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기다림은 길을 엽니다

강준민 지음 | 토기장이
기다림은 길을 엽니다

강준민 지음

토기장이 / 2012년 10월 / 350쪽 / 13,000원





1부 기다림의 대가들



기다림은 은혜 가운데 거하게 합니다. 기다림은 꿈을 준비시킵니다. 기다림은 길을 엽니다. 기다림은 건지시는 하나님을 알게 합니다.

‘기다림’은 제 마음속에 오랫동안 품고 살아온 씨앗입니다. 그 씨앗이 이제 발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기다림의 영성’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기다리시는 하나님입니다. 기다림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기다림의 신비를 이해하지 못하고는 하나님을 알 수 없고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기다리시는 까닭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어느 날 이사야 30장 18절을 읽다가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이 복되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이사야 30:18).

기다림은 신비입니다. 역설입니다. 영어로 수동적이라는 뜻의 ‘passive’와 열정이라는 의미의 ‘passion’은 ‘참는다’는 뜻을 지닌 라틴어 어근 ‘pati’에서 나왔습니다. 오래 참고 기다리는 것은 수동적인 느낌을 줍니다. 그렇지만 그 안에는 능동적인 열정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아이를 잉태한 어머니는 기다립니다. 어떻게 보면 아이를 잉태한 어머니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출산하기까지 그냥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 사이 아이는 어머니의 자궁 안에서 점점 성장하고 있습니다. 열정적인 강한 생명력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생명이라는 씨앗의 신비이며 또한 기다림의 신비입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동안,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기다림의 신비는 복음을 통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예수님은 수동적이 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수동적으로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토록 능동적으로 가르치시고, 수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셨던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입니다. 두 손을 펴고 모든 것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께 맡긴 채 수동적이 되신 것입니다. 그리고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셨던 사흘은 어두움의 시간이었습니다. 온 인류는 숨을 죽인 채 기다렸습니다. 그 기다림의 시간 동안 부활의 생명이 예수님 안에 약동했습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하나님은 열정적으로 일하고 계셨습니다. 이것이 기다림의 신비입니다.

그러므로 기다림은 궁극적으로 ‘사랑’입니다. 사랑하면 기다리게 되고, 사랑하는 것만큼 기다리게 됩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딥니다. 사랑하면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 인내하고,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 어려운 상황도 견딥니다. 기다림은 사랑의 동경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으로 충만해집니다. 사랑하는 대상으로 충만해질 때 우리 가슴은 벅찬 사랑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우리는 빠른 속도에 집착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속도 중독증에 걸려 있습니다. 모든 것이 빨리, 즉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시대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생은 속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영혼은 세상의 속도만큼 빠른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영혼은 느린 것을 좋아하고, 조용한 것을 좋아합니다. 내면의 부요는 고요함 속에 있습니다. 고요함과 평안은 기다림을 통해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기다림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에게 놀라운 약속을 주십니다. 그러나 약속은 주셨지만 그 약속을 당장 이루어 주시지는 않습니다. 그런 까닭에 아브라함은 시험에 듭니다.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해진 그가 만들어 낸 것이 이스마엘입니다. 아내인 사라가 아닌 여종 하갈에게서 난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이 만든 불신의 열매입니다. 그의 불신은 조급함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모든 죄는 조급함에서 시작된다는 프란츠 카프카의 말을 기억하십시오.

