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불
조이 도우슨 지음 | 예수전도단
삶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불
조이 도우슨 지음
예수전도단 / 2013년 2월 / 320쪽 / 13,000원
시험하시는 불
하나님은 뜨거움에 놀라거나 겁내지 않으신다. 뜨거움이라는 성질 자체도 그분이 지으셨기 때문이다. 그분은 열기를 다스리거나 불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실 수 있다. 그분은 '불연성'(不燃性)의 존재이시다. 어느 날 하나님의 세 친구가 이글거리는 용광로 속에 던져졌을 때, 불현듯 그분이 나타나신 일이 있다. 그 열기는 세 사람을 불 속에 던져 넣던 병사들마저 타 죽게 할 만큼 어마어마했다.
하나님은 불길에서 그분의 친구들을 완전히, 기적적으로 보존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과 함께 그 용광로 속을 거닐기까지 하셨다. 나는 그분을 '미스터 쿨(Mr. Cool)'이라 부른다. 불 속의 네 사람이 치명적인 열기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평안히 거하자, 화형을 명했던 폭군은 결국 온 왕국에 "오직 이 '하나님'만을 인정하고 경배하라"는 명을 내리기에 이른다(단 3:19-29). 확실히 하나님은 전혀 다른 영역, 다른 차원에 속한 존재이시다. 정말이지 그분을 생각할수록 가슴이 마구 뛴다.
내 인생의 상황 온도는 몇 도인가?: G. W. 하드캐슬(가족과 친구들은 그를 G라고 불렀다)이라는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신학교에 가서 목회자가 될 준비를 하라는 명확한 부르심을 받았다. 처음에 그는 순종하기로 마음먹었지만, 곧 마음을 바꿨다. 그는 전기 회사의 직원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중간 가압 기지에서 한 블록 떨어진 전봇대에 새 케이블을 시험 가동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일은 주로 상급 기사가 했고, G가 할 일은 중간 가압 기지에 가서 사다리를 올라가 새 케이블을 찾는 것이었다.
기사가 전파를 식별할 수 있도록, 배터리 테스터를 사용해 새 케이블이 반짝할 만큼의 전기를 흘려보내면 되는 일이었다. 이윽고 기사가 시작 신호를 보냈을 때, G는 실수로 그만 다른 케이블을 잡고 말았다. 그 순간 4,160볼트의 전류가 흘렀고, 그는 순식간에 불덩어리가 되고 말았다. 그 충격에 뒤로 넘어가 버린 그가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는, 오른쪽 다리가 사다리에 걸려 거꾸로 매달린 채였다.
의사들은 만에 하나 그가 생존한다 해도 일평생 팔이나 다리, 귀, 코, 입이 없이 일그러지고 뒤틀린 살덩이만 남은 모습으로 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목사인 G의 아버지는 하나님께 아들이 살아나는 기적을 일으켜 달라고, 그리고 신체의 모든 상한 부분이 온전히 회복되는 치유의 기적을 일으켜 달라고 구했으며, 또 그렇게 되리라 믿었다. 사고가 일어난 지 사흘째 되었을 때, G의 체온은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 이에 의사들은 다시금 죽음을 예견했다.
지독한 고통에 정신을 잃고 몸부림치는 G를 여러 사람이 붙들고 있어야 했다. G는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여전히 기도하며 하나님을 신뢰했다. 마침내 그가 아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했을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G가 순식간에 잠든 것이다! 의료진은 그가 잠에서 깨어난 것을 본 후에야 죽을 고비를 넘긴 것 같다고 말했다. 그 후에도 G는 수개월 동안 길고도 어두운 고통의 터널을 통과해야 했다. 온몸에 붕대를 휘감은 채 병실에 누워 있던 그는 자신의 남은 생애와 미래를 하나님께 통째로 내드리겠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순종하겠다고 다짐했다. 마침내 오랜 기다림 끝에 붕대를 제거하던 날, 담당 의사가 외쳤다. "오 이럴 수가! 이건 기적입니다!" 그는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계속 같은 말을 반복했다. 의료진은 G가 귀, 코, 입은 물론 얼굴 형상 자체가 없어졌을 것이라고 결론지었을 뿐 아니라, 전신이 심각하게 감염되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붕대를 풀고 보니, G의 팔다리가 감쪽같이 회복되어 있었고 몸의 모든 기능도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피부 또한 갓난아기처럼 깨끗했다. 신체의 75% 이상이 3도 화상을 입었음에도 흉터가 없다는 기이한 사실에 의사들은 딱히 설명할 말을 찾지 못했다.
