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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비비어의 은혜

존 비비어 지음 | 두란노
존 비비어의 은혜

존 비비어 지음

두란노 / 2010년 3월 / 315쪽 / 12,000원



Part 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은 가능하다



빛나는 그리스도인의 삶


당신이 비범하게 살기를 그 누구보다 바라시는 분이 있다. 그분은 여느 좋은 아버지처럼 자녀들의 성취와 행복을 기뻐하는 아버지다. 그분의 이름은 하나님이다! 그분이 가장 기뻐하시는 순간은 당신이 자신의 잠재력을 최고로 발휘하는 때다. 그분의 탁월하신 계획 역시 우리가 비범하게 살 때 드러난다. '비범함'. 이 얼마나 멋진 단어인지 듣기만 해도 평범함과 현실 안주에서 벗어나고픈 열망이 솟는다. 비범함의 반대는 평범함이다! 솔직히 우리는 자신의 존재나 삶의 의미가 여태까지 알고 보아 온 것 이상이기를 원한다. 모든 사람들 안에는 평범함을 초월하려는 타고난 갈망이 있다. 우리는 비범한 삶을 동경한다.

대중의 마음과 관심을 사로잡았던 최고의 영화들에는 항상 비범한 주인공이 등장한다. <스파이더맨>, <슈퍼맨>, <스타워즈>, <반지의 제왕>, <나니아 연대기>, <매트릭스>, <엑스맨> 등. 2009년 현재, 역대 최고 블록버스터 영화 25위 중 17편이 이 범주에 들어간다. 거의 70퍼센트다. 왜 그럴까? 우리가 본래 '비범한' 삶을 살도록 지음 받았기 때문이다. 본래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하나님의 계획과 현실은 맞지 않을 때가 많다. 내가 오랫동안 기독교를 거부하고 피했던 이유 중 하나는 어긋난 기독교인들의 이미지 때문이었다. 그들은 남의 결점을 지적하기에 빨랐고, 수동적이거나, 시류에 역행하며, 무지했다. 신자가 되면 개성과 창의력, 탁월함과 열정을 잃을 것 같았다. 성공할 수 있는 능력을 잃을 것 같았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런 시각은 본래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실 때 주신 삶과는 반대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반사시키는 존재로 지음 받았다. 당신이 누구이고 직업이 무엇이든 상관없다. 당신은 그 역할 속에서 비범한 일을 이루도록 지음 받았다. 하지만, 기존의 신자들, 그리고 현 문화는 내게 하나님의 사람들에 대한 이미지를 왜곡시키고 축소시켰다. 왜 그런 왜곡이 생겨났을까? '이 세상의 임금', '공중의 권세 잡은 자', '이 세상의 신'으로 불리는 사탄이 세상의 시스템을 지배하며,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자들의 사고를 지배한다.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지음 받은 자기 본연의 존재(놀랍고 특별한 위업을 수행할 능력을 지닌 비범한 인간)를 발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에 대한 요즘의 평판과는 대조적으로 초대교회의 큰 고민 중 하나는 신자가 초인적 영웅이나 신이 아님을 사람들에게 설득시키는 것이었다. 루스드라라는 도시에서는 군중이 흥분해서 외쳤다. "신들이 내려오셨다! 이 사람들은 신이다!" 바울은 그들을 확실히 바로잡아 주었다. 기록에 보면 교회를 향한 예루살렘 성 전체의 태도는 이랬다. "백성이 칭송하더라"(행 5:13) 이처럼 교회를 우러르는 마음이 우리 세대에도 회복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라

우리가 무슨 일을 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이미 사랑하시는 것보다 더 사랑하실 수 없고, 거꾸로 우리가 무슨 짓을 해도 그분은 우리를 덜 사랑하실 수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기뻐하시는지는 우리 책임이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딱 잘라 말했다. "그런즉 우리는 …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고후 5:9) 우리 모두에게는 부모를 기쁘게 하려는 타고난 갈망이 있다. 이것은 하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려는 가장 근본적인 갈망의 반사일 뿐이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가지는 가장 큰 만족은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심을 알 때 온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때 우리는 큰 상을 얻는다. 미래의 어느 날 모든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서, 이 땅의 짧은 시간 동안 행한 대로 상을 받게 된다. 죄에 대한 영원한 심판은 예수님의 피로 없어졌지만 신자로서 자신의 수고에 대한 상이나 해는 받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구원은 받았으되 심판대에 가서 하나님이 주시려는 상을 다 잃는 사람들이 있다. 왜 잃을까? 성경의 답은 단지 그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영원을 어디서 보낼 것인가는 우리가 십자가에 어떻게 반응하느냐로 결정되지만, 영원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는 신자로서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로 결정된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의 삶에 목표를 정하셨다.

