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 소중한 선물
박성민 지음 | 순출판사
완전 소중한 선물
박성민 지음
순출판사 / 2011년 10월 / 314쪽 / 13,000원
존재가 부정 당하는 시대 속의 하나님(1:1) 오늘날, 어느 복음서든 관계없이 마주치는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복음서가 쓰여질 당시에는 없었으나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는 숱하게 경험하는 도전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존재에 관한 의문입니다. 그 당시에는 부정할 수 없었던 당연한 사실이 이제 더 이상 당연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에서 하나님의 존재는 전제이지 의문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이 21세기에 복음서를 쓴다면 하나님의 존재에 관해 최소한의 언급은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무신론의 영향력이 점점 더 커지는 것은 외면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무신론과 연관하여 유명세를 타는 두 학자가 있습니다. 리처드 도킨스와 스티븐 호킹 박사입니다. 리처드 도킨스의 책 중 하나인 『만들어진 신』은 전 세계 베스트셀러가 되어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습니다. 스티븐 호킹은 갈릴레오 갈릴레이, 아이작 뉴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계보를 잇는 물리학자라는, 학문적 전문성을 인정받은 학자입니다. 그리고 루게릭병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았으나 그 후 50년 가까이를 생존하고 있는, 특별한 그의 삶 자체가 이슈입니다. 이렇게 카리스마와 매력을 지닌 그들이 전파하는 무신론은 파급 효과가 대단합니다. 그들은 과연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 걸까요?
먼저, 리처드 도킨스의 주장을 살펴봅시다. 그는 『만들어진 신』에서 신이란 미치고 착각에 빠진 사람들에 의해 발명된, '정신병적 비행을 저지르는(psychotic delinquent) 존재'라고 평가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존재가 '신'인데, 사람들이 '신'이라는 전염성 있는 악성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왜곡된 지적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존재하지 않는 신을 전제로 하는 종교를 유아적이고, 비이성적이며, 심지어 악하다고 폄하하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주장의 밑바닥에는 "과학이 신이 없음을 증명했다"는 가정과 확신이 깔려 있습니다.
스티븐 호킹은 물리학 측면에서 우주의 기원에 대한 문제뿐 아니라 인간의 삶과 죽음 그리고 사후에 대해서도 무신론의 입장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습니다. 우주의 기원에 대한 그의 이론은 물리학자 레오나르드 믈리디노프와 함께 쓴 『위대한 설계』(The Grand Design)에 나옵니다. 요지는 "양자(quantum)의 요동에 의해 무(無)에서 미세한 우주들이 창조되고 그들 중 일부는 급팽창하여 은하들과 별들을 탄생시킨다."는 주장입니다. 모든 것이 어떤 질서나 법칙에 의해 생긴 것이 아니라 자연발생적인 우연만 있을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그냥 존재하는 물리 법칙이 우주를 만들었고 그러한 우연에 우연이 더해져 이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태초에 물리법칙이 있었다."라고 간략하게 요약할 수 있는 주장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그는 더 나아가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를 통해 "천국이나 사후세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믿음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꾸며낸 동화에 불과하다."며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뇌가 깜빡거리는 순간 이후에는 어떤 것도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인간의 뇌를 부속품이 고장 나면 작동을 멈추어 버리는 컴퓨터와 같은 것으로 이해한 것입니다. 당연히 그는 "고장 난 컴퓨터에 천국이나 사후세계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국이나 죽음 이후의 다른 세계의 존재란 다 헛소리라는 것입니다.
스티븐 호킹 또한 리처드 도킨스와 같이 과학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가 부정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과연 이들의 주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그들의 주장을 염두에 두고 하나님, 우리의 생명에 대한 이해 및 사후의 삶에 대한 가능성 등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존재는 증명될 수 있는가?: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읽어보면 그는 신이 없다는 가정에서부터 모든 것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제 자체를 증명하고자 하는 시도도 없습니다. 그는 오직 자신의 주장에 심취하여 그 주장에 반하는 다른 증거들을 다 무시해 버립니다. 예를 들어 그는 신의 존재에 관한 믿음은 인간이 성숙함에 도달하면 사라져야만 하는 유치한 망상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성숙해진 후에도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이 많습니다. 리처드 도킨스도 잘 알고 있는 C. S. 루이스(C. S. Lewis)도 이 경우에 속합니다. C. S. 루이스는 어려서부터 확고한 무신론자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교수생활을 하던 서른 살에 이르러 유신론으로 돌아섰고, 그로부터 2년 후 옥스퍼드대학의 동료 교수인 톨킨(J.R.R. Tolkien, 『반지의 제왕』의 저자)과의 긴 대화를 통해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믿음에 이르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합니다.