곧이어 G는 목회자가 되는 데 필요한 교육을 받았고, 시간이 흘러 훌륭한 목회자가 되었다. 그의 오른손에 남은 작은 흉터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소명과 하나님의 기적적인 치유의 권능, 하나님의 끝없는 자비를 상기시키는 기념비였다. G는 자신이 겪은 용광로의 불타는 고통은 바로 하나님이 그의 주의를 끄시려고, 그가 소명이 아닌 다른 길로 가고 있음을 보여 주시려고 허락하신 일임을 배웠다. 그러나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에서 비롯된 기적적인 은혜와 치유의 능력은 불 시험에 비할 수 없이 컸으며, 결국 하나님이 예정하신 운명을 이루어 내는 도구가 되었다.
하나님은 놀라우신 분이다! 지난 70년 동안 나는 한 번도 시들해진 마음으로 하나님을 대한 적이 없다. 다섯 살 때 하나님께 "제 삶을 주관해 주시고 제 안에서, 그리고 저를 통해 주님의 역사를 이루어 주세요"라고 요청한 이후로, 그분은 지금까지 그 두 가지를 이루어 가고 계신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내가 처한 환경의 열기가 얼마나 이글거리든지, 그분은 항상 가장 확실한 '미스터 쿨'이시다.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싶다면, 누구도 그 열기를 피할 수 없다. 하나님의 본질이 그렇기 때문이다.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히 12:29). 또 마가복음 9장 49절에는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두 가지 진리의 말씀을 이해한 뒤에 그 진실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인생의 상황 온도가 깜짝 놀랄 만큼 올라가 있을 때에도 훨씬 덜 혼란스러울 것이다.
절대 법칙, 불꽃에 대비하기 - 제한된 불길에는 마음을 끌어당기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그것은 따스함과 편안함과 특별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우리 하나님도 '소멸하는 불'이시기에, 당연히 그 모든 장점과 속성을 소유하고 계셨다. 재해나 사고의 우려가 없는 불꽃은 자석 같은 매력이 있어서 우리를 본능적으로 끌어당긴다. 이와 같이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친밀하게 알아 가려고 할 때도 동일한 일이 일어난다. '하나님의 불'의 여러 면모에 관해 서술한 이 책의 진리들은, 전 우주에서 가장 경이롭고 황홀하며 매혹적이고 때로는 신비한 존재, 바로 연인이신 하나님과 열렬한 사랑을 나누고 싶은 갈망에 불을 댕기고, 그러한 하나님을 몸소 경험하도록 인도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 만족스러운 관계가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소멸하는 불'이신 하나님의 모든 면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만 한다. 하나님과 더 가까운 친구가 되고 더 가까이 머물수록, 우리 삶에서 하나님의 불이 지닌 각 측면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또한 경험에 의해, 그중 하나라도 없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더 분명히 알게 된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모두 현재 각기 다른 온도의 불 시험을 겪고 있거나, 불 시험을 앞에 두고도 모르고 있거나, 이미 통과했지만 다음번에 찾아올 불 시험을 더욱 잘 통과하기 위해 좀 더 이해가 필요한 상태에 있을 것이다. 각자의 삶에서 경험하는 하나님의 불의 온도는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각 사람을 다양하게 사용하실 하나님의 계획,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기 위한 계획의 크기에 알맞은 뜨거움이라고 믿는다. 이 사실은 아브라함, 요셉, 다윗, 욥, 다니엘, 모르드개, 에스더, 에레미야, 마리아, 바울, 사도 요한 같은 이들의 삶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중요한 것은 그들 모두 하나님과 사람 앞에 의로운 삶을 살던 중에 뜨거운 열기를 체험했다는 사실이다. 이로써 우리는 불을 통과하는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의도를 결코 마음대로 추측할 수 없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절대로 그것을 멋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불 시험을 통과하는 핵심 원리: 일생에 단 한 번 겪는 하나님의 시험도 있지만, '어려운 일'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박해를 받던 초대교회 당시, 바울과 바나바는 성도들을 견고하게 세우기 위해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행 14:22)고 말했다.
