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과 혼
제시 펜 루이스 지음 | CLC
영과 혼
제시 펜 루이스 지음
CLC / 2012년 2월 / 184쪽 / 10,000원
제1장 영과 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 4:12)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영"과 "혼"의 차이에 대하여 무지하기 때문에 헌신되어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히브리서 4:12의 "혼과 영"을 영어로 번역할 때 그 의미를 잘 전달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다. 물론 헬라어 학자들은 원어의 단어들, 즉 영을 의미하는 프뉴마(pneuma), 혼을 의미하는 프쉬케(psuche), 육을 의미하는 삭스(sarx)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이 단어들의 뜻의 차이를 모르고 있으며 그 결과, 아직도 절대적 평안에 거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초인간적인 지혜를 가지고 있는 타락한 천사장인 사탄이 인간의 특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빛의 천사로 가장한 사탄은 가지고 있는 모든 지식을 활용할 것이다. 그는 성령님의 역사를 모방할 수 있고 또한 인간의 '영'에 거하는 하나님의 영의 순수한 생명을 완벽하게 '혼'의 영역에서 모방할 수 있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을 속일 수 있다. 따라서 영과 혼의 차이에 대해 하나님 말씀으로 가능한 한 분명하게 가르쳐서 신앙이 어린 신자들도 그 차이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영어 신약성경에서는 단 두 개의 구절만이 이 차이를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히브리서 4:12에서 "영과 혼을 구별"하고 있고, 데살로니가전서 5:23에서는 "영과 혼과 몸을 흠 없이 보존하기를..."로 구별되어 있다. 그러나 이 두 구절만으로도 영어 성경 독자는 인간이 혼과 몸 두 부분이 아니라, 영(양심, 교통, 직관)과 혼(지, 정, 의)과 몸(피, 뼈, 살)의 세 부분으로 구별되어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혼과 그 기능들
"'영'과 구별되는 '혼'은 어떤 것인가?" "각각의 기능들은 무엇인가?" 초기 기독교 교부들 가운데 한 분인 터툴리안은 "혼의 몸"을 "육" 또는 "육체적" 존재라 했고, 혼을 "영을 담고 있는 그릇"이라고 불렀다. 혼은 영과 몸 사이에 있다. 영과 몸은 직접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영과 몸의 교류는 매개체, 즉 혼을 통해서만 전달될 수 있다. 앤드류 머레이 박사는 "혼은 만남의 장소, 즉 영과 몸이 연합할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몸을 통하여 살아있는 혼인 인간은 감각적인 외부 세계와 연결된다. 영을 통해 인간은 영적인 세계와 연결된다."
한편 펨버는 각각의 기능들을 다음과 같이 아주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몸은 감각 중심이고, 혼은 자아 중심이며, 영은 하나님 중심이다. 몸은 우리가 오감을 이용하도록 하고, 혼은 현재의 존재 상태인 우리를 지적으로 돕는 동시에 감각에서 기인한 감정들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영은 가장 고상한 부분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는 곳이므로 우리는 오직 영으로만 그분을 이해하고 예배할 수 있다." 앤드류 머레이 박사도 펨버의 의견에 동의하면서 "살아있는 혼"이 되었을 때 부여받은 혼의 선물들이 의식, 자주적 결정, 또는 마음과 의지라고 말했다. "이 선물들은 영적인 생명을 받아들이기 위한 그릇이나 틀이다. 영은 하나님 중심인 곳이고, 혼은 자아 중심인 곳이고, 몸은 세상 중심인 곳이다."
인간의 타락
혼, 즉 지성과 마음과 의지를 지배하는 영은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했고, 타락 후의 결과는 "그 마음에서 생각하여 상상하는 모든 것이 항상 사악할 뿐임을 보시고"(창 6:5)라는 말씀에서와 같이 혼의 지적인 부분에서 시작되었다. 이브는 "그 나무가 사람을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였다"고 말했고, 뱀은 "네가 하나님 같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유혹은 지식, 아마 하나님께서 적절한 때에 주실 바로 그 지식이었다. 그러나 그 때가 되기 전에 불순종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얻으려 했다.
