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돌파
조봉희 지음 | 나침반
고난돌파
조봉희 지음
나침반 / 2014년 11월 / 364쪽 / 12,000원
프롤로그 - 행복한 결말 보기
우리가 욥을 존경하는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가 있다면 바로 그의 ‘인내’ 때문이다. 욥기의 주제는 고통에 대한 인내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욥이라는 인물은 고난의 사람이라기보다, 인내의 사람이다. 그래서 야고보도 욥의 훌륭한 특성이 ‘인내’에 있다고 경의를 표한다.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이시니라”(야고보서 5:11)
사실 욥기는 인생의 고난이 다 설명될 수 없는 특성을 갖고 있다고 가르쳐 준다. 그러기에 인생의 딜레마를 이해할 수 없고, 용납하기 어려워도 참고 견디라는 메시지다. 성경은 고통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다 주고 있지 않다. 다만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좋은 결말을 이루실 것이니 참고 견디라는 것이다. 그래서 욥은 그처럼 참혹한 고난도 끝까지 참고 견디므로 결말을 본 승리자가 되었다.
1. 복 받을 그릇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그에게 아들 일곱과 딸 셋이 태어나니라 그의 소유물은 양이 칠천 마리요 낙타가 삼천 마리요 소가 오백 마리요 암나귀가 오백 마리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자라 그의 아들들이 자기 생일에 각각 자기의 집에서 잔치를 베풀고 그의 누이 세 명도 청하여 함께 먹고 마시더라 그들이 차례대로 잔치를 끝내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하게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위가 항상 이러하였더라”(욥기 1:1-5)
구약성경 에스겔서 14장 14절에서는 인류역사상 가장 진실하고 정직한 사람 세 명을 소개한다. 노아, 다니엘 그리고 욥이다. 욥은 위선이나 이중성이 전혀 없는 순진무구의 사람이었다. 하나님은 순진하고 신실한 신앙의 사람을 찾으신다. 정직하면 보통 때는 힘든 게 사실이지만, 죽고 사는 것이 달린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하나님은 정직한 자의 손을 들어 주신다. 시편과 잠언에서는 정직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따르고, 보호하심과 흥왕의 복이 따르며, 그를 안전한 길로 인도해 주시고, 높이 세워 주시는 축복을 수없이 강조한다.
또한 욥은 자녀들로부터도 존경받는 경건한 아버지 모델을 보여 준다. 그는 경건한 아버지로서 자녀들에게 영적 리더십을 발휘했다. 결혼하여 분가해서 살고 있는 7명의 아들들까지 정기적으로 불러다가 축복기도를 해 주었다. 미국에서 가장 행복한 100가정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가 놀랍다. 100가정 중 90%의 가족들은 영성에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 연구는 “영성이 긴밀한 가족관계를 형성하고, 더욱 사랑이 넘치게 하고, 가족들을 돌보아 주는 우산이다.”라고 보고한다.
2. 쓰러지지 않는 오뚝이 신자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여전히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켰느니라”(욥기 2:3)
욥이 얼마나 순진하고 성실한 사람인지 하나님께서는 여러 차례 사탄에게 자랑하신다. 그러나 그처럼 유복하게 살았던 욥에게도 고난이 갑작스럽게 엄습했다. 어느 날 갑자기 강도 떼가 나타나 목장의 양 떼들을 강탈했다. 그리고 갑자기 마른하늘에 천둥번개가 쳐서 목장의 가축 떼와 일꾼들이 다 죽었다. 그리고 돌풍이 불어 집이 무너지는 바람에 사랑하는 아들딸 10명이 한꺼번에 죽었다. 이 모든 일은 무방비 상태에서 벌어진 것이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반응하고 수습해야 할지 속수무책이었다.
