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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문 30답 기자 아들이 묻고 장로 아버지 답하다

김복윤, 김형진 지음 | W미디어
30문 30답 기자 아들이 묻고 장로 아버지 답하다

김복윤, 김형진 지음

W미디어 / 2014년 4월 / 312쪽 / 13,000원





제1부 인생, 밑그림을 그려라



당신 마음속 ‘고래 한 마리’는 무엇인가?

[아들의 질문] 우리나라에는 시각 장애인 판사가 있다. 앞을 못 보는 판사가 어떻게 복잡한 사건을 판결할 수 있겠냐 싶지만, 2012년 2월 최영 씨는 시각 장애인 판사로 임용됐다. 판사를 꿈꾸고 법대에 진학했으나 재학 중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력을 잃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각고의 노력 끝에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그리고 연수원도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해 끝내 원하던 판사가 됐다. 당시 그 뉴스를 편집했던 나는 제목을 이렇게 뽑았다. ‘제 눈엔 진실만 보입니다.’ 최영 판사는 비록 육신적 눈으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지만, 진실을 보는 눈을 가지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 고故 강영우 박사도 시각 장애인의 핸디캡을 뚫고 한 세상 멋지게 사신 분이다. 강 박사는 중학생 시절 사고로 실명을 했고, 이어 가족을 모두 잃어 고아까지 됐다. 하지만 고난과 역경을 딛고 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 유학까지 가게 됐고, 1976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시각 장애인 박사가 됐다. 그리고 끝내는 미국의 대통령 특별보좌관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이분이 돌아가신 후, 마지막으로 나온 책 제목은 『내 눈에는 희망만 보였다』였다. 비록 두 눈으로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셨지만, ‘희망’을 보는 다른 눈을 갖고 있었다.

무지개는 몇 가지 색일까?: 꿈을 본다는 것은 이렇게 중요하다. 꿈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소망과 희망, 그리고 의지가 담긴 희망이다. 사람은 꿈꾸는 만큼만 볼 수 있다. 무지개는 몇 가지 색일까? 우리가 아는 일곱 색깔 무지개는 뉴턴이 처음으로 얘기했다. 뉴턴은 과학자이자 동시에 하나님을 잘 믿는 크리스천이었는데, 어느 날 빛을 분광기에 대고 보니 일곱 빛깔로 보이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7일 만에 천지를 창조하신 것이 오버랩됐다. 그래서 그는 무지개의 색을 일곱 색깔로 정리했고, 그때 이후로 과학자들과 일반인들은 무지개에서 일곱 색깔을 보게 됐다. 태양의 색깔도 마찬가지다. 스케치북에 태양을 그릴 때 주로 무슨 색깔로 칠하는가? 한국과 일본 아이들은 대부분 빨갛게 그린다고 한다. 그런데 서양 아이들은 해를 오렌지 빛으로 노랗게 그린다. 또 중국 학생들은 하얗게 그린다. 이처럼 어떻게 보이느냐는 어마어마한 차이를 낳는데, 꿈도 매한가지다. 꿈이 없으면 인생의 시각 장애인이 될 수밖에 없다.

꿈꾸는 본성은 GPS 같은 것: 그렇다면 어떤 꿈을 꾸어야 할까? 리차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에서 일단의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대부분의 갈매기들에게 중요한 것은 나는 것이 아니라 먹는 것이었다. 그러나 조나단에게 중요한 것은 먹는 것이 아니라 나는 것이었다.” 책에 나오는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은 날기를 열망하는 갈매기다. 먹는 것과 나는 것 중에 무엇이 갈매기의 본질에 가까운가? 인간이 먹기 위해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먹고사는 생존의 문제가 갈매기의 본질이라 여기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행을 갈매기의 본질로 생각할 것이다.

이 사실은 인간의 삶에 적용돼도 같은 결론을 이끌어낸다. 인간의 본질은 먹고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사는 데 있다.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인가? 갈매기다운 삶이 비행의 ‘레벨 업 LEVEL UP’이라고 할 때 인간다운 삶이란 새로움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일 것이다. 미지의 것에 대한 동경과, 도전을 통한 성취가 진정한 인생살이의 본질이다.

