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자를 위한 힐링 메시지
로즈 스위트 지음 | 토기장이
이혼자를 위한 힐링 메시지
로즈 스위트 지음
토기장이 / 2012년 6월 / 358쪽 / 14,000원
프롤로그_ 주홍글씨 '이혼'
나의 첫 번째 결혼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당시 스무 살이던 나는 엄격한 어머니와 일곱 명이나 되는 어린 동생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특별한 기술도 없었고, 대학에 갈 만한 형편이 아니었기에, 결혼만이 내게 주어진 유일한 선택 같았다. 그러나 어느 날 밤, 술에 취한 남편이 또 나를 때렸을 때 나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서 제발 데려가 달라고 애원했다. 남편은 상담 받기를 거부했으며, 우리는 곧 이혼했다. 나는 엄청난 충격으로 몇 년 동안 매우 우울하게 지냈고, 모든 사람들을 믿지 못했다. 하지만 가족과 친구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내게 하루빨리 과거를 떨쳐버리고 새 삶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아직 젊으니 극복할 수 있다며 격려하기도 했다.
나는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기도했고,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으며, 마침내 겉으로 드러나는 고통은 극복했다. 그러나 마음속 깊이 자리한 정신적, 감정적 상처와 대인 관계에 대한 연약함은 인지하지 못했다. 삼십 대가 되어 나는 항상 꿈꿔왔던 가정을 기대하며 또다시 결혼했지만, 몇 년 후, 결혼생활은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흔들리기 시작했고, 나는 자식 하나 없이 제대로 된 가정도 꾸리지 못한 채 '두 번 이혼한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나는 사십 대를 혼자 보내고 싶지 않았다. 결혼, 아이, 그리고 진정한 가족에 대한 강박적인 욕구가 밤낮으로 내 머리를 두드렸다. 그러다 세 번째 남편을 만났다. 그는 사랑스러운 두 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왔으며, 나는 이들을 거부할 수 없었다. 하지만 금세 내가 또 어리석은 실수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교회에 정기적으로 나갔고 하나님이 내 마음과 감정을 치유해주시자, 마침내 그분께서 원하시는 여성으로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십 년이라는 세월이 걸렸으며, 어느 날 남편은 자신의 자아를 찾기 위해 떠나겠다고 했고 나는 그를 붙잡을 수 없었다. 비록 최선을 다해 좋은 배우자가 되기 위해 노력했지만, 남편의 선택을 막을 길은 없었다.
이렇게 세 번의 이혼을 통해서 나는 신중하게 데이트를 시작하는 것과 양쪽 모두가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결혼을 준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깨달을 수 있었다. 이혼 후 나는 교회에서 진행 중인 '이혼돌봄모임 DivorceCare Group'을 전 세계에서 온 리더들과 함께 활성화시켰다.
제1부 - 고통을 통과하라
돌보시는 하나님
당신의 결혼생활이 끝나던 순간을 기억하는가? 몇 년에 걸친 좌절과 불화로 인해 당신이 남편을 떠났든, 남편이 당신을 떠났든 우리 대부분은 결혼이라는 악몽에서 벗어난 것에 안도감을 느끼면서 동시에 큰 상실감을 경험했을 것이다. 결혼생활이 끝나고 결국 헤어지게 되면 공포와 불안, 분노가 찾아온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고, 과거의 상처 때문에 현재의 삶을 살아가는 일 역시 어려워진다. 앞으로 견뎌야 할 고통을 생각하며 배우자를 원망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러한 감정은 우리를 엄습해서, 미래에 대한 기대와 이혼의 상처 사이의 교차점에 우리를 가둬버린다. 그러나 명심해야 한다. 우리를 도울 누군가가 반드시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한 여성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이혼을 하면서 정서적으로 힘든 시간을 통과했기 때문에 남자를 기피하게 될지도 모른다. 심지어 지울 수 없는 상처와 거절, 버려짐 때문에 남성 이미지의 하나님과 관계 맺는 것조차 거부하기도 한다. 지난 삼십 년 동안 여성들은 남성우월주의 사회에서 상처를 받았다. 그러나 여성과 남성은 모두 창조주에 의해 그분을 간절히 바라도록 만들어졌다. 여성성과 남성성을 초월한 한 분이신 하나님을 알고 있다. 그분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충족시켜 주실 수 있고, 결코 우리를 홀로 내버려 두시지 않는다. 이혼 후 또다시 혼자가 된 당신을 하나님은 도우시길 원하신다. 그리고 이혼의 상처에서 하나님 품으로 가는 여정에서 그분은 아버지로서, 치료자로서 우리의 마음과 영혼이 하나님을 그 무엇보다도 사랑하도록 이끄신다.