욥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이유를 모르는 어려움이 갑작스럽게 찾아올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착하고 선한 사람일수록 이유를 모르는 고난으로 시련을 겪는 것을 흔히 본다. 이것이 바로 신자가 당하는 고난의 수수께끼이다. 우리가 세상에서 의아스럽게 여기는 고난의 신비이다. 천벌을 받아 마땅한 악인은 떵떵거리며 부귀영화를 누리고 사는데, 착한 신앙으로 사는 사람들은 오히려 모질고 험한 고난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욥은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하실 수 있는가 납득이 가지 않았다. 더구나 하나님은 그의 환난에 대해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신다. 우리는 이런 수수께끼 같은 고난의 현실에 대해 잘 해석할 필요가 있다. 세 가지로 조명해 볼 수 있다. 첫째, 교정적 고통이다. 우리를 바로잡기 위해 고난과 징계가 필요할 수 있다. 둘째, 건설적 고통이다. 우리를 성숙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시련과 연단이 필요하다. 셋째, 섭리적 고통이다. 어떤 고난은 하나님의 큰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필요하다.
욥 역시 예상 밖의 불행에 예상 밖의 반응을 보인다.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이것은 고대 중동지역에서의 예배관습이다. 이처럼 욥은 엄청난 슬픔 중에서도 신앙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다. 그는 인생의 숙제를 예배로 풀어 간다. 믿음의 초점이 결코 흐려지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심만을 바라보며 찬양한다. “내가 태어날 때 아무것도 가져온 것 없었으니 죽을 때에도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리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가져가신 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기 원하노라”(욥기 1:21)
3. 시련을 도우시는 은혜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사람이 그의 모든 소유물로 자기의 생명을 바꾸올지라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를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지니라”(욥기 2:4-6)
사탄이 욥을 얼마나 가혹하게 괴롭히는지 어느 날 욥의 몸에 심각한 피부병이 생겼다. 발바닥에서 머리끝까지 악성 종기가 났다. 결국 욥의 몸과 마음은 처참하게 망가졌다. 이런 처절한 상황 속에서 그의 부인은 신음하며 괴로워하는 남편을 차마 볼 수가 없어서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처럼 사탄은 가장 가까운 사람을 통해 시험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에 대해 욥은 성숙한 신앙인답게 반응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는데, 재앙도 못 받겠소?”
사탄은 밀 까부르듯 우리를 흔들어 놓을 수는 있어도,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 손에서 결코 빼앗을 수 없다. 성경은 이 세상의 고난 속에 살고 있는 우리를 향해 놀라운 약속을 주는데, 그것은첫째, 인도하심의 약속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시험 당할 때 피할 길을 주시며, 새로운 길로 인도해 주신다.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신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린도전서 10:13)둘째, 보호하심의 약속이다.(시편 121편)
셋째, 상 주심의 약속이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브리서 11:6)넷째, 힘 주심의 약속이다. 하나님 아버지는 고난의 현실에서 신음하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 곁에 찾아오셔서 함께 동행하여 주신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임마누엘 주님으로 세상에 오신 것이다. 우리가 인생의 어두운 밤을 잘 통과할 수 있도록 우리 곁에서 함께 동행하며 힘을 주신다.
4. 어두운 밤의 위로자
“그때에 욥의 친구 세 사람이 이 모든 재앙이 그에게 내렸다 함을 듣고 각각 자기 지역에서부터 이르렀으니 곧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라 그들이 욥을 위문하고 위로하려 하여 서로 약속하고 오더니 눈을 들어 멀리 보매 그가 욥인 줄 알기 어렵게 되었으므로 그들이 일제히 소리 질러 울며 각각 자기의 겉옷을 찢고 하늘을 향하여 티끌을 날려 자기 머리에 뿌리고 밤낮 칠 일 동안 그와 함께 땅에 앉았으나 욥의 고통이 심함을 보므로 그에게 한 마디도 말하는 자가 없었더라”(욥기 2:11)
나는 욥기 2장을 기초로 친구의 세 가지 특징을 3C로 설명하고 싶다. Come, Compassion, Comfort(찾아와서, 함께 아파하며, 격려하는 사람)! 그때에 욥의 세 친구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극심한 고통 중에 있는 욥의 곁에서 함께 아파했다. 기운을 잃고 망연하게 주저앉아 있는 욥을 격려하며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어느 상담학자가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상대로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한다. “당신이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어떤 사람이 가장 도움이 되던가요?” 이 질문에 대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이것이었다. “겸허한 모습으로 찾아와서 조용히 곁에 있어 주는 사람입니다.”