리처드 도킨스가 당연시하며 근거로 삼고 있는 과학이 신의 부재를 증명했다는 것도 어불성설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셀 수 없이 많은 과학자들이 신앙인인 것을 왜 고려조차 하지 않는 것일까요? 한 마디로 그의 시도는 '무신론적 이데올로기'를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종교 비판'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의 접근법은 순환논리의 전형적인 경우입니다. 삼단논법을 공부한 사람들은 대전제라는 시작이 잘못되어 있으면 거기서 나오는 소전제가 맞을지라도 결론이 틀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삼단논법이 지닌 문제와 유사합니다. "네 발을 가졌으면 포유류이다(대전제), 의자는 네 발이 있다(소전제), 의자는 포유류이다(결론)." 비록 소전제가 맞는다고 할지라도 대전제에 문제가 있기에 결론이 잘못 나오는 것입니다. 리처드 도킨스가 지니고 있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불신이 그가 내린 결론으로 나오는 것이지 결코 그가 생각하듯 무신론을 증명한 것이 아닙니다.
스티븐 호킹의 주장 또한 같은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우주의 시작에 관한 이론, 죽음과 사후세계에 대한 부정은 논리적 한계를 지녔을 뿐 아니라 그 주장을 반박하는 경험적 증거들이 많습니다. 먼저 『위대한 설계』라는 그의 책 제목부터가 기독교계에서 주장해 온 '지적 설계론'(Intelligent design theory)에 대응하기 위한 것입니다. 지적 설계론이 "우주와 생명체에는 질서가 있는데 그것은 특정성을 지닌 복잡한 정보를 갖고 있으며, 인격체에 의해 지적으로 설계됐다."고 말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위대한 설계』는 "우주와 생명체는 무에서 자발적으로 생겨났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주장은 내적 모순을 보여줍니다. 우연이나 자발성에 '설계'와 '위대함'이라는 의도성과 가치를 부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가 말하듯 '우연성'이 맞는다면 과연 어떻게 '위대함'이라는 의도성과 가치가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그러한 의도성과 가치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우연이 아닙니다.
"무에서 유가 생겨났다."는 자연 발생론적 이론도 난해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시작점도 없고 태초에 아무것도 없었다면 현재라는 시간은 존재하지도 않고 과거 역시 무의미할 것입니다. 시작점을 무시하면 '존재' 자체가 논의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전까지 우주의 시작에 관해 학자들이 가장 많이 주장했던 빅뱅 이론은 최소한 '빅뱅'이라는 시작점에서부터 출발합니다. 150억 년 전에 상상도 못할 정도로 응축된 물질에서 대폭발이 일어나 지금과 같이 우주가 되었다는 주장입니다. 시작점과 원인에 대한 최소한의 설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스티븐 호킹의 주장에 따르면 우주는 시작도 없고 존재의 원인도 없습니다. 이러한 그의 시도는 빅뱅이론이 안고 있는 치명적 한계를 뛰어 넘고자 하는 또 다른 어리석음으로 보일 뿐입니다. 바로 "대단히 응축된 그 물질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라는 '시작 이전의 시작'에 대한 질문 말입니다. 빅뱅이 가능 하려면 우주가 무한에 가까운 고밀도에, 크기도 없는 순수한 에너지로 시작했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기에 그렇습니다. 오직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초자연적인 힘의 존재 없이는 그런 시작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옥스퍼드대학의 앨리스터 맥그래스 교수는 "우주는 신이 아닌 물리학 법칙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스티븐 호킹의 주장을 정면 반박합니다. "중력법칙이나 물리학 등은 어떤 상태에서 발생한 결과에 대한 설명일 뿐이지 법칙 자체가 특정 세계를 창조할 수는 없다." 앨리스터 맥그래스 교수가 예로 든 축구 경기의 비유는 압권입니다. 아이작 뉴턴의 운동법칙은 선수가 골을 넣는 것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운동법칙이 원인이 되어 골이 들어가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골을 넣기 위해서는 인간 존재의 개입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더 나아가 스티븐 호킹의 "창조자를 언급할 필요가 없으며 물리학의 법칙이 이미 존재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전혀 새롭지 않다."고 평가합니다. 그리고 그는 무신론을 펴고 있는 스티븐 호킹에게 공을 넘깁니다. "과연 물리학 법칙은 어디서 왔는가? 누가 그것을 만들었는가? 어떻게 중력이 가장 첫 단계에 존재하는가? 누가 그것을 가져다 놓았는가?" 솔직히 저도 스티븐 호킹 박사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 무엇이라 답을 할지 궁금합니다.
