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쇼의 어라이즈
클레이튼 커쇼, 엘런 커쇼 지음 | W미디어
커쇼의 어라이즈
클레이튼 커쇼, 엘런 커쇼 지음
W미디어 / 2013년 11월 / 275쪽 / 13,800원
백만 명 중의 한 명 - 클레이튼 커쇼
인생에서 우리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맞닥뜨리는 경우가 많다. 뜻밖의 순간은 대개 우리 몰래 살금살금 다가온다. 때로는 작고 대수롭지 않게 보이는 순간들이 모여 인생 전체를 바꿔놓기도 한다. 고등학교 시절, 공부보다 운동에 더 관심이 많았던 나는 다른 스포츠보다 야구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야구 외에 내 눈을 사로잡은 한 여학생이 있었는데 바로 엘런이다. 엘런은 재미있고 자신감 넘치는 여학생이었다. 나는 엘런과 같이 있으려고 학생 리더십 수업에 참가했다. 물론 내 스타일에는 안 맞는 수업이었다. 어느 월요일 저녁, 그날의 수업 주제는 자신의 꿈과 롤 모델이었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꿈이 무엇인지, 지금까지 자기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이 누구인지 물어보았다.
내 차례가 되자 나는 내 인생의 롤 모델은 프로 운동선수이며, 내 꿈은 프로 야구 선수가 되는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선생님은 내 발표를 듣더니 누구에게나 개인의 목표는 중요하지만 항상 실현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운동선수로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은 가뭄에 콩 나듯 하고, 대학에 들어가도 프로팀에 들어가기란 하늘의 별 따기라는 것이다. 나는 약간 비꼬듯이, 선생님이 지금 제 꿈을 짓밟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선생님이 말했다. “클레이튼, 네 꿈을 이룰 확률은 백만 분의 일이란다. 하지만 중요한 건 네가 거기에 포함된다고 믿고 있다는 사실이야. 백만이라는 숫자는 생각하지 말고 네가 성공한 바로 그 한 사람이 된다고 상상해 보렴. 네가 단 한 명의 주인공이 되는 거야.” 그 순간 내 안에서 뭔가가 반짝였다. 선생님의 그 조언으로 나는 내 꿈에 집중할 수 있는 영감을 얻었다. 네가 그 주인공이 되어라!
당신의 꿈이 늦춰질 때 - 엘런 커쇼
중학교 3학년 시절은 내 인생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난생 처음으로 아프리카의 진정한 가치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당시 TV에서 오프라 윈프리 쇼를 보는데 유독 내 시선을 끄는 장면이 있었다. 아프리카를 찾아간 오프라 윈프리의 모습이었다. 극심한 가난을 겪고 있는 아프리카의 실상이 그대로 드러났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오프라 윈프리가 아름답고 매혹적인 얼굴을 가진 아프리카 아이들과 포옹하려고 무릎을 꿇는 장면이었다. 방송을 보면서 심장이 멎을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나는 아프리카의 절박한 상황에 완전히 사로잡혔고 내가 정말 안전한 곳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꼈다.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 내 안에서 뭔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을 돕고 싶다는 열망을 내게 심어 주셨다. 그날 내 마음속에서는 번쩍하는 불빛이 일어났고, 그 불빛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그로부터 5년 후 2007년 여름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대서양을 건너 혼자 여행을 떠났다. 비행기를 타고 잠비아에 도착했을 때 TV에서 딱 한 번 본 풍경이 이상할 정도로 낯익었다. 태어나서 처음 잠비아의 공기를 마셨고, 아프리카 땅을 내 두 발로 직접 밟았다. 그러나 마치 고향에 온 기분이 들었다.
나는 누구인가? - 클레이튼 커쇼
어릴 때 나는 다저스에서 처음으로 야구를 접했다. 다저스 유니폼을 입을 때만큼 내 자신이 자랑스러운 적은 없었다. 리틀 야구 리그는 어린 나에게 인생 전부나 다름이 없었다. 우리는 다양한 메이저리그 팀에 배정되었고 유니폼을 받은 나는 진짜 메이저리그 선수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항상 등 번호 22번을 선택했는데, 당시 텍사스에서 1루수로 뛰던 최고의 왼손타자 윌 클라크의 등 번호였다. 자기가 누구인지 파악하는 일은 평생이 걸리는 작업이다. 우리는 학교, 친구, 가족은 물론이고, 스포츠 팀을 통해서도 정체성을 만들어 간다. 하지만 그 중심에 예수님이 없다면 정체성에 기둥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스포츠 플러스(sports plus) 성경 수업에서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다. 이 수업에서 나는 하나님 안에서 자신을 발견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배웠다. 인생이나 메이저리그에서나 늘 변화가 일어난다. 하지만 아무리 나의 팀과 팀 동료 그리고 사는 도시가 바뀌더라도 하나님 안에 머무는 내 정체성만은 결코 흔들림이 없다.