"우리는 그가[하나님이]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그분이 미리 계획해 두신 길로] 행하게 하려[그분이 준비해두신 선한 삶을 살게 하려]하심이니라"(엡 2:10) 하나님이 당신의 길을 미리 계획하셨지만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되어 있다.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만드심이라"고 하지 않으셨다. 여기에 자유의지가 개입된다. 이 일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협력해야 한다. 우리는 기도와 성경읽기와 다른 영적 수단을 통해 각자의 사명을 찾아내고, 부지런한 수고를 통해 이루어 가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목표를 이야기할 때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이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구체적인 계획을 이루기보다는 "주는 대로 받아 최선의 삶을 사는 것"이다. 이런 사고방식 때문에 이 귀한 성도들이 놓치는 것은 무엇일까? 하나님이 설계하신 놀라운 사명을 평범한 실존으로 바꾸어 버리는 것이다.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하나님은 우리가 내 인생을 향한 그분의 뜻을 구하여 찾기를 원하신다. 바울은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엡 5:17)고 썼다. 좀 더 거칠게 옮긴 역본도 있다. "미련해지지 말라. 대신 주께서 너희에게 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내라"(CEV)

당신은 주님의 기쁨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에 있어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과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인가?" 불완전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불완전한 우리가 완전하신 하나님께 기쁨을 드릴 수 있을까? 사도 베드로의 말을 들어보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우리에게 있다. 이 모두를 하나님 자신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주셨다"(벧후 1:3, CEV) 여기 답이 있다. 하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우리에게 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이것을 마음에 새겨두고, 절대로 슬그머니 달아나지 않게 하라. 이 말과 더불어 다음 말도 잊지 말기 바란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능력이 과연 당신에게 있으나 그 능력을 활용하여 삶으로 살아내는 것은 당신 몫이다.

하나님은 자녀인 우리들에게 능력을 똑같이 나눠 주지 않으신다. 다만 우리가 각자 자신이 받은 바에 충실하기 원하신다. 달란트 비유에 그것이 확실히 나온다. 한 종은 다섯 달란트, 한 종은 두 달란트, 한 종은 한 달란트를 받았다. 하지만 이것을 가지고 열심히 일해서 각각 열 달란트, 네 달란트를 남긴 두 종에게 주인은 똑같이 칭찬하신다. 두 종에 대한 주인의 즐거움과 기쁨은 똑같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맡은 일을 수행할 은사와 능력과 재능을 주셨다. 그러므로 내가 받은 것에 관해서는 내 몫을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받은 것으로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관해서는 우리에게 심판이 있다.

이와 비슷하지만 강조점이 아주 다른 비유가 있다. 므나의 비유이다. 열 명의 종은 모두 똑같이 한 므나씩을 받았다. 달란트 비유와 달리, 이 비유의 므나는 다른 수준의 사명이나 특별한 은사를 가리키지 않는다. 므나는 은혜, 기본적 믿음, 하나님의 사랑 등 모든 신자에게 똑같이 주시는 선물들을 가리킨다. 삶의 일반 분야에서는 우리 모두 받은 것이 똑같다. 므나 비유 속의 종들은 므나를 열 배로 늘린 종은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세를, 다섯 배를 늘린 종은 다섯 고을 권세를 받았다. 므나를 묻어 둔 종은 호된 책망을 받았다. 이 책에서는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똑같이 주신 자원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