치료하시는 하나님
많은 사람들이 이혼의 상처를 치료하지 않은 채 너무 오래도록 방치하다가 삶의 다른 영역까지 병들게 만든다. 제대로 치료하기 위해서는 상처의 깊은 곳까지 건드려야만 한다. 당신이 자녀를 둔 어머니라면, 자녀들을 가족이라는 건강한 세포 조직의 일부라고 생각해보라. 당신이 이혼과 관련된 깊은 정서적 문제를 다루는 데에 실패한다면, 그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다음 세대인 자녀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상처가 온전히 치유되지 못하면 우리의 육체도 불면증, 두통, 섭식장애나 중독 등으로 고통을 겪게 된다. 직장생활에서도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또한 기존의 여러 인간관계가 망가지거나 새로 맺은 관계가 온전치 못하게 된다. 재혼하더라도 해결되지 않은 이혼의 상처는 계속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아마 당신은 완전한 치유를 거부했을지도 모른다. 상처가 전염되지 않도록 감싸느라 지쳐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당신이 의사가 될 필요는 전혀 없다. 하나님께서는 못 고치실 것이 없는 탁월한 의사임을 기억하라.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완전히 치료하실 것이다. 완치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해도, 하나님의 은혜가 고통을 사라지게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상처를 하나하나 돌보실 때 그의 품에 거하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된다. 이 책을 읽는 동안은 따뜻하고 안락한 1인실 병실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다고 상상하라. 당신은 하나님과 단둘이 있다. 숨을 깊게 들이쉬고 천천히 내쉬며 전능하신 치료자께서 그의 방법으로 당신을 치유하시도록 하라.
상실
많은 전문 상담가들이 이혼은 죽음만큼이나 정신적 충격을 입힌다는 번즈와 화이트맨의 의견에 동의한다. 죽음이 마침표라면 이혼은 거부와 고통, 상실과 같은 좋지 않은 감정들이 마치 주사액이 온몸에 퍼지듯 가족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악순환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정서적 안정감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최소 이삼 년 정도 걸린다고 본다.
수용의 상실, 사랑의 상실, 자존감의 상실, 소속감의 상실, 남편의 상실,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 부양자의 상실, 보호자와 동반자의 상실, 관계의 상실, 자녀의 상실, 미래에 대한 희망의 상실, 아이의 충성심의 상실, 자녀 통제권의 상실, 재정적 안전의 상실, 생활 방식의 상실, 시간의 상실, 가정의 상실, 신용의 상실, 친구와 친척의 상실, 가족의 지지와 수용의 상실, 공동체에서의 역할 상실, 교회에서의 역할 상실, 좋은 평판의 상실, 사회적 지위 상실, 신뢰성의 상실, 꿈과 목표의 상실, 재혼에 대한 희망 상실, 숙면의 상실, 건강의 상실, 영적 안정감 상실 등 이혼은 정신적, 감정적, 육체적, 성적, 재정적, 영적으로 당신의 삶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서둘러 상처를 이겨내고 다시 인생을 시작하라고 쉽게 말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수술이나 치료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엑스레이 촬영을 하는 것이다. 이제 스스로 자신의 상실 목록을 적어볼 때이다. 그리고 당신이 준비가 되었을 때 하나님 아버지께 당신의 상실 목록을 드려라. 두려움은 당신에게 이혼으로 인해 비참한 인생을 살 수밖에 없다고 말하겠지만, 하나님은 당신이 잃어버린 모든 것을 회복시키실 뿐만 아니라 더 큰 축복으로 함께하실 것임을 신뢰하길 바라고 계신다.