타락과 관련하여 고린도전서 1:19에 있는 사도 바울의 말은 아주 중요하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의 말씀"은 "현명한 자들의 지혜를 폐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죄가 지성을 통해 들어왔기 때문에, 구원은 바로 그 구원의 메시지를 받아들여 타락한 "지혜"를 폐하는 십자가에서 온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말씀은 인간의 지혜인 "어리석음"에 대한 것이다(고전 1:18-25). 하나님은 타락하도록 한 그 원인을 그분의 지혜로 해결하는 방식으로 구원을 제공하고 계신다! 사도 바울은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로운 것처럼 보이려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하나님께는 어리석은 것이기 때문이요..."(고전 3:18-19)라고 기록하고 있다.
에덴동산에서 타락한 인류를 보시며 하나님은 "내 영이 사람 안에 거하지 아니 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이기 때문이다"(창 6:3)라고 말씀하셨다. 이후로 타락한 아담인 인류에게는 "사망이 지배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첫 사람 아담과 같이 모든 인간의 존재가 "흙에서 나서 흙에 속하게 되었다"(고전 15:47). 영 대신 육이 지배하게 되자, "자신"의 성품인 혼(눅 9:25)은 영을 보완하지 못하고 육신의 노예가 되었다. 하나님의 영이 거하지 않으면, 타락한 사탄의 영들과 같이 되어 지금은 불순종의 아들들 안에서 활동하는 영, 즉 공중의 권세 잡은 통치자의 지배를 받는다(엡 2:2-3). 그리하여 마음이 변화되지 않은 사람들 안에서 "혼은 때로는 지적으로, 때로는 감각적으로, 대개는 둘 다를 이용하여 절대적인 통치권을 가지고 지배한다.
그러므로 어둡고 타락한 인간의 영은 중생하여 다시 살아나 새롭게 되어야 한다. 이것이 주님께서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이다. 이스라엘 지도자인 니고데모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사람이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요 3:3)고 말씀하셨고, 후에 제자들에게도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아무것도 유익하게 하지 못하느니라"(요 6:63)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영이 인간의 영을 새 생명으로 살리시는 이유가 요한복음 3:14-16에 잘 나타나 있다. 사람이 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죄인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리고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다. 이처럼 타락과 십자가는 사람을 치유하는 것으로 정확하고 완벽하게 일치한다.
제2장 세속적인 그리스도인들
"형제들아 내가 영에 속한 자에게 말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갓난아기들에게 말하는 것 같이 하였노라"(고전 3:1)신자들의 세 단계는 성경에 다음과 같이 분명히 언급되어 있다. 첫째, 영적인 사람(새로워진 인간의 영에 거하면서 격려하는 하나님의 영의 지배를 받는다.) 둘째, 혼적인 사람(혼, 즉 지성이나 감정의 지배를 받는다.) 셋째, 세속적인 사람(육체적 습관들이나 욕망들인 "육체적인 능력", 즉 육의 지배를 받는다.) 사실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로 중생했다 할지라도 아직 육신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그들을 여전히 "세속적" 또는 육신적인 사람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육신의 작용으로 질투와 불화가 일어나는 것이 이것을 증명하고 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육신의 행위들은 명백하니 곧 간음과 음행과 부정함과 색욕과 다툼과 폭동과 이단 파당과 시기와 살인과 술 취함과 흥청댐과 그와 같은 것들이라"(갈 5:19-20)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도가 이런 고린도교회 신자들을 "세속적"이거나 또는 "육신적"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갓난아기"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일반적으로 이들이 영적인 삶의 첫 단계인 육의 지배 아래, 또는 "육 안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거듭남으로 이들은 분명히 "그리스도 안"에 있다. 즉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는 요한복음 3:16 말씀처럼, 참으로 그분의 생명으로 살아나서 그분의 영에 의해 그분 속에 심겨져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갓난아기"인 사람들은 십자가에서 그분의 죽음과 합하여 세례를 받아 다시 살아난 존재가 되도록 한 십자가를 아직도 온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은 육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갈 5:24). 