다윗 왕도 많은 경험 가운데서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시 34:19)라고 고백했다. 베드로 사도는 인생을 현실적으로 바라보라며 경고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4:12-13).
기본적으로 이 모두 같은 이야기다. 살다 보면 종종 험한 길을 만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미 그 길을 가 보셨다. 그분은 구덩이부터 지뢰까지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아시며, 그 길을 어떻게 통과할지도 알려 주신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차를 타고 가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허락한다면) 직접 운전까지 해주실 것이다. 이런 기막힌 서비스를 상상할 수 있는가!
불 시험이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하는 중요한 과정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유익을 얻을 것이다. 한편 반대로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 근본적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해하지 못하는 한, 하나님이 곤경의 불을 보내시거나 허락하실 때마다 좌절하고 실망하며 심지어 하나님께 원망의 씨앗을 품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성경 구절로 돌아가 보자. 사실 이 말씀에는 현실적으로 나쁜 소식과 기쁜 소식이 모두 들어 있다. 우리가 매번, 언제나, 장기적으로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은 '기쁜 소식'이다.
요한복음 16장 33절에서 예수님은 피할 수 없는 인생의 고난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하여, 인자로 오신 예수님이 이 땅의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은 고난을 겪으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신다. 아울러 당신의 죽음과 부활로 모든 악과 문제의 근본을 이기셨다고 선포하신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요일 3:8). 하지만 "예수님이 세상을 이기셨다는 사실이 제가 날마다 삶의 어려움에 부딪힐 때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된다는 거죠?"라고 묻고 싶을지 모른다.
그 사실은 모든 면에서 도움이 된다. 인생을 주 예수님께 완전히 내놓고 매일 그분의 거룩한 영으로 채워 달라고 청한다면, 즉 예수님이 당신의 마음을 통해 생각하고 당신의 눈을 통해 보고 당신의 입을 통해 말하고 당신의 심장을 통해 사랑하고 당신의 손을 통해 만지고 당신의 발을 통해 걷도록 초청하며, 또 그렇게 하실 것을 믿으면 주님은 그대로 하신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은 이런 뜻이다. "어려움이 올 때 당황하거나 긴장하거나 낙심하지 마라. 모두 내가 이미 지났던 자리란다. 나는 큰 하나님이고, 나를 넘어뜨릴 일은 아무것도 없다. 내가 너를 다스린단다. 네 안에 내가 있다. 그러니 마음을 편히 가지고, 내가 너를 통해 매 순간 초자연적인 역사를 계속해서 이루는 삶을 살게 해주렴." 다윗도 그랬다. 그는 선한 사람들에게도 어려운 일이 많이 일어날 수 있지만, 하나님은 결국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구원하신다고 선포한다. 우리는 이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공평과 성실을 상기하며, 그 소망으로 웃을 수 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기쁨 -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함으로 기뻐할 때, 하나님이 친히 그 영광을 보이사 보상하신다고 한 베드로의 말을 기억하라. 이는 매 순간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최대한의 분량만큼 하나님이 그분의 성품을 계시해 주신다는 의미다. 숨 막히는 특권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바울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라고 말한다. 나 역시 오랜 세월 여러 가지의 경험을 통해, 확언할 수 있다. 고난의 용광로 속에서도 습관처럼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 성품을 찬양하면, 마음이 늘 평안할 뿐 아니라 믿음으로 놀라운 은혜를 받을 수 있게 된다. 또한 궁극적 실재(實在)인 하나님 한 분께만 시선이 고정된다. 그런 환경에서는 부정적인 것이 조금도 살아남을 수 없다.