충격과 부인
퀴블러 로스는 슬픔의 단계를 부인, 분노, 협상, 우울, 수용으로 간소화했다. 이 중 첫 단계는 바로 충격과 부인이다. 첫 번째 단계인 부인(부정)은 우리가 잃어버린 현실에 매달리고 집착하게 해, 결국 우리 자신이 상처를 입도록 만든다. 기억하라. 주먹을 꽉 쥐고 있다면 누구의 손도 잡을 수 없다. 하나님 역시 아무것도 채워주실 수 없다는 말이다. 우리의 이혼돌봄모임에 왔던 코니는 그녀가 현실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 부정의 상태를 고집해 왔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는 두 번이나 나를 속였어요. 나는 우리가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죠. 우리는 교회나 다른 모임에도 함께 가고 그랬어요. 하지만 나중에 그가 내 가장 친한 친구와 만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남편이 아내의 가장 친한 친구와 만나는 동안 아무런 이상 증세가 없었을까? 교회를 나가거나 그저 별문제 없이 잘 지내는 것 같아 보이는 외부적 행동들이 실은 부정의 단계에 우리를 잡아두는 것이다. 뒤돌아보면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은 널려 있었다고 많은 여성들이 고백한다. 한 여성은 결혼생활 중 한 번도 남편과 다퉈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부정의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고 말했다. 안정적인 느낌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시간이 지날수록 악화될 수밖에 없다. 자신이 현실을 인정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여성들은 '차라리 문제가 커지기 전에 그것을 직면할걸' 하고 후회한다.
관계의 거절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홀로 사는 것은 좋지 아니하니"(창세기 2:18)라고 말씀하셨다. 여성이 남성과 깊은 관계를 맺는 결혼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 그리고 그리스도와 신부의 관계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타인에 대한 갈망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갈망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는 하나님과의 완벽하고 지속적인 관계의 만족을 인간관계에서 찾으려 노력한다. 여성들이 비참한 결혼생활이라도 계속 유지하려고 하는 것은 혼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혼 후 우리가 행하는 가장 일반적인 실수도 관계의 상실로 발생한 빈 공간을 자녀나 또 다른 연인을 통해 메우려 애쓴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인간관계든 결국 우리를 저버린다. 어느 누구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처럼 우리를 수용해주고, 사랑해주고, 가장 우선시해주며, 필요를 채워주지는 못한다.
남편이나 자녀 또는 주변사람들에게 적극적 혹은 소극적인 거절을 당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은 우리에게 말할 것이다. "사람들이 나를 거절하는 것은 참을 수 없어. 그래서 나는 그들이 나를 좋아하고, 수용해주고, 나의 말에 동의하고, 또 나를 사랑하도록 애써왔지. 만약 나를 거절하면 그들을 조종하고 통제할 방법을 찾아내야만 했어. 그래야지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고 대접받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 방법이 나를 지치게 한다. 이제는 모든 것이 피곤하다." 그러나 믿음은 우리에게 말한다. "하나님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는지를 기억하고 나의 필요를 채우시기 위해 지금 여기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나는 언제나 힘과 용기를 얻어.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내게 하는 말이나 행동으로부터 모욕감을 느낄지, 안전함을 느낄지에 대해 선택할 수 있고, 사람들이 아닌 사랑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집중할 것을 선택할 수 있지."
분노
기억하라. 분노는 불의 때문에 우리가 바라는 것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과 인생은 공평하지 않다는 두려움, 그리고 또다시 거절당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뿌리를 두고 있다. 간단히 말해 신뢰의 부족이다. 두려움은 말한다. "사람들은 아이들과 나에게 상처 주려고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싸워야만 한다. 내가 이런 일을 겪다니 너무 억울하다. 인생이 공평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믿음은 말한다. "삶은 불공평하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시다. 사람들은 아이들과 나에게 상처 주려고 하겠지만, 하나님께서 방법을 알려주시기 때문에 나는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고, 아이들에게도 그 방법을 가르칠 수 있다. 태도를 바꿀 수 있고, 분노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우울
분노는 자연스런 인간의 반응이며 하나님의 본성 중의 하나라고 이해하게 되면, 분노를 건강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분노가 내면 깊숙이 숨겨져 있을 경우에는 우울증으로 변한다. 내면으로 숨어버린 분노가 되는 것이다. 우울증의 단계를 뛰어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부정하는 것을 멈추고 자신이 감정적으로 분노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며, 다음 단계는 성격별로 맞서야 할 도전 과제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다. 수동적인 성격일 경우, 자신이 화가 났다는 것 자체를 인정하는 것이 어렵다. 이들은 쉽게 화내는 사람들과 다르게 자신은 평화롭고 온화한 사람이라는 데 자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기 방어적이고, 피곤해하며, 지치고, 절망감을 느낀다. 이들은 가장 쉬운 방법을 택하는 성향일 수도 있어 오로지 약물 치료에만 관심을 가질 수 있다.