떠나야 할 시간 - 엘런 커쇼
“클레이튼에게, 나 내일 아프리카로 떠나! 중 3때 내가 오프라 윈프리 쇼에 빠져서 내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한 것 기억나지? 그날 이후 나는 언젠가 TV에 나온 그 보석 같은 아프리카 아이들을 직접 만나 볼 수 있기를 꿈꿔 왔어. 내일이 바로 그날이라니, 정말 믿어지지 않아. 넌 지금 힘겨운 마이너리그 시즌을 보내고 있겠구나. 오프 시즌 때 집에서 너와 함께 보낸 시간은 정말 즐거웠어. 하지만 나는 지금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 넌 야구를 해야 하고, 난 아프리카로 떠나야 할 것 같으니까.” 나는 이메일을 아프리카로 떠나기 전날 클레이튼에게 보냈다. 나는 대학교 1학년을 막 마치고 14세 때부터 꿈꿔 온 여행을 떠나려는 참이었다. 클레이튼과 나는 그 일 년 동안 장거리 연애를 하고 있었는데, 꽤 성공적이었다. 수업이 없을 때면 나는 비행기를 타고 그가 있는 마이너리그 경기장으로 향했다. 우리는 각자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할 얘기가 많았다. 나는 마이너를 넘어 메이저리그로 진출하고자 하는 그의 꿈에 귀를 기울였고, 클레이튼 또한 언젠가는 아프리카로 가겠다는 내 꿈에 귀 기울여 주었다.
함께 성장하다 - 클레이튼 커쇼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난 동창과 결혼하는 경우는 꽤 드문 경우다. 내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나는 하이랜드 파크 고등학교 복도에서 엘런에게 정식으로 사귀자고 했다. 엘런은 차분하고 따뜻하게 친구 이상의 관계로 발전하고 싶다는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날 이후 엘런과 나는 밤마다 채팅으로 대화를 하며 한순간도 떨어져 있지 않으려 했다. 그렇게 우리는 데이트를 했다. 그때는 미처 몰랐지만 그날 내 인생이 바뀌었다. 정확하게 8년 후 나는 교회 통로 끝에 섰고, 면사포를 쓴 엘런은 문을 지나 나를 향해 걸어왔다. 엘런과 나는 같이 성장했다. 엘런은 내가 마음을 툭 터놓은 첫 친구다. 우리는 괴로움과 즐거움을 함께했다. 형제가 없던 나는 엘런의 가족들과 친해졌다. 엘런의 형제자매들은 나를 가족처럼 대해 주었다. 우리는 가족 파티나 명절 때마다 함께 뭉쳤다. 우리는 커플이라기보다 한 가족 같았다. 엘런은 우리가 고등학교에서 인생이 무엇인지 배워 갈 때 하나님께로 이끌어 준 친구였다. 누구나 10대 때 울퉁불퉁한 길을 걷듯 방황을 한다. 우리 두 사람도 나름대로의 시련을 겪었다. 성장하는 일, 특히 하나님과 함께 성장하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내 인생에서 최고의 축복은 바로 그 일을 엘런과 함께했다는 사실이다.