문제를 던지고 그분을 의지하라 - 어려운 상황에 대처하는 또 하나의 핵심 원리를 소개한다. 그 열쇠는 다름이 아니라, 다음의 말씀을 실제로 적용하는 것이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시 37:5) 나는 시편 37편 5절을 매일의 상황 속에 적용할 때 극적인 결과가 나타나는 것을, 내 삶은 물론 다른 사람의 삶에서도 수없이 경험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려운 일로 시험에 처할 때를 위해 그 말씀을 주셨다.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한 채, 계속 걱정하며 그분을 실망시키고 싶은가? 아니면 말씀을 실천하며, 그분이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것을 지켜보겠는가? 내가 보장하는데, 후자 쪽이 더 신나는 일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무엇을 아는가 vs. 누구를 아는가 - 하나님은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것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지 마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시 55:22)라고 말씀하신다. 나에게 있어 시편 37편 5절을 그대로 실천하는 일은, 내 삶 속에서 뗄 수 없는 일부다. 또한 나는 그에 따른 기적적인 결과도 무척 많이 체험했다. 바로 지금 이 책을 내려놓고, 당신이 걱정하고 있는 문제나 사람을 하나님께 올려 드리기 바란다. 즉각적인 결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나도 여러 번 응답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이 있다. 그 응답을 통해 하나님께 가장 큰 영광을 돌리는 것이 당신의 가장 깊은 소원이라면, 주님은 그분의 때에 그분의 방법으로 일하신다는 것이다.
주권적으로 일으키시는 부흥의 불
부흥이란, 하나님의 불이 인간의 일에 깊이 침투함으로써 사람들이 4중 채널 스테레오와 화려한 영상으로 보듯 하나님의 모습을 더욱더 자세히 보고 경험하는 것을 말한다. 부흥은 지역 사회와 문화의 도덕적ㆍ영적 생활 자체를 변화시키는 놀랍고도 지속적인 하나님의 뚜렷한 임재다. 부흥은 하나님의 시간에 그분의 방법을 통해 (먼저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권적으로 성령이 부어지는 역사다. 이 시기에는 모든 사람 안에 하나님의 거룩에 대한 계시가 강하게 임하여 '죄'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을 갖게 된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죄를 깨닫게 하시는 성령의 권능 앞에서 깊이 회개할 기회를 얻는다.
거룩한 임재가 밀려들다: 약 30년 전, 남아프리카 줄루족에게 성령의 엄청난 역사가 임했다. 그때에도 많은 사람이 대중 앞에서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 안에서 큰 기쁨을 경험했다. 어느 날, 구름 한 점 없던 맑은 하늘에서 난데없이 번개가 쳤다. 번개는 교회 건물 한쪽 면을 내려쳤고, 벽 안쪽 한곳에 크게 금이 나고 말았다. 순간 한 성도가 소리쳤다. "저예요, 이건 저 때문이에요." 금이 간 지점은 그가 있던 자리 바로 옆이었다. 그는 자신의 부도덕한 삶을 털어놓으며, 성령의 지적을 계속 거부한 채 죄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을 고백하고 그 자리에서 모두 회개했다. 나는 그곳에 다녀온 친구에게서 줄루 교회의 목사님들이 벽에 생긴 커다란 금을 수리하지 않고 일부러 남겨 두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것은 실로 기념할 만했다. 무엇을 기념하는 것인가? 부흥을 위해 기도할 때에는 하나님의 가시적 임재에 따르는 모든 현상이 가속화된다는 것, 그리고 평상시 교회와는 분명히 다른 모습들이 존재한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상징이다. 또한 그것은 다음의 진리를 확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먼저 회개하여 빛 가운데 드러내고 필요한 것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말이다.)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눅 8:17). 부흥은 무관심하고 이기적이며 교만한 하나님의 백성을 일깨워, 그들을 간절하고 겸손하고 정직하게 기도함으로 깊이 회개하는 사람, 하나님과 그분의 영광을 위한 열정과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거룩한 부담감을 지닌 사람으로 바꾸어 가시는 주님의 역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