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
황명환 지음 | 성안당
허무
황명환 지음
성안당 / 2012년 2월 / 318쪽 / 13,000원
1부 해 아래서 사는 인생
인생은 헛된 것이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인생이란 무엇입니까? 우리는 모두 열심히 살지만 인생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만이 인생의 의미를 정확하게 가르쳐 준다고 믿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인생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인생에 대한 성경 말씀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잠언과 전도서는 최고의 지침서로 꼽힙니다. 잠언이 앞길이 창창한 젊은 사람들을 위한 말씀이라면, 전도서는 말년에 인생이 무엇인지 완전히 파악하고 기록한 최고의 인생 지침서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사람들, 인생을 후회 없이 살고 싶은 사람들, 그리고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 마음먹고 인생을 다시 시작해보고 싶은 사람들은 반드시 전도서를 읽어야 합니다. 그래서 전도서의 별명이 '지혜로운 생(生)테크'입니다. '인생을 바로 사는 기술'이라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soul management' 즉 자기의 '영혼을 관리하는 기술'이라는 뜻입니다.
인생이 무엇인지 가르쳐주기 위해 하나님은 솔로몬을 사용하셨습니다. 솔로몬이 누굽니까? 그는 지혜의 왕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줄까?" 물으셨을 때 "지혜를 주시옵소서" 그래서 하나님이 전무후무한 지혜를 주시고, 그에 더하여 부귀와 명예까지 선물로 주신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솔로몬입니다.
솔로몬은 화려하게 시작했습니다. 그는 지혜로웠고, '솔로몬'이라는 이름이 의미하는 것처럼 하나님과 사람들과 화평을 누렸습니다. 솔로몬은 국제관계에서도 탁월한 외교술을 발휘하여 이웃나라와 좋은 평화관계를 맺었습니다. 고대사회에서 외교관계를 확립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결혼동맹이었습니다. 그는 많은 이방여인들과 결혼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외교력을 강화시켰습니다. 솔로몬과 결혼한 이방여인들은 평범한 여인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왕족 출신으로, 조국의 이익을 위해 외국으로 시집을 올 만큼 애국심이 투철하고 자기 민족의 신에 대한 신앙심도 돈독했습니다. 솔로몬에게 이런 여자가 몇 명이나 되었을까요? 성경은 이렇게 얻은 아내와 첩들이 천 명이 넘었다고 말합니다.
결혼동맹을 통해 외교적으로 화친을 맺고 전쟁을 하지 않아도 되니 처음에는 좋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문제가 생겼습니다. 솔로몬의 왕궁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방여인들이 함께 살았습니다. 그들은 각각 문화도 달랐고 종교도 달랐습니다. 솔로몬은 외국과의 평화를 위해 결혼한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문화와 신앙을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이스라엘, 그것도 왕궁에서 자기 식대로 자기들의 신에게 제사를 드리고 기도하며 살았습니다. 그들의 기도는 한 가지였습니다. "솔로몬 왕이 나를 사랑하게 해주십시오. 그 마음이 내게로 향하게 해주시옵소서." 온 왕궁이 이방신을 향한 기도와 제사, 주문과 푸닥거리로 가득 찼고, 어둠의 영이 임했습니다. 이런 생활이 몇십 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 대단한 솔로몬의 믿음과 지혜도 식어 버렸습니다. 오랫동안 반복되어 왔던 우상숭배가 어느새 솔로몬의 영혼을 상하게 한 것입니다. 그는 아내들이 섬기는 신상들을 궁 안에 세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고, 자신도 가끔씩 그 앞에 가서 분향하고 제사도 지냈습니다.
솔로몬은 죄와 유혹에 빠져서 타락하고 맙니다. 점차 솔로몬은 권위를 잃어 버렸고, 백성들은 불평하면서 그를 떠났습니다. 국가는 쇠퇴하고, 하나님과 사람들과의 평화를 잃어버립니다. 그런 가운데 그도 늙었습니다. 온 세계에 지혜로 명성이 자자했고, 모든 이들에게 존경받았던 솔로몬이었지만, 이제는 권력도 다 잃어버리고, 죄에 찌들어 버린, 후회 많은 초라한 늙은이일 뿐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이름값을 못했다고 생각하고, 전도서에 자기 이름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솔로몬은 자신을 세 가지 방법으로 표현합니다.