너의 상처는 곧 나의 상처 - 엘런 커쇼
아프리카에서 호프라는 아이를 만나고 나서 내 인생은 달라졌다. 인생을 통틀어 그 여자아이만큼 비참한 광경을 본 적이 없다. 당시 10살이던 호프는 후천성면역결핍증 환자로 다치고 병들어서 거의 죽어가는 듯 보였다. 그녀만 생각하면 내 마음은 수만 갈래로 찢어진다. 호프는 내가 아프리카에 하나님의 큰 희망을 전하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를 만들어 준 아이다. 아프리카로 갈 때마다 나는 내 가슴이 시키는 일을 정확하게 하고 있다는 확신이 있다. 그 일이 바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그 아이들에게 나눠 주는 일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서 만난 아이들은 대부분 고아다. 에이즈와 영양실조로 아이들의 친구와 부모, 친척들이 무섭게 죽어가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상처가 너무나 깊고, 아이들의 욕구는 너무나 강하다. 이렇게 처참한 상황에서 오직 하나님만이 이 아이들이 희망을 이어 가도록 도우실 수 있다.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니 - 클레이튼 커쇼
고등학교 3학년, 그해 제일 중요한 일은 야구였다. 나는 그 시기를 하이랜드 파크 구장에서 보냈다. 그때 나는 최고의 친구들과 함께 내가 제일 사랑하는 야구를 했다. 야구는 내 꿈을 이루는 수단이기도 했지만, 돈 걱정 없이 대학을 갈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당시 우리 야구팀은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만큼 실력이 뛰어났다. 놀랍게도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까지 내 투구를 보러 오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적어도 야구로 대학에 갈 실력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스카우터들은 내가 메이저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심어 주었다. 그 모든 것이 믿기 어려웠다. 나는 그저 내가 속한 팀과 우리 팀의 목표를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이었다. 고등학교 야구팀에서 마지막 경기를 마치고 나서 말 못 할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나는 앞으로 야구를 할 기회가 더 있지만 친구들에게는 그것이 정말로 마지막 경기였다. 그날은 우리가 함께 뛰는 마지막 경기였다. 겸허해지는 순간이었다. 비록 경기는 졌지만 내 야구 인생은 끝난 게 아니라고 겸허하게 받아들였다. 하나님은 고3 시절의 마지막 야구 시즌에 내게 겸손함을 가르쳐 주셨다. 하나님은 학교 성적이나 승패보다 우리의 삶에 더 관심이 많으시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겸손함을 배우면 경기에서 패배한다고 곧 세상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럴 리가 없어요 - 클레이튼 커쇼
인생이 바뀌는 결정적인 순간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가? 우리는 저마다 평생 꿈꿔 온 순간이 있다. 당신 안의 현실적인 목소리는 ‘그런 일은 절대 안 일어날 거야!’라고 말하고, 꿈을 좇는 또 다른 목소리는 ‘그래, 결국 그런 순간이 오게 될 거야!’라고 말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시점에서 나는 텍사스 A&M 대학에 야구 장학생으로 입학하게 되어 있었다. 감독님과 교과 과정이 너무 마음에 들었고, 엘런 역시 같은 대학교에 합격했다. 메이저리그 드래프트 지명이 내게는 그저 희망에 불과할 때,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휴스턴에 있는 스포츠매니지먼트사의 제이디 스마트를 만났다. 그는 나와 금방 친구가 되었고, 제이디는 나에게 드래프트 지명에 대해 하나하나 가르쳐 주었다. 우리는 햄버거를 먹으면서 드래프트에 대해 논의했다. “계약금을 얼마로 하면 좋겠니?” 나는 웃으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점심 값 계산할 정도면 충분해요.”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던 제이디는 진지한 목소리로 내가 깜짝 놀랄 만큼 큰 계약금을 받을 가치가 있는 선수라고 말해 주었다. 순간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두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간신히 “그럴 리가요! 그럴 리 없어요!”라고 대답했다. 하나님이 내게 베푸신 은혜를 생각하니 말문이 막혔다. 나는 어리둥절한 채로 식당을 빠져 나왔지만 하나님이 베푸실 미래에 대한 새로운 확신을 얻었다. 2002년 6월 6일 메이저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나는 LA 다저스 구단에 1차 지명되었다.
웰컴 투 마이너리그 - 클레이튼 커쇼
LA 다저스 입단을 위해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한 나는 먼저 프레스턴 매팅리 선수를 소개받았다. 뛰어난 양키즈 선수로 이름을 떨친 아버지를 둔 매팅리는 나보다 메이저리그 무대에 조금 더 친숙했다. 우리는 공항에 마중 나온 멋진 검은색 승용차를 타고 다저 스타디움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정식으로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클럽하우스와 경기장, 사무실 등을 둘러봤다. 다저스는 헌신할 마음이 들도록 만드는 팀이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주말을 보내면서 전설적인 토미 라소다 전 감독, ‘다저스의 목소리’라 부리는 빈 스컬리 스포츠 해설자도 만났다. 깊은 역사와 전통이 흐르는 다저스의 일원이 되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환상적인 시간을 보내고 나는 다저스 유망주 리그가 펼쳐지고 있던 플로리다 베로 비치로 날아갔다. 그곳은 로스앤젤레스와 달리 조용하고 낡고 작은 도시였고 숙소도 형편없었다. ‘이런, 세상에!’ 하지만 그곳은 내가 고향에 온 듯 즐길 수 있는 분위기였다. 그로부터 두 달 동안 나는 베로 비치 유망주 리그에서 뛰었다. 근처에서 휴가를 즐기던 엘런 가족이 찾아왔다. 엘런 가족들이 오자 집 같은 분위기를 맛볼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매일 있는 야구 경기에 빠르게 적응했고, 저녁에는 동료들과 어울렸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친구들이지만 모두 하나의 관심사, 즉 야구라는 공통 분모가 있어 금방 친해졌다. 마이너리그 생활 2년 동안 밥 먹듯이 장거리 이동을 하다 보니 메이저리그에서 뛰어보고 싶다는 꿈이 더욱 강렬해졌다. 어떤 때는 달리는 야간 버스 바닥에서 몇 시간 동안 쪽잠을 자기도 했다. 그것도 야구에 대한 내 꿈을 실현시키는 과정의 하나였다.
