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나 다른 집단과의 갈등에서 자기 내면의 대립을 인식할 때 비로소 화해의 길이 열립니다. 그래서 자신의 내적 대립과 화해할 때 비로소 다른 사람과의 외적 대립과도 화해할 수 있습니다.



삶의 갈등을 해결하는 1500년의 지혜



성 베네딕트 규칙서, 갈등 해소를 위한 보고(寶庫)

인간이 갈등과 함께 존재해 왔다면, 역사 속에서 갈등을 해결하는 지혜를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중에는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갈등 해소법이 있습니다. 베네딕트회[성(聖) 베네딕트가 529년 이탈리아의 몬테카시노에 창립한 수도회로, 후에 전 유럽으로 확산되었다. 성 베네딕트는 수도원 생활의 규범을 바탕으로 계율을 만들었다.]는 약 1500년 동안 성 베네딕트 규칙서에 따라 공동체 생활을 해 오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스위스 그리고 프랑스에 있는 베네딕트 수도원 대부분이 1천 년 이상의 전통을 자랑합니다. 성 베네딕트가 이 규칙서를 만들 당시는 민족 이동으로 지극히 혼란스러웠던 시기입니다. 분명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 수도회에 들어왔을 테고, 당연히 모든 수도자가 무난한 성격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때부터 오늘날까지 다양한 연령과 출신 배경, 서로 다른 인생 경험과 신앙 체험을 한 수도자들이 베네딕트회에서 함께 살아왔던 만큼 이곳은 갈등을 해결해 온 경험이 풍부합니다. 갈등 해소에 서툰 공동체였다면 지금까지 존속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베네딕트회의 경험은 오늘날의 교회는 물론이고, 가정이나 회사에도 유용한 팁을 제공할 것입니다. 베네딕트회에서 말하는 갈등이란 공동체 생활뿐 아니라, 업무 처리와 재정 운영과도 관련되어 있으니까요.

기도하라, 분노가 가시처럼 상처 입히기 전에

성 베네딕트는 공동체를 이상화하는 것을 철저히 금했습니다. 지나치게 높은 이상이 오히려 갈등을 회피하도록 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한 수도원에서 제가 직접 경험한 일입니다. 안내 책자에서는 ‘높은 수준의 영성’을 선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 공동체는 긴장의 골이 깊었고, 갈등으로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너무 그럴싸한 이상을 내세우는 집단에는 늘 갈등을 회피하게 만드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성 베네딕트는 공동체가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과 일상의 갈등을 처리하는 방법에 대해 매우 겸손한 자세로 상세하게 기록해 두었습니다. 그는 현실주의자여서, 수도자들 사이에 늘 갈등이 있을 거라 예상했습니다. 비록 수도자들이 영적인 소명을 갖고 수도회에 들어와 하느님께 자신의 삶을 봉헌한다고 서약했다고 하더라도 그들 역시 감정과 욕구가 있는 인간임을 인정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 베네딕트는 수도자들에게 아침 기도와 저녁 기도를 마치며 주기도문을 모두가 들을 수 있게 큰 소리로 외우라고 합니다. “모든 이들이 들을 수 있도록 기도하라. 분노가 덮쳐 가시처럼 마음에 상처를 입히기 쉽기 때문이다.” (성 베네딕트 규칙서 13, 12)

갈등 해소를 위한 5가지 필요조건

오늘을 사는 우리도 성 베네딕트가 세운 규칙을 우리의 갈등을 해결하는 지혜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먼저 5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첫째, 갈등을 평가하지 마십시오.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따지지 마십시오. 시시비비를 가리기보다 맑은 마음으로 갈등을 직시하십시오. 갈등을 한 개인의 잘못으로 이해해선 안 됩니다. 마치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처럼 비난 섞인 태도로 갈등을 대한다면, 갈등이 해소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심각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갈등을 도전 과제로 여기고 겸손한 자세로 받아들이십시오.

