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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가 리더다

박성민 지음 | 순출판사
제자가 리더다

박성민 지음

순출판사 / 2008년 8월 / 287쪽 / 10,000원



1부_ 사복음서를 통해 배우는 21C 제자도



제자로의 부르심을 아십니까?_ 사복음서 속의 제자의 삶

사복음서에 약 230번 정도 나오는 '제자'라는 단어는 예수님께서 선택하신 열두 명을 향하여 주로 사용되고 있으나, 간혹 예수를 따라다니던 일반 군중을 지칭하기도 한다. 또한 마태복음 28장 18∼20절 등을 통하여 크게는 모든 세대의 모든 기독교인들이 다 예수님의 제자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사복음서에 등장하는 제자의 길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은 그 시대의 '예수'와 '우리'라는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사실로 자연스럽게 연결시켜 볼 수 있다.



1. 예수와 제자 간의 독특한 관계 형성 첫째, 예수님의 제자는 그분의 직접적인 초청으로 제자라는 관계가 형성된다는 사실이다. 유대교는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원하는 랍비를 찾아가 배움으로써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시작된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의 주도권으로 이루어진다. 누가복음 5장 1∼11절에 보면, 먼저 자신이 어떤 분인지를 그들에게 보이시고 그 후에 제자들을 직접 선택하여 부르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둘째,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자신의 사역에 동참하도록 해 주셨다. 이것은 제자와 선생 간의 관계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일반적인 지식 전달을 목적으로 한 '가르침과 배움'의 관계를 뛰어넘는 것임을 뜻한다. 셋째, 예수님은 단순히 사역에 동참케 하신 것만이 아니라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과 권세도 부여하셨다.



2. 제자를 향한 예수님의 요구 첫째, 예수님의 제자로의 초청은 신중한 검토 후에 단호한 결단을 내릴 것을 요구한다. 둘째, 예수님의 제자로서 그분의 사역에 동참한다는 것은 단순히 '사역' 자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겪으셨던 것과 동일한 어려움이나 핍박에도 동참한다는 의미이다. 셋째, 제자들에게 부여하신 예수님의 능력과 권세를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



3. 우리는 어떠한 제자의 삶을 살아야 하는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로 했다는 것은 자기의 삶은 사라지고 예수님이 자기 안에 그분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예수님이 제자들을 통해 제자들 안에서 사시는 것이다. 그러기에 세상과는 관계가 없는 삶, 즉 세상의 평가와는 무관하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평가만을 중시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진정 예수 그리스도가 원하시는 제자가 되기 위하여 우리는 끊임없이 성령에 의존하며 겸허한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장하여야 한다.



가르치는 예수를 닮은 가르치는 제자들_ 마태복음을 중심으로

마태복음은 예수의 가르침으로 가득 차 있으며, 마태는 그러한 가르침들을 의도적으로 묶어서 기록하고 있다. 그 가르침들은 '산상수훈'(5∼7장), '전도여행에 대한 지침'(10장), '천국(=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비유들'(13장),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의 삶에 관한 가르침'(18장), '종말에 관한 가르침'(23∼25장) 등 다섯 개로 묶을 수 있다. 마태는 구원자이며 목자로서의 예수님의 사역을 '가르치심, 전파하심, 고치심'(4: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악한 것을 고치시니", 또한 9:35)으로 요약해 표현하고 있다.



가르치는 '선생' 예수님의 모습을 열두 제자들의 모습과 연결하여 살펴보면, 예수님의 공생애 동안에 보여준 제자들의 모습은 불완전하여, 가르치는 역할을 수행하고 미래의 활약을 기대하기 의심스러워 보이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가능성을 보시고 우리가 알고 있는 28장 18∼20절의 지상명령을 그들에게 부여하신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구절에서 주목할 것은, 지금까지 배우기만 하던 제자들을 향해 예수님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르치라'는 말씀을 주셨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이 지상명령에서 큰 목자로서 가르침을 주셨고, 이제 '함께하심'('임마누엘'을 풀어 쓴 표현. 18: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으로 모든 족속 가운데서 자신의 제자들이 만들어지기를 원하고 계신다. 즉, 마태복음에서 말하는 제자는 자신들과 함께하시는 큰 목자의 가르치는 사역을 감당하는 작은 목자인 것이다.



예수님의 삶 속에 나타난 제자도의 패러다임 - 마가복음을 중심으로

1. '잘나가는' 듯 보였던 제자들의 추락 마가복음이 가장 강조하고 있는 것은 '고난 받는 하나님의 선택된 종'으로서의 예수이다. 또한 그것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제자도에 관한 가르침이다. 마가복음의 앞부분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병자들을 고치며 제자들의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능력 있고 승리하는 훌륭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이렇게 '잘나가는 듯' 보이던 모습은 금세 하강세로 급변한다. 제자들은 계속적으로 깨닫지 못하는 자들로 평가되고 있으며, 더디게 깨닫는 우둔한 제자들의 모습은 삶 속에서의 권능 부재로 이어지고, '누가 더 큰가?'를 놓고 쟁론을 벌이는가 하면, 그리스도 좌우편 자리에 대한 어리석은 요구를 하고, 마침내 십자가의 사건 앞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다 도망가 버린다.