“인간에게 큰 죄가 두 가지 있으며 다른 죄도 모두 여기서 나온다. 조급함과 게으름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기다리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믿음에 근거한 소망은 영혼의 닻처럼 튼튼하고 견고합니다. 약속을 붙잡고 기도할 때, 우리의 믿음은 강해지고 소망은 튼튼하고 견고해집니다. 성경에는 많은 약속이 있습니다. 그 약속을 받는 길은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그 약속이 예수님 안에서 우리의 것이 된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붙잡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때 그 약속이 우리의 삶 속에서 성취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 1:20).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기다리는 기술은 정말 중요한 삶의 기술입니다. 기다릴 때 중요한 것은 태도입니다. 조급함이나 원망이 아니라 앞에 있는 즐거움을 바라보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런 태도를 개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태도는 우리가 기다리는 중에도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을 때 소유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다시 오래 참음으로 웃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나이 100세에 아들을 주시고 이름을 이삭이라고 짓게 하셨습니다. 이삭의 뜻은 ‘웃음’입니다. 기다리면 웃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기다림은 자신뿐만 아니라 전 인류에게 웃음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이삭은 예수님의 모형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바친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독생하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신 것과 같은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인류 최초로 부활을 믿었던 사건입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이 받은 약속이 그의 아들 이삭뿐만 아니라 장차 오실 예수님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모리아 산에서 하나님은 이삭 대신 숫양을 예비하셨습니다. 그 숫양은 장차 이 땅에 오실 어린양, 곧 예수님의 모형입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예수님의 때를 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실을 요한복음 8장 56절에서 강조합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기다렸던 것처럼, 인류는 이 땅에 오실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기다렸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셨던 사흘은 어둠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두움 중에 하나님은 부활을 준비하셨습니다. 사흘 후에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하나님 곁으로 가심으로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다리를 놓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길을 열어 놓으셨다는 기쁜 소식인 복음은 우리에게 웃음을 줍니다. 웃음은 기다림의 열매입니다. 지금 칠흑같이 어두운 현실 가운데 있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기다리십시오.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를 돕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건져 내심으로 그를 도와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도움이 되신 것입니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시 40:2). 이것이 구원입니다. 구원이란 말의 뜻 중 하나가 ‘건져 내다’입니다. 구원은 스스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노력함으로 쟁취할 수 있는 것도, 도를 닦는다고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늪에 빠진 사람의 모습을 상상해보십시오. 그는 스스로 늪 속에서 나올 수 없습니다. 그 늪 속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다른 누군가가 와서 건져 주어야 합니다. 인간의 노력, 철학, 도덕, 윤리로 구원에 이를 자는 없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인간은 죄인이며, 죄의 늪은 깊고도 깊습니다. 그리고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구원은 은총의 사건입니다. 우리가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 빠져 있을 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다윗은 그가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 빠진 이유가 자신의 머리털보다 많은 죄 때문이라고 인정했습니다. 저도 제가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 빠져들었을 때 아무도 탓할 수가 없었습니다. 원망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제 자신의 부족함과 죄된 모습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다만 하나님께 구한 것이 있다면 은혜와 긍휼과 인자하심이었습니다. 다윗도 하나님께 은혜를 구했습니다. 또한 그는 진리로 그를 항상 보호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진리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신약에 오면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 진리의 본체는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십니다. 우리를 해방시켜 주십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요 8:36).





기다림의 태도



기다림은 신뢰하는 것입니다. 기다림은 고요히 분노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기다림은 감사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십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있는 모습 그대로 머물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선택하신 후에 더 많은 은혜를 베풀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더 잘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 까닭에 하나님은 우리의 그릇을 정결케 하십니다. 그릇이 더러우면 큰 복을 부어 주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허락하신 것이 고난입니다. 어려움입니다. 우리 인간은 고통을 통해 자신을 정결케 하는 길에 들어섭니다. 하나님이 유다 백성에게 앗수르라는 강한 적수를 보내신 것은 그들을 정결케 하기 위함입니다. 고난을 통해 회개하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기를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유다 백성은 고난이 찾아오니까 하나님의 품에 안기기보다 오히려 애굽의 도움을 받으려고 빨리 내려간 것입니다.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안연히 처하여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어늘 너희가 원치 아니하고”(사 30:15).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돌이켜 안연히 처하는 것입니다. 이는 곧 ‘회개’와 ‘안식’으로, 영어 성경에는 ‘repentance’와 ‘rest’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죄를 회개하고 우리 생애를 하나님께 맡길 때 안연히 처하게 되고,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경험하게 됩니다. 몸속에 있는 노폐물이 독소를 만들어 내는 것처럼, 우리 안에 있는 죄는 영혼의 독소를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우리가 회개할 때 예수님의 피가 모든 죄를 깨끗케 합니다. 우리는 정결한 그릇이 됩니다. 그때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께로부터 임하는 축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그늘 아래가 가장 안전합니다. 하나님의 날개 아래 피하는 것처럼 안전한 것은 없습니다. 인생에서 속도를 무시할 수 없지만 속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방향입니다. 유다 백성은 지금 방향이 잘못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지 않고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속도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더 빠른 적을 보내어 그들을 공격하게 만듭니다. 빠른 속도 때문에 더 빨리 진멸당하게 됩니다. 방향이 잘못되면 속도가 빠를수록 상태는 더욱 악화됩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려면 잠잠히 기다려야 합니다. 잠잠히 기다린다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은 바로 잠잠하고 신뢰할 때 임합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하나님의 큰 도움이 임하면 그들에게 놀라운 번영이 임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강력한 치료의 광선을 발하셔서 상처를 치유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대적 앗수르를 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큰 도움이 임하면 큰 문제는 큰 기적이 됩니다. 우리가 사모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큰 도움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은 잠잠하고 신뢰할 때 경험하게 됩니다. 진정한 힘은 고요함에 있습니다. 사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고요함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그런 까닭에 내적인 힘이 약합니다. 진정한 힘은 내적인 힘입니다. 그 힘은 고요함을 가꿀 줄 아는 사람이 경험하게 됩니다. 침묵 중에 마음의 불꽃을 가꿀 줄 아는 사람이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 내면에는 성령님의 불꽃이 있습니다. 이 불꽃을 잘 가꾸기 위해서는 너무 많은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너무 시끄러워서도 안 됩니다. 쉽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는 것도 삼가야 합니다. 추운 겨울에 문을 열어 놓으면 따뜻한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입을 너무 크게 열고 말을 많이 하게 되면 내면의 따뜻한 기운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래서 차가워집니다. 차가우면 날카로워지고 사나워집니다. 우리는 늘 내면을 따뜻하게 간직해야 합니다. 침묵하는 훈련을 하도록 하십시오.