둘째, 갈등 당사자 모두의 정당성을 인정하십시오. 저마다 자기 방식으로 생각하고 자기 의견을 주장하며 자기 이익을 위해 싸울 수 있는 것입니다. 당연히 당신과 생각이 같을 거라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그런 자세로는 결코 갈등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자기가 옳기 때문에 상대방이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편견이 있기 때문에 옳고 그름의 판단 없이 갈등에 대처하기란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셋째, 상대방이 진짜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십시오. 그때 비로소 갈등을 통해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그의 견해 속에는 실현되지 못한 소망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다른 사람들의 태도가 맘에 들지 않아 어깃장을 놓는 건 아닐까?’ ‘말 못할 다른 문제로 괴로워하면서 엉뚱한 방식으로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아닐까?’ 여기서 더 나아가 혼자 내적 갈등을 겪고 있는 건 아닐까 살펴야 합니다. 사람들은 내적 갈등을 밖으로 투사하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갈등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살필 때도 옳고 그름으로 상대를 판단해선 안 됩니다. 오로지 상대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넷째, 상대방의 입장과 주장 그리고 그의 의견을 따랐을 때 예상되는 결과를 꼼꼼하게 따져 보십시오. 이렇게 하면 상대방을 존중하는 동시에 그가 자기 의견을 명확히 하도록 격려할 수 있습니다. 난처한 질문으로 상대방을 구석으로 몰아넣어서는 안 되고, 그가 의견을 명확히 하도록 도와주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다섯째, 스스로를 꼼꼼히 점검하십시오. ‘내 의견은 정말 객관적인가?’ ‘실현되지 못한 꿈, 억누른 욕구, 회피한 갈등이 숨어 있진 않은가?’ ‘이 갈등을 통해 나는 어떤 이익을 얻을 수 있는가?’ ‘내게 중요한 것은 좋은 해결책인가, 아니면 싸움에서 이기는 것인가?’ 말하자면 갈등을 겪으며 내가 원하는 것을 명확히 하기 위해 스스로 이유를 찾아보는 것입니다. 갈등 뒤에는 실현되지 못한 소망과 욕망이 숨어 있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상대방이 이룬 것 같을 때, 내가 포기했거나 이루지 못한 무언가를 상대방이 실현했을 때, 그 사람과 갈등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갈등을 무조건 부정적인 것으로 보고 회피해 버린다면, 심층에 숨어 있는 진짜 마음을 놓칠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집중하고 자기의 꿈을 다시 한 번 헤아려 보십시오. 갈등은 내 존재의 참모습을 이해하도록 이끄는 신호입니다. 갈등을 잘 짚어 보면 실현하지 못한 채 숨겨 두었던 내 꿈이 무엇인지를 알 수도 있습니다. 명심하십시오. 나의 꿈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것이 아니라, 갈등을 해결해 나가면서 나의 꿈과 마주해야 합니다. 그래야 모두의 축복 속에서 꿈을 실현할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경쟁자를 내 편으로 만드는 법



강을 사이에 둔 이웃, 라이벌

직장이나 가정, 교회에서 종종 라이벌 갈등이 벌어집니다. 본래 ‘라이벌(rival)’이라는 단어는 수로를 뜻하는 라틴어 ‘rivus’에서 유래했습니다. 말하자면 강을 사이에 둔 이웃, 같은 강에서 물을 끌어다 쓰는 사람들이 라이벌입니다. 이것이 나중에 경쟁자, 적수, 연적을 뜻하게 되었습니다. 물을 독차지하기 위해 라이벌은 상대방이 물을 쓰지 못하도록 합니다. 상대방이 물을 사용하는 것을 막아 가뭄에 시달리게 하려 합니다. 성경에서는 다윗과 사울의 이야기를 통해 라이벌 갈등을 설명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라이벌의 갈등은 사울의 비극으로 끝납니다.