또한 우유부단한 성격이라면 우울증을 필요 이상으로 오래 끌 수도 있다. 완벽주의자라면 차근차근 감정의 회복 단계를 거치며 우울증을 치료하는 것이 두 배로 힘들다. 완벽히 해낼 수 없다면 치료 자체를 거부할 수도 있다. 만약 즐거움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우울증 치료가 어렵고 그 과정이 재미없기 때문에 계속 우울할 것이다. 적극적인 성격은 자신이 모든 것을 다 갖추었다고 생각하며 나약함을 부정하고, 치유 과정을 재빨리 해치우려 하겠지만 결국 또다시 우울증으로 고통받게 될 것이다. 자존심이 강하다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며, 심지어는 치유 과정에서 하나님을 배제하기도 한다. 당신의 분노나 우울한 감정을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것은 몇 년씩 우울증에 빠져 있어도 괜찮다는 것이 아니다. 또한 이를 계속 희생양으로 남아 있기 위한 변명거리로 사용해서도, 당신의 고통을 되새김질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해서도 안 된다. 가끔은 하기 싫더라도 얼굴을 씻고, 새 립스틱을 바르며, 잡초 대신에 꽃을 보라고 말하고 싶다. 당신은 지금 당신 앞의 모든 것을 통해 날마다 당신을 향해 손 내미시는 아버지께로 나아갈 수 있다.
죄책감
'잘못된 죄책감'이란 다른 사람이 기대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버림받을 것이라는 두려움에서 만들어진 불안이다. 반면 '진실된 죄책감'은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따르는 것에 실패했다는 것을 알 때 경험하는 것이다. 마샤는 이혼 이후 잘못된 죄책감에 묶인 사람의 완벽한 예다. 그녀의 전남편 에드는 그녀의 필요에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게다가 직장에서 여자와 부정을 저질렀다. 에드는 그녀에게 용서를 구했지만, 그녀는 텅 빈 듯한 결혼생활에 진저리가 났고, 에드와 이혼한 후에는 뒤를 돌아보지 않으려고 애썼다. 결국 그녀의 세 자녀는 아버지를 잃었고 이로 인해 마샤는 죄책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녀는 에드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주었어야 했나 생각했지만, 에드의 재혼으로 그러기엔 너무 늦어 버렸다.
이혼 후에도 에드는 여전히 믿음직스럽지 못했고,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았으며, 아이들을 데리러 올 때나 주말에 아이들을 집에 데려야 줄 때 약속 시간을 지키지 않았다. 그러나 마샤는 자기주장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에드에게 경제적인 책임도 지우지 않았고, 그가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을 간섭하지도 않았다. 유감스럽게도, 그와의 경계가 희미했기 때문에 생긴 분노는 감정적으로 계속 그에게 얽매이도록 했다. 또한 그녀는 아이들을 그들의 아빠로부터 멀리 떨어뜨린 것이 아이들에게 충분히 상처가 된다고 생각하여 아이들이 밤새 놀아도 그대로 두고, 먹고 싶어 할 때 먹이고, 무례한 말을 할 때에도 가만히 두었다. 하지만 슬프게도 아이들의 삶은 더 비참해졌다. 엄마가 죄책감 때문에 아이들에게 성숙한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계속 다른 사람에게 얽매이게 만드는 죄책감을 멈출 수 있을까? 우선 죄책감을 품고 그것을 놓지 않았던 것에 대해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라. 그리고 당신이 스스로를 실패자로 여기고 두려워하며, 쌀쌀맞은 태도로 대했던 것에 대해 전남편에게 용서를 구하라. 그에게 당신은 여전히 그를 존경하는 태도로 대할 것이라고 말하라. 그러나 더 이상 죄책감으로 인해 두려움을 갖거나 그에게 구속되어 살지는 마라. 만약 아이들이 이해할 만큼 충분히 나이가 들었다면 올바로 훈육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하라. 죄책감이 올바른 교육을 못하도록 얼마나 방해했는지를 설명하라. 죄책감은 우리로 하여금 회개하도록 해주지만 우리를 얽맬 수는 없다. 아이들에게 죄책감은 서로가 용서를 구하고 받아들일 때 사라진다는 것을 알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