이 말씀은 사도가 갈라디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성령이 있는 영 안에 거하는 영적인 사람이 삶에서 맺는 "영적인 열매"와 대조하여 "육신의 행위들"을 설명하며 마치는 말이다. 그리스도를 죽이신 하나님의 목적은 "옛 사람"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아서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의 모든 정욕과 애착을 "육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한 것"이라는 뜻이다. 죄의 대가가 지불되어 죄의 짐이 어린 양의 피로 제거된 바로 그 십자가가 "세속적인" 그리스도인이 육신의 지배에서 구원받아야 할 그 십자가다. 그래서 "육을 따라 걷지 않고" 영을 따라 걸어서 마침내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으로 충분히 성장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제3장 혼적인 사람
"그러나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약 3:14-15)
이 말씀은 악한 영들이 확실하게 인간의 육신적인 본성에 작용할 때 인간의 혼적인 부분에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지식을 얻거나 소유하는 것과 관련하여 질투하고 경쟁하는 모든 적대적인 느낌들은 혼적인 생명에 작용하는 악한 영들이 선동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 주고 있다. 따라서 이 총체적 부패의 배후에는 지혜를 구하는 길을 통해 들어온 뱀의 독이 있다. 혼적인 삶에서 악한 영들이 자신들의 계획을 이루기 위해 혼적인 지혜를 이용할 때 이것이 "지배하게" 된다. 예를 들어 사탄은 정신적 편견이나 그 사람이 알지 못하지만 이미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자극할 수 있다. 감정적인 혼의 영역에서 본성적인 생명을 심히 자극하여 하나님의 영의 깊은 역사가 소멸되거나 또는 저지당하여 그분의 음성을 듣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마귀는 몸에 있는 신경조직에 작용할 수 있다. 그리고 "육신의 행위들"과 일반적으로 죄라 불리는 것과 악한 권세에 개방되어 있는 많은 요소들과 선천적으로 타고난 모든 인간의 육체적 매력을 이용할 수 있다. 이 요소들은 바로 그릇인 인간의 몸의 틀 안에 담겨 있다. 그러므로 신자는 자신의 복잡한 존재를 비추는 하나님의 빛을 민감하게 찾아야 한다. 신자는 이 빛을 통해 자신을 이해할 수 있고, 마귀로부터 보호해 주는 살아나신 주님께 겸손히 의지하여 걷고 행동하는 방법을 알 수 있다. 신자가 예수님의 피를 향하고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할 때에만 주님의 보호는 작용할 수 있다. 이것은 악한 영들에게 공격하도록 기회를 주거나 또는 몸과 마음에 영향을 미치도록 허용했을지도 모르는 영역에 빛을 비추어줄 모든 진리에 자신을 열도록 해준다.
제4장 "영"과 "혼"이 어떻게 나누어지는가
"긍휼이 많으시고 신실하신 대제사장", 우리의 육체적, 도덕적으로 연약한 감정을 몸소 느끼시고 공감하실 수 있는 대제사장, 그리고 스스로 인간이 되신 대제사장께서는 희생의 칼을 취하여 우리의 생각과 감정, 지성과 정신적 관점까지도 찔러서 관절과 골수를 쪼개듯 혼적인 삶을 "구분"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다. 그렇다면 그 단계들은 어떠한가? 신자는 이 거대하고 미묘한 일에 대하여 대제사장과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
(1) 자아 포기: 완전히 의지적으로 위탁하기로 동의하여 십자가의 제단 위에 놓인 화재 제물로서 자신의 모든 것을 분명히 포기함으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는 그분의 영으로 전 존재를 그분의 죽음과 일치하도록 하셨다(빌 3:10). 즉 육체적, 혼적 삶이 "영"에서 "분리"되어 하나님의 영이 그의 깨끗한 영에 자유로이 흘러들어가고 흘러나오는 그릇이 될 때까지 그분은 결코 손을 거두지 않으신다.
(2) 절대적 순종: 혼적인 삶을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될 하나님의 예리한 칼날의 말씀에 따라 성경말씀을 살피며 지속적이고 끈기 있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기도함으로, 신자는 베드로전서 1:22, "너희가 진리에 순종함으로 너희 혼을 깨끗하게 하여..."라는 말씀에 따라 주어진 빛에 합당하게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한다.
(3) 십자가 승리: 하나님의 영께서 혼과 영을 분리하는 일을 세심하게 하셔서 영을 따라 걷는 방법을 가르치시는 동안, 인생을 살면서 직면하는 상황 가운데 매일 십자가를 짐으로, 신자가 죄와 "육의 역사"에서 완전히 승리하도록 해야 한다.