Part 2 은혜 안에 답이 있다



은혜 안에 승리하는 삶의 비결이 있다


성경은 하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데 필요한 것이 당신과 나에게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능히 기쁘시게 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기적적으로 주셨다는 그 능력의 원천은 무엇인가?" 답은 "그분의 은혜"다. 먼저 우리는 은혜로 구원받았다. 선행, 봉사, 주일 성수 기타 내 쪽의 어떤 선 때문이 아니라,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부활하여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면 구원받은 순간부터 왕 앞에 설 때까지는 이 은혜의 역할이 무엇인가? 우리는 삶을 위한 은혜도 똑같이 하나님의 호의임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 힘으로는 얻어 낼 수 없다는 말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관한 한, 처음 구원받을 때만 아니라 구원이 유지되는 것도 은혜다. 예수 그리스도께 헌신한 뒤로 자기가 엉망으로 살아서 하나님이 자기의 구원을 거두셨을 거라는 생각으로 힘들어하는 신자들이 많이 있다.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그분은 신실하시고 의로우셔서 우리를 용서하고 깨끗하게 하신다. 혹시라도 하나님의 용서를 다 갖다 쓴 것처럼 느껴진다면 당신은 자신의 감정을 듣고 있거나 아니면 하나님 말씀에 어긋나는 거짓말을 듣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기쁜 소식과 더불어 중요한 경고가 있다. 이 용서를 악용하여 뻔뻔하게 죄짓는 일을 삼가야 한다는 것이다. 분명히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자유가 있다. 그러나 이 자유는 뻔뻔스럽게 죄짓는 데 쓰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거듭난 신자는 "나를 위해 죽으신 분의 마음과 그분이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은혜는 죄 사함으로 그치지 않는다. 은혜는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이기도 하다.

"[예수]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요일 2:6) 여기 보면 "행하는 게 좋다"고 하지 않고, "행할지니라"라고 했다. 우리는 예수님이 행하시는 대로 행해야 한다! 이것은 제안이나 목표가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마땅히 기대하시는 바다. 다행히 하나님은 명령을 주실 때 반드시 그 명령을 지킬 수 있는 능력도 함께 주신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은혜의 능력으로 예수님처럼 행동할 수 있다. 은혜의 참 뜻을 총의 비유로 제시해 볼까 한다.

시간을 몇 백 년 거슬러 올라가 1717년으로 가 보자. 그때는 총기가 처음 발명되기 1년 전이다. 어떤 사람이 배가 난파되는 바람에 바다 한복판의 무인도에 혼자 갇혔다. 이 사람은 몹시 배가 고파 동물을 잡으려고 이리저리 쫓아다녀 보았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코코넛을 따러 야자수에 오르려 해보지만 얻은 것은 다리와 팔의 상처뿐이다. 코코넛은 그림의 떡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사나운 야생 곰들이 어디서 나타날지 몰라 늘 긴장해야 한다. 곰이 올라오기 힘든 집채만 한 큰 바위를 찾아내 임시 사다리를 만들어 올라가선 사다리까지 끌어올려 버렸다. 이제 밤낮없이 바위에 갇힌 것이다. 섬사람은 배만 고픈 게 아니라 울퉁불퉁한 바위 위에 누워 자기가 불편해 수면 부족으로 피곤하기까지 하다. 이쯤 되자 이 남자의 좌절과 탈진은 극에 달한다.

그런데 갑자기 난데없이 어떤 사람이 등장한다. 타임머신을 타고 온 21세기 말의 사람이다. 과거를 돌아보다 섬사람의 곤경을 알게 된 그는 사랑과 염려로 구조에 필요한 지식과 장비를 모아 섬사람을 구하러 왔다. 그의 이름은 메신저다. 메신저는 정확히 61일 후에 섬 근처로 배 한 척이 지나갈 것이라고 말해 준다. 그리고 총을 주며 방아쇠를 당기는 법을 가르쳐 준다. 메신저는 이 총소리가 바다 위 멀리까지 퍼지므로 배의 나팔소리가 들리면 총을 쏘라고 가르쳐 준다. 메신저는 총이 곰이나 사슴, 멧돼지 등을 죽일 수 있고 나무의 코코넛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알려 준다. 그리고 여러 번 연습도 시켜준다. 수 백발의 총알이 든 총 상자도 준다. "61일 동안 쓰기에는 아주 넉넉할 것입니다."