오히려 스티븐 호킹은 천체물리학자 로버트 재스트로가 『신과 천문학자』(God and the Astronomers)에서 한 솔직한 고백에 동의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 같아서는 창조의 신비를 가린 커튼을 과학이 걷어 올릴 수 있을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이성의 힘을 믿고 사는 과학자에게는 이번 이야기가 악몽으로 끝을 맺는다. 이제까지 무지의 산을 오르던 과학자가 이제 막 정상을 정복하려고 마지막 바위를 짚고 서는 순간, 이미 수백 년 전부터 그곳에 앉아 있던 신학자 무리가 그를 반기기 때문이다." 로버트 재스트로의 말은 모든 시작의 시작점에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고는 설명될 수 없음을 인정하는 솔직한 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스티븐 호킹의 시도는 난제를 벗어나기 위해 학자적 양심을 저버린 주장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사후세계를 '맛본' 이들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 스티븐 호킹의 주장으로 다시 돌아가 봅니다. 그는 사후세계나 천국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만들어낸 동화와 같은 존재라고 했습니다. 영혼의 존재에 대한 부정을 뛰어넘어, 이 세상에서의 삶 외에는 더 이상의 것이 없다는 철저한 부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을 부정하는 증거로 최근 임사체험(臨死體驗, NDE; near-death experience)을 했다는 사람들의 숫자가 크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임사체험이란 말 그대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사람이 소생하여 의식을 회복한 후에 자신이 사후세계를 맛보았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요즘처럼 의학이 발달하기 전에는 그런 체험 자체가 드물었습니다. 그러나 의학 기술이 급속하게 발달하면서 심폐소생술 등을 통해 사망 직전 혹은 사망과 다름없어 보이는 상태에서 소생하는 사람의 숫자가 급격히 늘어난 것입니다. 더 나아가 임사체험자가 체외이탈 중에 관찰한 사건이나 획득한 정보가 다른 사람들에 의해 사실로 확인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마지막 종착지인 천국에 대해 비록 비유적인 표현을 사용하나 분명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그러나 죽음 이후 그곳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 관해서는 신비 속에 담아 놓았습니다. 신명기 29장 29절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감추어진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 속하였나니" 분명히 나타난 일은 사후세계가 있으며, 죽음 이후의 삶의 질은 이곳에서의 우리의 삶과 깊은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왓슨 크릭과 프랭클린 윌킨슨이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발표한 지 50주년이 되는 해인 2003년 4월, 10년 동안 세계 6개국 2천 명의 과학자들이 참여하는 '인간게놈프로젝트'의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31억 6,470만 개의 유전자 서열을 모두 밝히는 유전체(게놈) 지도를 완성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인간 과학 지식의 최고의 결과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놀라운 업적이었습니다. 이러한 엄청난 프로젝트를 총 지휘한 학자가 바로 프랜시스 콜린스 박사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 『신의 언어』에서 10년의 연구 과정을 회고합니다. "인간 게놈 서열을 관찰하고 그 놀라운 내용을 밝히는 일은 경이로운 과학적 성취이자 하나님을 향한 숭배의 시간이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프랜시스 콜린스 박사는 빌 클린턴 미국 전 대통령의 연설문 작성자에게 영향을 주어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생명을 창조할 때 사용한 언어를 배우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려 주신 가장 신성한 선물에 깃든 복잡성과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에 그 어느 때보다도 큰 경외심을 느끼게 되었습니다."