첫째, '다윗의 아들'입니다. 처음 왕이 되었을 때, 솔로몬은 아버지보다 훌륭한 왕이 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더 크고 부강한 나라로 만들겠다는 야심을 가졌지만, 지나고 보니 아버지 다윗보다 못했습니다. 다윗 왕은 끝까지 하나님을 섬기고, 나라를 넓혔던 영웅이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아버지가 물려준 것도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그 아버지 앞에서 내 이름을 내놓을 수 없다. 부끄러운 자식일 뿐이다.' 이렇게 생각해서 솔로몬은 자기를 다윗의 아들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둘째, '예루살렘 왕'입니다. 공식적으로 이스라엘 왕인 솔로몬은 왜 자신을 예루살렘 왕이라고 했을까요? 그는 아버지로부터 최고로 넓은 영토를 물려받았지만, 타락하면서 권위를 잃어버렸고, 국력은 쇠퇴했습니다. 그 결과 주변의 나라들이 반기를 들었고, 이스라엘 12지파들도 솔로몬을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말년에 그의 통치범위는 예루살렘 근방으로 축소되었습니다. 결국 그 아들 르호보암 때에 이르러서는 나라가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분열됩니다.
셋째, 그는 '전도자'입니다. 전도자란 '인생의 깊은 지혜를 깨달은 사람, 많은 사람을 가르치는 설교자'를 말합니다. 또한 그는 최고의 부자였습니다. 모든 것이 그의 소유였고, 그 시대에는 금이 돌처럼 흔했습니다. 그는 최고의 사업가이기도 했습니다. 솔로몬은 40년에 이르는 재위기간 동안 엄청난 사업을 벌였고 최고의 사치와 향락을 누렸습니다. 게다가 그는 최고의 저술가이자 학자였습니다. 끝없이 연구했고, 책도 많이 썼고, 많은 사람을 가르쳤습니다. 솔로몬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 중에서 해보지 못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을 신물이 나도록 가져보고, 누려보고, 경험해보았습니다. 어떤 사람도 솔로몬보다 인생을 더 많이, 더 깊이, 속속들이 아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그는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솔로몬이 타락한 후에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의 말년이 어떠했는지 알아볼 수 있는 책이 바로 전도서입니다. 그는 뼈저리게 후회합니다. 그러나 다시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는 자신이 탐닉했던 세상의 모든 즐거움과 명예, 그것이 얼마나 허무한 것이고, 하나님을 떠나 살아온 잃어버린 세월이 얼마나 안타까운지 절감합니다. '가장 지혜롭다고 했던 나, 그러나 가장 어리석게 산 나! 다시는 나처럼 미련한 삶을 사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일념으로 그가 마지막 혼신을 다해 기록한 것이 바로 전도서입니다. "들어보라,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경험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의 인생 고백을!" 솔로몬은 자기의 지혜와 모든 인생 경험을 종합해서 '인생이 무엇인가'를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전도서는 그의 처절한 인생고백서요, 뼈아픈 간증이 됩니다.
솔로몬은 인생을 한마디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요약합니다. 히브리말에서 형용사를 한 번 쓰면 보통이고, 두 번 쓰면 상당히 강조한 것이고, 세 번을 쓰면 최상급이 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헛되다'를 다섯 번이나 반복했습니다. 성경에서 같은 형용사를 다섯 번 반복한 곳은 이 부분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인생은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로 헛된 것입니다.