5. 침체에서의 탈출
“어찌하여 고난당하는 자에게 빛을 주셨으며 마음이 아픈 자에게 생명을 주셨는고 이러한 자는 죽기를 바라도 오지 아니하니 땅을 파고 숨긴 보배를 찾음보다 죽음을 구하는 것을 더하다가 무덤을 찾아 얻으면 심히 기뻐하고 즐거워하나니”(욥기 3:20-22)
삶의 현실에서 자주 느끼는 depression은 누구에게든지 찾아오는 현상이다. 심지어 믿음이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들도 침체에 빠진 적이 있다. 다윗이나 예레미야, 모세나 엘리야 그리고 바울 같은 사람도 영적 침체를 경험했다. 한때 영국교회에 놀라운 부흥을 일으켰던 찰스 스펄전 목사도 깊은 슬럼프와 침체에 빠진 적이 있으며, 종교개혁의 선구자 마르틴 루터도 영혼의 어두운 밤을 맞이하여 지옥의 문턱까지 경험했다고 고백한다. 그렇다! 믿음이 좋은 사람도 영성이 저하될 수 있다.
이런 현상이 욥기 3장에서는 매우 실제적으로 나타난다. 욥은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공허로 인해 서글픈 외로움과 영혼의 어두운 밤을 맞이했다. 마음이 황폐해졌다. 피폐해졌다. 이것이 욥기의 적나라한 메시지이다. 성경은 정직하다. 욥의 훌륭한 점을 칭찬하면서도 그의 약점도 있는 그대로 노출시킨다. 욥은 자기를 위로해 주러 온 친구들의 건장한 모습 앞에서 자신이 너무나 서글프고 처량하게 느껴졌다. 신앙적 회의가 느껴지며 자학 증세까지 찾아왔다.
욥기 3장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욥은 ‘나’라는 말을 20번이나 반복한다. 모든 생각과 기준을 ‘나’에게 집중할수록 우울해지고 의기소침에 빠진다. 또한 욥은 ‘왜’라는 말을 6번이나 반복한다. “왜 내가 태어났는가?” “왜 내가 살아났는가?” “왜 내가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왜’라는 부정적 질문을 할수록 회의를 느끼게 된다. 그래서 점점 더 절망의 구덩이로 빠져들고, 체념과 자학 증세를 보이며 마음이 황폐해진다. 그러나 우울증을 너무 과민하게 해석할 필요는 없다. 어떤 심리학자의 표현대로 ‘우울증이란 마음의 감기’에 불과하다. 미국의 설교자 찰스 스윈돌은 디프레션을 매우 긍정적으로 해석한다. “디프레션은 나를 남루한 옷을 입은 선지자로 만들어 준다. 처음에는 초췌하게 보이지만 어두운 골짜기를 통과하고 나면 하나님의 사람다운 영적 기개가 높이 드러나게 해 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 자신의 환경, 내가 지금 처한 어두운 상황, 나의 초라한 모습에 집중하지 말고 인생의 위대한 조각가가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다윗도 인생이 너무나 험난하고 힘들어 영적 침체와 디프레션에 빠지기도 했으나, 그가 침체에서 헤어 나올 수 있었던 비결은 간단하다. 하나님만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 영혼을 향해 이런 역동적인 믿음을 선포한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편 42:11)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시편 62:5)
욥기 3장은 우리에게 너무나 큰 위로가 된다. 하나님은 욥의 디프레션에 대해 단 한 마디도 꾸짖지 아니하신다. 하나님은 욥의 탄식을 그대로 받아들이시며, 욥이 잘 회복되기를 기다려 주실 뿐이다. 그러므로 욥기의 주제는 욥의 인내라기보다, 하나님의 인내이다. 38장까지 기다려 주신다. 하나님은 오늘도 고통 중에서 신음하는 자들의 애환을 다 들으시고 이해해 주신다. 그래서 예수님을 통해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 주신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위로의 영으로 오신다. 회복의 영으로 찾아오셔서 새 기운을 불어넣어 주신다. 어둠의 세력을 몰아내어 주신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인생의 어두운 밤에도 침체에 빠지지 않고 헤어 나올 수 있다.