제5장 영적인 그리스도인
"화평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 5:23)
사도 바울은 "완전한 자"라는 단어를 "성숙함에 있어서 완숙에 이르기까지 성장한"의 의미로 사용했다. "흠 없게 보존"되면 "전체적으로 깨끗하게" 된다. 이것은 간략하게 다음과 같은 의미이다.
(1) 영: 하나님은 인간의 성스러운 영을 그분께서 거하시는 곳으로 회복시키시고 아들의 속죄를 통해 성령에 의해 먼저 영을 살아나게 하신 영이신 삼위일체이시다.
(2) 혼: 영에 거하시는 삼위일체의 하나님께서 인간의 혼, 또는 인격을 통해 그분을 현시하신다. 혼은 하나님의 뜻과 포괄적으로 하나가 된 의지, 성령에 의해 새로워지고 교화된 지성, 같은 성령에 의해 인도되어 인간의 완벽한 통제 아래에 있는 감정들로 구성된다.
(3) 육: 삼위일체의 하나님께서 영에 거하시고, 그분을 혼이라는 수단을 통해 현시하시고, "의의 도구"(롬 6:13)로서 모든 지체를 순종하게 함으로써 완벽한 지배 아래 몸을 제어한다(고전 9:27). 따라서 겉사람-몸-을 참으로 성령의 전으로 만든다.
이것이 그 존재의 핵심적인 곳에 평안의 하나님께서 거하심으로 흠 없는 정도가 아니라, 영과 혼과 몸이 "완전하고 흠 없이 보존"되고 전체적으로 깨끗하게 된 "완전한 성숙"에까지 성장한 "영적인" 사람이다.
혼적인 사람이 어떻게 영적으로 될 수 있는가
"영이 지배하는 것"은 단순히 세속적인 사람, 또는 혼적인 사람을 하나님의 영이 지배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난 영이 혼과 몸보다 더 강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적인 사람"은 "영을 따라 걷는" 사람이고 영에 마음을 쓰는 사람이다. 따라서 영적인 사람은 두 번째 아담인 예수의 생명을 주는 영이 몸의 지체들을 살리고(롬 8:11), 이 지체들을 통해 그분의 가장 고상하고 충만한 뜻을 나타내는 혼의 기능들, 즉 마음, 상상력, 이성, 판단력에 자유롭게 그리고 충만하게 생기를 줄 수 있는 성령님과 협력한다.
"영적"인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과 혼을 구분하여 혼의 덫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영 안에서 주님과 하나가 된다. 그래서 혼과 몸은 그 사람을 통해 주님의 사랑과 생명과 뜻을 표현하는 도구로서 섬기게 된다. 갈라디아서 5:18-24에 묘사되어 있는 "육신"적인 "행위들"과 "성령의 열매"와의 대조는 매우 충격적이다. "육"의 일은 외적으로 혐오스런 결과를 가져온다. 반면에 로마서 6장의 육을 십자가에 못 박은 갈보리의 측면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과 혼을 분리하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 있어서, 주님과 연합된 영은 혼(인격) 안에서 그리고 혼을 통해서 나타나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같은 다양한 열매를 맺는다.
이러한 성령의 열매들 가운데 하나인 "절제"는 하나님의 영이 인간의 "자아" -인격이나 "혼"- 를 통제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보여준다. 자아나 혼을 의미하는 "인격"은 파괴되거나 또는 억압되는 것이 아니라,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을 표현하는 도구가 될 때 가장 고상하게 된다. 간단히 말해서 "사랑과 기쁨과 화평"으로 나타나는 "성령의 열매"는 "혼"을 통해 나타나지만, 혼적인 삶에서 유래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영에 내주하시는 성령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이다. "영의 열정"(롬 12:11), 영의 목표(행 19:21), 믿음의 영(고후 4:13), 영에 있는 사람(골 1:8), 이 모든 것들은 마음을 통한 "지혜", 의지를 통한 "목적", 애정적인 면을 통한 "사랑", 감정적 센스를 통한 "기쁨" 등 인간의 혼을 통해 나타나지만 단순히 감각을 통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영의 영원한 깊이에서 발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