섬사람은 감사에 겨워 어쩔 줄 모른다. "메신저님, 총을 받았으니 저는 무엇을 드려야 될까요?" 메신저는 웃으며 대답한다. "이 총은 당신에게 주라고 내 주인이 주셨고, 그분은 타임머신의 주인이고, 아주 큰 부자랍니다. 난 선물을 전달한 것만으로도 기쁩니다." 그가 총을 받자 메신저는 사라져 버린다. 총은 그의 목숨을 건져 줄 뿐 아니라 남은 두 달을 편안하게 살게 해줄 것이다.

그는 구원받았다! 눈치챘겠지만 메신저는 구원의 길을 전해주는 주의 종을, 메신저의 주인은 주님을 가리킨다. 총은 하나님의 은혜, 과분한 선물을 가리킨다. 섬사람이 구원받은 것은 자신의 행위 때문이 아니라 메신저의 주인이 보낸 선물 때문이다. 61일의 기간은 이 땅에서 섬사람에게 남은 수명을 가리킨다. 배는 그가 이 땅을 떠나 천국에 가는 것을 상징한다.

이번에는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요소 하나만 바꾸어 보자. 그리고 그 차이를 살펴보자.



메신저는 총을 쏘아 선장에게 알리는 법을 가르쳐 준다. 그러나 총의 다른 기능은 말해 주지 않는다. 이제 섬사람은 살아날 길은 찾았지만 남은 61일 동안 섬에서 제대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정보는 없다. 메신저는 사라지고, 섬사람은 섬에서 빠져나갈 길이 생겨 기쁘지만, 남은 기간을 어떻게 살 수 있을지 겁이 난다. 다시 좌절이 밀려든다. 그는 자기 손안에 있는 물건의 잠재력을 모른다.

그렇다면 요지는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은혜가 선물임을 배웠고, 그 은혜로 천국의 영생을 얻었다. 그러나 많은 복음주의 진영에서 간과해 온 것이 있다. 이 은혜가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주느냐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배가 도착하기 전까지 총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전하지 않았다. 은혜의 이 부분을 모르다 보니 많은 교인들이 구원받기 전과 별 다르지 않게 살고 있으며, 삶의 많은 부분에서 패배하고 있다.

존더반 「성경 용어 백과사전」에는 이렇게 설명되어 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능력을 주셔서 우리의 무력함을 극복하게 하시는 것이 은혜의 특징이다."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우리 힘으로는 살 수 없었지만 이제 그것이 가능해졌다. 은혜가 그 능력을 준다. 우리는 자신의 부족한 점을 극복할 능력을 받았다. 은혜는 우리에게 자신의 힘을 초월하는 능력을 준다. 비범하게 살아갈 능력을 준다! 그분이 뜻하신 구원은 오는 세상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승리의 삶을 살게 해주는 완성품이다.

은혜는 마음의 변화를 가져온다

은혜 안에 하나님의 놀라운 용서와 천국의 약속뿐 아니라 그분의 능력도 포함된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부터 내 삶은 극적으로 달라졌다. 그전까지만 해도 나는 죄로 힘들어 했고, 열등감 및 초라한 자아상과 싸웠으며, 내 삶에 성령의 열매가 왜 이렇게 적은지 의문이었다. 그러나 내게 이미 그분의 성품이 있음을 깨달은 후부터는 삶이 안정되면서 축복이 흘러 나갔고,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력도 커졌다

첫 노트북 컴퓨터의 경험이 내 변화에 대한 좋은 예가 되겠다. 내가 컴퓨터를 켜고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적었다. 얼마 후 어떤 컴퓨터 전문가가 내 옆에 앉아 여러 가지 기능을 보여 주었는데, 나는 놀라 그를 붙잡고 물었다. "그것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본래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어떻게 된 걸까? 그 사람은 내 컴퓨터의 여러 기능을 그냥 알려 주었을 뿐이다. 처음부터 있던 기능들인데 내 무지 때문에 가려져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내 백성이 무지함으로 말미암아 사로잡힐 것이요"(사 5:13)라고 말씀하신다. 많은 사람들이 이생에 허락하신 은혜의 능력을 모르기 때문에 이전의 나처럼 포로로 잡혀 패배자의 삶을 살고 있다. 무인도에 있는 그 섬사람과 다를 바 없다. 남은 두 달 동안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갖고도 그는 총의 주요 기능 하나를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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