옛날에 어떤 시골 사람이 비행기를 타게 되었습니다. 하늘에 시커먼 구름이 가득하고 비가 오는데도 비행기는 떠올랐습니다. 그 사람은 비행기가 어떻게 날아가는지 궁금해서 창밖을 보았습니다. 구름을 뚫고 올라가 보니 그 위에는 밝은 해가 찬란히 빛나고 있었습니다. '이럴 수가!' 저 아래를 내려다보니 구름이 가득했습니다. '저 아래 땅에 있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궁금했던 이 사람은 돌아와서 친구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보게, 구름 위에는 비도 없고, 눈도 없고, 언제나 햇빛이 찬란하다네." 그 말을 듣고 사람들은 말도 안 된다며 비웃었습니다. 구름 위를 경험해본 사람과 못해본 사람들은 생각이 다릅니다. 이 세계가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생각하는 것이 다릅니다. 그리고 그 나라가 있음을 안다면 하루라도 빨리 그것에 합당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해 아래서의 모든 일은 헛되다!" 이것은 위대한 진리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헛되지 않은 인생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해 위에서'의 삶도 있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전무후무한 지혜를 주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솔로몬의 지혜를 따라갈 수는 없지만, 그보다 지혜롭게 살 수는 있습니다. 그 방법이 무엇입니까? 바로 이 교훈을 받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일평생에 걸쳐 깨달은 지혜를 감사한 마음으로 받고, 그 말씀을 읽고, 듣고, 깊이 묵상하면서 어떻게 살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솔로몬의 가장 빛나는 지혜 위에서 출발하십시오, 그럴 때 우리는 인생의 마지막 지점에서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이렇게 탄식하지 않고, '정말 내 인생은 복되었노라' 고백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해 아래는 새것이 없다: 솔로몬은 고백합니다. 인생을 살아보니 헛된 것뿐이라고. 왜 그럴까요? 그는 '해 아래서' 살기 때문이라고 해석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수직성이 결여된 수평적인 삶 속에서는 궁극적인 인생의 목적과 가치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이 결론을 얻기 전에, 젊은 시절 인생을 시작하면서 세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첫째, '나는 무엇을 바꿀 수 있는가?' 그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요즘말로 하면 모든 것을 개혁하기 원했습니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내가 왕이다. 바꾸지 못할 것이 무엇이냐?'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세상은커녕 자기 자신도 바꾸지 못했습니다. 세월은 흘렀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자기는 늙었습니다. 이것을 깨닫고 탄식합니다.
둘째, '이 땅에서 새로운 것은 무엇인가?' 그는 이렇게 묻습니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셋째, '영원히 남는 것은 무엇인가?' "이전 세대들이 기억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들과 함께 기억됨이 없으리라." 그는 영원히 남는 것을 찾아 몸부림쳤습니다.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영원히 기억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것은 없었습니다. 비석도 닳아버리고, 비석을 새긴 사람들도 떠나가 버렸습니다. 그는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는 이 세 가지 질문을 통해 이 세상에는 내 마음대로 바뀌는 것도 없고 영원한 것도 없다는 것을, 세상은 내가 변한 만큼만 바뀔 수 있고 영원한 것은 오직 하나님 안에만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본문은 그가 이런 답을 얻기까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노력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그는 지식을 통해 진리를 발견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최고의 지혜를 가지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오랫동안 연구한 솔로몬은 그 결과를 "모두 다 헛되어"라고 말합니다.