“꿈이 없는 인생은 위성신호가 끊긴 GPS와 같다” 더치 쉬츠 Dutch Sheets 목사가 쓴 『꿈꾸는 본성을 깨우라』는 “꿈과 비전이 없는 사람들은 먹통내비게이션을 차에 장착하고 있는 것과 같아서, 인생의 고속도로를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절대 목적지에 달할 수 없다” 하지만 꿈은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이나 잘하는 것과는 다를 수 있다. 인문학 베스트셀러 작가로 이름이 난 지 오래된 카피라이터 박웅현은 『여덟 단어』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이 다 본질이냐. 고스톱이나 애니팡 같은 게임을 진짜 잘하는데 그럼 이게 내 본질인가. 저는 이렇게 이해합니다. 내가 하는 행동이 5년 후의 나에게 긍정적인 체력이 될 것이냐 아니냐가 기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하철에서 휴대폰으로 치는 고스톱이, 애니팡이 당장의 내 스트레스는 풀어주겠지만 5년 후에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요. 본질은 결국 자기 판단입니다.” 꿈은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이나 잘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미래의 나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되는 ‘무엇’이다. 한마디로 미래에 대한 기대로 가슴이 울렁거릴 수 있어야 한다는 소리다. 그리고 가슴을 울렁거리게 만드는 꿈은 기적을 낳는다.

왜 꿈도 ‘꾸’고, 돈도 ‘꾸’는 걸까?: 하지만 꿈과 관련해서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간다. 우리 선조들은 왜 ‘꿈을 꾼다’라고 표현했을까? 꿈꾸는 것과 돈 꾸는 것이 무슨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회사 후배가 새내기 직장인의 생활독립과 관련된 재테크 지면을 편집하며 이런 제목을 다는 걸 봤다. ‘독립의 꿈, 잘 꾸는 법.’ 독립의 꿈과 그 꿈을 이루기 위한 대출, 모두에 적용되는 ‘꾸다’라는 동사를 사용해 재미있는 제목을 만들었다. 이 제목은 꿈에 대한 한 가지 철학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꿈은 내 것이 아니기에 다 이룬 후 돌려줘야 한다’는 자세가 중요하다. 꿈꾸는 행위는 인생의 본질이고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추구해야 할 목표이지만, 꿈에 대한 지나친 애착은 금물이다. 내 꿈이 사회의 선을 훼방하고 인류에 해악이 된다면 제아무리 돈과 권세의 원천이 되더라도 버려야 할 것이다.

푸른 바다에 고래가 없으면

푸른 바다가 아니지

마음속에 푸른 바다의

고래 한 마리 키우지 않으면

청년이 아니지



정호승 시인이 읊조린 ‘고래 한 마리’는 세상에 많은 다른 마음속 바다로 통하는 ‘열린 바다’ 속 고래일 게 분명하다.

[아버지의 답] 나는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3년 전에 태어났다. 어릴 적 학교에 가면 우유나 옥수수, 간식 등을 학교에서 주었다. 가끔씩 만나는 미군에게 ‘헬로우’라고 외치면 초콜릿이나 사탕을 ‘선물’로 받았다. 지금도 아프리카에 있는 아이들이 무언가 던져주기를 바라며 외국 관광객들에게 손을 벌리는 모습을 인터넷이나 텔레비전으로 보면 60여 년 전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나는 ‘내 마음속 고래 한 마리’를 너무 오랜 세월 동안 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세월의 흐름 속에서 한 가지를 크게 깨달았다. 우리의 삶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바로 ‘가정’이라는 것이다. 가정 폭력, 가난, 사랑의 결핍, 문화의 차이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가정을 회피하거나, 가정이 자신의 길에 장애가 된다고 여겨 멀리하고 외면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물론 먹고사는 일이 힘들어 가정을 돌보고 아버지, 어머니 노릇 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가정을 외면하는 주범主犯을 물리치고 가정을 사랑하는 행복한 사람이 주인이 되는 좋은 세상, ‘안식의 가정’으로 만들어가는 그런 세상을 모든 이들이 꿈꾸었으면 좋겠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여 그를 위한 배필을 만들어 주셨다. 그 ‘2번째 존재’를 아담에게 데려오니 아담은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고 하였다. 성경은 그 후의 역사를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며 살도록 했다.”고 전한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가족의 시작이다. 나는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한 가정을 시작하고 자녀를 낳아 그들을 성경적 교훈으로 키우는 것이 바람직한 가정이라고 본다. 여자는 남자에게 순종하고 남자는 여자를 자기의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한다. 그러니 여자가 남자에게 순종(복종)하는 것은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가운데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가정이 세워지면 분명히 나의 직장, 나의 일터, 나의 나라가 세워진다.

시편112편(1~2절)에는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의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한 자들의 후손에게 복이 있으리로다”라는 구절이 있다. 또 히브리서(9장 27절)는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定한 것이요 그 후에는 (행한 대로) 심판이 있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가정을 잘 세워가는 자에게는 반드시 벌罰의 심판이 아닌 상賞의 심판이 있음을 나는 알고 있다. 내 마음속에 이미 자리 잡은 고래는 바로 ‘가정’이다. 그것도 아주 큰 고래이다.