6. 공격 대신 공감을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대답하여 이르되 누가 네게 말하면 네가 싫증을 내겠느냐, 누가 참고 말하지 아니하겠느냐 보라 전에 네가 여러 사람을 훈계하였고 손이 늘어진 자를 강하게 하였고 넘어지는 자를 말로 붙들어 주었고 무릎이 약한 자를 강하게 하였거늘 이제 이 일이 네게 이르매 네가 힘들어 하고 이 일이 네게 닥치매 네가 놀라는구나”(욥기 4:1-5)
욥의 친구들은 어느 순간부터 욥의 아픔을 공감하는 대신 공격하기 시작하는데, 그 내용이 4장부터 26장까지 이어진다. 처음에는 부드러운 논의(discuss)로 시작하여, 점점 격렬한 논쟁(debate)을 벌이다가, 마지막에는 잔혹한 논박(dispute)으로 악화된 것이다. 첫 번째는 최고연장자 엘리바스가 욥의 현실에 대해 공박하기 시작한다. 특히 그는 욥의 기개를 꺾으려고 세 차례나 몰아붙인다. 두 번째는 빌닷이 옛 성현들의 교훈을 인용하여 욥을 권위적으로 누른다. 세 번째는 소발이 가장 단호하면서도 독선적으로 깔아뭉갠다. 얼마나 거세게 윽박지르는지 “너는 고생해야 싸다.”라는 말까지 한다.
우리는 욥기의 이 부분에서 상처 받은 사람에게 어떻게 하면 안 되는지를 배울 수 있다.
첫째, 약점을 건드리지 말자.(3-6절) 우리는 비난(sarcasm)보다는 받쳐줌(support)이 필요하다. 약점을 공격하여 절망감을 느끼게 할 것이 아니라, 아픔을 공감하므로 희망을 품게 해 주어야 한다. 둘째, 함부로 정죄하지 말자.(7-11절) 소위 율법주의 신앙은 율법과 의는 있는데 은혜와 사랑이 없다. 우리는 정죄하는 대신 함께 아파할 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를 결코 정죄하지 않으신다. 우리의 잘못을 비판하거나 심판하는 대신 오히려 긍휼히 여겨 주시고 사죄의 은총을 베풀어 주신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요한복음 8:11)셋째, 영적으로 교만하지 말자.(4:12절-5:27절) 소위 신앙이 좋다고 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무서운 무기는 신앙적 우월감이다. 그 우월감으로 영적 권위를 남용한다. 엘리바스는 자기야말로 영통한 사람으로서 욥이 왜 불행을 당하고 있는지 꿰뚫어 보고 있다고 위압적으로 말한다. 그가 계속 반복하여 사용하는 어휘가 있다. “내가 보건데, 내가 알기로, 내 경험으로는, 나 같으면”이라는 표현을 수없이 반복한다.
욥기의 교훈은 우리에게 너무나 실제적인 가르침을 준다. 우리가 비록 옳은 얘기를 해도 그 말이 상황에 맞지 않으면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만고불변의 진리를 말한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음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사랑 없는 공격 대신, 따뜻한 가슴으로 공감해 주어야 한다.
7. 헤세드(자비)를 호소
“내가 무슨 기력이 있기에 기다리겠느냐 내 마지막이 어떠하겠기에 그저 참겠느냐 나의 기력이 어찌 돌의 기력이겠느냐 나의 살이 어찌 놋쇠겠느냐 나의 도움이 내 속에 없지 아니하냐 나의 능력이 내게서 쫓겨나지 아니하였느냐 낙심한 자가 비록 전능자를 경외하기를 저버릴지라도 그의 친구로부터 동정을 받느니라”(욥기 6: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