2. 제자들이 제자도의 '부도'를 맞게 된 근본적 원인 제자들의 추락을 설명하며 저자는 세 번씩 반복하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의 예언들과 그때마다 예외없이 대조되어 있는 제자들의 '완벽한' 넌센스는 그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의 원인을 분석하는 우리에게 열쇠를 제공한다. 특별히 첫 번째 죽음 예언 후 예수님을 꾸짖었던 베드로는 예수님으로부터 곧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8:33)라는 질책을 받는다.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생각과 시각으로 보지 않고 세상과 세상에 속한 사람들의 안목으로 일을 처리하려는 그들의 모습이 이러한 모든 몰이해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



제자들이 가지고 있던 '그리스도'(메시아)의 모습이 부귀와 영화만을 누리며 군림하는 자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오신 그리스도의 영광은 섬기는 데 있으며, 자신을 내어주는 데 있다는 점에서 세상이 이해하고 추구하고 있던 영광과는 극적인 대조를 이루고 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제자의 모습은 남을 위한 희생과 섬김의 삶을 살고, 십자가의 삶을 사는 모습에 있으며,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직접 실천하시며 가르치신다.



3. 제자들의 실패는 우리의 '성공'의 거울 저자 마가는 열두 제자들의 실패의 본보기를 통해 제자도의 교훈을 가르쳐 주는 극적인 방법을 택하고 있다.



첫째, 마가복음의 기독론과 제자도는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마가복음에서 우리의 제자도 모델은 제자들이 아닌 예수님이며, 그리스도가 모델인 제자도는 바로 섬김의 리더십이며 그것이 기독론에 아주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최근에 출간되는 리더십에 관한 책들의 추세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점은 '섬김', '코칭'(coaching), '계발' 또는 '임파워먼트'(empowerment) 등을 통해 리더로서 팔로워(follower)들을 향한 태도 및 자세가 달라져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변화하는 세상에서 기업이나 단체들이 생존을 위한 새로운 리더십 패러다임으로 선택한 것이 예수님의 리더십에 대한 가르침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둘째, 마가는 예수님의 삶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자의 모습은 하나님의 것을 생각하고 사는 삶이며, 믿음 그리고 그 믿음 위에 근거한 기도의 삶일 뿐 아니라, 또한 섬김의 패러다임을 가지고 사는 삶이라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진정한 제자의 삶은 단순히 배우기만 하는 게 아니라 배운 대로 실제로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셋째, 마가는 우리에게 섬기는 리더십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것은 마가복음의 제자들에게 일어난 것과 동일한 것으로 바로 '십자가 사건'을 경험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십자가 사건의 실존적 경험이 있어야 하며, 그것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져야 하는 진정한 십자가는 우리를 고생시키는 어떤 일이나 어떤 대상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옛 사람과 새 사람이 공존하는 자신의 현실 속에서 옛 사람을 죽이는 노력과 함께 새 사람을 성령의 지배하에 두는 노력을 쉬지 않고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희생을 감수하며 좇아야 하는 도(the Way) - 누가복음을 중심으로

1. 이야기로 가르치는 제자도와 하나님의 주권 누가복음은 수많은 이야기(narrative)들을 통하여 가르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강조되어 있다. 그러나 마태복음처럼 가르침들이 모아져 기록된 것이 아니라 골고루 흩어져 있고, 다른 복음서에는 나오지 않는 비유들이 있다.(예: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돌아온 탕자의 비유 등) 누가복음은 특별히 구조적인 한 가지 특징이 있다. 소위 '여행 이야기'(travel narrative)라고 알려져 있는 9장 51절에서 19장 27절 사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그중에서도 특별히 제자도에 관한 가르침)을 모아서 전달하고 있으며, 예수님의 사역을 주제별로 정리해 놓은 듯 보이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누가복음에서는 열두 제자와 함께 70인(10장)이라는 또 다른 그룹들이 더해져 있으며, 열두 제자들에 대한 평가도 상대적으로 어느 복음서보다 긍정적이다. 제자들의 더딘 깨달음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때까지 모든 것을 온전히 다 밝히지 않고 숨겨 두었기 때문(9:45 "저희가 이 말씀을 알지 못하였나니 이는 저희로 깨닫지 못하게 숨김이 되었음이라 또 저희는 이 말씀을 묻기도 두려워하더라")이라고 나와 있다. 제자도에서 하나님의 절대주권이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누가복음의 주제를 단순히 제자도에 국한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누가복음 전체가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관점에서 모든 것을 전개하고 있다.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강조는 누가가 가지고 있는 역사를 보는 견해와도 일치한다. 신학적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 저자 누가는 세속 역사와 구속사가 얽히고 설켜 분리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다. 누가에게 있어 역사(history)는 '그분의 이야기'(His story)였다.