선지자 사무엘은 사울의 머리에 기름을 부음으로써 그를 왕으로 세웁니다. 사울의 왕국은 처음에 크게 번성합니다. 그러나 사울이 점차 하느님의 명을 거스르자 하느님은 그를 멸망하도록 만듭니다. 사무엘은 하느님의 명을 받고 새로이 젊은 다윗의 머리에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웁니다. 처음에 다윗은 사울의 하인이었습니다. 우울증이 있었던 사울이 다윗의 비파 연주에 반해 다윗을 왕궁으로 데려간 것입니다. 사울은 다윗의 연주에 우울했던 기분도 다시 좋아지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울이 발작을 일으킵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악령이 사울에게 들이닥쳐 그가 집안에서 발작을 일으키자, 다윗이 여느 날처럼 비파를 탔다. 이때 마침 사울은 손에 창을 들고 있었다.” (1 사무 18, 10)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두 번이나 창을 던집니다. 그러나 다윗은 매번 창을 피합니다. 사울은 딜레마에 빠집니다. 우울증을 달래자면 다윗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비파 연주를 부러울 정도로 잘하는데다 사람들에게 자기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는 젊은 다윗이 곧 자신의 라이벌이 되리란 걸 직감합니다. 결국 사울은 라이벌을 없애 버릴 계획을 세웁니다. 다윗을 천인부대의 지휘관으로 임명한 것입니다. 전쟁에 나가 다치거나 죽기를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사울의 기대는 산산이 깨졌습니다. “주님께서 다윗과 함께 계셨으므로, 그는 가는 곳마다 승리하였다.” (1 사무 18, 14)

다윗이 두려워진 사울은 이제 노골적으로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하지만 다윗은 번번이 공격을 피했고, 한번은 사울을 없앨 기회를 얻기도 했습니다. 다윗은 맘만 먹으면 쉽게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상황에서 사울을 해치지 않고 그의 망토 자락만 자릅니다. 자신은 사울 왕의 적이 아니라 왕을 위해 싸우는 한편임을 알리려 한 것입니다. 사울은 그 순간 다윗의 행동에 감명을 받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사울은 다시 다윗을 죽이려 합니다. 해결되지 않은 갈등이 수면 아래 잠재되어 있다가 불쑥 튀어나온 것입니다. 사울은 끝내 다윗을 죽이지 못하고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최후를 맞습니다.

라이벌 갈등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법

다윗과 사울처럼 라이벌 간의 갈등을 회사에서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팀장은 능력 있는 젊은 팀원을 두려워합니다. 젊은 팀원은 팀장을 돕고 팀을 위해 일하려 애쓰지만, 팀장은 촉망받는 젊은 팀원을 누르고 더 나아가 제거하기 위해 계속해서 계략을 짭니다. 팀장은 더 이상 그를 회사를 위해 능력을 발휘하도록 아끼고 격려해야 할 부하직원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제거해야 하는 라이벌일 뿐입니다. 그냥 두었다가는 젊은 팀원이 자신의 자리까지 넘볼까 봐 두렵습니다. 팀장은 이제 자신의 실적이 미미하고 자기 시대가 끝났다는 걸 알지만 인정하기 싫습니다. 팀장은 제 자리를 지키기 위해 젊은 팀원을 누르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습니다.

젊은 팀원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팀장의 계략에 휩쓸려 고생하느니 차라리 회사를 떠나는 편이 나을까요? 그러나 회사가 젊은 직원을 지향하고, 나이 많은 팀장에 의해 회사의 잠재력이 소진될 위험이 있다면, 회사를 떠나는 방법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때 모든 일을 잘 풀어 나가려면 다윗의 확신과 연대가 필요합니다. 성경에서 다윗은 하느님이 함께하심을 믿습니다. 젊은 직원은 평정심을 유지하며 팀장과의 갈등에 의연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겨 낼 수 있습니다.

팀장이 어떤 계략을 쓰는지 차분히 관찰하며 감정적으로 휩쓸리지 말아야 합니다. 팀장의 계략에 아랑곳하지 말고 자기 본분에만 충실해야 합니다. 마음속으로 평온을 유지하면서 바르게 처신하면 언젠가는 인정을 받으리라 확신해야 합니다. 팀장의 문제가 저절로 해결될 거라 믿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사울을 죽게 한 건 다윗이 아니라 하느님입니다. 현실에서는 팀장 스스로 한계를 느끼고 더는 그런 식으로 버틸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계략에서 벗어나 팀장과의 연대를 지속하고 업무를 잘 수행하려면, 다윗처럼 강한 믿음과 희망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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