제2부 혼자 가면 빨리, 같이 가면 멀리



엄지손가락은 왜 맞은편에 있을까?

[아들의 질문] 머리가 좋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언젠가 TV에서 본 ‘소년 암기왕’처럼 뭐든지 척척 기억하는 이들을 머리가 좋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실 많은 한국인이 ‘잘 외운’ 덕분에 대학도 나오고 사회에서 일정한 자리도 꿰찼지만 섣불리 ‘예스’라고 답할 수 없다. 암기력보다 중요한 게 바로 통찰력이기 때문이다. 이는 ‘혁신 구루’ 로저 마틴Roger Martin의 경험칙이다. 그는 50명이 넘는 세기적 리더를 직접 인터뷰한 후 통찰력의 가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생각이 차이를 만든다.”

미국의 유명한 외교관 조지 E. 캐넌의 사례를 보자.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은 스탈린의 팽창 전략 앞에서 딜레마에 빠진다. ‘과감하게 전면전을 벌여야 하나, 아니면 소련 제국의 건설을 묵인해야 하나?’ 대안은 두 가지로 압축됐는데 어느 것 하나 마뜩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양자택일의 상황에서 캐넌은 봉쇄정책이란 놀라운 카드를 집어 들었다. 서방 세계는 그 덕분에 전쟁과 항복이란 극단의 선택을 피할 수 있었다. 캐넌의 봉쇄정책은 통합적 사고의 산물이었다. 의사결정은 쉽게 떠오르는 ‘트레이드 오프’가 아니다. 하나를 선택하면 나머지 하나는 희생해야 한다고? 로저 마틴의 노트에 빼곡히 적힌 성공 신화들의 공통점은 ‘완전히 상반되는 아이디어를 동시에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엄지손가락과 통합적 사고의 관계: 통합적 사고가 감이 안 잡힌다면 글을 쓰고 바느질을 하며 그림을 그리는 손가락의 역할을 떠올려 보라. 인간에겐 나머지 네 손가락과 마주 보는 엄지손가락opposable thumbs이 있다. 엄지와 다른 손가락들 사이엔 일정한 긴장이 형성되지만 이 긴장을 잘 활용하면 어떤 다른 동물도 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을 해낼 수 있다. 저자에게 통합적 사고는 ‘어포저블 마인드opposable mind’이다. 더 이상 상반된 선택지 사이에서 고민하지 말고 더 나은 ‘제3의 길’을 찾아 내야 한다. 우리가 경영 대가들에게 진정 배워야 할 것은 그럴듯한 멘트와 멋들어진 액션이 아니다. 그런 것들은 백 날 읽고 천 날 암기해도 ’나만의 비밀병기‘가 되지 못한다.

다행인 것은 통합적 사고가 ‘하늘의 선물’이 아니라 갈고닦아 성취를 키울 수 있는 ‘인간의 영역’에 속해 있다는 사실이다. 통합적 사고는 긴장이 만들어내는 창조적 사고다. 천문학에서는 두 별이 중력의 상호작용 때문에 궤도가 서로 얽히는 것을 가리켜 연성계連星系라 한다. 인류의 역사에서도 궤도를 선회하는 두 거성 간의 관계와 경쟁의식으로 한 시대가 형성되는, 연성계와 유사한 상황을 간간이 볼 수 있다. 20세기 물리학 세계의 알버트 아인슈타인과 닐스 보어가 그랬고, 초기 미국 정계의 토머스 제퍼슨과 알렉산더 해밀턴이 그랬다. 1970년대 말부터 시작된 PC 시대의 첫 30년 동안에도 1955년생 동갑내기로 대학 중퇴 이력까지 똑같은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가 뚜렷한 연성계를 형성했다. 둘 사이의 긴장은 성취를 높인다.

역발상 또한 통합적 사고의 결과다. 워렌 버핏은 역발상의 대가다. 그는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유명인이지만 처음부터 자신감에 차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버핏은 젊은 시절 3가지 고민에 빠졌다. 그가 성공한 주식투자자를 분석해 봤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두뇌 회전이 굉장히 빠르고, 수리적인 감각이 뛰어났으며, 또 절대로 아무도 믿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런데 자신은 두뇌회전도 느리고, 수리적 감각도 없었으며, 사람을 좋아해 친구를 너무 믿는 타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처음엔 포기할까 생각도 해봤지만, 오히려 한번 반대로 해보자는 오기가 생겼다고 한다. 그는 자기 성격대로 잘할 수 있는 길을 찾았다. 그래서 빠른 두뇌회전이 필요한 단기투자 대신 장기투자를 선택했고, 수리 감각이 부족하니 자기가 이해할 수 있는 아주 단순한 회사에만 투자했고, 또 사람을 잘 믿는 성격이니 자기가 100%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뽑아서 그들에게 전권을 위임했다. 그렇게 그는 기존의 성공 투자자를 다 뛰어넘는 세계 최고의 주식투자자가 될 수 있었다.