쾌락을 통한 진리 추구: 이성의 한계를 느낀 솔로몬은 이성을 포기하고 감성으로 나아갑니다. 쾌락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기로 한 것입니다. 맨 먼저 그가 시도한 것은 웃음과 술입니다. 그러나 웃고, 웃고, 또 웃다 보니 미친 사람이 되었고 술 또한 자기도취와 무절제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웃고 마시는 것으로는 안 되겠다 생각한 솔로몬이 두 번째로 시도한 것이 있습니다. 단순한 유흥보다는 좀 더 생산적이며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방법을 통해 즐겨보려고 했습니다. 무언가를 이루고 업적을 남김으로써 쾌락을 느끼려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큰 사업을 일으켰습니다. 항구를 개발해서 전 세계로 무역선들을 보냈고, 농장을 개발했고, 건축사업도 했습니다. 수많은 도로를 닦고, 궁궐과 요새들을 세웠습니다. 엄청난 부자가 되었고, 수많은 여자들과 보물과 노비들이 있었습니다. 일도 열심히 했고, 돈도 많이 벌었고, 업적도 쌓았습니다. 원하는 대로 다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다 이루고 나니 또 허무해졌습니다. 엄청난 기쁨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이 갖는 이러한 허탈감, 이것을 전문 용어로 '파라다이스 증후군'이라고 합니다. '이것만 이루면 파라다이스, 낙원이 오겠지' 이렇게 생각했는데, 이뤄놓고 나니까 실상은 그것이 아니더라 그 말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처음에는 보람도 느끼지만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하지? 뭔가 계속해서 더 큰 일을 해야 할 텐데………' 그래서 쫓기는 마음이 됩니다. 만족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 다 금욕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삶의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즐거움도 많습니다. 웃음도 필요하고, 소유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더 높은 것을 추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단기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는 가운데, 장기적인 행복과 만족을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잠시의 쾌락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고통을 지불하는지 모릅니다. 즐거움은 필요하나 그 한계를 인식해야 합니다. 참된 기쁨이란 영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인간은 유한하다
지금은 무엇을 할 때인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찾을 때나 잃을 때나, 어떤 시간 어떤 사건이라도 그 속에는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적절하다'는 것입니다. 철학적으로 말하면 '합목적적(合目的的)'입니다. 목적에 부합한다는 말입니다. 내 생각으로는 활동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꼼짝 못하고 누워 있어야 합니다. 나는 칭찬받고 싶은데 하나님은 나를 부끄러움 속에 두셨습니다. 나는 벌고 싶은데 하나님은 쓰라고 하십니다. '잘못된 것 아닌가? 손해가 아닌가? 이것은 아름답지 않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실 때는, 더 큰 경륜과 계획 속에서는, 그것이 꼭 필요하며 더 높은 목적 아래서 볼 때는 합당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서도 지역마다 시간이 다릅니다. 영적으로도 그렇습니다. 땅의 시간이 있고 하나님의 시간이 있습니다. 내 시간으로만 현재를 보면 불합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간으로 보면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세상을 보면 모순투성이가 되고, 때로는 꼼짝 못하는 운명의 수레바퀴에 질식할 것 같고, 권태와 무의미가 가득한 인생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의 시각으로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아름답고 다양한 계획을 가지고 있고, 그 하나하나 속에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소위 하나님의 책임 경영을 신뢰하면, 신앙인의 안목과 렌즈를 가지고 모든 일을 바라보면 그 속에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시간의 목적과 의미와 방향을 비로소 알게 됩니다. "그래도 좀 알려 주시지. 왜 모르게 했을까?" 그 이유는 나보다 더 큰 존재, 내 시간과 인생을 다스리는 분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라고 고백합니다. 시간을 넘어서는 영원이라고 하는 차원을 인식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시기를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으로 보내야 합니다. 기뻐한다는 것은 능동적인 수용을 말하며 선을 행한다는 것은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간다는 뜻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요셉은 형들에게 팔려서 이집트로 갑니다. 부잣집 도련님이 노예가 되어 팔려 갑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종으로 섬깁니다. 그는 거기서 최선을 다하여 섬기는 가운데 청지기가 됩니다. 그는 청지기로서 잘 다스리며 충성했습니다. 그러던 중 유혹을 받습니다. 그러나 물리치고 피합니다. 그 결과 감옥에 갑니다. 거기서도 모범수가 됩니다. 그러다 보니 장관들도 만나게 되고,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그들을 잘 섬기면서, 그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고 꿈을 해석해 주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왕을 위하여 꿈을 해석합니다. 하나님의 때가 차매 이집트의 총리가 됩니다. 요셉은 언제 어디서나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믿고, 그 앞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집트 왕자2 : 요셉 이야기>라는 영화를 보면 요셉은 감옥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이제 왜냐고 묻기를 멈추었습니다. 내 마음은 평안합니다. 감옥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을 즐기고, 꽃냄새를 맡으며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그는 조용히 기다리면서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