라는 고백을 통해 과학적 시각을 영적 시각으로 끌어올리기도 했습니다. 거기에 그는 "오늘은 전 세계에 경이로운 날입니다. 지금까지 오직 하나님만이 알고 있던 우리 몸의 설계도를 처음으로 우리가 직접 들여다보았다는 사실에 저는 겸허함과 경외감을 느낍니다."라고 더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과학자로서 조언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을 이해하려면 과학적 관점과 영적 관점이 갖는 힘을 모두 동원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크리스천인 그가 보기에 과학은 성경과 대립하기는커녕 오히려 성경의 토대가 된다고 말합니다. 프랜시스 콜린스 박사는 "하나님 안에서의 믿음은 무신론보다 더 과학적인 감각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모든 생각의 시작은 믿음입니다. 어떤 믿음을 가졌느냐에 따라 생각이 형성됩니다. 어떤 이가 우주와 그것의 탄생에 대해 "이건 그냥 물리 현상들일 뿐이야. 설계 같은 것 없어. 분자와 분자들이 부딪치는 것뿐이야."라고 말한다면 저에게는 이것을 이해하기 위한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의식적 노력이 필요할 듯합니다. 현대의 신(新)무신론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신이 있다고 믿는 사람은 멍텅구리다."라고 말할지라도 하나님의 존재는 제게 믿음이고 그 믿음을 받쳐 주는 증거들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믿음은 결국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장 폴 사르트르의 표현처럼 "인생은 B와 D 사이의 C"입니다. 탄생(Birth)과 죽음(Death) 사이에는 모든 것이 어떤 선택(Choice)을 하느냐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선택 중의 선택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믿음의 선택입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은 그곳에서 당연시하고 있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요한복음을 시작하며 제일 먼저 던져야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어떠한 분이십니까?"라는 질문입니다. 그러한 질문에 어떻게 답을 할 것인가가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모든 것이 상대화된 포스트모던 시대에 만나는 예수 그리스도(1:1~18) 알쏭달쏭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포스트모더니즘이란 20세기 중반 이래 서구 문화 전반에 일어나고 있는 변화 추세를 향한 표현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몰고 온 변화의 특징을 간략하게 살펴봅니다.
첫째는 먼저 이성에 대한 비판과 불신을 들 수 있습니다.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설명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객관적이라는 말도 과거와 같이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경험과 실천 중심으로 다원적이며 주관적이라는 개념이 중요하게 됩니다. 통일성보다는 다양성을 중시하고, 절대적 진리 추구보다 상대성, 역사성이 주목을 받습니다. 결국 그 문화적 시각이 다원주의(多元主義)를 지향하게 되는 것입니다. 서구에서 일어나는 뉴에이지 운동과 같은 종교다원주의의 열매는 한 증거일 뿐입니다.
둘째는 '절대적 진리'에 대한 거부가 있습니다. 전통적인 철학에서는 실재(實在)를 인정했기에 그것에 관한 참된 진술, 즉 진리(眞理)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실재가 존재하는가?" 또는 "진리란 무엇인가?" 같은 질문을 하는 것조차 어리석게 여깁니다. 왜냐하면 시대와 장소를 넘나드는 참된 진리는 존재하지도 않고, 그런 '보편적인' 진리를 주장하는 것은 그 배후에 자기와 다른 사람들을 배제하려는 권력(의도)이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진리의 보편성을 부정하고 진리(사실)라는 것은 사회에 따라 다르고 시대에 따라 변한다고 주장합니다. 도덕이나 규범의 영역에서 '상대주의'가 나타나는 것이 당연하게 됩니다. 결국 모든 사람이 인정하고 지켜야 할 보편적인 도덕 또는 규범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