파스칼은 “인간이 겪는 불행의 유일한 원인은 어떻게 하면 자신의 방에서 조용히 있을 수 있는지를 모른다는 데 있다”고 했습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잠잠히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 앞에 홀로 머물러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산에 올라가 기다리는 처음 육 일 동안 나타나지 않으셨습니다. 칠 일 만에 나타나셨습니다. 모세는 잠잠히 기다릴 줄 알았습니다. 그는 지루함을 견뎌 낸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반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루함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만든 것이 금송아지입니다. 지루함이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가만히 있는 것이 두려워 만든 것이 우상입니다. 그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우상에게 숭배하고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았습니다.

조바심과 조급함이 만들어 낸 것이 시끄러운 세상 문화입니다. 영혼이 세상 문화의 영향을 받을 때 흔들리고 불안해집니다. 영혼은 고요함 속에 살찝니다. 하루에 몇 분만이라도 하나님 앞에 잠잠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잠잠히 하나님을 신뢰할 때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우리가 정로로 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이때 경험한 영혼의 고요함을 간직한 채 세상 속에서 생활하십시오. 그리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영혼의 고요함을 선물하십시오.



기다림의 선물



기다림은 새 힘을 공급합니다. 기다림은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게 합니다. 기다림은 하나님의 때를 알게 합니다. 기다림은 소망을 잉태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과 함께 우리가 분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때입니다. 하나님은 때를 따라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때를 따라 다르게 역사하십니다. 새롭게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이 적합한 때를 선택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입니다. 능력이 없으면 때를 바꾸고 싶다고 해도 바꿀 수가 없습니다. 오직 능력이 있으신 하나님 한 분만이 가능하신 일입니다.

“다니엘이 말하여 이르되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것은 지혜와 능력이 그에게 있음이로다 그는 때와 계절을 바꾸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총명한 자에게 지식을 주시는도다”(단 2:20-21).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탈출시킨 후에 광야를 거쳐 가나안 땅에 이르게 하십니다. 그 과정에서 때를 따라 양식이 바뀐 것을 보게 됩니다. 애굽에서는 애굽의 양식을 주셨고, 광야에서는 하늘의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왔을 때는 가나안 땅의 소산을 먹게 하셨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왔을 때 아침마다 하늘에서 내렸던 만나가 그친 것을 보게 됩니다. 또한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들어왔을 때 새로운 시대가 열렸습니다. 지도자 모세에서 여호수아로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의 때에는 광야에서 그의 지팡이로 역사하셨습니다. 모세의 때가 끝나고 여호수아의 때에는 말씀으로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주신 도구는 말씀 묵상이었습니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