남달라 보일 수 있는 용기 - 클레이튼 커쇼
자신의 튀는 모습에 편안해하는 사람은 없다. 특히 예민한 10대 때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엘런과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예를 들면 엘런은 중학교 때 번개 문양이 새겨진 머리끈과 치아 교정기를 달고 다녔다. 나는 항상 내 또래보다 큰 몸집이 콤플렉스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엘런이 텍사스에서 대학생활을 하는 동안 나는 멀리 인적이 드문 도시에서 야구를 직업으로 삼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마이너리그에서 나는 야구를 떠나서 큰 인생 공부를 했다. 그곳에서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연습을 집중적으로 했다. 작은 도시에서 살다가 마이너리그에 와 보니 세상이 달라 보였다. 전국 각지에서 온 선수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온 선수들과 어울리다 보니 그 무엇보다도 내 정체성을 확실히 할 필요성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을 떠나올 때 나는 성경과 기독교 서적 한 권을 챙겨 왔다. 나는 매일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했고, 그런 나의 행동이 몇몇 동료들에게 특이하게 보였던 것 같다. 동료들은 내게 “지금 뭐 읽고 있어? 그걸 왜 읽는 건데?”라며 질문을 던졌다. 그때 나는 내 주변의 사람들과 다른 소망을 가지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을 깨달았다. 나를 독특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질문에 제대로 답해 주고 싶었다. 단순한 질문으로 뜻밖의 큰 결실을 볼 때가 있다. 내 믿음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것도 그와 마찬가지였다. 나는 가끔씩 동료들과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이 내 인생에 미친 영향, 심지어 내가 욕을 안 하는 이유에 대해서까지 대화할 기회를 얻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사람들에게 특이한 삶을 사는 사람으로 비춰진다. 만약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 간다면 우리는 분명 특별한 사람으로 사람들에게 인식될 것이다.
따로 똑같이 성장하다 - 엘런 커쇼
고등학교를 마치고 우리 두 사람은 공통점이 별로 없는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게 되었다. 낮에 학교에 가는 나는 밤에 이야기를 할 시간이 있었고, 밤에 경기를 하는 클레이튼은 낮에 자유 시간이 있었다. 우리는 서로가 너무 그리웠다. 이제 우리 앞에는 두 가지 갈림길이 놓여 있었다. 그냥 포기하고 관계를 정리하든가 그게 아니라면 시간을 만들 수 있는 발상의 전환을 해야 했다. 서로 떨어져 지내는 생활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을 만큼 힘들었다. 하지만 우리 두 사람은 어쨌든 힘든 생활을 견뎌 보기로 했고, 우리 두 사람의 관계를 위해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결론지었다. 어쩔 수 없이 멀리 떨어져 지낸 덕분에 우리는 따로 똑같이 성장할 수 있었다. 시련이 좋은 계기가 된 것이다.
늘 옆에 있는 사람이 있으면 우리는 그 사람에게 기대고 비밀을 털어놓게 된다. 하지만 그럴 경우,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기 힘들다. 먼 거리는 우리에게 불행이 아니라 감춰진 축복이었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음으로 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장 한결같은 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대학에 입학하고, 클레이튼이 프로 첫 시즌을 보낸 첫해에 우리는 딱 한 번 만났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올해의 선수상 시상식에서 만난 것이다. 양복을 입고 호텔 로비에서 사인을 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처음 보는 순간, 클레이튼이 예전보다 열 살은 더 나이 들어 보였다. 첫 시즌이 끝나고 그가 나를 만나러 우리 대학 캠퍼스로 차를 몰고 왔다. 클레이튼은 친구들 방에 신세를 지면서 대학 생활을 처음 경험했다. 우리는 늦은 가을에 열린 몇 군데 커플 파티에 참석했다. 내 친구들이 클레이튼과 서서히 친해지면서 나는 두 세계가 드디어 하나로 합쳐지는 광경을 지켜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