2. 제자들에게 요구되는 희생 제자의 삶과 관련해 다른 복음서와는 달리 누가복음에서는 특별히 그런 삶을 살아가는 데 요구되는 희생적 대가를 계산해 보라고 강조한다. 14장 28절에서 32절까지의 두 개의 비유, 곧 '망대를 세우고자 하는 자'와 '전쟁에 나가는 임금의 모습'을 통해 제자의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대가, 즉 희생을 따져보라는 것이다. 제자의 삶이 갖는 가치에 대한 올바른 견해는 그런 삶을 사는 것이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이 '수지'(?)맞는 일이므로 다른 모든 것을 미련 없이 버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희생이란 무엇이며 어떠한 삶을 의도하고 있는 것일까? 한마디로 9장 57∼62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철저하고 완전하게 헌신하는 삶이다. 제자들에게 요구되는 삶을 산다는 것은 인생을 향한 분명한 목적과 목표를 정해 놓고 전략을 세우며, 그 전략을 이루기 위해 계획을 세울 뿐 아니라 그것에 필요한 헌신 및 자원 확보에 집중하는 것을 포함한다. 또한 누가복음에는 제자의 삶은 평생 계속되어야 한다는 지속성이 강조되어 있다. 다른 복음서와 달리 누가복음에서는 '날마다'라는 단어가 강조되어 있다. 제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좇아야 하며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며 살아야 한다.



튀어라! 세상 속에서 다 함께 뭉쳐 - 요한복음을 중심으로

요한복음은 '제자'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나오는 복음서이다. 하지만 요한복음에는 열두 제자의 이름이 다 나오지 않고, '사도'라는 단어가 전혀 쓰이지 않은 것도 매우 특이한 점이다. 여기에다 제자들을 향한 기도(17:20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에서 보듯 제자의 개념에 포함된 대상이 공관복음보다 그 폭이 훨씬 넓다는 것이다. 이는 저자 요한이 관심을 가지고 강조하고 있는 영역이 열두 제자들보다는 미래에 세워질 제자들에게 있었음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 일반 '제자들'과 참 제자들 제자도의 관점에서 볼 때, 요한복음에 나타나는 사람들을 최소한 세 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예수님을 반대하며 핍박하는 '세상'이라는 단어로 표현된 무리, 두 번째는 예수님을 좇긴 좇았지만 결정적 순간에 기대와 다른 예수님의 모습에 예수님을 등지는 무리,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믿고, 알고 있는 무리들이다.



첫 번째 유형의 무리는 예수님을 핍박하는 종교 지도자들뿐 아니라 더욱 광범위하게 '유대인들'이라는 애매한 단어로 묘사되는 이들이 여기 속한다. 두 번째 유형은 예수를 좇는 '제자들'이라는 호칭은 가지고 있지만, 그들의 잣대는 세상적인 요소로 만들어져 있다. 이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 하는 자'들이다. 하지만, 자신들의 요구, 바람, 기대가 충족되지 않을 시 언제든지 예수님의 '제자됨'을 버리는 자들이다.



세 번째 유형의 무리는 진정한 제자들로 예수님을 '믿고' 또 '아는' 자들이다. 요한복음의 서문(1:1∼18)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듯 이들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12∼13절)이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라는 표현은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영접하는 인간의 책임이 신비롭게 어우러져 태어나 성장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이들이 바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제자들이다.



2. 진정한 제자들의 특성 첫째, 진정한 제자는 그분의 말씀에 '거함'으로 자유함을 경험하는 자들이다. 거함이란 '아는 것'뿐 아니라 경험하고 믿고 행하는 것을 모두 포함하는 총체적 의미로서, 예수님을 믿고 행하면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과실을 맺게 되며 그것이 바로 제자의 삶이라는 것이다. 그런 삶을 살 때 우리는 진리이신 예수님을 알게 된다. 순간순간 경험하는 수많은 갈림길과 선택의 기로에서 그분의 방법에 근거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게 되고 우리를 속박할 수 있는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함을 경험하게 된다. 둘째, 진정한 제자는 그분의 사랑을 좇아 행하는 자들이다. 셋째, 진정한 제자는 그분 안에 거함으로 열매를 많이 맺는 자들이다. 이 열매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다. 한마디로 전도의 열매, 품성의 열매, 행위의 열매 등을 통해 드러나는 삶의 모든 열매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2부_ 섬기는 리더십만이 진정한 리더십이다



섬기는 리더십만이 진정한 리더십이다

1. 리더십이라는 관점에서 본 세상, 변화, 트렌드 한 연구에 따르면, 리더십에 관한 정의가 850가지 이상일 정도로 리더십에 대한 이해가 다양하다. 이 이론들 중 가장 부상되고 있는 요소는 '영향력'이라는 단어이다. 오스왈드 샌더스(Oswald Sanders)의 표현을 빌리자면 "리더십이란 영향력, 즉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능력이다." 본문에서도 '지위'라는 개념보다는 '영향력'의 중요성을 염두에 두고 리더십에 접근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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