[아버지의 답] 엄지손가락에는 나머지 4개의 손가락을 통제하는 제어능력이 있다. 엄지손가락은 필요에 따라 나머지 다른 손가락과 연합하여 다양한 일들을 해낸다. 엄지손가락이 맞은편에 있음으로 물건을 쉽게 잡을 수 있다. 사람이 시계 기술을 발전시킨 것도 엄지손가락이 맞은편에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엄지손가락이 맞은편에 있다는 것은 다른 동물들에게는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동물을 비롯한 만물을 다스리고 관리하려면 다른 동물보다 분명하게 우위를 점하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 그 부분 중의 하나가 엄지손가락이다. 최고라는 표현을 할 때 엄지를 치켜세우는 이유도 엄지손가락이 우월감이 있어서 그럴 것이다.

그렇지만 엄지손가락은 겸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손가락의 협조를 구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너희 모두는 손가락을 안으로 접어주기 바란다”며 협조를 구한다.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최고의 표현을 할 수가 없다. 독특하고 동료들의 협조가 수반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저 그런 하나의 손가락에 불과하다. 맞은편에 있는 엄지손가락. 그것은 정말 연합과 화합의 손길을 전제로 한 우월한 손가락임에 틀림없다. 그들의 아름다운 협조가 이루어질 때 맞은편의 엄지손가락은 빛을 발한다. 엄지손가락은 자신의 존재를 알지만 최고의 자리에서 꼿꼿이 서 있지만은 않는다. 왜? 친구들의 도움 없이는 될 수 없는 것이기에…. 나는 누구의 맞은편에 있을까? 만약 친구들의 맞은편에 있다면 엄지손가락처럼 연합과 화평을 추구하는 멋진 사람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싶다.

마누라는 ‘마주보고 누워라’라는 뜻이라는 말이 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은 마주보고 있다. 밥을 먹으면서 마주보고 소곤소곤 얘기하고, 잠을 자기 전 서로 마주보고 누워 사랑을 속삭이고, TV와 마주보고 즐기며, 책을 마주하며 삶의 기쁨과 행복을 누린다.

성경 에스더서에 보면, 모르드개는 항상 바사 왕 아하수에르(크레르크세스)의 왕후 에스더의 맞은편에서 그녀를 응원하며 가야 할 길을 올바르게 제시한다. 하만의 계략에 유태인들이 억울하게 몰살당할 처지에서 모르드개는 에스터에게 말한다.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이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에스더 5장 13~14절)

그 후 유태인들과 왕후 에스더는 금식하였고, 왕후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이다”라고 하면서 왕 앞에 나아가 유태인들을 살리고 원수 하만을 장대에 매다는 결과를 가져왔다. 누군가가 맞은편에 있다는 것은 너무나 든든하다. 싸움의 적이나 시합의 적이 아니라 삶의 동반자로 누군가가 맞은편에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내리신 복이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사건임에 틀림없다.



제3부 성공을 쌓는 7가지 블록



돈도 없고 빽도 없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아들의 질문] 악기만 그럴싸할 뿐 연주단의 실력이 형편없는 오케스트라 앞에 지휘자 강마에가 섰다. “튜닝.” 지휘자의 지시에 따라 각기 자기가 맡은 악기를 시험 연주해보는 악단 멤버들. 하지만 지휘봉으로 단상을 때리는 소리가 금세 들려온다. “지금 그걸 연주라고 하는 겁니까?” 지휘자 얼굴을 보니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온 상태다. “트럼펫. 너 오케스트라 처음이지? 바이올린. 왜 이리 소리가 커? 전자 바이올린만 다뤘지? 오보에, 연주 언제부터 그만둔 겁니까? 호흡 훈련 안 하셨어요?” 소리만 몇 초 딱 듣고도 지휘자의 불같은 피드백은 어김이 없다. 급기야 첼로 연주자에겐 도저히 감내할 수 없는 폭언을 서슴지 않는다. “당신의 연주가 어떤지 아십니까?” 말하는 이도 듣는 이도 제3자도 잠시 침묵. 그리고 터져 나온 한마디는 시청자들까지 잠시 뜨끔하게 만든다. “똥. 덩. 어. 리.” 평범한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비범한 기적을 다룬 TV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한 장면이다. 그리고 마침내 강마에가 지휘하는 석란시향의 합창 연주는 영화 <카핑 베토벤>의 합창 연주를 능가하는 감동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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